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사는 5남매 워킹맘, 월부의 바다에 뛰어들다
결혼 이후 13년.
저는 재테크가 아니라 몸테크를 했습니다.
임신, 출산, 육아.
그것도 다섯 번이나요.^^
남들은 아파트를 살 때 저희 부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시골에 집을 지었습니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형제자매가 함께 자라는 모습을 보며 행복했습니다.
그때는 그 행복한 삶이 계속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신랑 외벌이 월급이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제가 평생 잊지 못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첫째가 일곱 살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엄마, 나 피아노 배우고 싶어.”
“그래, 우리 딸, 피아노 학원 가자.”
그 말이 그렇게 어려운 말인 줄 몰랐습니다.
학원비 10만 원.
그 돈이 없었습니다.
마트에서 과자 하나 못 사주는 건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속 깊은 우리 딸이 처음으로 배우고 싶다고 한 것을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미안했습니다.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안 되겠다.’
그렇게 저는 13년 만에 복직했습니다.
출근 첫날.
컴퓨터 모니터를 켜는 방법조차 몰라 당황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못하겠다며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버텼습니다.
그리고 첫 월급을 받은 날.
딸 손을 잡고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마트에 가서 그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말도 했습니다.
“얘들아, 먹고 싶은 과자 담아!”
신나게 과자를 고르는 아이들을 보며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제 좀 살 것 같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또 다른 숙제를 가져왔습니다.
어머님의 암 진단.
아버님의 치매 판정.
우리 부부의 월급만으로는 아홉 식구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눈앞에 놓였습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무조건 1억을 모으자.”
그날부터 저축했습니다.
매달 350만 원.
금, 은, 달러도 조금씩 모았습니다.
그리고 4년 후.
드디어 통장에 1억이 찍혔습니다.
그 순간의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소중한 1억을 어떻게 해야 하지?’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을 읽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월부를 알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에 신청한 열반스쿨 기초반.
너바나님의 첫 강의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노후 자금을 계산해 보니 막막했고,
강의에서 말하는 Not A but B의 A가 바로 저 자신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망설이지 말자.
배워보자.
그렇게 저는 월부의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풍덩.
대구 신축이 꿈이 었던 저는 그때만 해도 대구에 집을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뒤,
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한마디를 듣게 됩니다.
“서울 가세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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