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쥐였던 제가 서울 3급지의
구축 84를 갭 4억에 매수하고,
지난 달에 셀프 등기를 쳤습니다.
네고과정은 힘들지만
월부의 가르침대로 물고 늘어진..! 덕분에
운이 좋아서 바로 윗층보다
1억 가량을 싸게 주고 샀습니다.
일전에 보이튜터님의 투자코칭을 받고,
아끼고 아껴서 모은 제 종잣돈 1.5억과
그리고 남자친구의 종잣돈 2억.
여기서 청약통장, 연금저축은
깨고 싶지 않아서
1% 금리의 사내대출 덕을 조금 봤습니다.
월부에서 1년여간 앞마당을 넓혀왔고,
1호기를 위해
서울 14개 구의 시세를 전수조사하고,
매물을 털다가 동작구에
작은 씨앗을 심게 되었어요.
그 과정은 아래 글에 담아봤습니다
▶ [서기 18기 스리링] 서울에서 최고가
아닌 차선책을 택했습니다. (feat. Stop moving..동작9만!)
https://weolbu.com/community/1651149
여기까지가 별거 없는 저의 매수기입니다.
서울에 1호기를 했다고 해서
그걸 자랑하고 싶은 것도
빠르게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닙니다.
저는 천천히 걸어나가고 싶어요.
그것보단 이번엔 그동안 제 인생이
월부를 통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를 한 번 풀어보려 합니다.
저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분들도
충분히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월부를 알기전 의문1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이
살아온 곳은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혹시 영화 집으로... 아시나요?
그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여기예요.
저희 집은 식당 뒤에 딸려 있는
네모 반듯한 컨테이너 세 개를 이어 붙인
식료품 창고, 그리고 방 두 개짜리
작은 집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그곳에서 네식구 살림을 차리셨어요.
방과 방은 연결이 돼 있지 않아서
저희 남매가 부모님을 보려면
신을 신고 나가야만 했었어요.
겨울이면 바깥 화장실에서 오들오들 떨며 씻었고,
시골이다 보니 개구리, 뱀, 쥐 같은 친구들도
화장실을 제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늘 깜깜한 창밖을 보며
"도심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곤 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반전은 이 식당과 집도
사실 저희 가족의 소유가 아니었단 건데요.
바로 앞에 있는 친척 집에 월세를 내고
세 들어 살던 곳이었거든요.
지금도 부모님은 월세를 내며
그 컨테이너 집에서 살고 계십니다.
그리고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장사를 하고 계시고요.
월부를 알기전 의문2
매일 반복되는 삶.
하루의 노곤함을 풀기 위한 술.
노곤함을 가장 빠르고
손쉽고 싸게 풀 수 있는 그 술은
우리 일터에 늘 있었고,
부모님은 지금도 하루가 끝날 때마다
소주를 늘 기울이십니다.
한 병.. 두 병..
그 끝엔 어김없이 큰 언성이 오고갔어요.
그리고, 가난한 집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폭언과 폭력도 따랐지요.
길게 말은 못하지만
몸의 멍보다 마음의 멍이 더 아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몰랐었습니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버티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었어요.
스무살 때, 친한 언니를 따라갔던
만원짜리 사주집에서
할머니가 제게 말해준 말을
마음 깊이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너는 지금까지 겨울길을 걸어 왔어.
하지만 23살 이후부터 풀릴 거야.“
점을 믿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 때만큼은 정말로 인생이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신기하게도,
이십대 중반부터 꼬였던 인생이
하나씩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대학교에서 저의 애씀을 알아봐 주시고
여러 지원과 대학원 진학
도움을 주신 교수님을 만났고,
대학원에서 늘 저를 응원해주고
제가 최고라고 하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났고,
직장 생활을 하며
제게 희망을 심어준 월부를 만났습니다.
그래도 꿋꿋이 열심히
버텨온 것에 대한
보상일까요!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것 같은
세상이 환해지는 기분이었어요.
월부 덕분에,
결혼은 꿈도 못꾸던 제가 결혼을 꿈꾸고,
늘 비관적이었던 제가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한번씩 깊은 물 속으로 잠기곤 했던
사람이 뭍으로 나와서,
지금은 남자친구와의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 있습니다
모든 인생이 그렇듯,
누구나 그렇듯 마음 속에 아픔 하나는
달고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제 주변의 지인들은
계속되는 실패담으로 좌절하고,
이번 생은 망했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저희 아버지 조차도 인생은 열심히 해도
안되는 게 있다고 좌절하곤 하시고요.
하지만 그때마다 저는
속으로 혼자 되새기곤 해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월부를 통해 제 인생도 가능성이 있음을 엿봤고,
그리고 늘 저를 따라다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었습니다.
쉼없이 일했지만 부자가 되지 못했던 이유는,
자본주의 속에서 스스로 자산이 없는
약자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고,
부모님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와 투자를 배우고 익혀서
자산을 쌓아가야 한다는 점,
그리고 책을 통해 내면의 정서를
다스려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아직도 누군가의 앞에 나서는 것은
여전히 두렵고,
저희 부모님 또래의 부동산 사장님들께
말을 하는 것도 어렵기도 하지만,
그냥 떨면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분들도 하실 수 있을 거에요.
시골의 단칸방에서 도심 속 생활을
꿈꾸던 시골쥐는
서울에 작은 씨앗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인생이 뭐 바뀌지는 않았어요.
여전히 아까워서
난방을 못떼고 있습니다.
그래도 씨앗을 하나하나
천천히 심어가려 합니다.
부모님 노후라는 과제도 제 선에서
해봐야 할테니까요!
제게 용기를 준 월부라는
귀인께 참 고맙고 감사합니다
실전경험담도 아닌…이도 저도
아니게 되버린..!
주저리주저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링님 서울 1호기!! 축하드렸던 그 이면에는 열심히 살아온 인생이 있으셨군요 ♡ 열심히 산다고해서 가난이 해결되지 않는 것. 그리고 가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힘든 일들 정말 공감되네요:) 소중한 자산을 바탕으로 꾸준히 열심히 해나가실 스리링님 응원드립니다 화이팅!!!
드디어 해내셨군요 ..그러실 자격이 충분하십니다..계속 응원하겠습니다..축하드립니다..ㅎ
스리링님 솔직한 이야기 그리고 월부를 만나서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지 마인드 변화를 글로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