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톡방에 글이 하나 올라와.
"저 계약했어요!"
축하 이모지를 누르는데 손가락이 아주 잠깐 멈춘 적, 너도 있어? 누르긴 눌렀는데 폰을 엎어놓고 한참 천장을 본 적.
나는 그 멈춤을 여러 번 봤어. 옆에서도 보고, 내 안에서도 보고.
주말에 어디 좀 멀리 가려고 내비를 켜면 이런 게 떠.
최소 시간. 무료 도로. 최단 거리.
목적지는 똑같아.
그런데 경로는 세 개고, 도착 예정 시간도 다 달라.
그중에 하나만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은 없어.
통행료 아끼고 싶으면 무료 도로 타는 거고 급하면 20분 값을 내고 고속도로 타는 거고 뒷자리에 잠든 아이가 있으면 구불구불한 길은 아예 후보에서 빼.
조건이 다르니까 경로가 다른 거야. 그 사람이 틀린 게 아니라.
그런데 이상하지.
차 안에서는 그렇게 잘 하면서 돈 앞에서는 남이 고른 경로 하나만 정답이라고 생각해.
저 사람이 지금 사니까 나도 사야 할 것 같고 저 사람이 저 지역을 갔으니 내 다음 목적지도 거기 같고 나는 아직 준비 중인데, 준비 중인 게 잘못 같고.
목표까지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야.
가파른 길, 돌길, 진흙탕, 잘 닦인 길, 잠깐 돌아가는 길.
길이 다르면 속도도 당연히 달라.
속도가 다른 건 실력 차이가 아니라 길 차이일 때가 훨씬 많아.
10년쯤 지켜보면 순서가 바뀌는 걸 정말 많이 봐.
급하게 오른 길에서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고, 돌아간 줄 알았던 사람이 어느 날 훨씬 위에 서 있기도 해.
남의 속도가 내 기준이던 시절
솔직히 말하면 나도 오래 그랬어.
그 시기의 특징이 뭔지 알아? 계산에서 나를 빼.
내 종잣돈, 내 월 저축액, 내 대출 한도, 우리 집 상황.
그걸 다 빼고 "저 사람이 샀으니까"만 남겨.
그러면 이상한 일이 생겨.
사도 불안하고, 안 사도 초조해.
샀으면 '너무 늦게 산 거 아닌가' 싶고 안 샀으면 '나만 뒤처지나' 싶고.
기준이 밖에 있으면 어떤 선택을 해도 마음이 안 놓여.
남의 속도는 매일 바뀌니까, 나도 매일 흔들리는 거야.
기준을 내 쪽으로 옮기고 나서
바뀐 건 딱 하나였어.
"저 사람이 샀나"를 묻는 대신, 여섯 가지를 물었어.
가치가 있나. 지금 싼가. 팔릴까. 남을까. 원금은 지켜지나. 어떤 리스크가 있나.
가저환수원리.
이 여섯 개는 남이 대신 답해줄 수가 없어.
내 돈, 내 기간, 내 가족 상황이 들어가야 답이 나오니까.
그래서 여기에 답하기 시작하면 자연히 내 경로가 생겨.
그때부터는 옆 사람이 먼저 가는 게 그냥 정보가 돼.
'저 사람은 저 조건에서 저 경로를 골랐구나.' 불안이 아니라 참고 자료.
그래서 뭘 하면 되냐면
세 가지만 해봐.
1. 내 경로의 조건을 세 줄로 적어.
지금 종잣돈이 얼마인지. 한 달에 얼마를 모을 수 있는지. 몇 년 안에 도착하고 싶은지.
이 세 줄이 다르면 경로는 달라질 수밖에 없어.
다른 게 정상이야.
2. 비교는 결과 말고 과정에서만 해.
저 사람이 이번 달에 임장을 몇 번 갔는지는 따라 할 수 있어.
근데 저 사람이 몇 년 모은 종잣돈은 따라 할 수 없어.
따라 할 수 있는 것만 비교해. 나머지는 그냥 축하하면 돼.
3. 경로를 바꿔도 되는 경우는 두 가지뿐이야.
목표가 바뀌었을 때. 그리고 내 기준에 어긋난 걸 발견했을 때.
"남이 더 빨라서"는 경로를 바꿀 이유가 안 돼.
그건 경로 변경이 아니라 그냥 차에서 내리는 거야.
빨리 가는 사람을 보면서 속상한 날이 있을 거야.
그 마음이 이상한 게 아니야. 진심으로 하고 있으니까 비교도 되는 거지.
근데 하나만 기억해.
너는 지금 틀린 길에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경로에 있는 거야.
네가 고른 경로면 믿고 끝까지 가면 돼. 도착지는 같으니까.
지금 너는 어느 경로 위에 있어?
가파른 길? 돌아가는 길? 아니면 잠깐 갓길에 세워둔 상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