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서은국
1. 책을 읽고 본 내용& 깨달은 내용
[Key Message]
#생존의도구 # #why? #행복의압정
1장 행복은 생각인가
행복의 청사진에는 정작 결정적인 것들이 빠져있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인데, 마치 머리에서 만들어 내는 일종의 생각 혹은 가치라는 착각이 들게 한다.
왜 생각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행복해지기 어려운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행복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의 특성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행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경험이 왜, 언제 뇌에서 발생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이 뇌의 주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의 유전자에 박힌 가장 큰 욕망은 무엇인지, 그의 뇌는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된 생물학적 연장인지.
저명한 사회심리학자 팀 윌슨은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 같은 낯선 존재라고 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의식은 용량이 아주 한정된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 되어 있다.
행복을 소리라고 한다면, 이 소리를 만드는 악기는 인간의 뇌다. 이 악기가 언제, 왜, 무슨 목적으로 소리를 만들어 내는지를 알아야 행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다.
->책에서 나온대로 행복의 의미를 찾으려고 해도,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다. 왜 그런 것인지에 대해 내가 부정적이어서 그런가?라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본능과 같이 결부시키자고 하는 것에서 마음이 편해졌다.
2장 인간은 100퍼센트 동물이다
행복은 '뇌에서 만드는 소리'라는 비유로 돌아가 보자. 행복감이 퍼져 나오게 하는 이 뇌는 하루아침에 하루아침에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중략) 뇌는 살벌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일종의 '생존지침서'이다.
이성적 판단은 동물적으로 내려진 결정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한다. (중략) 하짐나 이런 동물적인 모습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행복은 누군가에 의해 경험되어야만 성립되는 현상이고, 그 누군가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어떤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행복의 정체도 크게 달라진다.
->행복을 뇌와 연결시키고, 동물적인 본능과 연결시켜야 한다? 어떻게 연결이 될까? 과연? 내 본능과 행복의 연결성은?
3장 다윈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이라고 보았다. 아침 식사는 출근하기 위해, 출근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인간 행위의 종착지는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다. (중략) 즉, 행복은 최고의 선이 되는 것이다.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는 기초 위에 현재의 행복 연구는 세워졌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모든 행위는 행복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다. 일상의 일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 혹은 수단이다.
인간의 마음은 정말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 되었을까? 그 책의 요지는 이렇다. 창의성이나 도덕성 같은 마음의 산물들은 동물 중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며, 또 바로 이런점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게 된다. 밀러에 의하면 인간의 마음 또한 진화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긴 '도구'일 뿐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제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이, 행복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했다. 행복을 뭔가를 위한 수단이나 도구가 아니라, 모든 인생사가 향하는 최종 종착지로 보았다. (중략) 그러나 이 오랜 관점과 진화론은 정면 대립한다. 신체적 특성뿐 아니라 고차원의 정신적인 특성도 이 '생존 도구'의 역할을 한다. (중략) 행복감 또한 마음의 산물이다. 행복은 삶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이 철학자들의 의견이었지만, 사실은 행복 또한 생존에 필요한 도구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행복이 뭔가 고차원적인 부분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는 행복해야 한다. 라는 점. 행복에 대한 완전 다른 관점.
생각해보니 행복하지 않다면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행복을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4장 동전 탐지기로 찾는 행복
행복에 대해서도 '왜'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왜 인간은 행복을 느끼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생존을 만들어진 동물이다.
"행복감을 인간이 왜 느낄까?"라는 질문으로 이 장을 시작했다. 나의 간결하고도 건조한 답은 "생존, 그리고 번식"이다.
이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껴야만 했던 것이다.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다. 이 쾌락의 빈도가 행복을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많은 현대인의 삶이 행복 과녁을 제대로 못 맞히는 이유가 쾌락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이다.
행복 전구는 언제 켜질까? '우리는 언제 행복을 느낄까?'와 같은 질문이다.
->행복에 대해서 '왜'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그렇다면 언제 내가 행복을 느낄까?라는 부분이 가장 중요할 듯!
5장 결국은 사람이다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강렬한 고통과 기쁨은 모두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중략) 왜 이토록 인간은 서로를 필요로 할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막대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생존. 세상에 포식자들이 있는 한, 모든 동물의 생존 확률은 다른 개체와 함께 있을 때 높아진다.
인간의 본성을 압축한다면 나는 "The ultimate SOCIAL machine"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 그는 인간의 '뼛속까지 사회적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사람이라는 동물은 극도로 사회적이며, 이 사회성 덕분에 놀라운 생존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뿐이다. 희로애락의 원천은 대부분 사람이다.(중략) 행복감을 발생시키는 우리 뇌가 이처럼 사람에 '중독'되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 사회적 경험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人이라는 한자도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이 아닌가. 사실 이 지구에 나 혼자 떨어져있다? 라고 생각하면 끔찍하기는 하다. 행복도 고통도 모두 사람과 관계되어 있는 것. 그렇다면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에게 행복도 고통도 받는 다는 것. 내가 행복해지려면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에게 행복감을 느껴야겠네? 그리고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겠네?
6장 행복은 아이스크림이다
행복을 좇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질문이 하나 있다. 내 인생에 무엇이 있어야 행복할까? 저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부분 돈, 명예, 건강 등 몇 가지 범주 안에 답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 창고에 이 행복 곡물들을 많이 채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산다.(중략) 행복에 대해 가장 흔히 하는 이 생각은 동시에 가장 틀린 생각이기도 하다.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의 차이는 가진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가 아니다.
'많이 갖는 것이 행복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끝없이 많다.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행복은 '한 방'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쾌락은 곧 소멸되기 때문에, 커다란 기쁨 한 번보다 작은 기쁨을 여러 번 느끼는 것이 절대적이다. (중략)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큰 기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기쁨이 중요하다.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은 성취하는 순간 기쁨이 있어도, 그 후 소소한 즐거움을 지속적으로 얻으 수 없다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내가 무언가를 이루고 그 목적을 달성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행복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 그 행복은 다시 reset이 되고 계속해서 내가 찾아가야 한다. 행복을 어떠한 큰 목적으로 생각을 하게 되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어렸을 때 밀가루 안에 사탕 찾듯 찾아야 한다는 것. 중간 중간 작은 행복들을 깔아 놓아야 한다는 점!
7장 '사람쟁이'성격
성격은 평생 동안 자신이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에 꾸준히 영향을 미친다. (중략) 우리 눈에는 내면의 성격보다는 바깥세상의 것들이 훨씬 잘 보인다. 가령 차에서 내리는 사람의 성격은 보이지 않아도, 그가 어떤 차에서 내렸는지는 알 수 있따. 그래서 그가 행복해 보이면 고급 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앞에서 언급했듯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행복하다면, 원인은 그의 차가 아니라 그의 성격일 확률이 훨씬 높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도 웃을 사람이다.
우선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보내는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의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정 경제 수준에 이르면 얼마나 돈이 있느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해진다.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사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중략) 이 논문에 의하면 경험 구매가 물질 구매보다 행복한 본질적 이유는 또다시, 사람 때문이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돈을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쓸 때 더 행복해진다는 연구들도 나오고 있다.
시간도 마찬가지다. 자원봉사자들이 높은 행복감을 경험하는 이유도 행복 관점에서 보면 시간이라는 자원을 현명하게, 즉 타인을 위해 쓰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성격이 내향적이든 외향적이든 사람에 의해 행복이 결정된다는 것.
이 부분에서 보면 이타적인 사람들이 더 행복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나눠주면서도 왜 행복해 하는지,
그리고 왜 기부를 하면서도 행복해하는지를 알 수 있다.
8장 한국인의 행복
여태껏 사람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단주의 문화는 사람에 묻혀 사는 문화다. 그런데 왜 한국이나 일본 같은 초집단주의적 문화의 행복감은 오히려 예상치보다 낮을까?
획일적인 사고는 행복에 큰 타격을 준다. 마치 행복에도 정답이 있고, 이는 몇 가지 잣대로 압축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중략) 우리 문화의 이런 획일적인 사고는 개인의 자유감을 저하시키고, 더 나아가 행복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중략) 사회의 일원으로 살며 타인의 평가와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자세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나침판이 되면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행복해지려면 다른 사람을 지나치게 신경 쓰지 마라"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각자 자기 인생의 '갑'이 되어 살아 보는 것에 좀 더 익숙해지는 것이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보다 내 눈에 보이는 세상에 더 가치를 두는 것이다. (중략) 인생의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 사는 것이다. 사람은 행복의 절대 조건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남을 '위해'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나라의 문화를 내가 바꿀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획일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내가 바꿀 수도 없고, 비교 하는 것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내 생각은 바꿀 수 있다. 나에게 '왜 그렇게까지 살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진짜 행복한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것. 나는 도대체 언제 행복한지? 그리고 그 것을 굳이 변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내가 나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것으로 도니 것이다.
9장 오컴의 날로 행복을 베다
행복은 가치나 이상, 혹은 도덕적 지침이 아니다. 천연의 행복은 레몬의 신맛처럼 매우 구체적인 경험이다. 그리고 쾌락적 즐거움이 그 중심에 있다. (중략) 가치 있는 삶을 살 것이냐, 행복한 삶을 살 것이냐는 개인의 선택이다.
한국인이 하루 동안 가장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는 두 가지로 나타났다. 먹을 때와 대화할 때.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2. 책을 읽고 삶에 적용할 부분을 써 주세요.
그 동안 생각해보면 행복을 억지로 강요하려 했던 것 같다. 왜 지금 행복하지 않지?라고 강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행복을 찾으려 한 것이 내가 살기 위한 본능이었다는 것. 이 정신적인 부분이 해결되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고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적용할 점
투자 : 부동산이라는 투자 방식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행복과 힘듦 역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동료는 너무너무 중요하다. 나는 과연 동료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인가? 행복을 줄 수 있는 동료가 될 것.
가족 : 내가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가족이다. 내가 행복을 느끼려면 가족에게 행복을 줄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워도 행복하다라는 말을 많이 할 것. 그래야 행복이 전염 된다는 점. 어떤 점에서 행복한지 이야기 해 볼 것.
작은 행복을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