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연휴 낮에 1호기 세입자께 전화가 왔다.
보통은 문자를 주셨는데 전화인걸 보면
정말 급하셨겠구나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말마따나
급한게 맞았고 구구절절 설명을 시작하셨다.
2.
오전 7시에 도어락이 갑자기 말썽이라셨다.
켜졌다가 꺼졌다가를 스스로 반복한다나 뭐래나
벌레가 그런게 아닐까 싶었다.
(6월에 벌레 때매 바닥전체 실리콘작업을 해줬다)
속으로 생각했다. 건전지 갈아 끼워보셨으려나.
오늘따라 촉이 좋다. 건전지를 갈아끼워도
켜졌다 꺼졌다는 멈추지 않는다셨다.
이때부터 세입자분의 말이 빨라졌다.
3.
도어락에 적힌 A/S에 연락을 해봤다셨다.
나름 이름있는 브랜드인만큼 잘해주겠거니
싶었다만 서울에서 해당 도직영점으로,
다시 그곳에서 그 동네로 기사님을 부르고
수리해보고 안되면 바꾸는게 어떻냐는 말이
참 서비스센터에 담당자 돌려막기도 아니고
입장 바꿔 생각해도 좀 답답했다.
4.
그리고 연이은 호흡으로 하시는 말씀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장판, 보일러 등
수리하는 업체를 적어놓은게 있고
물론 도어락도 거기에 있다고 하셨다.
가격은 20만원 대.
5.
심지어는 동네 가게라 지금 콜 하면
가격은 20만원 대.
바로 출발해서 바꿔줄 수 있다고 하셨다.
가격은 20만원 대.
마치 그렇게 하세요~라는 대답을 원하는 것처럼.
가격은 20만원 대.
6.
물론 도어락이 얼마인지 알고 있고,
숨고로 찾고 연락하고 조율하면
시간은 좀 걸린다만 N만원을 아낄 수 있는 상황.
그렇게 하세요~ 라고 대답해드렸다.
지난번 보일러 고칠때 처럼 영수증 찍어주면
계좌로 입금해드리기로 약속하면서.
(도어락, 실리콘, 보일러, 다음엔 신축 사야겠다)
7.
땅에 20만원을 묻어놓은 것은 절대 아니다.
연휴였고, 가게를 하시는 세입자 가족이
어디 각 잡고 여행을 떠나는 것은
우리 집에 살면서 설날 추석 설날 3번일 것이다.
기다려 주세요~ 라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내가 더 싼 도어락 업체를 찾는 것보다
더더욱 기다렸을 세 가족의 외출이기에
오히려 말썽이 많은 집이라 죄송하다 말씀드렸다.
8.
'무주상보시'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집착 없이 베푸는 보시라는 뜻인데,
결국 나에게 다 돌아오게 되어있으니까.
따지고 보면 3호기 수리할때
인테리어 사장님이 30만원 써비스로 해줬는데
그거 돌려 받는 거라 생각했다.
사장님도 무주상보시 그러셨을거니깐.
9.
피, 땀, 눈물을 흘려서 모은 투자금이고
마지막 숨을 모두 다 모아야할 투자금이지만
따지고 보면 전세 대출은 내가 아닌
우리 세입자님이 일으킨 것이다.
나는 한없이 을의 위치를 고수해야 한다.
전세가율 50% 이상이면 세입자가 갑이다.
이런 마음으로 3채를 운영하고 있다.
(실거주 2호기는 아내가 갑이다 나는 을이다.)
10.
화려하지 않은 경험담이라 짧게 적었다.
일기 쓰듯 주저리 주저리 적어봤다.
숫자를 붙이는 형식의 글은 처음이라
쓰기에도 읽기에도 어색하다만
이렇게 써보고 싶었다.
킥하고 웃던, 이불을 킥하던, 상관 1도 없다.
11.
그리고 세입자님께 ‘늘 감사합니다’
라는 답장을 받았다.
누군가에게 감사한 존재가 됐다.
아 1호기 말발굽 고장났었는데 무상으로 고쳐준
도어락 사장님께 감사합니다.
댓글
무주상보시..! 카인 통했챠냐 저도 요즘 새기고 있는 말인데💛 살아주고 계신 세입자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내리신 선택이니깐요, 장기적으론 카인에게도 반드시 좋은 일이 될거에요🙆🏻♀️ 이런 스타일의 문체도 금방 몰입되고 재밌눈걸!!!!
그렇게하세요~~ 카인님!! 저도 최근에 비슷한 경험을 한적이 있는데 월부환경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못 했을 것 같아요!! ㅎㅎ 덕분에 재밌는 글도 읽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