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디를 가도 같은 이야기가 들린다.
누구는 어느 비상장 회사 공모주에 줄을 섰고, 누구는 AI 관련 종목으로 몇 달 만에 얼마를 벌었다는 이야기.
저녁 자리에 앉아 그 말을 듣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더워진다.
다들 어딘가로 달려가는데 나만 제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그 기분은 생각보다 힘이 세서, 멀쩡히 잘 지내던 사람도 통장을 다시 열어보게 만든다.
그럴 때 나는 한 노인의 질문을 떠올린다.
찰리 멍거는 젊은 시절 공군에서 기상 관측 일을 맡았다고 한다.
그는 일을 잘하기 위해 남들과 다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어떻게 하면 조종사를 살릴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조종사를 죽게 만들 수 있을까.
죽음으로 가는 길을 먼저 그려두면, 그 길만 피해 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이 거꾸로 보는 습관을 투자에 가져다 썼다.
무엇을 사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사면 안 되는가를 먼저 물었다.
대부분의 투자 조언은 정반대 방향에서 출발한다.
좋은 회사를 찾아라, 좋은 동네를 골라라, 좋은 타이밍을 잡아라.
나도 처음 몇 년은 그 말만 따라다녔다.
더 좋은 것을 더 빨리 알아보는 눈, 그것만 기르면 부자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눈이라는 게 좀처럼 길러지지 않았다.
좋아 보였던 것이 망가지고, 별로라 흘려보낸 것이 날아올랐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알게 됐다.
적어도 나 같은 보통의 투자자에게, 들어오는 순간 좋은 공인지 나쁜 공인지 구별하는 재능은 없다.
대신 다른 게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는 일보다 사지 않는 일이 훨씬 어렵다는 사실이다.
멍거의 말 중에 오래 남은 게 있다.
길게 보아 뛰어난 성적을 내려면 짧게 보아 나쁜 성적을 견뎌야 하고, 결국 투자란 대체로 가만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일이라는 것.
처음 들었을 때는 게으른 변명처럼 들렸다.
지금은 그게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라는 걸 안다.
시장이 매일 새로운 공을 던지는데, 그 대부분을 그냥 흘려보내는 일에는 생각보다 큰 힘이 든다.
포커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고수와 초보를 가르는 건 좋은 패를 쥐었을 때가 아니라 나쁜 패를 쥐었을 때라고 한다.
초보는 이미 깔아둔 돈이 아까워서, 혹은 여기서 물러서면 진 것 같아서, 어떻게든 판에 남으려 한다.
고수는 미련 없이 패를 덮는다.
칩을 잃지 않는 것이 곧 이기는 것과 같은 값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잃지 않은 돈은 다음 판에서 다시 내 무기가 된다.
흘려보낸 공은 점수가 깎이지 않는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는 그동안 적지 않은 공에 방망이를 휘둘렀다.
하나는 그저 싸 보여서 들어간 경우였다.
한때 모두가 알던 이름인데 어떤 악재로 반토막이 나 있었다.
나는 이만큼 빠졌으면 바닥에 가깝다고 멋대로 믿었다.
그런데 그건 바닥이 아니라 함정이었다.
가격이 싼 데에는 싼 이유가 있었고, 나는 그 이유를 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숫자가 줄어든 것만 보고 좋은 기회라 우겼다.
오래 물려 있다가 겨우 본전 근처에서 빠져나왔다.
손해는 면했지만, 그 사이 흘려보낸 시간이 진짜 손실이었다.
다른 하나는 내 논리를 너무 믿은 경우였다.
나름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 회사는 1등을 이기지 않아도 된다, 경쟁자로 끼어들기만 해도 눌려 있던 값이 풀릴 것이다.
그럴듯했다.
그런데 내가 세워둔 전제가 하나씩 무너졌다.
결국 손실 구간에서 더 확신이 가는 다른 곳으로 갈아타며 정리했다.
그러고 나서 그 종목은 한참을 돌아 내가 판 가격을 훌쩍 넘겨 올라갔다.
내가 틀렸다고 내려놓은 공이, 멀리 돌아 다시 한가운데로 들어온 셈이었다.
그날의 교훈은 단순했다.
내 논리가 정교할수록 나는 그 논리와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것.
그리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한때 온 세상이 한 가지 테마로 들끓던 시기가 있었다.
모임마다 그 이야기뿐이었고, 관련 펀드라도 하나 담아두라는 권유를 여러 번 받았다.
솔직히 흔들렸다.
나만 빠지는 것 같은 그 기분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끝내 들지 않았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옳았다.
문제는, 그때의 그 기분이 지금 또 돌아왔다는 것이다.
요즘은 거대한 비상장 기업들이 줄지어 상장을 준비하고, 그 물량을 개인들의 기대와 조바심이 떠받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시장 전체로 보면 오래전 사라졌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고 한다.
이 많은 주식을 대체 누가 다 사줄 것인가.
분위기는 그때와 똑 닮았다.
다들 들떠 있고, 늦으면 안 될 것 같고, 가격은 이미 내 머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곳에 가 있다.
세 경험과 지금의 이 기분을 나란히 놓고 보면, 내가 10년 동안 배운 건 결국 안목이 아니다.
들어오는 공이 좋은 공인지 미리 알아보는 재능은 여전히 내게 없다.
다만 나쁜 공의 생김새만은 조금씩 눈에 익었다.
머리로 설명되지 않는 가격, 내가 세운 기준의 바깥에 있는 이야기, 그리고 방 안의 모두가 들떠 있는 공기.
이 세 가지가 한꺼번에 겹쳐 들어올 때, 나는 그게 흘려보내야 할 공이라는 걸 안다.
내가 오래 기대온 원칙도 결국 같은 자리를 가리킨다.
싸게 사고, 언제든 되팔 수 있고, 흐름이 받쳐주고, 원금이 지켜지는가. 위험은 없는가.
이 다섯 가지는 무엇을 사야 하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 아니라, 무엇을 사면 안 되는지 걸러내는 체였다.
들어온 것을 다 통과시키는 체가 아니라, 대부분을 걸러내고 아주 가끔만 통과시키는 체.
그 체에 걸러진 공이 훗날 한가운데로 들어와 날아오를 때, 나는 그걸 잡지 못한 걸 아쉬워하지 않는다.
잡지 못해서가 아니라, 잡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오늘도 판에 남아 있는 거니까.
그러니 다음에 또 그 더운 기분이 올라올 때, 나는 멍거의 질문을 한 번 더 빌려 쓸 생각이다.
이걸 어떻게 잡을까가 아니라, 이걸 잡았다가 어떻게 잃을까.
답이 너무 쉽게 그려진다면, 그건 내가 휘두를 공이 아니다.
가만히 방망이를 내려놓는 일.
10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투자는 그것뿐이다.
혹시 지금, 그 더운 기분 한가운데에 서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만 빼고 다들 달려가는 것 같고, 늦은 것 같고, 자꾸 통장으로 손이 가는 그 마음.
그 마음이 든다고 해서 무언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제자리를 잘 지키고 있다는 뜻에 더 가깝다.
모두가 방망이를 휘두르는 자리에서 조용히 방망이를 내려놓는 일.
그게 가장 용감한 한 수일 때가, 생각보다 자주 있다.
오늘 흘려보낸 공은 점수를 깎지 않는다.
그 자리에 아껴둔 힘이, 다음 판에서 다시 무기가 되어 돌아올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