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약
1. 강제 수용소에서의 체험
■ 냉담한 궁금증
"이 위기에서 내가 살아날 수 있을까? 아니면 두개골이 박살 날까? 부상을 당한다면 어떤 부상일까? 이런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냉담한 궁금증이 심지어 아우슈비츠에서도 눈에 띄게 나타났다." (1장 中)
- 극심한 위기 상황에 처하면 오히려 나 자신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차가운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 이 냉담한 관찰자적 시선은 내 마음을 공포와 절망으로부터 분리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어막 역할을 해준다.
■ 인간은 사랑을 통해서, 사랑 안에서 구원받는다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시를 통해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달았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1장 中)
-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최악의 절망 속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는 순간 인간은 최고의 행복과 구원을 느낀다.
- 주어진 고통을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무력한 환경일지라도, 내면에 품은 사랑은 삶의 충족감을 유지시켜 주는 힘이 된다.
■ 강제 수용소에서의 유머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번 유추해 보자.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1장 中)
- 수용소 같은 척박한 공간에서도 유머 감각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소중한 기술이다.
- 고통은 크기와 상관없이 인간의 의식을 완전히 채우기 때문에, 유머를 통해 삶의 거리를 확보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우리는 아주 작은 은총에도 고마워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를 잡을 시간을 준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이를 잡는 일 자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1장 中)
- 지옥 같은 환경에서는 더 큰 재앙을 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깊은 안도감과 감사를 느낀다.
- 끔찍한 추위 속에서 이를 잡는 순간조차 전등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고마워할 만큼, 인간이 느끼는 행복은 지극히 상대적이다.
■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날
"그 기간에 우리는 희망과 절망 사이를 끊임없이 오르내렸다. 그러다가 매트리스 위에서 여행에 대비해 옷과 신발을 그대로 입은 채로 잠이 들고 말았다." (1장 中)
- 석방과 이송, 생사의 갈림길에서 소문 하나에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소모전은 사람을 완전히 기진맥진하게 만든다.
- 아무리 피 말리는 불확실함이 지속되어도, 인간은 결국 지쳐 쓰러져 잠을 청하며 다음 상황을 받아들인다.
■ 인간의 정신적 자유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1장 中)
- 어떤 가혹한 환경이 찾아오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태도를 가질지 결정하는 선택권은 끝까지 나에게 남아있다.
- 외부 권력에 복종해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될지, 아니면 내 내면의 자유를 지켜낼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다.
■ 시련의 의미
"수면 부족과 식량 부족,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해 보면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1장 中)
- 주변 환경이 나를 억누르더라도, 정신적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는 오롯이 개인이 내리는 내적 결단의 산물이다.
- 나에게 주어진 시련과 고통을 품위 있게 견뎌냄으로써 삶을 목적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영혼의 자유다.
■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 삶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1장 中)
- 끝이 언제일지 모르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비현실적이라고 부정해 버리면, 삶을 버텨낼 의지 자체가 무너진다.
-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에만 몰두하면 내 앞에 찾아온 소중한 영적 성장과 도전의 기회마저 무의미하게 놓쳐버린다.
■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앞에서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1장 中)
- 고통의 한복판에서 나를 제삼자의 시선으로 객관화하거나,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고통을 극복하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 힘들었던 순간조차 훗날 다뤄낼 연구나 경험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순간, 나를 짓누르던 스트레스는 관찰 가능한 과거의 사건으로 바뀐다.
■ 살아야 할 이유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 낼 수 있다." (1장 中)
- 이 세상에서 나를 대체할 존재가 없음을 깨달을 때, 삶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생긴다.
-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완수해야 할 목표가 있어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떠한 시련과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
■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1장 中)
- 눈물을 흘리는 행동은 결코 약함의 표시가 아니라, 나에게 찾아온 고통을 당당히 감당하겠다는 거대한 용기의 증거다.
- 시련의 충격을 억지로 삼키지 않고 눈물로 쏟아내는 것은 내면의 고통을 밖으로 털어내는 건강한 과정이다.
2. 로고테라피란 무엇인가
■ 시련의 의미
"나는 인생의 4분의 1을 종합 병원 신경 정신과에서 근무했으며, 그동안 자신의 곤경을 인간적인 성취로 바꾼 환자들의 능력을 보아 왔다." (2장 中)
- 엄청난 고통과 곤경에 처하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을 더 위대한 성취로 바꿀 수 있다.
- 극심한 포로 생활과 고문을 경험한 사람조차 그 시련을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유익한 계기로 재해석해 낸다.
■ 사랑의 의미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2장 中)
- 삶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하지만 어떤 순간에도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 창조적인 일을 하거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하며 경험하거나,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당당한 태도를 취할 때 삶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반면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3장 中)
- 일을 통한 창조나 예술을 통한 즐거움이 모두 차단된 비극적 환경이라도 삶의 목적은 여전히 존재한다.
- 운명과 고통을 대하는 지고의 도덕적 태도를 선택할 때, 인간은 비극마저도 내면의 위대한 승리로 바꿔놓을 수 있다.
2. 적용할것 & 깨달은 것
그런 상황에서 사이렌 소리가 가져다주는 안도감이 어떤 것인지는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한 라운드가 끝나는 종소리를 듣고, 마지막 순간에 넉 아웃될 위기를 모면한 권투 선수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우리는 아주 작은 은총에도 고마워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를 잡을 시간을 준다는 것도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이를 잡는 일 자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이를 잡으려면 천장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추운 막사에서 옷을 벗고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잡는 도중 공습경보가 울리지 않아 전등불이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감사함을 느끼는 태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투자자로 살아가다 보면 한 번 쯤은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을많큼 감정적으로 힘든 순간이 한 번쯤은 온다. 해야할 건 많은데, 일은 바쁘고 성과는 안나오고, 여기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유리공과의 문제까지 터지면 정말 나도 모르게, 지친다는 감정이 들곤 한다. '대체 나만 왜 이럴까', '왜 이렇게 부족한 걸까' 누군가 탓하지도 못하고, 화살을 스스로를 향해 계속 쏘다보면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당시에는 버티는게 능사고, 시간이 약이라는 생각으로 그냥 흘러가는 대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앞으로 살다보면 분명 그보다 더한 어려움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WHY와 목표가 단단하더라도 매번 이런식으로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며 상황을 이겨내려 하면 언젠가는 버티다 못해 부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감사할 거리를 찾고, 오히려 어려운 상황일수록 의도적으로 작은 것에도 감사하려 한다면 그 상황이 힘들지언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상황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발견해낼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문제가 있었어도 더 최악으로 치닫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
-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모든 것을 존중해주고 배려해주는 아내가 있음에 감사
- 원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지금 시기에 이렇게라도 해나갈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
"이제 우리는 삶의 의미란 끊임없이 변하지만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첫 번째를 완수하고 달성하는 방법은 아주 분명하다. 하지만 두 번째와 세 번째에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삶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두 번째 방법은 어떤 것─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 ─을 체험하는 것, 자연과 문화를 체험하거나 (마지막이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즉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 낼 수 있다."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반면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 두 가지가 거의 메말라 있는 삶에도, 외부적인 힘에 의해 오로지 존재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지고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삶에도 목적은 있다. 물론 그에게는 창조적인 삶과 향락적인 삶이 모두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나는 인생의 4분의 1을 종합 병원 신경 정신과에서 근무했으며, 그동안 자신의 곤경을 인간적인 성취로 바꾼 환자들의 능력을 보아 왔다. 그런 사례에 덧붙여 인간이 시련 속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실제적인 증거도 있다. 예일 대학교 의과 대학 연구원들은 “베트남전 전쟁 포로 중 포로 생활의 엄청난 스트레스(고문과 질병, 영양실조, 독방 감금 등)에도 그것이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는 체험이며, 그런 면에서 이로운 점이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 많은 사람들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라고 얘기했다."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앞에서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 대상이 됐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이 책을 읽으면서 "삶의 의미를 찾는 방법이 창조, 경험, 그리고 시련에 대한 태도" 라는 는 부분이 와닿았다. 읽으며 든 생각은, 어쩌면 나는 그동안 첫 번째 것만 붙잡고 살아온 것 같다. 앞마당을 넓히고, 임보를 작성하고, 투자하고, 글을 쓰고, 무언가 계속해서 아웃풋을 내는 것에 집중해왔다. 단순히 투자 뿐만 아니라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학창시절부터 대학교때까지, 심지어는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지금도 계속해서 결과물을 만드는 것을 지속해왔고, 어쩌면 이것이 나 자신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프랭클도 마찬가지로 로고테라피에서, 무언가를 창조하고 어떤 일을 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저 경제적 자유, 자산, 혹은 성취 그 자체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일이었지, 이것이 내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과연 돈이 많아지면 행복할까? 맛있는 것을 마음대로 먹고, 좋은 곳에 거주하는 것 자체가 나를 만족시켜줄까? 지금은 현실에서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않다보니 그러한 것이 좋아보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이러한 것도 어느 지점 이상으로 올라가면 분명 그 만족감도 정체되는 구간이 발생할 거라 생각한다. 지금처럼 해나간다면 분명 내가 목표한 자산까지는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결국 도달한 그 이후 그 다음 '나'는 무엇인지, 그 이후의 삶은 내가 어떻게 의미있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답을 못찾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투자공부를 시작한 이후로, 처음으로 내가 쌓아올린 경험과 역량으로 나 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었던 경험을 하였다. 가볍게는 주변 사람들의 내집마련과 투자를 돕는 것부터 시작해서, 포기할 뻔한 사람들이 한 걸음 더 내딛어 성과를 내도록 돕고, 누군가의 성장과 변화를 함께 하는 과정을 경험하며, 정말 이 일이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많이 느꼈다. 단순히 나 혼자 투자하고 성과내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성장과 경험이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의미있고 감사한 것임을 많이 깨닫고 있다. 이것이 어느정도 나의 목표와 삶의 의미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이번 책을 읽으며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