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장면을 봤을 때 별 감흥이 없었다.
사랑의 블랙홀.
이 영화는 아주 오래전 개봉되었고, 최근에 유튜브 쇼츠에서 다시 영화 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유독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영화 속 주인공이 길거리의 노인을 처음엔 그냥 지나치고,
두 번째엔 돈을 던지듯 주고, 세 번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곁에 앉아 따뜻한 수프 한 그릇을 함께 나눈다.
그리고 그날 밤 노인은 조용히 세상을 떠난다.
마지막 식사를, 혼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온기 속에서 마쳤다는 것.
그게 전부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쇼츠의 댓글을 읽다가 나는 한참 화면을 멈췄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고 있었다.
한겨울 버스 안에서 버스비 없는 아이의 카드를 대신 찍어준 회사원,
폐지 리어카를 밀어드리다 눈물이 난 사람,
쓰러진 할아버지를 업고 걸었는데 아무도 보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쓴 사람.
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었다.
"결국 내가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세상은 경쟁이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며,
남을 돕는 건 어딘가 내 것을 덜어내는 일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러다 선배 한 명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특별한 이유도 없었다.
그냥 지나치다 "밥 먹었어?" 한마디에 끌려간 자리였다.
선배는 내 고민을 다 해결해주진 않았다.
그냥 들었다.
가끔 고개를 끄덕였다.
헤어질 때 "힘들면 말해"라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르게 눈이 따거워졌다.
그때 처음 알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건 시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시간을 받은 나는, 이상하게도 그 선배가 나를 믿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믿음을 받으면 사람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투자 공부를 막 시작하던 무렵,
머릿속이 개념들로 엉켜 있을 때 한 동료가 말없이 업무자료를 공유해줬다.
설명도 없이.
나중에 물어보니 "나도 이거 보고 정리됐어서"라고 짧게 말했다.
그 담담함이 오히려 더 컸다.
그 사람은 나를 경쟁자로 보지 않았다.
같은 방향을 가는 사람으로 봤다.
그 뒤로 나는 무언가를 알게 되면 혼자 쥐고 있지 않게 되었다.
나눠도 내 것이 줄지 않는다는 걸 몸으로 배운 순간이었다.
얼마전 읽은 한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은 에너지를 준다.
미움은 에너지를 앗아간다.
처음엔 좀 가벼운 말처럼 들렸다.
그런데 살면서 계속 이 문장이 증명되는 장면들을 보게 된다.
누군가의 단점을 곱씹는 밤,
억울함을 반추하는 출근길,
잘 되는 사람을 보며 무너지는 오후.
그 에너지들이 어디로 가는지.
결국 전부 나에게 돌아온다.
나를 소진시키는 방향으로.
반대로 누군가를 도운 날 밤은 다르다.
피곤한데 이상하게 충만하다.
뭔가를 한 것 같다.
그 감각이 뇌과학에서 말하는 도파민과 보상회로의 활성화이든, 오래된 인간의 본능이든 상관없다.
그냥 그날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그 느낌은 생각보다 오래간다.
처음엔 그 단어가 어색했다.
내가 뭘 안다고.
그런데 어느 날 내 말을 메모하는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전하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나도 이 길에서 넘어졌다는 것, 그래도 다시 일어섰다는 것.
그 흔적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었다.
상대는 내가 준 것보다 훨씬 많은 걸 가져갔고,
나는 그것을 나눠줌으로써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한번 의미 있게 만들었다.
돕는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을 줘서 내 것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확인하는 행위.
내가 무언가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것.
영화 속 주인공은 같은 하루를 수없이 반복한다.
처음엔 그 반복이 형벌이었지만 결국엔 선물이 된다.
지나쳤던 사람에게 다시 다가가고, 무시했던 순간에 다시 머무르며, 그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된다.
타임루프가 없는 우리에게는 그 기회가 한 번뿐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어떤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선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고.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물렀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 이미 어떤 풍요라는 뜻이고,
그 풍요를 알아보는 눈이 곧 성장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을 돕는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에게 가장 정직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무엇을 가졌는지,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 그리고 타인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그 질문들이 한 번의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그러니 지나치지 말자.
내가 나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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