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막차였다.
현관문을 여니까 집이 깜깜했다.
아이는 자고 있었다.
식탁 위엔 랩을 씌운 밥 한 그릇.
나는 불도 안 켜고 그 앞에 앉았다.
오늘도 회사에서 제일 늦게 나왔다.
이번 주만 벌써 세 번째.
나는 성실하게 살고 있다고 믿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근데 이상했다.
통장은 작년이랑 똑같았다.
어느 날 문득 알았다.
나는 계속 더 '많이' 일하고 있었다.
근데 한 번도 더 '다르게' 일한 적은 없었다.
하루는 24시간이다.
시간을 팔아서 버는 돈에는 천장이 있다.
야근은 그 천장에, 조금 더 빨리 머리를 박는 일이었다.
그 말, 절반만 맞다.
방향이 없는 성실은, 제자리에서 더 빨리 뛰는 것뿐이다.
땀은 나는데, 앞으로는 안 간다.
나는 트랙 위를 죽어라 달리고 있었다.
정작 그 트랙이 어디로 가는지는, 한 번도 안 봤다.
어느 날 큰맘 먹고 정시에 일어섰다.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다.
남는 시간에 뭘 했냐면, 별거 아니었다.
책 보고. 숫자 보고. 주말엔 동네 한 바퀴.
회사에선 내가 좀 덜 성실해 보였을 거다.
근데 그때 처음으로, 내 성실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노동을 향하던 성실이, 자산을 향하기 시작한 거다.
어제는 아이가 깨어 있는 시간에 집에 왔다.
문을 열자마자 아이가 뛰어왔다.
"아빠 오늘 일찍 왔다!"
그 한마디가, 야근 백 번보다 좋았다.
열심히 살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다.
더 열심히 말고, 더 옳은 방향으로.
평범에서 벗어나는 건 야근의 양이 아니라, 성실의 방향이 정한다.
오늘도 늦게까지 불 켜고 있는 누군가에게.
당신이 게을러서 평범한 게 아니다.
그 성실을, 아직 다른 데 안 옮겨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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