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다다다다다다.”
천장에서 나는 소리.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귀를 기울이다가, 등골이 서늘해졌다.
쥐들이 뛰어다니는 소리였다.
아파트에서 살다가, 급작스럽게 쫓기듯 이사 나왔던 반지하 집.
방 두 개. 주방은 없고, 현관 옆 싱크대 하나가 전부인 집.
창문을 열면 햇빛보다 먼저 축축한 냄새가 들어왔다.
그 집에서 몇 년을 살았다.
여름에 비가 쏟아지면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다.
양동이로 물을 퍼내며 바닥을 닦았다.
아무리 문을 잠그고 철창을 달아도 도둑들은 집을 노렸다.
잠을 자면서도 늘 긴장해야 했다.
‘오늘 밤은 무사할까.’
수능이 끝나자마자 알바를 시작했다.
과외, 학원 알바, 마트 판매, 해장국집 야간 서빙.
기억도 다 나지 않을 만큼 많은 일을 했다.
학교를 다니며 스무 개 가까운 알바를 했다.
힘들다고 느낄 틈조차 없었다.
살아야 했고,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나는 계속 돈을 모았다.
가능하면 걸어 다녔고,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늘 감각적이고 세련된 사람들이 가득한 공간 속에서,
나만 다른 시간대를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눈치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돈을 쓰는 순간마다 마음이 단단히 조여왔다.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그 생각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전세로 시작한 신혼생활에서도 매번 오르는 전세값이 무서웠다.
부동산 앞을 지날 때마다 창문에 붙은 매물 가격을 훔쳐보듯 바라봤다.
‘저 집은 얼마일까.’ ‘나는 언제쯤 저런 집을 가질 수 있을까.’
부러움과 조급함이 늘 함께 따라다녔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야 진짜 두려워졌다.
이 삶을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네이버 부동산을 들여다보다가,
가진 돈을 끌어모아서 가능한 분양권 하나를 샀다.
그땐 몰랐다.
그 시기가 하락기였다는 것도,
P 없이 분양권을 살 수 있었던 게 얼마나 감사한 기회였는지도.
지금은 그 집에서 살고 있다.
드디어 내 집.
이제는 좀 숨을 쉬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서울에 집 하나 있으면 인생이 안정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말했다.
“엄마,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상급지 자가에 살고 있었지만, 삶은 여전히 빠듯했다.
아껴야 했고, 계산해야 했고, 늘 미래를 걱정해야 했다.
여름에도 에어컨 한 번 틀지 않는 집,
밖에 나갈 때마다 도시락을 싸 들고 나서는 우리들,
자기가 입던 작아진 옷을 다시 꺼내 입는 엄마,
당근 거래하러 바쁘게 뛰어다니는 아빠.
아이는 점점 그런 모습들이 답답해 보이는 눈치였다.
이것저것 배우고 싶고 꿈이 큰 아이는, 지금 우리 집의 상황을 속상해했다..
지원받지 못하고 자라온 내 과거 때문인지,
나에게 쓰는 소비는 극도로 제한하면서도 아이에게만큼은 최대한 쓰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가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포기하도록 설득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게 너무 속상했고, 스스로에게도 당황스러웠다.
결국 고민 끝에 쿠팡 야간 알바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몸을 더 쓰면,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온라인 교육을 받고, 공장 셔틀을 한 시간 넘게 기다리다가
오지 앉는 셔틀을 탓하며..
길가에 앉아 펑펑 울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은 신의 계시 같기도 하다.
그때 야간 알바를 시작했다면,
아마 지금도 새벽마다 몸을 갈아 넣으며 택배를 나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울면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늘 “돈이 돈을 버는 시스템을 만들라”고 했는데,
나는 왜 이러고 있지? 뭐라도 해보자.
그렇게 월부를 시작했다.
그동안 모아온 돈으로 뭐든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준비 없이 할 수는 없어서 유튜브 강의와 너바나님, 너나위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강의비가 나에겐 꽤 부담이었지만,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마음이 더 컸다.
큰 결심 끝에 공부를 시작했다.
한 달만 들으면 투자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더 이상의 강의비는 감당 못 할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1년 가까이 매달 강의를 들으며 투자자의 삶을 살고 있다.
아직도 혼자 임장 다닐때는 삼각김밥으로 떼우고, 최대한 아끼면서 다니고는 있지만.
배우는 돈이 아깝지는 않다.
매달 강의를 듣고, 공부하고, 임장을 다니고, 임보를 썼다.
아파트를 배운다는 것이, 투자를 배운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늘 걱정이 있었다.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 끝나면 어쩌지?’
내 자신에 대한 의심과, 편안함으로 돌아가고 싶은 두려움이 계속 올라왔다.
그럴 때마다 믿으려고 애썼다.
먼저 이 길을 걸어간 선배님들의 말과 삶을 믿어보려고 했다.
소액투자에서 갈아타기로,
갈아타기에서 주거 분리로.
방향이 크게 세 번이나 바뀌며 마음이 흔들릴 때도 많았다.
그래도 기회가 될 때마다 오프라인 강의, 강사와의 만남에서 튜터님, 멘토님들께 질문하며
그때그때 나에게 맞는 방향을 다시 찾으려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려고 노력했다.
“자기야, 이 집 우리 신혼집보다 작지?”
편안하고 익숙한 실거주 집을 전세 주고,
30년 넘은 구축으로 다시 전세를 들어갈 준비를 하며 마음이 복잡했다.
편안함이 불편함으로 바뀐다는 사실이 가족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싫지는 않았다. 뭔가를 해보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힘이 났다.
안정추구형 남편에게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마기 강의를 같이 듣게 하고, 투코도 함께 다니며 하나하나 설명했다.
이 모든 과정을 이해해 주고, 함께 움직여 준 남편에게 늘 감사하다.
사춘기 딸은 이사 하는 날 대성통곡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ㅎㅎ;;
전세를 빼는 과정도, 다시 구하는 과정도 이론처럼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결국 실행했고,
우리는… 이렇게 1호기를 해냈다.
1호기 가계약금을 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도서관에서 임보를 쓰며,
예전처럼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넣고 휘휘 젓다가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하나씩 해나가면,
언젠가는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을 때
망설이지 않고, 고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사 마실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올라오는 희망을 마주했다.
아직 1호기 가계약 단계이고, 10억 달성기도 아닌 내가 경험을 쓰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고 조심스럽다.
그런데 실준반을 함께한 준삭스 튜터님이 전화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젠가님, 그동안의 과정이 다른 분들께 분명 용기와 힘이 될 거예요.
복기글 한 번 써보시면 어때요?”
혹시 지금도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긴 인트로를 남긴다.
본격적인 1호기 복기글을 쓰기도 전에
인트로가 너무 길어졌다.
누가 보면 10억 달성기인 줄 알까 봐 더 부끄럽다….
1호기 계약하기 전 급했지만, 소중했던 매물코칭 후기글 https://weolbu.com/s/KY5Bx1lHhe
1호기 가계약 복기글 https://weolbu.com/s/KY62qQJ1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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