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의 방정식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에 실리기를 원하는 부고의 내용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그 내용에 맞춰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더 좋은 자동차나 큰 집이 갖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그런 물건이 아니다. 아이들은 타인의 존중과 존경을 원할 뿐이며, 멋진 물건을 사는 순간 존중과 존경도 함께 따라오리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에 실리기를 원하는 부고의 내용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그 내용에 맞춰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이미 불행을 느끼고 있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모든 사람이 ‘좋은 삶’을 향해 노력하는 이유는 그런 삶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거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당신이 과거에 겪은 경험과 현재 소유한 것 사이에 가로놓인 ‘차이contrast’일 뿐이다.
당신이 소유한 물건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을 때의 벅찬 기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 조금씩 두둑해지던 주머니 같은 게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이 무엇을 가졌고 갖지 못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잃을 게 많아질수록 삶은 더 취약해진다.
투자에서 장기적으로 성공하려면 장기적 변동성을 관리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그보다 배우기가 훨씬 어려운 단기적 변동성을 피하는 기술을 익힐 수밖에 없다. 지속 가능한 투자의 핵심은 단기적 변동성을 피하려 애쓰기보다 장기적 변동성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
인생에서 성공하는 비결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실패하지 않으면서 실패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 나는 아이들의 삶이 무너지지 않도록 막아주고 싶다. 그러나 아이들이 내 돈에 의지해서 살아가며 근면함, 품위, 실패를 관리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책의 제목과 소재는 ‘돈’에 대한 이야기지만, 인생의 목적과 행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었다.
투자를 해서 돈을 벌고자 함이 ‘노후 준비’를 위한 생존에 일차적 목적이 있기는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너 투자 왜 해? 너가 살아가는 이유가 뭐야?”라는 질문에 답을 찾고 의미를 갖게 하기 위해 이 책이 돈독모로 선정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에 실리기를 원하는 부고의 내용을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그 내용에 맞춰 남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구절을 읽자마자 윤이나 튜터님이 떠올랐다. 독서TF를 하며 윤이나 반장님과 월부활동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고, 당시 반장님께서 저 이야기를 하셨다. 내 삶이 끝나는 지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 삶의 마지막에서 현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삶을 반추하며 의미를 찾는 것과는 또다른 관점이라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남아있었는데, 책에서 저 구절을 보고서야 비로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싶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전히 어렵지만.. 먼저 들었던 생각은 ‘딱히 내 소식이 신문에 실리는걸 원하지 않는데?’였고, 내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느냐 보다는 ‘세상에 마음 아픈 일들이 조금이라도 적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당신이 소유한 물건을 진정으로 소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갖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해 한 푼 두 푼 돈을 모을 때의 벅찬 기대,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았을 때의 기쁨, 조금씩 두둑해지던 주머니 같은 게 아니었을까
인간에게 행복은 ‘삶이 더 나아진다는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취직을 하고 천만원까지 돈을 모을거라는 희망, 1억이 모이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 내 집을 갖게 된다는 희망, 내 손으로 노후준비를 마칠 수 있다는 희망, 나아가 가족까지 책임질 수 있을거라는 희망.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큰 돈을 가지고 나서의 희망은 무엇일까? 앞으로 또 생각이 바뀔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시점의 나에게는 ‘세상에 마음 아픈 일들이 조금이라도 적어지면 좋겠다’는 삶의 마지막과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어린 아이를 둔 부모가 삶의 마지막을 향해 갈 때 돈 걱정 보다는 마지막까지 넘치는 사랑을 줄 수 있으면 좋겠고, 부모를 여읜 어린 아이가 하루에 라면 1개 먹으면서 크지 않았으면 좋겠고, 부모님의 건강이 안 좋아졌을 때 치료비로 가족에게 경제적 파산이 닥치지 않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고 어찌보면 이 또한 ‘허세’인 것일까 싶기도 하지만, 작게는 나와 가족을 위하면서도 크게는 이룰 수 없지만 따라가는 북극성 같은 목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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