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 아이 손을 잡고 놀이터에 나갔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이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쯤,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그 생각 끝에 따라오는 건 늘 비슷해.
그때는 왜 좀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지금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하는 불안,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이 바뀔까 하는 두려움.
셋이 한꺼번에 몰려오는 날이 있어.
여러분도 그런 날 있지 않아?
처음엔 이런 감정이 드는 게 나만의 문제인 줄 알았어.
남들은 다 확신에 차서 잘 나아가는데, 나만 자꾸 뒤를 돌아보고 앞을 두려워하는 것 같았거든.
근데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됐어.
열 명이면 열 명, 다 똑같은 얘기를 해.
"그때 샀어야 했는데."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요."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이 세 문장, 순서만 다를 뿐 결국 다 같은 말이더라.
과거는 후회, 현재는 불안, 미래는 두려움.
투자를 진지하게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지나가는 감정이었어.
나도 처음 투자를 시작할 때, 확신 같은 거 없었어.
오히려 매일 밤 이게 맞는 선택인지 고민했지.
배우자한테 괜히 짜증 내고, 아이 재워놓고 혼자 앉아서 숫자만 들여다보던 날도 많았어.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가진 정보가 없었어.
그러니까 지금 와서 "그때 이렇게 할걸"이라고 말하는 건 사실 좀 불공평한 얘기야.
그때의 나는 그때 알 수 있는 만큼만 알았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한 거니까.
후회도 불안도 두려움도 없앨 순 없었어.
근데 하나만은 놓지 않았어. 바로 나만의 기준이었어.
저평가되어 있는지, 환금성은 있는지, 수익성은 나오는지, 원금은 지켜지는지.
이 네 가지를 하나씩 짚어보는 습관.
기준이 있으니까 뉴스에 하루하루 흔들리지 않았어.
오늘 오르든 내리든, 내 기준에 맞으면 가고 아니면 기다리고. 그게 다였어.
대단한 확신이나 촉 같은 게 아니라, 그냥 흔들리지 않을 기준 하나였던 거야.
과거는 후회되고,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두려웠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너도 아마 비슷한 마음일 거야.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 지금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불안, 앞으로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그 감정들, 절대 이상한 게 아니야. 오히려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증거야.
없애려고 애쓰지 마.
대신 그 감정 옆에 기준 하나를 세워봐.
나만의 저환수원리 같은 걸 하나씩 만들어가는 거야.
그러면 후회는 다음 선택을 위한 데이터가 되고, 불안은 판단의 재료가 되고, 두려움은 준비의 이유가 될 거야.
오늘 밤, 아이 재워놓고 잠깐 시간 나면 한번 적어봐.
나는 어떤 기준으로 움직이고 싶은지.
그거 하나면 충분히 시작할 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