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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지방으로 내려보낸다고 그 동네가 사는 것은 아닙니다

26.08.18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본사가 지방으로 내려가면, 그 지역 부동산은 자연스럽게 살아날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직원들이 이주하고, 협력업체가 따라오고, 상권이 생기고, 결국 인구와 집값이 함께 오를 거라는 그림입니다. 

 

 

 

 

 

한전이 나주로 간 지 10년, 직원들은 이 도시를 이렇게 부릅니다

 

한국전력공사는 2014년 서울 삼성동에서 전남 나주 빛가람혁신도시로 본사를 옮겼습니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사명 아래 이뤄진 이전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전 직원들 사이에서는 나주를 '나베리아'라고 부르는 자조적인 표현이 통용됩니다. 

 

나주와 시베리아를 합친 말로, 눈이 많이 내리고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 특성을 빗댄 것입니다. 

 

직원들은 금요일 저녁마다 서울행 KTX에 몸을 싣습니다. 

 

이마저 견디기 어려운 사람은 이직을 택하고, 연고지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승진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 이주했던 직원들조차, 교육·의료 시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인근 광주로 다시 옮겨가는 '역이주'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구가 늘긴 늘었습니다, 그런데 삶의 질은 그대로였습니다

 

빛가람동 인구는 2014년 3,895명에서 올해 4만320명으로, 10년 만에 10배 넘게 늘었습니다. 

 

숫자만 보면 성공적인 이전처럼 보입니다. 

 

문제는 인구가 늘어난 속도만큼 교육·의료·문화 같은 정주 여건이 함께 갖춰지지 못했다는 데 있습니다. 

 

늘어난 학생 수를 감당하지 못해 학생 과밀 현상이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고, 

편의시설 확충은 여전히 답보 상태입니다. 

 

사람은 왔지만, 그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계속 살고 싶어질 만한 조건은 따라오지 못한 셈입니다.

 

 

 

한수원의 경주는, 효과가 더 빨리 사라졌습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경주로 이전한 이후의 기록은 더 극적입니다. 

 

2016년 하반기 직원들이 경주로 주소를 옮기며 인구 감소세가 잠시 둔화됐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당시 지역 언론은 이를 두고 "한수원 본사 이전에 따른 인구 증가 효과가 사실상 끝났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전 효과가 채 2년을 못 가고 원래의 인구 감소 추세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연령대별 흐름입니다. 

 

40대 이하 인구는 계속 줄고, 50대 이상 인구만 늘어나는 패턴이 이어졌습니다. 

 

청년층과 젊은 가족 단위는 정착하지 못하고 빠져나가는데, 고령층만 남거나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최근에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수원 본사가 도심과 떨어진 곳에 있다 보니,

애초에 기대했던 협력업체 이전이나 인구 증가, 상권 활성화 효과가 충분히 나타나지 못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두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건, 

청사 하나를 옮긴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 전체가 함께 옮겨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직원은 발령을 받아 내려갈 수 있지만, 

그 가족이 계속 그 지역에 머물지는 교육·의료·문화 같은 정주 여건이 얼마나 갖춰졌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이 정주 여건은 기관 하나의 이전만으로 자동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지자체의 장기적인 투자와 시간이 함께 필요한 영역입니다. 

 

그 준비가 따라오지 못하면, 처음엔 반짝 늘었던 인구도 몇 년 안에 원래 흐름으로 되돌아가고, 

심지어 나주 사례처럼 '규제 대상'이라는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기도 합니다.

 

 

 

지금 다시, 같은 기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는 공공기관 2차 이전을 추진하며 서울 잔류 기관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고,

경주를 비롯한 여러 지자체가 벌써부터 유치 경쟁에 나서고 있습니다. 

 

경주시는 한수원 본사의 도심 이전과 함께 원자력·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을 추가로 유치해

'혁신거점도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다시 내놓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에도 관계자들 스스로 "정주여건 개선"과 "주민 수용성 제고"를 핵심 과제로 꼽고 있다는 점은,

지난 10년의 경험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줍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 발표가 나오면, 그 지역 부동산이 들썩이는 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하지만 발표 이후 정말 중요한 건 몇 개 기관이 오느냐가 아니라,

그 인구가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이 함께 갖춰지느냐입니다. 

 

나주와 경주가 지난 10년간 보여준 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준비되지 않으면 이전 효과는 생각보다 짧게 끝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

세노테
26.08.18 18:35

단순히 기업만 옮겨놔서는 그 지역을 살릴 수 없고, 인프라와 정주여건을 만들 수 있는 지역선정과 계획이 없다면 지역도 근무자도 모두 어려울 수 있겠어요 부동산 투자를 할 때에도 직장호재 신축호재 같은 것이 있더라도 정주여건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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