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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몰빵이 필요한 순간

14시간 전

 

인생의 승부처, '몰빵'이 필요한 순간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더 이상 망설이거나 재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해야 할 때 말이다. 이는 비단 일이나 투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아내를 만난 순간이 바로 그 '몰빵'의 순간이었다. 여러 사람을 만나며 겪었던 피상적인 연애를 끝내고, 이 사람에게 내 남은 인생 전부를 걸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결정을 내린 후에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만난 지 3개월 만에 프러포즈했고, 4개월째에 결혼식을 올렸으며, 결혼 1주년이 되던 날 첫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인생의 방향키를 한곳으로 완전히 돌린 과감한 결정이었지만, 그 결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으로 돌아왔다.

 

투자의 세계 역시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중한 분산 투자가 교과서적인 정답일지 몰라도, 때로는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결정적인 순간, 즉 '몰빵'이 필요한 기회가 찾아온다. 이 자산이 내 인생을 바꿀 마지막 열차 티켓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 때, 우리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가치투자의 대가, 워런 버핏의 '몰빵' 역사

'안전 투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워런 버핏 역시 그의 투자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마다 과감한 '몰빵'을 감행했다. 그의 집중투자 사례는 가치투자의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

 

 

첫 번째 전설적인 몰빵은 1950년대 후반 '샌본 지도 회사(Sanborn Map Company)'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샌본은 미국의 도시 지도를 제작하여 보험사에 판매하는 독점적 기업이었으나, 사업의 성장성이 정체되며 주가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하지만 버핏이 주목한 것은 낡은 지도 사업이 아니었다. 그는 샌본의 재무제표를 분석하며 회사가 보유한 막대한 규모의 유가증권 포트폴리오를 발견했다. 당시 샌본의 주가는 주당 45달러에 불과했지만, 회사가 보유한 주식과 채권의 가치는 주당 65달러에 달했다. 

 

즉, 주식을 사면 훌륭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20달러나 할인된 가격에 얻고, 거기에 지도 사업까지 덤으로 얻는 셈이었다. 버핏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이 운용하던 투자조합 자금의 35%를 샌본 주식에 쏟아부었다. 이후 그는 주주 행동주의를 통해 경영진을 압박했고, 결국 회사가 보유 자산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도록 만들어 막대한 수익을 거두었다. 이는 단순히 미래 성장성에 대한 베팅이 아닌, 숨겨진 자산 가치에 대한 확신에 찬 '몰빵'이었다.

 

1963년, 그의 두 번째 대담한 몰빵이 이루어졌다. 바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Amex)'에서다. 당시 아멕스의 자회사 창고에 보관된 샐러드유를 담보로 대출 사기를 벌인 '샐러드유 스캔들'이 터졌다. 사기꾼 앤서니 드 안젤리스는 거대한 탱크에 바닷물을 채우고 상부에만 기름을 띄워 감시단을 속였고, 이 사기극이 드러나자 아멕스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는 공포가 시장을 덮쳤다. 아멕스의 주가는 순식간에 60달러에서 35달러로 반 토막 났다.

 

모두가 공포에 떨며 주식을 내던질 때, 버핏은 직접 발로 뛰며 진실을 파악했다. 그는 레스토랑과 은행을 찾아다니며 사람들이 여전히 아멕스 여행자 수표와 카드를 신뢰하고 사용하는지 확인했다. 그는 이번 스캔들이 아멕스의 핵심 경쟁력인 브랜드 신뢰도와 결제 시스템의 견고함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이 확신을 바탕으로, 버핏은 파트너십 자산의 40%라는 엄청난 금액을 아멕스 주식에 '몰빵'했다. 시장의 공포가 가라앉고 아멕스의 본질적 가치가 재평가되자, 주가는 2년 만에 5배 이상 급등했고 버핏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우리에게도 찾아오는 '몰빵'의 순간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왔다. 2024년 초, 인공지능(AI) 시대의 개화와 함께 엔비디아의 독보적인 위치를 확인했을 때다. 당시 엔비디아의 주가는 이미 많이 올라 있었지만, 미래 성장성을 고려하면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고 판단했다. 향후 이익 증가율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PEG(Price/Earnings to Growth) 비율이 1.0 미만, 심지어 0.5에 근접하는 것을 보고 지금이 바로 '몰빵'의 순간임을 직감했다. 모든 자금을 끌어모아 3억 원을 엔비디아 주식에 쏟아부었고, 그 결과는 1년이 채 안 되어 3배가 넘는 수익으로 돌아왔다.

 

가치와 신념, 투자의 마지막 잣대

하지만 모든 기회에 '몰빵'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25년 초, 미국 최대의 건강보험 회사인 유나이티드헬스 그룹(UnitedHealth Group)의 주가가 규제 리스크와 소송 문제로 급락했을 때, 나는 또 한 번의 기회를 감지했다. 재무적으로는 분명 매력적인 투자처였다. 그러나 나는 차마 그 주식을 살 수 없었다. 유나이티드헬스는 이익 극대화를 위해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나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사례로 끊임없이 비판받아온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내게 투자는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를 넘어, 나의 가치관과 신념을 세상에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는 바로 그 시점에 유나이티드헬스 지분을 신규로 매수했다. 물론 과거와 같은 '몰빵'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의 투자는 여전히 많은 것을 시사한다. 버핏은 아마도 유나이티드헬스가 가진 미국 의료 시스템 내의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과 꾸준한 현금 창출 능력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을 것이다. 그의 투자 철학은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견고하고 지속 가능한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과거에는 버핏의 이런 냉철한 합리주의를 존경했지만, 이번 투자를 보며 작은 실망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그에게 투자는 사회적 가치나 윤리적 잣대를 넘어, 오직 숫자로 증명되는 부의 증식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몰빵'이라는 승부수는 철저한 분석과 확신에서 비롯되지만, 그 마지막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자기 자신의 신념과 철학이다. 워런 버핏이 보여준 것처럼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고 시장의 공포를 이겨내는 용기는 위대한 투자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그 투자가 나의 가슴을 뛰게 하고 스스로 떳떳할 수 있는지 자문하는 것 또한,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항해하는 한 명의 투자자로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것이다. 기회는 또 오겠지만, 신념을 저버린 투자의 성공은 평생의 후회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


주아팬더
25. 09. 11. 18:08

돈을 바라보는 투자가 이중적으로 다가오네요...

탑슈크란
25. 09. 11. 18:18

몰빵을 하기 위한 실력과 확신 부럽습니다. 돈만 보는 것이 아닌 투자를 통해 가치관과 신념을 표출하는 모습 인상적입니다. 실력을 키운 후 내가 인정하는 기업에 몰빵하고 싶네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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