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야.
커피 한 잔 옆에 두고 이 글 읽고 있다면, 오늘도 잘 왔어.
오늘은 투자 얘기이기도 하고, 사람 얘기이기도 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짧은 문장 하나에서 시작된 생각인데, 쓰다 보니 꽤 멀리까지 왔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말을 했어.
"나는 때때로 사람들의 마음이 깊은 우물과 같다고 생각한다.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끔 떠오르는 것을 보고 짐작하는 것뿐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땐 그냥 문학적인 표현이라 생각했어.
그런데 어느 날 손실을 확인하고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이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어.
아, 나는 우물 위에서 잠깐 떠오른 것만 보고 바닥을 다 안다고 생각했구나.
부동산 투자를 하기 전이었어.
벌써 십년 전 일이야.
주변에서 다들 이야기하는 종목이 있었어.
뉴스 헤드라인마다 그 종목이 나왔고, 유튜브를 켜면 어디서나 같은 얘기였지.
실적도 오름세였고, 차트도 나쁘지 않았어.
나는 차트를 한번 훑어보고 마음속으로 결론을 냈어.
흐름이 보인다. 이건 확실하다.
매수 버튼을 누르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어.
두 달 뒤, 주가는 고점 대비 40% 가까이 빠져 있었어.
알고 보니 그 종목이 속한 산업 전체가 정책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고,
주요 거래처와의 계약 갱신 문제도 수면 아래에서 이미 진행 중이었어.
내가 봤던 건 뉴스 헤드라인과 차트의 기울기뿐이었는데,
나는 그것만으로 그 기업의 본질을 꿰뚫었다고 착각했던 거야.
우물 위에 잠깐 떠오른 조각만 보고, 바닥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표작 『태엽 감는 새 연대기』에서
주인공이 말라버린 우물 바닥으로 내려가는 장면을 써.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장면이야.
하루키에게 우물은 인간의 무의식, 그 깊은 내면으로 가는 통로야.
동시에 그건 우리가 결코 완전히 닿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해.
너무 어두워서, 아무리 들여다봐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
그리고 이건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야.
기업도 마찬가지고, 시장도 그래.
우리가 분석하는 재무제표, 읽는 뉴스, CEO의 인터뷰.
이것들은 모두 그 거대한 우물에서 잠깐 수면 위로 떠오른 조각들이야.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우리는 짐작할 뿐이야.
신경생리학 연구에 따르면, 우리 감각이 뇌로 보내는 정보량은 초당 약 1,100만 비트야.
그런데 우리가 의식적으로 처리하는 정보는 그 중 고작 40~50비트에 불과하다고 해.
전체의 0.0004%를 보고 있는 셈이야.
그럼에도 뇌는 그 판단이 완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심리학에서는 이걸 '투명성의 환상'이라 불러.
내가 충분히 꿰뚫고 있다는 착각.
5분 만에 매수 버튼을 눌렀던 그날의 나처럼.
조금 더 들어가면 '기본적 귀인 오류'라는 개념도 있어.
어떤 기업의 실적이 좋게 나오면 우리는 곧장 "역시 이 CEO는 탁월해"라고 결론을 내려.
그런데 그 분기에 환율이 특별히 유리했을 수도 있고, 경쟁사가 갑자기 무너졌을 수도 있어.
반대로 실적이 나쁘면 "역시 저 CEO는 무능해"가 되는데,
산업 전체가 침체기였을 수도 있잖아.
상황이 아니라 사람을 규정하는 것.
맥락이 아니라 결과만 보는 것.
이게 우리가 가장 자주 빠지는 함정이야.
나도 어떤 기업의 분기 실적이 잘 나왔을 때 "이 CEO는 믿을 수 있다"고 결론을 냈다가,
그 다음 분기에 환율 효과가 사라지자 실적이 꺾이는 걸 보고 뒤늦게 깨달은 적이 있어.
좋은 숫자가 실력 덕분인지 운 덕분인지, 우물 아래를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는 수십 년간 하나의 원칙을 놓지 않았어.
'능력 범위(Circle of Competence)'.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영역 안에서만 투자한다는 거야.
버핏은 이렇게 말했어.
"중요한 건 그 원이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다."
찰리 멍거의 투자 철학은 평생 '지적 겸손'에 뿌리를 두고 있었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려는 자세.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투자 성공의 중요한 전제라고 강조했지.
반면 역사적으로 가장 화려하게 무너진 사례도 있어.
롱텀 캐피탈 매니지먼트, LTCM이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두 명의 학자가 이끌었고, 수학 모델로 시장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어.
1998년 러시아 금융위기와 함께
그들이 모른다고 인정하지 않은 변수들이 한꺼번에 터졌고, 펀드는 붕괴했어.
지식이 너무 많아서 망한 게 아니라, 모른다는 사실을 너무 몰라서 망한 거야.
"그럼 모른다는 걸 알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 아니야?"
오히려 반대야.
모른다는 자각이 있는 투자자는 세 가지를 다르게 해.
더 오래 기다려.
확신이 들 때까지, 짐작이 아니라 패턴이 반복될 때까지.
버핏이 하루에 5~6시간을 읽는 데 쓴다는 것도 결국 그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야.
안전 마진을 먼저 생각해.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전제 아래, 틀려도 치명적이지 않은 구조를 먼저 만들어.
우물의 깊이를 모르니, 그 깊이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거야.
첫 판단을 가볍게 쥐어.
새로운 정보가 떠오르면 빠르게 업데이트해.
처음 결론에 집착하지 않아.
수면 위로 새로운 것이 올라올 때마다 다시 들여다보는 거야.
역설적으로, 이 태도가 더 탁월한 판단으로 이어져.
철학자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타인을 내 방식으로 완전히 규정하려는 시도를 '지적 폭력'이라고 불렀어.
기업도, 시장도, 경제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가 가진 좁은 렌즈로 완전히 규정한 순간,
우물 아래에서 올라오는 신호를 우리는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돼.
이미 결론을 내렸으니까.
수면 위에 떠오른 것은 존중하되, 그 아래를 섣불리 채우지 않는 것.
짐작보다 기다림을 선택하는 것.
모를 수 있다는 마음을 남겨 두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진짜 수준 높은 투자자의 태도야.
매주 일요일 아침에 읽는 투자와 인생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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