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클래스에서 처음 만난 내 아내와는 첫 대화부터 공통점이 많았다.
우리는 같은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기업의 홍보와 광고 담당자였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경험과 그로부터 느끼는 감정의 결이 비슷했다. 우리는 판데믹 기간 연애를 성실히 했고, 1년의 시간이 흘렀다.
결혼을 약속한 우리는 자연스레 신혼집을 알아보게 되었다. 2021년이었다.
내 유일한 자산은 4년 전 마련한 인덕원 아파트 한 채였고 정기적인 소득은 월급 뿐이었다. 다만 나는 자가 집을 떠나 인근 원룸 오피스텔에서 살며 아낄 수 있었던 생활비로 대출금과 저축을 꾸준히 늘렸다.
그해 부동산 시장은 유난히 뜨거웠다. 서울과 수도권은 물론, 비수도권 도시들까지 집값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전세 매물은 자취를 감췄고, 수요자들이 매매를 망설이는 사이 신고가로 거래되곤 했다. 정부는 강도 높은 규제책들을 연이어 발표했다. 대규모 도심 주택 공급 확대 계획이 언론에서 끊임없이 강조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양도세 중과, 대출 총량 규제도 강화됐다.
하지만 시장에 풀려난 대규모의 화폐량과 사람들의 기대심리로 인해 부동산 시장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조급함이 먼저였던 분위기로 기억한다. 인덕원 인근 아파트는 월판선, GTX-C, 인동선에 대한 호재 소식이 거듭되며 엄청난 상승세를 기록했다. 언론과 유튜브에서는 거품논란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우리 역시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부부였지만 집을 자산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함께 시작할 공간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신청자들의 사연에 맞춰 적합한 집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인 ‘구해줘 홈즈’를 즐겨 보았다. 낮은 언덕에 지어진 2층짜리 단독주택, 넓은 마당과 테라스, 햇살 가득한 거실에 커다란 소파를 둔 삶. 자연스레 그런 풍경들을 꿈꾸게 되었다. 로망에 이끌려 당시 마포와 동탄에 직장이 있다는 현실은 고이 접어둔 우리였다.
타운하우스는 대개 2층에서 3층 건물의, 같은 구조의 단독주택 여러 채에서 수십 채가 하나의 마을(타운)을 이루어 사는 방식을 말한다. 구조상 층간소음 걱정이 적고 시골의 외따로 떨어진 단독주택에 비해 안전이 어느 정도 보장된 구조였기에 은퇴한 부부들이 많이 선택을 하고는 했다.
하지만 ‘투자’라는 관점에서는 불리한 유형이 대부분이었다. 일단 수요층이 한정되고, 시세도 분산되어 가격 형성도 어려웠다. 몇 차례 타운하우스를 방문한 뒤 우리는 우리가 간과한 단점들이 점차 현실로 다가왔다. 이웃 간 소음에는 매우 취약한 편이며 높은 관리비와 주변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 일단 우리에게 다가왔다. 지하철역에서 너무 멀거나, 음식점이 한 군데도 없거나, 밤이 되면 깜깜한 시골길이 이어지는 등 예비된 불편함들이 마음 한쪽에 쌓여갔다. 마당의 잔디와 집 안의 유틸리티도 매주 관리를 해야 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거주 환경은 무엇일까?
우리는 막연한 로망 대신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보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부동산', 더 나아가 '돈'을 공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주말에 서점에 가 보니 로버트 기요사키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책장에 있었다. 몇 번쯤 들어 본 타이틀의 책이었다. 구매해 그 다음날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 읽은 다음에는 다시 한 번 읽었고, 그 다음에는 밑줄을 친 문장들만 또 다시 읽었다. 그 때부터 나는 '돈'과 관련된 책들을 하나 둘씩 사놓고 읽기 시작했다.
부동산 팟캐스트는 출퇴근의 루틴이 되었다. <월급쟁이 부자들>에서부터 시작해 휴대폰에는 다양한 앱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KB부동산>, <호갱노노>, <부동산지인>, <아실> 등이 깔렸고, 어디를 가든 주변의 아파트 시세 변동 추이와 더불어 전세가율, 공급량, 학군, 대장 아파트, 주민 리뷰를 함께 찾아보고는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는 자연스럽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입지'가 어떤 요소들에 의해 결정되는지도 흥미롭게 공부하게 되었다. 주요 직장지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혹은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지, 문화인프라와 자연인프라는 어느 정도인지, 중학교 학군이 왜 중요한지, 치안은 어떤 요소들로 이루어지고 실제로 얼마나 안전한지… 알면 알수록 새로운 지식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고 싶은 집과, 살고 싶은 집의 차이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대다수가 사고 싶은 집의 요소 중에서 우리 부부에게 중요하지 않은 요소들은 뒤로만 배치하면, 살기 좋은 집에서 저렴하게 전세나 월세로 거주할 수있었다.
신혼집을 매매로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지만 당시 부동산 시장은 다소 과열되어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함께 돈을 조금 더 모아 2년 안에 새로운 아파트를 구매하기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아내와 나는 우리의 주거조건에 대한 기준을 하나 둘씩 이야기하며 좁혀나갔다.
1번. 출퇴근 소요시간은 40분 이내일 것, 교통수단 환승은 최대 1번 이내인 지역
2번. 거주 비용은 월 현금흐름의 20%를 넘지 않을 것.
3번. 아내가 홀로 밤에 길을 다니기에도 위험하지 않을 지역. 주변에 유흥가가 없거나 적고 민도도 중요함.
4번. 도보권에 음식점, 마트, 카페 등 문화적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인프라가 잘 조성된 지역
5번. 도보권으로 산책 가능한 공원이나 하천 등의 자연 인프라가 잘 조성된 지역
이렇게 우리만의 기준이 생기자 후보군이 명확해졌다. 엑셀 시트에 아내와 나의 직장을 기준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을 추리고, 이 안에서 임대비용 필터를 걸어놓자 분당구의 운중동, 정자동, 서울 여의도, 의왕 인덕원으로 크게 좁힐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주요 후보군으로 봐 두었던 정자동의 한 대형 오피스텔에서 임대사업자 매물이 나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임대사업자 물건은 계약 시마다 전세보증금을 5% 이상 올릴 수가 없어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전세금반환보증 가입도 세입자가 일부만 부담하면 되는 조건이었다. 넓은 평형, 채광 좋은 고층에 시세 대비 30%가 저렴한 물건이었다.
소장님은 당일 방문 예약자가 이미 3~4팀 정도 잡혀 있다는 말씀을 넌지시 주셨다. 회사에 반차를 낸 후에 한 시간 일찍 중개사무소에 도착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소장님은 마음이 바뀌셨는지 감사하게도 나에게 집을 먼저 보여주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본 집은 양 면이 대형 창문으로 되어 멀찍이 카페거리까지 보이는 채광이 이쁜 남서향의 전용면적이 넓게 나온 집이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우리는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그렇게 우리는 정자동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책장, 아일랜드 식탁, 와인장, 커튼까지 우리 둘의 첫 번째 공간을 조금씩 채워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점차 한 가지 우리의 관점이 다른 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돈'과 ‘부채’를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