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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초이]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 독서후기

26.07.13

 

1. 저자 및 도서 소개

: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는 한국 경제의 핵심인 부동산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는 책이다. 조선일보와 FnGuide가 선정한 가장 신뢰받는 애널리스트이자, 최고의 이코노미스트로 꼽히는 홍춘욱 박사가 깊은 안목과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부동산 투자의 핵심을 꿰뚫는 통찰을 선사한다.

1부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통사(通史)로, 1960년대 초반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에 등장한 여섯 번의 주택 시장 사이클을 다룬다. 부동산 시장에서 과거부터 반복되는 상승과 하강의 원인과 결과를 분석하며,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대두되는 시장 변화 요인을 다루어, 부동산 시장을 읽어내는 안목을 제시한다.

2부는 12개의 이슈를 통해 한국 부동산의 핵심 쟁점을 다룬다. 부동산의 매수, 매도 타이밍을 알려 주는 신호가 무엇인지, 상승 잠재력이 높은 지역과 주택은 무엇인지 알려 주어 투자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의 현재를 조망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부동산이 나아가야 할 모범적인 미래상을 제시한다. 특히 “제2의 강남은 어디일까?”를 다룬 15장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투자처를 고르는 안목을 제공할 것이라 자신한다.

부동산의 역사는 반복되면서도, 동시에 새롭게 진화하는 ‘나선’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를 모르면 시장의 향방을 알 수 없고, 과거만 안다면 잘못된 생각에 갇히게 된다. ‘부동산 불패’ 신화가 이어지는 대한민국에서 부의 흐름에 올라타고 싶다면,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는 최고의 안내서가 되어 줄 것이다

 

2. 책 내용 및 생각

한국 부동산 시장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었는지, 재산권의 개념은 언제부터 형성이 되었는지 부동산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다루고, 1960년대 초반 이후부터 총 여섯 번의 사이클에 대해서 이야기 하며, 12가지 이슈를 통해 부동산 투자자가 알아야 할 핵심 쟁점에 대해서 저자의 생각을 나눈 책이다. 

 

<1부>

1장. 한양 10리 밖을 벗어나지 말라 

지금과 같은 ‘입지’라는 것이 아주 옛날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 정약용이 자녀들에게 한양 10리 밖을 벗어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토지소유권이 확립되고, 인구가 한양으로 몰리면서 한양과 지방의 토지가격 양극화가 일어났다. 특히 19세기 초 내란으로 인한 인플레이션도 토지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조선시대의 이야기이지만… 최근 수도권 인구 집중도가 50%를 넘어섰고, 시장에 유동성이 풀리면서 자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는 현 상황과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요”와 “유동성”이 자산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다는 것이 조선시대부터 증명된 셈이니 말이다.   

 

2장. 나라님이 당백전 찍어낼 때, 내 재산을 지킬 방법은?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인플레이션은 더욱 확대됐다. 경복궁 재건으로 야기된 재정난 타개를 위해 당백전을 찍어낸 것이 문제였다. 공명첩을 사들여 양반이 된 사람이 많아져 신분제가 무너졌고, 1911년에는 일제가 토지조사사업을 시작했고, 조선의 지주들이 쌀을 일본으로 대량 수출하면서 국내 쌀값이 비싸지고 불평등도 심화됐다. 새로운 유형의 주택인 문화주택이 생겨났고, 인구과밀로 한양 도성 인접한 곳 8개 지역에 신도시가 건설됐다. 이같은 여러 요인들의 영향으로 한양의 땅값은 계속 비싸졌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으로 인해 ‘총력전’ 경제로 돌아서면서 집 매매가 중지 상태에 빠지고 집값이 20% 가량 하락했다. 1939년에는 조선총독부가 강력한 임대료 통제 정책을 펼쳐 주택시장에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집값은 굉장히 다양한 경제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플레이션의 영향도 있고, 정부의 개발계획에 영향을 받거나, 부동산 정책 또는 정치적인 외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 굉장히 간단하게 요약하여 정리되어 있어 당시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어떠했는지 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발빠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것 같다. 요즘의 우리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3장. 장남만 상속받으라는 법 있나요? 

일제강점기에 농지개혁이 일어나면서 장남 위주의 재산권 대물림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 재산권을 운용할 수 있게 됐고, 사람들은 더 독립적이고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이때 이후로 교육붐이 일기도 했다. 강력한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인플레이션 대비 실질 토지 가격이 오르지는 못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개인 재산을 사유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때 그만큼 더 활기를 갖게 되는 것 같다. 평등과 분배도 좋지만.. 그리고 때로는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대전제로 사적 이익을 추구할 자유를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옳은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4장. 폭격을 맞아도 도시가 좋아! 

1960년대 강력한 부동산 상승 사이클이 있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인구 대이동, 베트남 파병과 한일 국교정상화로 인한 대규모 외국자본 유입이 그 이유였다. 수요증가와 인플레이션. 두 축이 다시 움직인 것이다. 이때 강남개발의 청사진이 확립됐다. 소양감댐 건설과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상습 침수문제도 해결하고, 도로교통의 확충이 가능해지면서 강남권의 땅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공유수면을 매립해 압구정, 반포, 잠실 등 지금의 금싸라기 땅에 신도시가 들어올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들었던 시기이다. 사람은 많은데 주거 공간은 부족하자 집값이 오를 수 밖에 없었다. 정부는 이때 강력한 공급정책을 펼치는데 그것이 공유수면을 매립해 아파트 단지를 짓는 것이었다.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에 가능했고, 미완의 도시였기에 가능했던 정책이다. 지금도 대규모 택지를 건설하려면 도시 외곽의 빈땅을 찾는데, 이때도 마찬가지 였던 것 같다. 이미 포화된 도심생활권에는 추가 주거시설을 확충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1기, 2기, 3기 신도시 모두 이런 이유로 개발되었고, 되고 있다.  

 

5장. 정부를 믿을 수 없을 때, 어떤 자산이 유망한가? 

박정희 정부 시기 한국 경제는 저금리와 금융 억압 정책을 통해 기업 성장과 산업화를 촉진하려 했다. 1965년에는 예금 금리를 대출 금리보다 높게 설정하는 역금리제를 도입해 국민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도록 유도했지만, 금본위제 폐지와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신뢰가 약화되면서 사람들은 금이나 달러 같은 실물자산을 선호하게 됐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금리는 지속적으로 하락해 기업과 정부는 저금리 혜택을 누렸지만, 가계 저축자는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1972년의 8.3 조치는 기업 부채 부담을 완화했으나 인플레이션을 심화시켰고,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가격이 급등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한국 경제는 “저금리 정책 → 인플레이션 심화 → 화폐 신뢰 약화 → 금·달러·부동산 선호”라는 흐름으로 전개되었으며, 이는 자산 불균형과 부동산 시장 과열로 이어졌다.

🔖역사적 평가는 엇갈리지만, 개인의 재산권 측면에서만 보았을 때에 박정희 정부는 깡패같은 정부였다. 역금리제, 8.3조치 같은 것이 불러온 결과는 개인에게는 굉장히 잔혹한 현실이었을 것 같다. 인플레이션이 심화되고,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자산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시기와 정도가 다를 뿐 요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잘잘못을 가리기를 떠나.. 경제의 흐름을 잘 읽고 최소한의 방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분명해지는 대목이었다. 정부나 정책을 믿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똑똑하게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6장. 공급 앞에 장사 없다

1985년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주택 가격이 급등했고, 특히 전세 가격은 1986~1990년 사이에 82.2%나 상승해 매매 가격 상승률(47.3%)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주택 공급 부족과 1989년 정부의 전세 임대차 기간 연장 정책이 맞물려 임대인들이 2년 치 인상분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는 1988년 ‘부동산 종합 대책’을 통해 양도세를 누진 과세하고, 1990년에는 종합토지세를 도입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동시에 1989년 ‘1기 신도시 건설 및 주택 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해 분당, 일산, 평촌, 산본, 중동 등 5개 신도시 건설을 추진했다. 또한 1978년부터 이어진 약세장은 주택 공급 부족과 3차 호황을 계기로 끝나고 새로운 강세장이 시작되었지만, 대규모 공급과 규제 조치로 상승세가 꺾였다. 이 시기는 일본과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불황이 시작되며 한국 부동산 시장이 처음으로 글로벌 사이클에 편입된 국면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요약하면, 당시 부동산 시장은 공급 부족 → 가격 급등 → 정부 규제 및 공급 확대 → 글로벌 경기와 연동이라는 흐름을 보였다.

🔖소름돋는 역사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건 없다더니.. 지금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들이 이미 과거에 한번쯤은 다루어졌던 것이라는 것이 신기하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상승할 수 밖에 없고, 입주 폭탄 앞에서는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역시도 가격 = 수요와 공급의 관계에 의해 이뤄지는 재화이기 때문이다. 최근 대구의 입주 폭탄이나 전주, 울산의 가격 상승도 수요공급의 원리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지금의 수도권 시장 가격 상승도 마찬가지로 공급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현상이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전세가가 폭등했던 것도 이미 1989년 임대차 2년 보호정책때 선례가 있었고,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였을텐데.. 알고도 시행한 부분이 놀랍다. 

 

7장. 일본형 장기 불황을 겪지 않는 이유는? 

1990년대 한국 부동산 시장은 외환 위기와 공급 과잉으로 인해 가격이 하락하고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서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명목 가격의 하락 폭이 크지 않았고, 주택 금융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디플레이션 악순환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1999년 이후에는 정부의 금리 인하 정책과 함께 주택 담보 대출이 활성화되면서 주택 수요가 다시 증가했고, 수출 회복까지 맞물려 시장은 강력한 상승세를 보였다. 결국 한국은 일본처럼 장기 불황에 빠지지 않고, 금리·대출 조건·수출 회복이라는 요인 덕분에 주택 시장이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다.

🔖주택 금융이 발달하지 않았던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니.. 대출이 개인 가계에 얼마나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 같다. 감당 가능한 범위를 늘 보수적으로 판단하고 대출을 활용해야겠다. 또 한편으로는 대출을 풀고 조이고 하는 정책이 매수 심리에 상당부분 영향을 줄 수 있고, 이런 정책적 변화를 주시하는 것도 시장의 사이클이나 흐름을 읽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3년 초에 생애최초특례, 24년 초에 신생아 특례 등 다양한 정책 대출을 통해 매수가 붙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8장. 수도권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면, 인구를 지방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2000년대 초반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급등하자 노무현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을 추진해 수도권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시키려 했다. 이 정책은 2010년 중반까지 효과를 보여 수도권 인구 비중이 줄고 서울 부동산 시장이 ‘하우스 푸어’ 사태를 겪었다. 그러나 2014년 이후 중국의 그림자 금융 규제와 제조업 경기 악화, 혁신·행복 도시 이주 종료로 수도권 인구 감소가 멈추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특히 2016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호황으로 수도권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자금이 풀리면서 새로운 상승장이 열렸다. 이처럼 주택 시장은 단순히 미분양이나 금리 변화 같은 한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고, 국제 경제 상황과 산업 구조, 정부 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변동성을 만들어낸다. 

🔖인위적인 인구배분 정책이 일시적으로 수요 분산의 효과가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시 수도권으로 수요가 회귀하는 흐름을 보였다. 의도는 좋았으나 지방도시의 주거 매력도가 수도권을 뛰어넘기는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6년 이후 실적호조와 저금리, 부동산 부양 정책 등 다양한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부동산은 서서히 다시 상승흐름을 탔다. 어떤 특정 정책이나, 요인이 가격 경정력을 가지기는 어려움을 이런 사례들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9장. 분양가 상한제와 임대차 3법의 불행한 만남

서울 아파트 공급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용적률과 각종 규제 때문이었다. 1979년 180%였던 용적률은 1985년 300%, 1990년 400%까지 올랐다가 이후 경기 침체와 함께 1998년 300%, 2000년 250%로 낮아졌다. 용적률이 낮아지자 같은 땅에서 지을 수 있는 주택 수가 줄었고, 재개발 규제 강화로 공급 차질이 심화되었다. 특히 2019년 도입된 분양가 상한제가 공급을 크게 제한했다. 여기에 2020년 7월 31일부터 시행된 임대차 3법이 시장 불균형을 키웠다.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되면서 임대인들이 장기간 인상분을 한꺼번에 반영했고, 그 결과 전세 가격이 급등했다. 임대차 3법 적용 주택과 비적용 주택 간 전세 보증금 격차도 커졌다. 한편 저금리 환경은 소비와 투자를 늘리고, 주택 구매의 기회비용을 낮추며,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 주택 시장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 공급 부족과 맞물려 서울·부산 등 주요 도시의 집값은 급등했다.

정리하면, 용적률 하향과 규제 강화 → 공급 감소, 임대차 3법 → 전세 급등, 저금리와 코로나19 → 수요 확대와 가격 폭등이라는 흐름이 이어졌다.

🔖부동산 건설업체도 개인 소유주도 각자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주체이다. 다시 말해 손해 볼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건설사는 재건축 사업성이 없는데 신규 아파트 건설을 수주할 이유가 없고, 소유주는 분담금이 많이 들어가는데 굳이 살던 집을 부수고 새 집을 무리하게 지을 이유가 없다. 임대인들은 전세금을 4년간 동결시키는 마당에 싼 가격에 전세를 낼 유인이 없고, 저금리로 주담대를 낼 수 있었던 환경은 금융비용을 줄여 주어 매수 심리를 자극했다. 결국 개인은 각각의 이유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기에 이런 몇몇 가지 요인들이 시너지를 내면 시장에 큰 가격 변동을 보여주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시기는 모든 조건이 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방향이었던 것 같다. 단편적으로 하나의 요인이 결과를 만든다고 보는 것은 위험하지만, 하나의 요인에 부동산 시장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어떤 의사결정을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시장을 이해하고 의사결정을 하는데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다.    

 

<2부>

10장. 왜 2022년 말에 서울 아파트를 샀나? 

2022년 말 서울 아파트 시장은 금리 급등, 환율 불안, 글로벌 금융 위기 우려가 겹치면서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혀 매수에 나서지 못했고, 거래량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보면 당시 시장은 오히려 좋은 매수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다. 2000년대 이후 확대된 부동산 대출과 2006년부터 시작된 실거래가 공개는 시장의 투명성을 높였고, 과거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와 달리 명목 가격의 급락은 제한적이었다. 또한 정부 정책과 금융 구조가 시장을 지탱하면서 장기 수요는 여전히 견고했다. 따라서 2022년 말은 대중은 두려움으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시장 자체는 저점 매수의 기회를 제공했던 국면이었다. 일부 투자자들은 이를 인식해 매수에 나섰고, 이후 반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즉, 당시를 요약하면 “공포 속에서 기회가 있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22년 말을 왜 매수기회라고 판단했었는지 이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런 기회를 포착하려면, 부동산 사이클과 시장의 변화,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하고, 감당할 수 있는 리스크 범위 내에서 용기를 낼 수 있어야 한다. 무조건 매수하라는 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장이 기회를 줄 때 기회임을 알아차릴 수 있도록 평소에 공부가 잘 되어 있어야 하고, 혹여나 나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알고 항상 리스크 감당 범위 내에서 선택해야 한다. 

 

11장. 중국 부동산 시장은 왜 회복되지 못했나? 

2022년 봄부터 시작된 중국 주택 가격 하락은 3년 이상 이어졌고, 그 결과 경제 전반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PIR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상황에서 가계 자산의 80% 이상이 부동산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가격 폭락은 대규모 실업과 수요 위축을 불러왔다. 통화 당국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면서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졌고, 일본이 겪었던 장기 불황과 유사한 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부동산 시장 회복에 실패한 반면, 같은 시기 한국 정부는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즉, 중국 부동산 시장은 과도한 자산 집중 → 가격 폭락 → 실업과 수요 위축 → 정책 대응 지연 → 장기 불황 위험이라는 흐름 속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부동산이 상승과 하락 사이클로 움직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 같다. 다만,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중에 디플레이션이 더 무서운 것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경기도 침체 국면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이 더 두려운 일인 것 같다. 일본의 사례도 그렇고, 중국의 사례도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다. 하지만 정책으로 사람의 심리를 컨트롤할 수는 없다. 부동산은 가수요가 붙는 투자재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가처럼 적정 인플레이션 수준을 유지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는 사이클에서 지금과 같은 정부의 규제와 개입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긴 하다..

 

12장. 정부 정책만 보면 부동산 바닥을 잡을 수 있다 

2010년 11월 금융 규제 완화와 같은 정부 정책은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과거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와 금융 지원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이 회복된 사례가 있었다. 정부 정책은 금리, 대출 조건, 세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장에 영향을 주었고, 특히 규제 완화나 공급 확대 정책은 침체된 시장을 반등시키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부동산 시장의 바닥을 판단할 때는 단순히 가격 흐름만 보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는지 살펴보는 것이 핵심이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은 그동안 상승을 막기 위해 거래를 어렵게 만들어 두었던 장치들을 하나씩 풀고, 거래하기 용이하게, 대출도 더 많이 받을 수 있게, 세금도 덜 낼 수 있게.. 하는 등의 방향인데 이런 완화 정책이 매수 심리를 자극해 시장 회복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 하지만, 정책이 즉각적으로 효과가 있을지, 그렇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영역이다. 부동산 정책을 보고 바닥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은 굉장히 1차원적인 생각인 것 같다. 세상에 무조건은 없다. 그래서 다양한 상황을 더 입체적으로 보고 판단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3. 느낀점 & 적용할 점

: 역사는 반드시 똑같지는 않지만 반복된다. 부동산 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시장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과거에 그랬었구나.. 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 하나 뜯어보면서 생각해보니 보이는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시장 앞에 겸손하며,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인들을 다각도로 체크하며 투자의사결정을 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당장은 지금의 상승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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