요즘 자주 힘들다고 느꼈다. 일정에 쫓기고, 감정에 흔들리고, 어딘가에서 에너지가 새어나가는 느낌.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자연스럽게 뭘 줄여야 하나를 먼저 생각했다. 목표를 낮추거나, 일을 덜거나. 그게 합리적인 해결책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 책은 조용히 방향을 틀어줬다. 삶의 주도권을 빼앗겨서 힘든 게 아니라, 힘들 때 주도권을 빼앗긴다는 것. 순서가 달랐다. 원인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실은 결과였고, 내가 허덕이며 찾아 헤매던 답은 엉뚱한 곳에 있었던 셈이다. 손전등은 원래 내 손에 있었는데, 어디를 비출지 잊고 있었을 뿐이다.
읽으면서 가장 뜨끔했던 문장은 해야 한다에 대한 이야기였다. 해야 한다의 영역에 있을 때, 우리는 그 무게를 자신만 지는 게 아니라 옆 사람에게도 얹는다는 것. 돌이켜보면 나도 그랬던 적이 있다. 내 안의 조급함이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압박으로 전해졌을 순간들. 그때의 나는 동기부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받는 쪽에서는 강요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해야 한다를 할 수 있다로 바꾸는 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나와 주변 사람 모두를 위한 태도의 전환이었다.
완벽주의에 대한 이야기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책은 완벽주의를 잘 다듬어진 흉한 머리를 가진 괴물이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묘하게 정확했다. 그 괴물은 꽤 논리적인 목소리로 찾아온다. 혼자 있는 게 더 편해라는 생각이 진짜 나의 필요에서 나온 건지, 지친 마음이 만들어낸 회피인지 솔직히 그 경계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책이 알려준 답은 거창하지 않았다. 나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 그게 전부였고,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이번 독서모임에서 한 가지 장면이 계속 떠오른다. 완벽주의 때문에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분의 이야기였다. 자신이 정답이라고 믿는 선택지가 안 되면 다음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멈춰 계셨다. 나는 "완료를 지어보자"는 말을 건네고 싶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혹시 그 말이 "대충 해"로 들리진 않았을까 걱정이 됐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완료주의는 대충이 아니다. 할 수 있는 만큼 충분히 고민하고, 그 시점의 나로서는 최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다음 발걸음을 떼는 것. 그 차이를 어떻게 하면 잘 전할 수 있을까, 아직도 생각 중이다.
책에서 말하는 탁월성의 등식 (행복, 건강, 높은 성취)을 보면서 나는 어디가 강하고 어디가 약한지 가만히 들여다봤다. 성취 쪽으로 기울어진 저울을 행복과 건강 쪽으로 조금씩 옮기는 일. 그게 이 책이 말하는 행복한 성취주의자의 모습이 아닐까.
결국 이 책이 내게 남긴 건 하나다. 힘들 때 무언가를 줄이거나 포기하기 전에, 먼저 나와 대화하자는 것. 손전등의 방향을 바꾸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다만 그 전에, 손전등이 내 손에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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