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커피를 한 잔 내린다.
아이는 아직 자고, 집은 조용하다.
그 조용함 속에서 휴대폰을 켜면,
세상은 어제도 시끄러웠다는 걸 알게 된다.
"이번엔 진짜 떨어진대." "하반기에 조정 온다더라." "지금 안 팔면 늦는대."
작년에도 그랬다.
재작년에도 그랬다.
그렇게 매년 "온다, 온다" 했던 그 폭락은,
대부분 오지 않았다.
오더라도, 아무도 말한 그 날짜에 오지 않았다.
조금만 솔직해지자.
지난 한 주, 나를 가장 많이 흔든 건 뭐였을까.
진짜 내 통장에서 벌어진 일이었나.
아니면 '앞으로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누군가의 말이었나.
찌라시 한 줄.
섬네일 한 장.
"이러다 큰일 난다"는 댓글 하나.
우리는 아직 오지도 않은 일에,
오늘의 마음을 통째로 내준다.
더 무서운 건 그다음이다.
예측이 빗나가면, 사람들은 책임을 자기 밖에서 찾는다.
"전문가가 그랬잖아." "뉴스가 그랬으니까." "분위기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흔들린 건 내 마음인데,
탓할 곳은 늘 바깥에 있다.
이게 반복되면, 10년이 지나도 자산은 그 자리다.
나는 이 풍경을 너무 많이 봤다.
부끄럽지만, 한때는 나도 그중 하나였다.
불편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짚고 가자.
예측은, 원래 맞히라고 있는 게 아니다.
"무슨 소리야, 전문가들은 다 예측하잖아."
맞다. 한다.
근데 그 예측, 얼마나 맞았는지 한번 돌아보자.
올해만 봐도 그렇다.
금리는 곧 내린다는 기대와, 경기 침체가 길어진다는 걱정이 같이 깔려 있다.
서울은 공급이 모자라 버틴다는 쪽과, 규제와 세금에 눌린다는 쪽이 정확히 맞붙어 있다.
같은 시장을 보고 정반대 결론이 나온다.
전문가들조차 한 방향으로 못 모인다.
그런데 우리가 그 예측을 정답처럼 믿고 전 재산을 건다?
그건 용기가 아니라 도박이다.
투자의 대가들은 일찍부터 이걸 인정했다.
피터 린치는 시장을 예측하려 애쓰지 말라고 했다.
그가 굴리던 전설적인 펀드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냈는데, 정작 그 펀드에 돈을 넣은 사람들 상당수는 손해를 보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이유가 뭐였을까.
수익 좋다는 소문에 들어왔다가, 잠깐 떨어지면 겁먹고 팔았기 때문이다.
좋은 걸 손에 쥐고도,
'단기 예측'에 흔들려 스스로 내던졌다.
하워드 막스라는 또 다른 투자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미래는 맞힐 수 없지만, 대비할 수는 있다고.
나는 이 한 문장이 투자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10년 전, 나는 지방의 한 도시에서 첫 집을 샀다.
종잣돈은 7천만 원 남짓.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도 인터넷엔 "지금 들어가면 상투다"라는 말이 가득했다.
나라고 안 무서웠겠나.
아내가 잠든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오면,
우리는 식탁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했다.
"우리, 이거 사도 되는 걸까."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시장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 그건 나도 못 맞힌다. 다만 이 집이 싼지, 팔고 싶을 때 팔릴지, 들고 있는 동안 손해는 안 날지, 최악에도 원금이 깨지진 않을지. 그건 내가 따져볼 수 있다."
나는 시장을 예측하지 않았다.
대신 눈앞의 자산이 내 기준에 맞는지를 봤다.
그게 내가 가진 '저환수원리'였다.
그렇게 10년.
나는 한 번도 시장을 정확히 맞히지 못했다.
폭락도 못 맞혔고, 상승도 못 맞혔다.
그런데 7천만 원으로 시작한 순자산은,
10년이 지난 지금 20억이 됐다.
맞혀서가 아니다.
흔들릴 때마다, 예측 대신 기준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읽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좋은 말인데,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야."
당연한 질문이다.
대응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손 놓고 버티라는 무책임한 말도 아니다.
대응은, 흔들릴 일이 생겼을 때 꺼내 쓸 나만의 기준을 미리 갖춰두는 것이다.
오늘, 일요일 아침에 시작할 수 있는 세 가지만 적어둔다.
"하반기에 어떻게 될까" 같은 영상은 봐도 된다.
다만 보고 난 직후엔 절대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지 마라.
예측은 정보로만 받고, 결정은 늘 내 기준으로 내려라.
지금처럼 마음이 편할 때 써야 한다.
"이 가격 밑으로 떨어지면 더 산다." "이 조건이 깨지면 판다."
숫자로 미리 정해두면, 폭락장이 와도 손이 덜 떨린다.
대응은 위기 한복판이 아니라, 평온할 때 설계하는 거다.
타이밍은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지금 이게 싼가, 팔릴까, 버틸 수 있나"는 내가 따질 수 있는 영역이다.
질문을 바꾸는 순간, 시장은 맞히는 대상에서 점검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이 셋만 갖추면,
다음에 또 단톡방이 시끄러워져도,
너는 흔들리는 쪽이 아니라 점검하는 쪽에 서 있게 된다.
나는 지금도 시장을 못 맞힌다.
앞으로도 못 맞힐 거다.
그래서 더는 맞히려 하지 않는다.
대신 흔들리는 순간마다 기준으로 돌아온다.
10년 전 그 식탁에서 아내와 나눴던 대화처럼.
부(富)는 미래를 정확히 본 사람한테 가는 게 아니더라.
예측이 빗나가도 무너지지 않게, 미리 준비해 둔 사람한테 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곧 온다"고 외칠 거다.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다.
그건 우리가 정할 수 없다.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그게 오든 안 오든,
나는 흔들리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이가 깨기 전, 종이 한 장만 꺼내보자.
너의 기준을, 이 조용한 아침에 적어두자.
그게 다음 폭풍 앞에서 너를 지켜줄,
가장 단단한 한 줄이 될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