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도求道, 이것이야말로 길이다. 한 인생에서 길을 찾아, 길을 찾아 걸었다.
그 모습은 이미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 길을 찾아 걷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그 길이다.
적용할 것
- 작은자아를 인지하고 보듬어 나아가기
지적이나 불편한 말을 들었을 때 즉시 반응하기보다, 내 마음에 어떤 감정이 올라오는지 먼저 바라보기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잘하고 싶은 마음, 나를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작은자아가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차리기
작은 자아를 억지로 없앨수록 부작용이 생긴다. 그런 마음도 내 일부임을 인정하고 더 나은 행동을 선택하기
2. 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 (자기혐오와 타자 불안을 해소)
-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방의 잘못을 찾기 전에 나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있었는지 돌아보기
- 잘못한 일이 있다면 변명하거나 정당화하지 않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하기
- 누군가와 마음이 부딪치더라도 관계를 단절하기보다 대화와 화해의 여지를 남기기
3. 같은 높이에서 출발하기 → 나 자산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고, 같은 눈높이에서 같이 갈 것
- 누군가에게 조언하거나 도움을 줄 때 내가 알고 있는 정답을 전달하기보다는 상대방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먼저 듣기
- 나 역시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시행착오와 고민도 솔직하게 나누기
높은 곳에서 이끌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눈높이에서 함께 고민하고 성장하는 사람 되기
4. 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습관으로 만들기
- 하루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기
- 좋은 관계뿐 아니라 나를 불편하게 했던 관계에서도 배울점 하나 찾아보기
-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나의 작은 자아가 움직였던 순간과 더 나은 선택을 했던 순간 돌아보기
깨달은 것
인간력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성장해 나가는 힘이다.
누구나 미숙함과 결점을 가지고 있고, 중요한 것은 그것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는 태도다. 그 이유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나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족한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진짜 자신감은 부족한 나를 인정하면서도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오는 것임을 깨달았다.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이 더 중요하다
누군가의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거나 지적을 받았을 때, 나도 모르게 나를 방어하거나 상대방의 잘못을 찾으려 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 작은 자아의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먼저 사과할 수 있는 용기가 더 중요하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맞고 틀렸는지가 아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이끄는 사람일수록 더 낮은 곳에서 같은 눈높이로 함께 걸어가야 한다.
이 책에서 나왔던 높은 산 위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함께 산을 오르며 조금씩 나아가자고 말하는 사람의 모습을 기억할 것 같다. 어쩌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전달하거나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내가 먼저 부족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상대방도 자신의 부족함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지 않을까? 좋은 리더는 완벽한 모습일 순 없다.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배웠다.
인간관계에서 마주하는 어려움도 결국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다.
살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도 만나고, 마음이 부딪치는 순간도 생긴다. 그때마다 상대방이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관계가 나에게 어떤 성장 과제를 주고 있는지 먼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불편한 관계를 피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같은 문제가 다른 관계에서 반복된다면 결국 내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좋은 인연만이 나를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불편했던 만남조차 나를 돌아보게 했다면 의미 있는 인연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인간관계를 잘한다는 것은 갈등이 생기더라도 사과하고 화해하면서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라는 걸을 깨달았다.
성장한다는 것은 매일 나를 돌아보는 과정 그 자체다.
책의 마지막에 나온 구도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도 질투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으면서 살아갈 것이다.
구도求道, 이것이야말로 길이다. 한 인생에서 길을 찾아, 길을 찾아 걸었다.
그 모습은 이미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 길을 찾아 걷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그 길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감정이 들 때 내 안의 작은 자아를 알아차리고 조금씩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다. 길을 찾기 위해 걷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걷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성장의 과정이라고 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매일 조금씩 나아가는 사람이 되면 된다.
본 것
“죽는 순간까지 인간을 수양하여 인격을 완성한다.” 얼마나 매혹적인 말인가. ‘인간을 수양한다’는 말에는 단순한 자기 계발을 넘어서는 깊고 묵직한 울림이 담겨 있다. 나는 이 말에 온전히 매료되어, 지금껏 마음 깊은 곳에 품고 살아 왔다.
“마음은 뱀, 전갈과도 같다.” 당대의 한 뛰어난 고승이 남긴 말이다. 뱀은 교활함과 간사함을, 전갈은 공격성과 잔인함을 상징한다. 수행으로 평생을 바친 그조차, 마음속 깊은 곳에서 여전히 어둡고 날카로운 것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고백했다.
모든 인간은 잘못과 결점, 미숙함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존재다.
하나는, 훌륭한 사람이 높은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며 “여기까지 반드시 올라야 한다”라고 하는 말.
다른 하나는, 평범한 사람이 함께 높은 산을 오르며 “미숙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는 말. 우리는 후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미숙함과 나약한 마음을 안고 걷는 우리에게는 이 말이 더욱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고전의 문장들을 앵무새처럼 인용하며 “인간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상적인 인간상을 외치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실제 삶에서는 오히려 인간력의 결핍이라 할 만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고전에서 얻은 지식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려는 진지한 노력 없이, 그럴듯한 말들로만 포장하는 것은 진정한 성장이 아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전 속 이상적인 인간상을 반복해서 되뇌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그런 인물이 됐다고 착각하는 경우다. 이러한 ‘자기 환상’은 고전의 가르침을 내면화하기보다 표면적인 흉내에 만족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이런 자기기만은 자신의 성장을 방해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실망을 안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전 속에서 등장인물이나 저자가 보여 주는 ‘겸허한 태도’까지도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고전 속 인물들은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미숙함과 부족함을 인정하며 그것과 싸웠다. 때로는 좌절하고, 탄식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단지 이상을 좇는 것을 넘어 현실의 어려움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성장하는 자세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그는 연기한다. 완벽한 사람처럼, 고결한 사람처럼. 그 모습에 속아 우리는 자신을 속이고, 나아가 타인마저 속이게 된다. 질투심, 허영심, 인정욕구. 이처럼 다양한 얼굴로 나타나는 작은 자아의 움직임은 억압하거나 없애려 할수록 더 깊숙이 숨어 버린다.
하지만, 인간은 좀처럼 자기 잘못과 결점, 미숙함을 고치지 못한다. 만약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통은 대부분 즉시 해결됐을 것이다. 그런데 잘못과 결점, 미숙함을 고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위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을까?
주위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잘못과 결점, 미숙함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는 잘못과 결점, 미숙함을 안고서도 주위 사람들과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많다. 정반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인간으로서 특별한 잘못이나 결점이 없음에도 사람들에게 별로 호감을 얻지 못하는 사람. 세상에는 그런 사람이 있다. 이른바 ‘우등생’이라 불리는 사람인데도 어째서인지 주위 반응은 싸늘하다.
인간은 누구나 결점이 있다. 그런데도 결점 없는 사람이 되려 하고, 결점 없는 사람이라 믿으며, 결점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에게는 잘못이 없다’, ‘나에게는 결점이 없다’라는 은근한 교만과 함께 ‘나는 우수하다’, ‘나는 월등하다’라는 무의식의 거만함이 뿌리박혀 있다. 그 은밀한 교만과 무의식의 거만함을 수반한 ‘우등생 의식’이 사람들의 마음을 멀어지게 한다.
잘못이 있고 결점이 있어서 사람들의 마음이 멀어지는 게 아니다.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결점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에게는 잘못이 없고, 결점이 없다고 믿을 때 사람들이 멀어져 간다.
바로,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고맙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습관이다.
이는 회의나 모임에서 특히 유용한 습관이다.
첫째, 자기혐오(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둘째, 타자 불안(상대방에 대한 불안감)
심층 의식에서는 ‘왜 나는 항상 남의 말에 감정적으로 반응할까?’ 혹은 ‘상대의 기분을 헤아려 말해야 했는데’와 같은 반성과 함께 ‘자기혐오’가 생긴다. 표면적으로는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어!’,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같은 식으로 상대에게 혐오의 감정이나 반감이 들지만, 마음 깊숙이에서는 ‘어딘가에서 내 험담을 하지는 않을까?’ 같은 ‘타자 불안’이 솟아오른다.
자기혐오라는 불편한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 우리는 오히려 상대방의 결점과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찾아내기 시작한다. ‘그래, 내가 그 사람을 비판하고 비난했던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었어!’라고 자신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정당화하려는 것이다.
일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을 수양하는 세 번째 마음 습관은 ‘마음속 작은 자아를 바라보는 것’이다. 첫 번째 마음 습관으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마음을 강조했지만, 우리 마음은 때로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그 이유는 바로 마음속 ‘작은 자아’ 때문이다.
마음속 작은 자아는 자기의 잘못, 결점, 그리고 미숙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남의 잘못, 결점, 미숙함을 말함으로써 현실의 자기 모습을 직시하지 않으려고 한다.
솔직하게 자기의 잘못을 인정할 때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고 더욱 성장하자’, ‘이 미숙함을 극복해 더 성숙한 사람이 되자’와 같이 큰 자아가 승리하는 상황이다. 이 둘은 항상 마음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는데, 특히 다른 사람에게 ‘귀 기울여야 할 비판’이지만 ‘듣기 거북한 비판’을 들었을 때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 비판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적당한 순간에는 마음속에서 작은 자아가 움직였지만, 그 즉시 ‘내가 경영자로 성장하려면 어떤 지적도 마음을 비우고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큰 자아가 앞으로 나왔던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작은 자아와 큰 자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을 하고 있다.
큰 자아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게서는 ‘겸허함’이 느껴지지만, 작은 자아의 소리에 지배당한 사람에게서는 종종 ‘거만함’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인간은 자신에게 진짜 자신감이 없으면 겸허해질 수 없어요.
진짜 겸허함이란 ‘자기의 결점과 미숙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며 그 잘못과 결점과 미숙함을 하나하나 극복하면서 성장하려는 자세다. 진짜 자신감이란,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하나의 경쟁에서 이기더라도 반드시 다음 경쟁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경쟁에서 승리해 얻을 수 있는 자신감은 ‘일시적인 자신감’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깊숙한 곳에는 ‘다음 경쟁에서 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퍼진다.
하나의 경쟁에서 이기더라도 반드시 다음 경쟁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의 경쟁에서 승리해 얻을 수 있는 자신감은 ‘일시적인 자신감’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 깊숙한 곳에는 ‘다음 경쟁에서 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퍼진다.
인간은 자신에게 ‘진짜 강인함’이 없으면 ‘감사’할 수 없어요.
대기업의 경영자나 리더에게도 똑같이 감사의 행동을 요구하는 말이 있다. 아주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말이다. “천 명의 우두머리가 될 인물은 천 명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겸허함의 수행을 계속하면 저절로 진짜 자신감이 붙는다. 인간은 감사의 수행을 계속하면 저절로 진짜 강인함이 붙는다. 매일의 생활에서, 겸허함의 한 표현인,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를 계속하면 저절로 조용한 자신감이 몸에 밴다.
“매일 회사에서 다양한 문제에 부딪혀서 고생했지. 그때는 회사 방침과 주위의 누군가에게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했어. 그런데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면 항상 한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더라고. 모든 원인은 나에게 있다고 말이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거야.”
떠안아라!’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떠안는 것. 상사는, 당시 나와 한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었다. 그는 의견이 달라 불만을 품고 있던 나에게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완곡한 표현으로 가르쳐 줬다. 인생에서 어떤 문제에 직면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싶어진다. 하지만 그럴 때도 마음속으로 ‘나에게도 책임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에게 잘못이 있지는 않았을까?’라고 묻는 게 ‘떠안음’의 자세다.
좋고 싫음’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는 의지의 문제임을 몸소 깨닫게 됐다.
첫 번째, 원래 결점은 존재하지 않고 개성만이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두 번째는, ‘싫은 사람은 사실 자신과 닮았다’라는 관점이다. 이렇게 말하면 놀라겠지만, 이 말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인간의 마음에 ‘자기가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면 혐오감이 증폭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싫은 사람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면 자신의 혐오스러운 부분과 똑같음을, 즉 자신과 닮았음을 깨닫게 된다.
생에서 좀처럼 ‘좋아지지 않는 사람’이나 ‘혐오스러운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결점이나 혐오스러운 면이 자신 안에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상대의 모습은 나의 거울’이라는 말 역시 이런 인간 심리를 나타낸 말이다.
자신의 결점을 용인할 수 없다면 같은 결점을 가진 상대를 용인할 수 없다.
세 번째, 공감이란 상대의 모습을 자기 모습처럼 생각하는 관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C 씨를 보고 있으면 짠해서요. 누군가 지도해 주지 않으면 도통 제구실을 못 할 것 같거든요.”
D 씨는 업무를 배우는 속도가 느려서 지도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D 씨를 보면 저의 신입 시절 생각이 나요. 저도 일을 빠르게 익히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때 선배와 상사들이 제 옆에 딱 붙어서 지도해 줬어요. 그러니까 저도 열심히 가르쳐 줘야죠.
A 주임의 모습을 살펴보자. 마음을 다해 후배를 교육하는 모습에는 숙연해지지만, C 씨를 ‘동정’하는 마음이 작용하고 있다. B 주임은 어떤가. 후배 D 씨를 ‘공감’하고 있다. D 씨의 모습에 자신의 신입 시절이 떠오른다는 공감이 B 주임을 움직이고 있다.
공감’과 ‘동의’, 그리고 ‘동정’은 모두 우리가 익히 아는 좋은 감정이지만, 공감이라는 감정은 상대의 모습을 자기 모습처럼 생각하므로 동의나 동정 같은 감정에 비해 상대와의 심적 유대가 더 깊어지게 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해 호불호가 심한 사람. 순간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 마음속 작은 자아가 강한 사람. 그런 사람은 대부분 헤어질 때 잔인하게 이별한다. 이별할 때 ‘마음’이나 ‘생각’을 남기지 않는 이별, 그리고 향기 없는 이별을 한다. 그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로의 마음이 변해 화해할 수 있는 시기를 맞아도 화해하지 못한다. '인덕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어쩐 일인지 그 사람 주위에는 사람들이 멀어져간다. 옆에서 보면 좋은 사람들이 자꾸 떨어져 간다. 그런데도 본인은 깨닫지 못한다. 성공하고 재산이 많아도 주위에 사람이라는 재산이 없다. 인덕이 없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중요한 마음의 자세는 헤어질 때 관계를 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화해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이란 타인과 부딪치는 사람이 아니다. 타인과 부딪친 다음 화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타인과 부딪친 다음 화해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사람이다.
인생에서 타인과의 만남은 모두 자신이라는 인간의 성장을 위해 주어진 만남이라는 관점이다.
나에게도 처음에는 ‘불행한 만남’이라 생각했던 것이, ‘의미 있는 만남’이었다고 느끼고 나아가 ‘감사한 만남’이라고 생각하게 된 적이 여러 차례 있다.
그 상사는 지금 돌이켜 보면 내게는 거친 숫돌이었어. 매일매일 그 숫돌에 박박 갈리는 기분이 들었거든. 하지만 덕분에 나란 인간이 매끈매끈해졌어. 나는 사실 엄청난 고집불통이었거든.”
인생에서 인간관계 문제는 대부분 관계하는 양쪽 모두에 잘못이 있다. 어느 한쪽에만 잘못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졸업하지 않는 시험’은 도망쳐도 반드시 뒤쫓아 온다. 지금 직면한 인간관계가 자신에게 내민 성장 과제를 직시하고 마주해 몰두하지 않으면, 아무리 능숙하게 도망쳐도 그 과제는 다른 인간관계의 문제로 돌아온다.
우리는 누구나 그 ‘한순간의 인생’을 달려간다. 인생에서 타인과의 만남은 한순간의 인생과 한순간의 인생이 교차하며 일어나는 기적의 한순간이다. 만일, 우리가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서로 마음이 부딪치는 만남도 마음이 어긋나는 만남도 아무리 불행해 보이는 만남도 기적 같은 만남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경이로움을 가르쳐 주는 말이 있다. ‘인연’이라는 말.
이 만남은 내 안의 어떤 문을 두드리는가. 무엇을 깨뜨리고, 무엇을 일깨우려 하는가.
그 유일한 길은, 매일의 일상에서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격투’하는 것이다. 여기서 격투란, 싸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미숙한 사람끼리 서로 마음이 부딪치고 멀어지면서도 마음을 열어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며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것이다.
마음속 작은 자아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내뿜으며 인정하기 싫어하고, 용서하기 싫어할 때 거기에 말려들지 않고 그 모습을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다. 내 마음속 ‘작은 자아’를 그저 조용히 바라보는 것. 이것의 ‘격투’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을 수양한다는 말은 작은 자아를 버리는 것도 없애는 것도 아니다. 그 움직임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며 이로써 작은 자아의 부정적인 움직임이나 파괴적인 움직임을 진정시키는 것이다.
작은 자아가 가진 허세, 우월감과 열등감, 질투 등의 감정들을 작은 자아가 좋게 포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을 수양한다는 것은 마음의 거울을 닦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속 작은 자아를 조용히 바라보고, 그 작은 자아로 흐려지고마는 마음의 거울을 꾸준히 닦아 간다.
구도求道, 이것이야말로 길이다. 한 인생에서 길을 찾아, 길을 찾아 걸었다.
그 모습은 이미 길을 찾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그 길을 찾아 걷고 있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그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