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세 줄로 요약하면
1. 우리는 종종 ‘선택’을 고민하기 전에 스스로 답을 정해놓습니다.
2. 저 역시 전세가 오르고 매매로 수요가 넘어가는 시장을 보면서도, 정작 제 선택지에는 ‘매수’가 없었습니다.
3. 좋은 의사결정은 정답을 빨리 찾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선택지를 충분히 펼쳐보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올해 3월, 저는 집을 사지 않고 전셋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 제 머릿속에는 한 가지 조건만 있었습니다.
‘3억 안에서 괜찮은 전셋집을 구하자.’
부동산에 전화를 하고, 매물을 찾아보고,
괜찮은 집이 나오면 바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괜찮은 전세는 나오면 금방 빠졌고,
전세가격도 계속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전세가 없어요.”
“이 가격이면 차라리 산다는 분들도 있어요.”
실제로 제가 시장을 공부하며 보고 있던 모습도 그랬습니다.
서울 상급지에서 시작된 흐름이 점점 아래 급지로 내려오고 있었고,
경기도까지 분위기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전세가 부족해지고 가격이 오르면서
전세를 찾던 사람들이 매매로 돌아서는 모습도 직접 보고 있었습니다.
<토지거래허가내역>

그런데 저는 여전히 열심히 전셋집을 찾고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조금 이상합니다.
저는 투자 공부를 하고 있었고,
매일 시장을 보고 있었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과는
‘지금 매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 자신에게는 한 번도 묻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내집 마련을 할 수 없을까?”
문제 ①
우리는 ‘답’을 찾기 전에 이미 답을 정해놓기도 합니다
당시 저는 꽤 좋은 전세 물건을 찾았습니다.
시세보다 약 1억 원 저렴한 임대사업자 물건이었습니다.
계약하고 나서는 생각했습니다.
“진짜 잘 구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조건 안에서는 좋은 전세를 구한 것이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제 투자를 처음부터 다시 복기하면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전세와 매수를 비교해서 전세를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문제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3억 안에서 전셋집을 구해야 한다.
그러니 제가 할 수 있는 고민도 자연스럽게 하나뿐이었습니다.
“어디에서 싸게 구하지?”
하지만 지금 다시 당시 상황으로 돌아가 선택지를 펼쳐보면 달랐습니다.
① 전세를 구한다.
② 실거주 집을 매수한다.
③ 투자와 향후 갈아타기까지 함께 고려한다.
적어도 세 가지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①번 안에서만 열심히 답을 찾고 있었습니다.

문제를 잘못 푼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문제를 너무 좁게 정의했던 것입니다.
문제 ②
“나는 안 될 거야”는 사실일까, 생각일까
“내집마련은 돈을 더 모은 다음에 해야 할 거야.”
자연스럽게 ‘내집마련은 아직 아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당시 정말 살 수 없는지를 제대로 계산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출을 얼마까지 받을 수 있는지,
현재 가진 자산과 현금을 합치면 얼마인지,
그 돈으로 어느 지역까지 살 수 있는지,
전세를 유지하는 것과 집을 사는 것 중 어느 쪽이 우리 가족에게 더 나은지.
저는 이런 것들을 계산해보지도 않은 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제가 생각했던 예산 안에서도
더 좋은 지역과 단지에 실거주로 검토할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 집들을 샀어야 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출퇴근이 맞지 않았을 수도 있고,
가족이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대출을 계산해본 뒤 전세가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세를 선택하면 됩니다.
제가 아쉬운 것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확인한 뒤 선택하지 않은 것과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
저는 후자였습니다.
문제 ③
좋은 선택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선택지를 남기는 것입니다
두 달 정도가 지나고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저의 선생님께서 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물어보셨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 가지 리스크가 보였습니다.
지금은 저렴하게 전세를 구할 수 있지만,
다음 전세 만기 때 전세가격이 오른다면
오히려 지금보다 더 외곽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야 제가 풀어야 할 문제가 달라졌습니다.

질문이 바뀌자, 제가 해야 할 일도 달라졌습니다.
보금자리론과 일반 대출을 알아보고 [예산 확정],
살 수 있는 지역을 다시 찾고 [가족과 협의 & 물건 알아보기],
매물을 보고,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의 퇴거일을 협의하고,
매수하려는 집의 임차인 퇴거 일정까지 맞췄습니다.
그런데 선택지를 늦게 넓힌 만큼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호가는 계속 올라갔고,
제가 볼 수 있는 집은 줄었습니다.
결국 여러 번의 협의와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실거주 집을 매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생각했습니다.
“그냥 3월에 샀으면 됐는데.”
그런데 이 생각 역시 틀렸다는 것을 복기하면서 알게 됐습니다.
지금 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과거의 답이 쉬워 보이는 것입니다.
3월의 저는 6월의 가격도, 8월의 가격도,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배워야 할 것은
‘그때 샀어야 했다’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복기해야 했던 것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나는 매수라는 선택지를 검토조차 하지 않았을까?’
선택지를 줄이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나의 ‘전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복기를 하면서 과거의 제 생각들을 적어봤습니다.
“서울은 어려울 것 같아.”
“내집마련은 나중에 해야지.”
그때는 모두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면
일부는 사실이 아니라 제가 만든 전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세 가지 질문을 먼저 해보려고 합니다.
① 정말 그런가?
‘안 된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합니다.
대출이 안 될 것 같다면 실제 한도를 확인하고,
돈이 부족할 것 같다면
보유자산과 현금, 대출, 향후 저축액까지 계산해봅니다.
②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
전세를 고민한다면
전세만 비교하지 않습니다.
전세 유지 / 내집마련 / 추가투자 / 보유 / 매도 / 갈아타기
가능한 선택지를 먼저 펼쳐놓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지워나갑니다.
③ 이 선택 다음에는 무엇이 남는가?
지금 당장 좋아 보이는 선택만 보지 않습니다.
이 선택을 하면
1년 뒤 나는 어떤 자산을 갖게 되는지,
현금은 얼마나 남는지,
다음 투자는 언제 가능한지,
갈아타기는 가능한지를 함께 봅니다.
결국 좋은 선택은
오늘 하나를 잘 고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선택까지 열어두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 시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요즘 이런 질문을 많이 합니다.
“지금 집을 사도 될까요?”
“너무 오른 것 같은데 기다려야 할까요?”
“투자를 해야 할까요, 내집마련을 해야 할까요?”
그런데 이번 경험을 통해 저는
어쩌면 이 질문보다 먼저 해야 할 질문이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나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무엇인가?”
같은 시장에서도
보유한 자산이 다르고, 현금이 다르고,
소득과 대출 여력이 다르고, 실거주 필요성이 다릅니다.
누군가에게는 지금 내집마련이 좋은 선택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전세를 유지하며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정답을 내리기 전에 종이 한 장을 꺼내 가능한 선택지를 먼저 적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세를 고민하고 있다면
전세 유지 / 내집마련 / 추가투자 / 보유 / 매도 / 갈아타기
일단 가능한 선택지를 모두 써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선택지 앞에서 세 가지만 질문해보세요.

그렇게 하나씩 확인하고 지워나간 뒤
마지막에 남은 것을 선택하면 됩니다.
그 결과가 반드시 매수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했느냐보다,
선택할 수 있었던 것들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했느냐입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아쉬운 것은 전세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전세를 선택하기 전에, 다른 선택지를 충분히 펼쳐보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저처럼
이미 답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열심히 답을 찾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답이 있다면
결정하기 전에 딱 한 번만 물어보세요.
“정말 이게 내게 남은 유일한 선택일까?”
좋은 선택은 미래를 맞히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게 가능한 선택지를 빠뜨리지 않는 데서 시작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