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7월 24일에 올렸던 ‘미국과 일본의 협상 타결, 일본은 손해만 본걸까?🇺🇸🇯🇵’의 업데이트 버전입니다)
안녕하세요, 강준입니다.
22일, 미국과 일본이 상호 관세 인하 협상에 전격 합의했습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미국은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던 관세를 평균 15% 수준으로 낮추기로 했고, 일본은 그 대가로 자국의 쌀·자동차 시장을 미국에 개방하며, 5500억 달러(약 76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90%의 수익을 가져간다”는 말까지 나오며, 언뜻 보면 일본이 손해만 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협상의 구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양국이 실제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감수했는지 차근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핵심 중 하나는 일본이 미국 농산물을 추가 수입하기로 한 점입니다. 특히 쌀이 주요 품목에 포함되면서, “일본 농업이 타격을 입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죠.
하지만 이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일본은 이미 WTO(세계무역기구) 협정에 따라 ‘최소접근의무(Minimun Acess)’를 이행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일본은 연간 약 77만톤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며, 실제로도 이 양을 해마다 도입하고 있습니다.
즉, 미국산 쌀을 ‘새로 들여오는’것이 아니라, 기존 77만 톤 중에서 미국의 비중을 더 늘리겠다는 것이 이번 협상의 핵심입니다. 새로운 피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배분을 재조정하는 수준에 가까운 것이죠.
따라서, 이번 협상을 통해 일본 농민들의 피해는 다소 제한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시바 총리도 “이번 합의에 농업을 희생시키는 것은 일절 들어 있지 않다”고 강조했죠.
다음으로는 자동차 시장 개방입니다. 이 협상안에서 핵심적으로 합의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검증된 미국 차에 대해 추가 시험을 없애고 절차를 간소화해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일본과 미국은 자동차 안전성 검증에 대해 서로 기준을 내세웁니다. 미국은 연방자동차안전기준(FMVSS)에 따라 차량 안전을 평가하고, 일본은 자국의 독자적인 안전기준을 적용하죠. 자세한 내용은 아래 표를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문제는, 미국에서 생산된 차량이 일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일본 시장에 수출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결국 미국 자동차 업체는 일본 수출용 차량을 별도로 생산해야 했고, 이는 기업 입장에서 비용과 효율 측면에서 큰 부담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협상 내용을 살펴봅시다.
“검증된 미국 차에 추가 시험을 없애고 절차를 간소화해 수입을 늘리기로 했다”
이는 미국산 차량이 별도의 추가 인증 없이도 일본에 수출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의미입니다. 즉, 미국 자동차를 ‘미국 기준 그대로’ 일본에 판매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선 비용은 줄이고 수출은 늘릴 수 있는 직접적인 실익을 챙긴 셈입니다.
하지만, 생산자 입장에서 생산 효율이 높아졌다고 해도, 그 변화가 실제로 소비로 이어질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실제로 일본 소비자들은 일본차를 미국차보다 압도적으로 선호합니다. 2025년 글로벌 소비자 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6%가 다음 차량 구매 시 일본 브랜드를 선택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미국차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고작 1%에 불과했습니다.
이러한 격차의 배경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일본차는 품질, 신뢰성, 연비, 유지보수, 부품 공급 측면에서 매우 높은 신뢰를 받고 있으며, 일본의 좁은 도로와 복잡한 운전 환경에 최적화된 경차·소형차·하이브리드 차량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죠.
반면, 미국차는 차체 크기, 낮은 연비, 부품 수급 및 서비스 인프라 부족 등으로 일본 소비자들의 니즈와 잘 맞지 않아 현지 시장에서 외면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엔 트럼프 행정부가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이지만, 일본 소비자들의 확고한 브랜드 선호도와 시장 특성을 고려하면, 실제로 미국이 얻어가는 실질적 이익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또 하나 주목할 만한 내용은, 일본이 미국에 5,500억 달러(한화 약 760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투자로 발생하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간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이에 대해 아카자와 경제재생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습니다.
“출자 비율에 따라 수익이 배분되는 것은 당연한 일, 미국과의 논의 끝에 기여도와 리스크 부담을 고려해 ‘미국 90%, 일본 10%’라는 구조로 합의한 것”
하지만 이 구조가 정말 정당한 것인지는, 추후 미국이 실제로 일본보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하는지, 혹은 실질적인 리스크를 더 감수하는지를 지켜봐야 명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일본은 원래부터 미국에 초대형 투자를 이어온 국가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6년 연속 미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해온 국가이며, 2023년 말 기준 누적 투자액은 약 7,883억 달러에 달합니다. 또한 이시바 총리는 애초부터 ‘1조 달러 투자’라는 목표를 내세워왔기 때문에, 이번 5,500억 달러 투자는 그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조치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보면, 일본이 겉보기처럼 일방적인 손해를 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25%에서 15%로 조정된 미국의 관세 인하 조치가 일본 입장에선 상당한 이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이 관세 조정이 일본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협상에서 주목할 점은, ‘환율’에 대한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통상 협상에서 환율 문제를 협상 카드로 적극 활용해 왔는데요, 이번 일본과의 협상에서는 예외적으로 환율 관련 조건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엔화 추이를 보면 충분히 나올 수 있었던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일본은 대표적인 수출국입니다.
따라서 달러 대비 엔화 가치가 오르면, 일본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에 유리해지죠. 만약 이번 협상이 일본 단독으로 진행된 것이었다면, 관세 인하로 인한 미국 측 이익에 대응하기 위해 환율 압박이 함께 제기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이번 협상은 일본 단독이 아니라 다자적 협상의 일환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일본은 환율 측면에서의 손실을 피할 수 있었고, 오히려 관세 인하로 가격 경쟁력 손실을 환율을 통해 일정 부분 상쇄할 수 있는 여지를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도 과연 일본처럼 유리한 조건을 얻을 수 있을까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도 환율 문제를 배제할 것이라 단정하긴 어렵습니다. 또한 일본처럼 관세를 한꺼번에 10%가까이 인하해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여기서 한국의 상황을 한번 보겠습니다.
한국 역시 대표 수출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율은 매우 중요한 변수죠. 만약 미국이 일본보다 한국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하거나, 환율 협상을 압박한다면 한국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일본과 경쟁하는 차종이 많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경우 타격은 더 클 수 있습니다.
더 주목할 부분은 ‘이번 일본과 미국의 협상 타결이 향후 세계 분위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라고 생각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관세 예고에 대해 많은 반발이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국가가 EU, 멕시코, 브라질 그리고 일본이었죠.
따라서 개인적으로 이 국가들이 미국과 합의점을 찾지 않고 계속 반발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들이 묘하게 단합하는 분위기로 흘러 ‘미국 vs 세계’ 구도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먼저 미국과 협상 테이블에 앉아,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 지으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다른 국가들이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오히려 점점 악화되는 시장 환경 속에서 더 불리한 조건을 수용해야 할 위험에 직면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트럼프 관세에 강하게 반발했던 EU, 멕시코, 브라질이 이 기류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미 한 국가와의 협상이 좋게 타결된 시점에서 분위기는 다소 트럼프 쪽으로 쏠린 듯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완전히 기운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지금부터의 흐름은, 이들 국가가 어떤 대응을 내놓느냐에 따라 크게 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흐름을 읽는 자에게는 기회가, 지나친 자에게는 위기가 다가옵니다. 흐릿한 세상 속, 여러분들이 더 선명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다 쉽고 빠르게, 경제적 사고에 선명한 필터를 더해드릴게요.
Ecoverse 경제레터, 100명 한정 무료 구독 가능!(현재 42명 남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 SBS뉴스]
댓글
안녕하세요. Ecoverse님!
좋은 글을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coverse님의 글을 인기글로 지정하였습니다.
-월부 커뮤니티 운영진 드림-
어제의 인기글도 보고 싶다면? 👉 https://weolbu.com/community?tab=100144&subTab=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