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나의 초심을 단단히 지키는 나초단입니다.
월부의 문을 두드린 지 어느덧 4년 차,
드디어 그토록 바라고 꿈꿔왔던 순자산 10억이라는 고지에 달성했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참 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땀으로 범벅이 되었던 여름날의 임장길, 포기하고 싶을 때 잡아주었던 동료들의 손,
그리고 묵묵히 곁을 지켜준 아내의 헌신까지.
저의 투박하지만 치열했던 4년간의 기록을 진솔하게 공유해 보고자 합니다.
월부를 알기 전,
저는 그저 골프에 미쳐있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서른네 살이라는 나이에 프로 데뷔를 꿈꿀 만큼 진심이었죠.
2년 동안 꾸준히 레슨을 받으며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얼마나 지독하게 빠져 있었냐면, 연습을 하다가 갈비뼈에 두 번이나 금이 갔는데도 통증이 조금 가라앉으면
다시 골프채를 잡고 스크린 골프장으로 달려갈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며 직장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연차가 쌓였고,
자연스럽게 종잣돈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모인 돈을 어떻게 굴려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회사 선배의 권유로 '코인'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처음 소액으로 시작했을 때는 그야말로 '돈복사' 시장이었습니다.
넣는 족족 돈이 벌리니 눈이 뒤집혔고, 투자금은 점점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맞이한 갑작스러운 하락장에서
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5천만 원이 넘는 돈을 순식간에 날렸습니다.
마음속으로 광광울면서 낙담해 있을 때,
이번에는 회사 후배가 찾아와 나스닥 3배 레버리지인 TQQQ와 SOXL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코인으로 잃은 돈을 빠르게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혼 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에 전세 대출금까지 영혼까지 끌어모아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역시나 돈이 벌렸습니다.
이렇게 벌다가는 결혼하기 전까지 멋진 집과 함께 신혼생활을 보내는 것이 멀지 않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TQQQ는 고점 대비 80% 이상 폭락했습니다.
정말 하늘의 장난이었을까요? 하필이면 결혼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이 역사상 가장 최저점이었습니다.
결혼 자금을 치러야 했기에 눈물을 머금고 피 같은 돈을 모두 빼야만 했습니다.
이로 인해 무려 1억 원이 넘는 돈이 공중으로 사라졌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살아있는 게 대견하다", "인생 비싸게 배웠다고 생각해라"라며 위로해 주었지만,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가슴에 와닿지 않았습니다.
날아가 버린 돈과 불투명해진 미래 때문에 매일이 지옥 같았습니다.
그때 친한 친구 녀석 하나가 제게 툭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너같이 엉덩이 가볍고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은
주식이나 코인처럼 쉽게 사고팔 수 있는 걸 하면 안 돼.
부동산처럼 강제로라도 쉽게 팔고 사지 못하는 덩치 큰 걸 해야 해."
그러면서 '월급쟁이부자들'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그 한마디가 제 인생의 거대한 터닝 포인트가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결혼전 2022년 10월,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내집마련 기초반 28기' 강의를 신청하며 월부에서의 첫걸음을 뗐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뼈저리게 깨달은 점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투자'를 해온 것이 아니라, 그저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시스템과 기준 없이 감정으로 움직였기에 돈을 지킬 수 없었고, 잃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내가 땀 흘려 번 소중한 돈을 너무 쉽게 생각했고,
날로 불리려고만 했던 제 자신을 돌아보니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내집마련 기초반에 이어 곧바로 열반스쿨 기초반(열기) 강의를 수강했습니다.
당시 멘토님들의 말씀은 제 뇌리에 선명하게 박혔습니다.
너나위 멘토님은 "너가 아는 곳 중에 제일 좋은 곳. 조용한 곳 말고 시끌벅적하고 먼지 나는 곳을 사야 한다"
너바나 멘토님은 "지금 무릎 이하라고 생각한다. 30%이하 빠진 곳은 그냥 사도 된다"
그 당시에는 매물 코칭이라는 시스템이 있는 줄도 몰랐을 만큼 무지했고, 오직 간절함뿐이었습니다.
'나보다 훨씬 먼저 성공한 부자들이 하는 말이니 무조건 맞겠지'라는 생각으로,
멘토님들이 주신 두 가지 명확한 기준을 붙잡고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투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전세금과 퇴직연금과 마이너스 통장까지 샅샅이 활용하여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것을 끌어모으게 됩니다.
(이때도 참 위험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수도권 외곽의 한 구축 아파트에 제 인생 첫 번째 투자를 하게 됩니다.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부동산은 단순히 집 한 채를 사는 투자가 아니었습니다.
나의 안정적인 '노후 준비'이자,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자유'로 가는 방법임을 알게 됩니다.
열반스쿨 기초반 과제인 '비전 보드'를 작성하면서,
여기에 적은 목표들을 내 손으로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고 다짐하며 꾸준하게 강의를 들었습니다.
물론 매 순간이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투자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가정을 돌보는 '유리공'을 챙겨야 했고,
회사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심적으로 크게 주춤할 때도 있었습니다.
워낙 땀이 많은 체질이라 유독 무더웠던 여름철 임장 때는 더위를 먹어가며 땀을 한바가지 흘렸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거의 쓰라지다시피 기절하듯 잠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냥 다 포기하고 예전처럼 편하게 살까?'라는 생각이 수없이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하지만 그 고비마다 저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걷는 동료들,
그리고 어두운 밤길의 등대처럼 명확한 방향을 제시해 주시는 튜터님들이었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발을 맞추다 보니 지치지 않았고,
마치 게임을 하듯 퀘스트를 깨며 다음 스테이지를 향해 끈질기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월부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평생 서울에 집을 사거나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은 우리가 절대 못 사는 동네야"라며 스스로 한계를 긋고 있었죠.
하지만 "지레 겁먹지 말고 무조건 서울을 먼저 보라"던 제주바다 튜터님의 말씀을 따라,
2년 동안 이 악물고 서울과 수도권에 당장 투자를 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내가 너 반드시 산다'는 일념으로 매달 앞마당을 만들어갔습니다.
원래 제 목표는 누구나 부러워하는 성동구에 깃발을 꽂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장은 제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며 상승 가동동력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눈독 들이던 영등포와 동작구의 단지들이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을 무력하게 확인해야 했습니다.
조급해진 마음을 다잡고 급지를 낮춰 4급지까지 내려갔고, 끈
질긴 추적 끝에 4급지 대장 아파트를 매수하게 되었습니다.
이 매수 과정 역시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시장에 싼 물건들이 너무 많다 보니 비교 평가는 어렵고,
"더 넓게 비교해 보세요"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한달 두달 시간이 흘러가니 정신적으로 피로가 극에 달해
'아, 진짜 포기하고 아무거나 대충 살까?' 하는 나약한 생각이 들 무렵,
단비처럼 행쀼 튜터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튜터님의 가이드에 따라 매일매일 퇴근 후 매물 임장(매임)을 가며 바닥부터 물건을 다시 샅샅이 털었습니다.
매도인과 밀당을 하고 단지들을 뒤흔든 끝에,
마침내 제가 목표했던 가격대의 물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 때였습니다.
정말 복기를 거듭해 잘 샀다고 생각한 제 물건인데,
이상하게 주변에 비교했던 다른 단지들에 비해 매매가가 통 오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조바심이 덜컥 났습니다.
'아, 역시 내 안목이 틀렸나? 내 물건은 별로 좋지 않은 것인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결국 참다못해 너나위 멘토님을 향해 질문을 남겼습니다.
"멘토님, 좋은 물건이 먼저 오르고 선호도가 떨어지는 물건은 늦게 오른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제 물건은 지금 전혀 안 오르고 있어서 불안합니다... 지금이라도 팔고 다른 곳으로 갈아타야 할 물건일까요? 제 판단이 틀린 걸까요?"
돌아온 답변은 따스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멘토님께 정말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혹독하고 크게 혼이 났습니다.
시장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얕은 가격 흔들림에 일희일비하는 제 풋내기 같은 태도를 매섭게 꾸짖으셨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내가 매수한 단지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했는지,
단기적인 시세가 아니라 결국 '가치 있는 단지'를
끈질기게 보유하고 시간을 녹여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멘토님의 호된 질책이 없었다면,
저는 불안감을 이기지 못하고 그 소중한 자산을 헐값에 팔아버렸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지금의 10억 자산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선배 투자자분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앞마당을 닦고 실력을 쌓아두고 있으면, 돈은 어떻게든 갑작스럽게 생기니까 늘 투자 준비를 하고 있어라."
처음에는 그 말이 잘 와닿지 않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실력이 쌓이고 시장을 보는 눈이 트이기 시작하니
없던 돈도 스스로 만들어내서 투자가 하고 싶어지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용맘 튜터님과 함께 가을학기를 보내고 있던 때였습니다.
용맘 튜터님과 함께 할 때 투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수중에 가용한 현금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였습니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내 자산 현황을 샅샅이 훑어보던 중,
그동안 "이건 절대 팔지 않고 내 마지막 보루이자 노후 자금으로 놔둬야지"라며 꽁꽁 묶어두었던 회사의 자사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전까지는 시장에 대한 확신도,
제 실력도 부족했기에 그 주식을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4년 동안 갈고닦은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주식 계좌에 묶여있는 돈보다, 지금 가치 있는 부동산으로 갈아탄다고 하더라도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망설임 없이 자사주를 매도하였고
현 앞마당 지역들을 기반으로, 기존의 앞마당들까지 샅샅이 전화 임장을 하며 털기 시작했습니다.
2주안에 경기도에 3호기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 3호기 경험을 통해 저는 왜 평소에 앞마당을 대충 만들면 안 되는지,
왜 완벽하게 똑바로 만들어 놓아야 기회가 왔을 때 낚아챌 수 있는지,
그리고 전임과 매임을 통해 끈질기게 현장을 파고드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 온몸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2022년 10월 무모하게 시작했던 첫 발걸음.
2023년 2월, 동료들과 함께 정겹게 찍었던 첫 '발사진'을 시작으로,
2024년, 2025년, 그리고 현재 2026년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매년 거르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현장에서 발사진을 찍으며 임장길을 지켜왔습니다.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장을 떠나지 않고 묵묵히 버티며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제 손에는 꿈에 그리던 10억이라는 순자산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지나온 과정에서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것은 제 자신이 아니라,
제 곁에서 저를 도와주고 응원해주는 '유리공', 바로 제 아내였습니다.
남들처럼 주말에 예쁜 카페도 가고 교외로 놀러 가고 싶었을 텐데,
남편이라는 사람은 주말마다 임장 나간다고 집을 비우니 데이트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여행 한 번 편히 가보지 못했습니다.
종잣돈을 단 1원이라도 더 아끼겠다고 배달 어플을 모조리 지워버렸고,
외식 보다는 매일 집에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가만히 되짚어보면,
저같이 나쁜 남편이자 이기적인 동반자는 세상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고,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한 일이니까"라며 묵묵히 저를 믿어주었습니다.
새벽같이 임장 나가는 남편을 위해 간식을 챙겨주고 매임갈 때 김밥을 싸주었고,
지쳐서 돌아올 때면 항상 따뜻한 위로로 저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평생 항상 감사하며, 내 목숨보다 더 소중히 떠받들고 사랑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투자자로서 방황할 때마다 제 중심을 잡아주시고,
때로는 호된 채찍질로, 때로는 따스한 격려로 이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수많은 승천 직전의 용 같은 멘토님과 튜터님들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줴러미 튜터님, 제주바다 튜터님, 샤샤 튜터님, 빈쓰 튜터님, 자유를향하여 멘토님, 긍휼 튜터님, 행쀼 튜터님, 잔쟈니 튜터님, 용맘 튜터님, 프메퍼 튜터님, 유디 튜터님, 그리고 너나위 멘토님, 너바나 멘토님.
투자자로서의 올바른 태도와 가치관을 잊지 않겠습니다.
순자산 10억이라는 숫자에 자만하지 않고,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도우며
처음 월부 문을 열었을 때의 그 간절함과 '나의 초심을 단단히 지키겠다'는 다짐을 끝까지 이어가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장에서 오래도록 함께 살아남아 멀리 가는 동료가 되겠습니다.
댓글
그저 일확천금을 노린 투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시스템과 기준 없이 감정으로 움직였기에 돈을 지킬 수 없었고 잃는 것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 악물고 서울과 수도권에 당장 투자를 못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산다'며 매달 앞마당을 만들어갔습니다. "제 물건은 지금 전혀 안 오르고 있어서 불안합니다. 지금이라도 팔고 다른 곳으로 갈아타야 할 물건일까요?" 돌아온 답변은 따스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혹독하고 크게 혼이 났습니다. 시장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일희일비하는 태도를 매섭게 꾸짖으셨습니다. 선배들이 늘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앞마당을 닦고 실력을 쌓아두고 있으면, 돈은 어떻게든 갑작스럽게 생기니까 늘 투자 준비를 하고 있어라" 신기하게도 실력이 쌓이고 시장을 보는 눈이 트이기 시작하니 주식 계좌에 묶여있는 돈보다 지금 가치 있는 부동산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ㅡ 목표를 생각하며 한걸음씩 채우다보니 결국 이뤄내셨군요!! 끈기있는 실행에 박수 보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나초단님🌷
천사 같은 아내분ㅠㅠ 눈물 광광 ㅠㅠ.... 정말정말 축하합니다 초단님💚 초단님의 10억 달성 여정을 나눠주셔서 감사해요. 정말 많은 분들께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오래오래 함께 멀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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