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전문가칼럼

[너나위] 당신의 상황이 전부가 아니다. 당신의 마음과 의지가 전부다.

얼마 전 임장을 했다. 실로 오랜만에 가본 지역이었다. 바뀐 것도 많았고, 바뀌고 있는 것도 많았다.


이전에 임장할 땐 빌라만 잔뜩 있던 곳이었는데, 재개발을 해서 어느덧 새아파트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여느 때와 같이 단지 안에 들어가 둘러봤다.


'여긴 다른 신축들에 비해 좋아보이진 않네'


단지를 빠져나오다가 부동산 한 군데 문을 열어 이것저것 물어봤다. 입주한지 얼마 안 된 단지라 매물 자체가 많지 않았고 호가도 높았다(같은 값이면 다른 것을 사야겠다는 마음이 들만큼) 부동산 사장님은 내게 이 아파트보다 주변 빌라의 재개발 투자를 추천했다. 나는 재개발은 잘 모른다며 대화를 마치고 빠져나왔다.


나와서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있는 양꼬치 식당들과 중국어로 표기된 상점들. 중국 식품 판매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나다니는 사람을 보았다. 실제로 그러한지는 알 수 없지만 모두가 중국 동포들처럼 보였다.


'이 동네는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겠구나'


누군가는 이런 내 모습을 본다면 '모든 걸 아파트, 돈과 연결시키는 속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너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냐'라고 아파트 시세가 말하고 있었다.


+++++


나는 어릴 적 마포 언덕배기에 있는 산동네 무허가 판자촌에 살았다(강북은 구도심이고 언덕이 많다) 8가구 정도가 제대로 된 주소도 없이 마구잡이 공구리질을 한 모습으로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화장실은 재래식이었고 2개가 있었다. 8가구가 2개 화장실을 함께 썼다.


4학년 때인가. 아버지가 시험을 잘 치렀다고 사주신 BB탄 장난감 총으로 근처 단독주택 집(이 당시에 단독주택은 부잣집이었다) 대문 입구에 있는 전등을 깨먹었다가 호되게 혼난 기억이 났다. 그 때 그 집 주인 아저씨는 내게 모진 말씀을 하셨다. 어디서 이런 걸 주워다가 장난을 치느냐고. 그 아저씨는 우리 아버지가 그 총을 사주셨다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11살. 지금으로부터 30년도 더 지난 시절이지만 그 순간이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박혀있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억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저씨, 이거 주운 거 아니에요. 엉엉"


갑자기 머릿 속에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 모습과 30년 전 나를 면박주던 그 아저씨. 사람의 겉모습과 동네만 보고 사람까지 판단하려 하는 모습은 똑같은 것 아닌가?'


쌩뚱맞은 생각을 다 한다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 날 해가 어스름히 넘어가기 시작한 오후 5시 좀 넘은 시간. 빌라 사이사이에 있는 공원에 한 할머니가 앉아계셨다. 별 생각 없이 곁을 지나는데 할머니께서 내게 말을 붙이셨다.


"저기, 아저씨"


"네? 저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되요?"


"네? 어떤 거 말씀이세요?"


"이거..."


그 할머니께서 앉아계시던 벤치 옆 자리에 왠 신용카드가 한 장 놓여있었다. 누군가가 놓고 간 것이리라.


"어머니, 이 카드요?"


"응. 글쎄 그걸 누가 잃어버렸나봐요. 그런데 그런 거 잃어버리면 남이 돈을 홀랑 빼갈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혹시나 주인 말고 다른 사람이 주워갈까봐 내가 여 기다리고 앉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주인이 안 와서"


"어머니, 이거 누가 주워갈까봐 여기 앉아계신 거에요?"


"내가 얼마 전에 우리 딸이 지하철 타라고 준 카드를 잃어버려서 너무 힘들었거든. 그래서 그 주인 양반도 그럴 것 같지 뭐야. 그런데 너무 안 와서 아저씨한테 물어보는거에요"


"아..."


아무 말도 못했다. 그 할머니의 순수함과 카드를 잃어버린 이름 모를 누군가의 심정까지 헤아리는 너른 마음 때문에.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며 나도 모르게 변해가는 내 모습 때문에도.


재개발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낡아빠진 동네. 여기저기 복잡하게 달려있는 빨갛고 노란 간판. 거기에 적힌 '양꼬치', '중국식품' 한자들. 그걸 보고 말 한 마디 해보지 않았으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나완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 내 모습.


고개를 내려 내 모습을 봤다. 허름한 추리닝. 낡은 모자. 지퍼도 제대로 안 여닫히는 조그만 가방. 겨울에 6시간을 내리 걸어 빨갛게 충혈된 눈과 튼 얼굴. 제대로 깎지도 않은 손톱과 수염.


나 역시 겉만 보면 내가 '나완 다른 사람들'이라 잠시 생각했던 그 동네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신용카드 분실신고가 무엇인지도 이젠 어려우신 할머니 덕분에 나는 나를 돌아보게 된 것이다.

그 할머니는 무척 선량하고 따뜻한 분이셨다. 내가 했던 생각과 너무나 다르게도.


부자라기엔 거창하다. 그저 예전보다 나아졌다가 맞을 것이다.

예전보다 조금 나아졌을 뿐인데, 나는 이제 스스로 단속하지 않으면 나를 타인과 다른 사람이라 무심코 여기는 지경에 이른 것 같아 조금 슬픈 마음이 들었다.


나 역시 가난했는데. 그럼에도 남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은 하지 않는 사람으로 컸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그럴 수 있을 것 아닌가.


월부에 오는 수많은 수강생분들, 유튜브 채널에 사연을 보내는 수많은 사연자분들. 모두가 번듯한 아파트에 살고 대기업에 다녀서 선한 게 아니다. 매일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사연을 읽으면서도 아파트에 푹 빠진 나는 그걸 잊곤 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허름하고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내가 선량하고 열심히 인생을 보내는 것이라면 괜찮다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당신을 무시하거나 오해하는 자가 있다면 오히려 그가 불쌍한 것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반드시 나아질 수 있다고 말이다.


추운 겨울이 되면 동생 손을 잡고 호호 불어주며 산동네를 오르던 나도 이젠 어엿한 한 명의 사회인으로 성장했듯이. 지금 상황이 어렵다고 느끼는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


모든 월부인 분들. 추운 연말이지만 힘들어하는 주변 사람이 있다면 한 번 더 웃어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시간을 꼭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부끄러운 순간이었지만 여러분들께 공유하고, 그걸 바탕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저도 노력할게요.


활기찬 한 주 시작하세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 프로필을 눌러 팔로우 하시면 새로 올라오는 너나위 글을 놓치지 않고 읽으실 수 있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