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이야.
며칠 전에 드라마 한 편을 끝까지 봤어.
제목이 길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20년째 데뷔 못 한 영화감독 지망생이 나와.
친구들은 다 자리를 잡았는데, 혼자만 제자리야.
또 한 사람은 일 잘하는 PD인데, ‘나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어’라는 공포에 시달려.
보다가 멈칫했어.
저거, 한때의 나잖아.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
남들은 다 앞서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던 때.
나는 뭐 하는 인간이지.
그 생각이 밤마다 올라왔어.
근데 지금은 안 그래.
이상하지.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봤어.
뭐가 달라졌나.
돈을 더 벌어서?
아니야.
집이 늘어서?
그것도 아니야.
진짜 달라진 건 하나였어.
내가 내 삶의 운전대를 쥐었다는 것.
생각해보면,
무가치하다는 느낌은 '내가 결정하지 않는 삶'에서 오더라.
회사가 정해주는 시간표. 시장이 정해주는 기분. 남이 좋다니까 사고, 남이 인정해줘야 겨우 안심하고.
드라마 속 그 사람들도 똑같았어.
누가 날 골라주기를 기다리는 삶.
언제든 대체될 수 있다는 공포.
그게 무가치감의 정체였어.
처음엔 나도 그랬어.
남이 좋다는 종목, 남이 좋다는 동네.
졸졸 따라다녔어.
근데 그때가 제일 불안했어.
내 돈인데, 운전을 내가 안 하니까.
오르면 오르는 대로 불안하고, 내리면 내리는 대로 무너졌어.
내가 직접 공부하고, 내 기준으로 고르고, 내가 책임지기 시작하면서 달라졌어.
결과가 늘 좋아서가 아니야.
운전대를 내가 쥐고 있으니까, 흔들려도 안 무너졌어.
가치는 수익률이 주는 게 아니었어.
주도성이 주는 거였어.
가치 있는 사람과,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사람.
그 차이는 능력도, 성과도 아니야.
내 삶을 내가 끌고 가느냐, 끌려가느냐야.
골라지길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고르는 사람.
드라마 제목이 그렇잖아.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고.
맞아. 다 싸우고 있어.
너만 그런 거 아니야.
근데 그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갑자기 잘나지는 게 아니야.
오늘, 단 하나라도 내가 정하는 거야.
아주 작은 거라도.
남이 정해준 하루 말고, 네가 정한 한 가지를 오늘 해봐.
그 한 가지가 쌓이면,
어느 날 문득 알게 돼.
아, 나 꽤 괜찮은 사람이었네.
그날을 위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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