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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부학교 봄학기 7ㅏ장 빛날 인턴튜터님과 시세, 봄🌸 / 독서TF 럭셔리초이] 독서후기.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26.04.08

책 제목(책 제목 + 저자) :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저자 및 출판사 : 크리스 나이바우어 / 클랩북스

읽은 날짜 : 26.03. 25 ~ 26.03.27

핵심 키워드 3가지 뽑아보기 : #해석장치 좌뇌 #침묵하는 우뇌 #중도

도서를 읽고 내 점수는 (10점 만점에 ~ 몇 점?) : 9점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대표 이미지

1. 저자 및 도서 소개

“금붕어는 자살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뇌가 생성해 내는 언어를 통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행을 상상하고 괴로워한다. 생각의 부작용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찾고 싶은 모든 이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 박주형 유투브 <심리학 고양이> 운영자


뇌가 만든 합리화의 세계를 탐험하는 8가지 통찰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생각과 판단으로 남을 오해하고 나의 한계를 의심하며 괴로워한다. 고통을 유발하는 생각들은 왜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걸까? 이 생각은 정말 ‘나’의 것이 맞을까?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이러한 의문들은 1960년대 등장한 분리뇌 환자들의 좌우뇌를 독립적으로 연구하게 되면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소위 자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꾸며내는 ‘거짓말 장치’ 좌뇌, 비언어적 앎의 형태로 존재한 탓에 무의식으로 뭉뚱그려진 ‘침묵하는’ 우뇌의 기능이 본격적으로 밝혀진 덕분이다.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신경심리학자 크리스 나이바우어 박사는 2500년 전 선불교에서 다뤄 온 무아(無我) 사상이 현대 신경과학의 수많은 실험 결과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한다. 신경심리학자로서 22년간 좌우뇌의 작동 원리를 연구하고, 수행자로서 동양의 영적 가르침을 몸소 실천한 그의 실험적 행보는 의미를 과잉 생산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의심하는 현대인들에게 욕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신선한 관점을 제안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도달할 수 없는 ‘이상적인 나’를 끊임없이 갱신하는 좌뇌와의 동일시를 멈추고 감사와 연민으로 가득한 우뇌 의식을 깨움으로써 삶의 균형을 맞춰 가는 것. 출간 직후부터 약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마존 신경심리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며 전 세계 독자의 ‘인생 책’으로 호명되고 있다.

 

2. 내용 및 줄거리

🔖서문 : 

이 책에 나오는 신경 과학 및 심리학 연구 결과는 동양 철학에서 수천 년간 이야기했던 바를 다른 관점으로 보여준다. 대부분 당연하다고 여기는 ‘자아’ 또는 ‘나’라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라는 느낌은 좌뇌가 창조했기에 좌뇌로 아무리 열심히 애써본들 그 실체를 밝힐 수 없다. 당신의 의식이 당신의 경험을 이전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잘 안내해서, 좌뇌의 한계를 넘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나의 바람이다. 

💡생각 : 이 책은 우리가 믿고 있는 ‘자아’라는 개념에 의문을 던지며 시작하고 있다. ‘자아’를 객관화 시킴으로써 ‘생각’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뛰어 넘어보려는 시도 같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될 지 흥미진진하다. 동양 철학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데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겠다 싶은 기대감이 생긴다. 

 

🔖1장 : 내 머리에 거짓말 장치가 있다 (뇌가 만드는 합리화의 세계) 

과거 간질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좌뇌와 우뇌 사이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한 환자들이 있었고, 이 ‘분리뇌 환자’들을 대상으로 좌뇌와 우뇌가 각각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연구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우뇌가 손상된 사람을 대상으로 시험한 결과 좌뇌는 언어를 담당하며, 주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그럴싸하고 ‘말이 되게끔’ 상황을 재구성하여 설명하는데 이때 좌뇌는 개연성을 높일 수 있다면 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한다.

때문에 자아가 허상임을 깨달으면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좌뇌가 만들어 내는 모든 부정확한 설명, 그리고 그 설명의 주체가 ‘나’라는 전제가 인간으로서 겪는 내적 고통의 가장 두드러진 원인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는 좌뇌 해석 장치는 항상 켜져 있고 맘대로 끌 수도 없지만, 일단 그것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한 번이라도 눈치챈다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야가 트인다고 조언한다. 

 

** 좌뇌의 생각 방식 : 좌뇌는 바깥 세상을 볼 때 오직 사물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을 분류하고, 이름표를 붙인다. 자기 내면을 볼 때도 똑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가정하면,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좌뇌가 머릿속의 생각을 단지 흐름으로 보지 않고 구체적인 ‘대상’으로 붙잡아서 ‘나’라는 이름표를 붙인 것이 아닐까? 라고 묻는다. 그래서 자아란, 삶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사건과 행위와 경험을 일관성 있게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생각 : 나의 생각이 모두 옳고, 진실에 기반한다고 생각하는 대신… 생각은 좌뇌의 해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좌뇌의 해석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굴레'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장 : 당신은 누구입니까? (만들어진 자아)

p70. 머릿 속에서 쉴 새 없이 떠드는 목소리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지도(목소리)를 실제 장소(진정한 자신)으로 착각하는 완벽한 사례다. 바로 이 오류 때문에 자아라는 환상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이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언어를 현실에 대한 표현일 뿐이라 여기지 않고, 현실 그 자체로 혼동한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대답으로 ‘나는 남자이고, 아버지이며, 남편이자, 교수이고, 작가입니다."라고 대답했다면 이는 나 자신을 범주화하여 규정짓는 것일 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언어로 표현되는 유용하고 범주적인 가상 인물에 불과하다. 

생각한다는 것은 곧 범주화하며 정보를 처리한다는 뜻이고, 여기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러나 우뇌에는 해석적 사고를 훌쩍 뛰어넘는 다른 방식의 지능이 존재한다. 

 

범주란, 마치 모래사장에 선을 긋고 원래 하나였던 걸 둘로 나누듯 만들어진다. 이 선을 어디에 그을지 정하려면 판단이 꼭 필요하다. 그래서 판단이 없다면 범주도 없다. 이 사실을 인식하기만 해도 엄청난 변화가 생긴다. 해석 장치가 판단을 이용해 끝없이 범주를 창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마음에 담고만 있어도 판단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즉, 그 해석을 심각하게 받아들일지 말지 선택권이 생긴다는 뜻이다. 

 

좌뇌가 신념을 창조하고 유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만 나의 신념이 ‘옳다’는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새로운 사고의 세계가 열릴 것이고, 또 다른 해석적인 마음이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생긴다. 

 

p90. 자아라는 믿음이 한 번 마음 속에 뿌리내리면 거기서 끝이 아니다. 형성된 자아는 또 나눠지고 분류되면서 ‘자기계발’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그리하여 ‘지금의 나’와 ‘되고 싶은 나’라는 두 가지 자아를 만들어 낸다. 이 둘 사이의 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자기를 속이거나 확신하고, 자기를 사랑하면서 미워하며, 자기를 받아들이거나 밀쳐내는 종은 아마 인간이 유일할 것이다. 

 

💡생각 : ‘나’ 라는 인식도 결국 범주화를 하여 세상을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는 자아가 만들어낸 개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굉장히 신선하다. 헬렌 켈러가 ‘나’라는 것을 인식한 것이 언어를 배운 뒤부터였다는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나와 남을 구분하고, 나의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고, 내가 옳다고 믿고… 이 모든 것이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하면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새상을 해석하고, 나를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인데.. 왜 그렇게 생각을 닫아두고 살아왔었는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열고 다음 장을 읽어보아야겠다. 

 

🔖3장 :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과몰입하는 좌뇌)

좌뇌가 자아라는 환영을 창조하는 과정은 이렇다. 당신과 남들이 범주적으로 다르다는 패턴을 감지한다. 그렇게 관찰한 것을 기억, 선호도, 그리고 몸과 마음을 운전하는 ‘조종사’의 관점과 합쳐 자아라고 인식한다. 각자의 자아에 대한 정의는 나와 타인의 차이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아닌 것’ 없이 ‘나’는 있을 수 없다. 

 

좌뇌는 ‘나’로 믿는 행위는, 밤하늘을 수놓은 오리온자리가 실제로 독립적인 존재라 믿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별자리는 특정한 각도에서 보이는 별들의 집합일 뿐이며 거기서 마음이 어떤 패턴을 보고 오리온자리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다. 

 

자아를 ‘해석중독자’로도 비유할 수 있다. 약물 중독자가 매이 약물을 찾는 것처럼 자아는 매일 고치고 개선할 거리를 찾아 헤맨다. 그것도 아주 다양한 방법으로 말이다. 

 

p124. 하루동안 자신의 모습을 관찰해보자. 그럼 수시로 변하는 당신의 자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명의 ‘나들’이 나타났다 사라질까? 하루에도 이렇게 많은 내가 있다고 깨닫는 것만으로 늘 변함없는 ‘나’라는 환상이 허물어진다. 언제나 한결같아야 할 의무 따위는 없다. 우리는 홀가분해질 수 있다. 가끔 ‘분노하는 나’를 마주할 때가 있겠지만 그건 플립북의 한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어떤 ‘나’에 집착하고 어떤 ‘나’를 미워할 필요도 없다. 

 

💡생각 : 이 챕터의 내용을 읽으면서 ‘나’ 라는 존재의 고정된 실체에 집착하지 않고, 개방적으로 생각하면 집착이 사라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순간순간의 나는 그저 플립북의 한 페이지라니.. 사실 너무 낯선 개념이라 한 번에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것 같다. 다만, 끊임없이 스스로의 행동이나 상황이나 그런 것들을 해석하면서 불안해 하거나, 마음 힘들어할 필요가 없겠다는 깨달음을 얻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4장 : 무의식인줄 알았던 것 (침묵하는 우뇌)

좌뇌가 '언어중추'라면 우뇌는 '공간중추'이다. 우뇌는 직관적이다. 좌뇌가 사물을 범주로 나누고 판단하여 나머지 세계와 분리시키는 반면, 우뇌는 장면 전체에 주의를 두고 세상을 하나의 연속체로 인식한다. 예를 들면 좌뇌는 시간을 '이전'과 '이후'로 나누지만, 우뇌는 오로지 당면한 지금 이순간에만 집중한다. 좌뇌는 우뇌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의식'이라고 치부한다.

 

우뇌 의식으로 접속하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려면 한계가 분명하기에 설명이 힘들 수밖에 없다. 명상, 요가, 태극권, 마음챙김 수행은 우뇌 의식을 경험하기 좋은 출발점이다.  

 

우뇌 의식의 핵심은 "쓸데없는 생각 말고 그냥하기", 더 정확히 말하면 "말이나 생각 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생각 : 뇌졸중으로 좌뇌가 일시적으로 꺼졌던 신경해부학 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박사는 당시의 경험에 대해서 '평생 끊임없이 들리던 내면의 목소리가 꺼졌다'라고 표현하면서 '절대적인 평온함 속에 푹 잠긴채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머물렀다. 좋고 나쁨, 옳고 그름 같은 범주들이 더 이상 양극단으로 느껴지지 않고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느껴졌다.'고 했다. 이런 느낌은 마치 열반상태와 유사하다고 한다.

사실 우뇌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좌뇌가 인식하는 '자아'가 곧 '나'라고 생각했었고, 생각 밖의 영역은 무의식이라고 생각했고, 그건 컨트롤 밖의 영역이라고 믿었다. 여러 자기계발 도서에 나오는 "자기확언으로 무의식을 바꾼다"에 대해서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우뇌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겠구나 싶다. 우뇌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행동한다고 한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생각을 줄이고', '그냥 행동하기'라는 생각을 계속 하고 있는데, 우뇌를 깨워서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다음 이야기가 기대된다. 우뇌는 어떻게 깨우는 걸까?

 

🔖5장 : 뇌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 (부분과 전체)

의미와 이해는 우뇌에서 일어나는 필수적인 과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배워왔기에 언뜻 이해는 좌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의미가 있는 것들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고, 삶의 가치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해석적 이해 vs. 의미적 이해]      

보통 우리가 ‘이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해석적 이해, 즉 좌뇌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이해도 있다. 바로 의미와 관련된 이해이다. 이것은 사건을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본다. 은유를 통해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의미적 이해이다. 우뇌가 이 영역을 담당한다. 

 

우뇌는 언어에 의존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의식 형태이다. 심리학에서는 동시적은 정보 처리 방식을 소화나 호흡처럼 무의식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이런 전제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동양 철학자들은 언어에 의존하지 않을 때 훨씬 경이로운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생각 : 언어적 이해로부터 자유롭게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언어로만 세상을 이해해야 할 때는 언어의 틀 안에 갇힐 수 밖에 없는데, 이 틀에서 벗어나서 세상을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새로운 경지를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뇌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생긴다. 

 

🔖6장 : 직감을 믿어도 될까? (언어를 뛰어넘는 지혜)

직감은 ‘사유를 거치지 않고 바로 이해함 또는 인지함’ 또는 ‘이성적 추론에 의한 증거 없이 곧바로 앎 또는 인지함’으로 정의할 수 있다. 누구나 크든 작든 이런 직감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우뇌는 좌뇌가 감지하지 못하는 정보를 감지하고, 그것을 영감이나 직감이라고 불리는 형태로 의식 표면에 올리는데,  좌뇌는 자신이 어떻게 그 정보를 알고 있는지 설명도 못하고 이해도 못한다. 

 

감사와 연민은 우뇌를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창문이 되어 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감사와 연민을 미덕으로 여기며 더 마족스러운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감사와 연민은 미덕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타고난 품성이다. 

 

직감, 감정, 창의성의 영역에서 우뇌 지능은 ‘언어를 넘어서는 지혜’를 가져다 준다. 설령 좌뇌가 자신의 반대편 파트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애써 무시하고 폄하할지라도, 우뇌의 힘과 잠재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 우뇌는 삶을 바꾸는 통찰, 폭발하는 직감적인 천재성, 그리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커다란 도약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우뇌의 직감 역시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맹신해서는 안 되지만, 때로는 우뇌의 영역이 좌뇌보다 더 큰 그림을 보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직감을 따르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음을 알아두자.

 

💡생각 : 자기개발서 중에서 <시크릿>처럼 자기암시를 통해서 목표를 달성하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내용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이런 방식이 우뇌를 활용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좌뇌, 즉 논리적으로 생각해서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일, 구체적인 방법도 모르겠는 일을 해내야 할 때, 마치 다 이룬 것처럼 상상하다 보면 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는 그 허무맹랑한 이야기의 바탕에는 ‘우뇌’가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이든 아니든 우뇌의 존재를 믿고, 우뇌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은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7장 : 의식은 어디에 있을까? (뇌와 의식의 관계)

우리는 흔히 의식이 뇌 안에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그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의식은 바깥에 존재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다 보면, 주인이 집에 오는 시간을 미리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미리 알고 반가워하는 모습이나, 병원에 가기로 약속한 시간을 미리 알아차리고 숨어버리기도 한다. 

물론, 진실이 어떤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의식이 뇌를 벗어나 확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잠시만 열어둔다면 이른바 심령 현상이나 초자연적 현상도 설명할 여지가 생긴다.  

 

💡생각 : 의식이 어디에 존재하는가? 당연히 ‘뇌 = 생각하는 곳’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별로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여서 썩 공감이 되는 챕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챕터를 읽으면서 의식이 뇌 안에 갇혀 있다는 고정관념을 가질 필요까지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 있으면 어떠한가.. 그게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생각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그 방식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받아들이는 태도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8장 : 뇌를 알고 난 후의 세계 (세 가지 삶의 전략)

저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전지전능한 힘이 존재한다면, 과연 흘러가는대로 고요하게 아무런 희노애락 없이 살아가는 것에 만족할까? 아니면, 스스로의 존재를 잊고, 모험을 하며 무언가 성취하고 달성해 나가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게임에 참여할까? 이 게임/모험의 본질은 즐기기 위함인데, 고통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며…

 

저자는 이 게임에 참여하는 전략을 3가지로 제시한다. 

1) 이 책에서 제시한 모든 내용을 잊고 좌뇌가 진짜 나라고 계속 믿는 것

2) 우뇌와 관련된 것들을 전심전력으로 추구하는 이른바 깨달음의 길

3) 앞의 두 가지 길에 한 발씩 걸친 ‘중도’의 길. 

 

사람들이 공포영화를 보고 롤러코스터를 탈 수 있는 이유는 사실 안전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생각 : 사실 ‘도’, ‘열반’, ‘깨달음’ 이라는 것들이 굉장히 일상과는 거리가 멀고, 종교적으로 특별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사실은 이미 내 안에 그런 존재가 있는데 깨닫지 못할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나니 제법 그럴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진실을 이해하려고 들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성적인 생각과 사고가 어짜피 좌뇌의 영역이라면, ‘우뇌’의 영역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할테니.. 

그리고, 최소한 1)의 전략으로 좌뇌에 의존하여 계속 살아가는 것보다는 ‘우뇌’의 영역이 존재함을 믿고, 조금 더 전지적 관점에서 나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멘탈관리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에 시작한 ‘명상’을 조금 더 꾸준하게 해보아야겠다. 하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것이 생기지 않을까??

 

3. 논의하고 싶은 점

p 150.

우뇌는 '그냥 해 doing it' 중추다. 우뇌와 좀 더 친해지는 방법은 일명 어떤 이유도 없이 그냥 하기. 돈을 벌기 위해서도, 자기 계발을 위해서도 아닌, 단순히 행위 자체를 위한 행위, 이렇게 하면 좌뇌가 끼어들 틈이 없다. 좌뇌는 항상 원인과 결과를 따져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행위가 가치 있으려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가 뒤따라야 한다. 이런 사고방식은 시도를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 반면 우뇌 활동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는 일까지 언제나 행위 자체를 위한 행위다. 하루에 딱 한 번씩, 아무 이유 없이 뭔가를 해 보자.  

 

Q. 생각 하느라고 시도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나요?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 해보고, 어떻게 행동으로 바꿔 볼 수 있을 지 이야기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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