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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마진 Alex <슈독> 후기 #6

26.10.20

남의 제품을 파는 사업은 언제 흔들리나 — 『슈독』에서 에이전트 AI까지

 

필 나이트가 시작한 사업은 자기 제품이 없는 사업이었다. 1962년 일본에서 오니츠카의 Tiger 운동화를 미국 서부에서 팔 권리를 얻었고, 1964년 Blue Ribbon Sports를 시작했다. 첫해에 1,300켤레를 팔아 매출 8,000달러를 올렸다. 1971년에는 130만 달러가 됐다.

 

이 회사의 어려움은 수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돈이 모자란 것이었다. 신발값은 먼저 내야 하는데 판 돈은 한참 뒤에 들어온다. 그래서 잘 팔릴수록 은행에 더 매달려야 했다. 매출은 늘어도 현금은 말랐다. (물건을 사서 팔고 돈이 들어오기까지 묶이는 돈을 운전자본이라고 한다.)

 

더 근본적인 어려움은 오니츠카와의 관계였다. 유통권은 계약서 한 장에 적힌 권리다. 계약이 끝나거나 상대가 마음을 바꾸면 사라질 수 있다. 게다가 제품이 팔린다는 것이 시장에서 입증되고 나면, 제품을 만드는 쪽(오리진)이 협상에서 훨씬 유리해진다. 그리고 이들은 직접 팔고 싶어진다. 유통사에 나눠 주던 마진을 자기가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니츠카는 새 유통사를 찾거나 직접 시장에 들어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나이트는 그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구도는 지금도 많다. 명품 브랜드를 모시려고 애쓰는 백화점, 애플 기기를 팔아야 하는 통신사가 그렇다. 휴젤이 미국 유통사 베네브와의 계약을 일찍 끝내고 직접 팔기로 한 것도 같은 구도다. 휴젤이 오니츠카 쪽이고 베네브가 블루리본 쪽이다.

 

최근 Meta의 Muse, OpenAI의 Dots 같은 에이전트 AI를 공부하면서 슈독의 이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에이전트 AI는 사람 대신 "고르는 일"을 해 준다. 뭐가 좋은지 찾고, 가격을 비교하고, 값을 깎아 달라고 협상한다. 우리가 쇼핑하듯 사이트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정보만 가져가서 비교한 뒤 그 회사에 주문을 넣는다.

 

그러면 누가 힘들어질까. 사람들을 화면에 붙잡아 두고 광고를 보여 주거나, 가격 비교 화면으로 돈을 벌던 회사다. 사용자가 오래 머물수록 돈을 벌던 회사들이 어려워진다. 반대로 진짜 재고를 갖고 있고, 배송하고, 결제를 처리하는 회사는 계속 남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에이전트 AI 실사용 사례 중 43%가 "이미 산 것을 다시 손보는 일"이었다. 통신 요금 최적화 하기, 사용하지 않는 구독 해지하기, 보상금 신청 같은 일이다. 통신 요금은 사례에 따라 25%에서 63%까지 내려갔다고 한다. 사람들이 귀찮아서 안 하던 일을 AI가 대신 해 주면, 그 귀찮음 덕에 돈을 벌던 회사는 이익이 줄어든다.

 

이걸 슈독에 대입하면 이렇다. 메리어트 같은 호텔 체인이 오니츠카이고, Booking.com 같은 호텔 예약 사이트가 블루리본이다. 예약 사이트에 수수료를 내야 하는 호텔은 자기 사이트로 직접 예약받는 편이 더 남는다. 에이전트 AI는 호텔 공식 사이트와 Booking.com을 비교해 더 싼 쪽으로 안내하거나 주문을 대신 넣을 수 있다.

 

Booking도 이 위험을 알고 있다. Booking Holdings는 사업보고서에 위험 요인으로 이렇게 적어 놨다. AI 비서 때문에 사람들이 예약 사이트를 찾아오는 일이 줄 수 있고, AI가 예약까지 직접 해 주면 Booking을 건너뛸 수 있고, 손님을 많이 보내 주는 Google도 AI 답변으로 끝내 버리면 Booking에 오지 않을 수 있다.

 

에이전트 AI로 중간 마진을 가져가는 쪽이 바뀌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백화점, 슈퍼마켓, 인터넷쇼핑이 나올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소비는 늘고, 옛 중간상은 밀려나고, 새 중간상이 새 통행료를 걷는다. 이번 새 중간상은 AI 비서다. 

 

그래서 대체하기 어려운 제품이나 서비스, 즉 오리진을 가진 회사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훨씬 크다. 다만 오리진이 있다고 다 사는 것은 아니다. 성능으로 골라지는 물건은 제일 싸고 좋은 공장이 이기고, 자랑하려고 사는 물건(명품)은 사람이 계속 직접 고르니까 브랜드가 이긴다. 가장 힘든 곳은 그 중간이다. 광고로 버티던 어중간한 브랜드다.

 

 

 

댓글 3

마린블루
26.10.20 21:29

오 역시 렉스님만의 인사이트! 요즘 기업에 적용한 설명 넘나 좋습니당👍👍 수수료받고 장소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갖는게 중요하다 했던게 엊그제 같은데..이제는 AI에이전트가 알아서 하면 것 또한 어케 될지 모르겠네요..오리진을 갖는 회사!!역시 중요한건 본질이다 :) 감사합니다 렉스님!

변화의시간
26.10.20 21:50

나이키 사례를 명품 브랜드와 여러 기업에 적용하는 점이 놀랍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브랜드의 기본은 품질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AI로 대체되는 회사들 어찌될지 생각해보지도 못했는데 궁금하네요 렉스님의 찐생각이 가득한 후기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네비게이터
26.10.21 12:08

브랜드 그리고 가성비가 살아남는구조지만 가장 중요한건 기본인가봅니다.나이키가 요즘 약세인데 저도 나이키 ceo로 대입하면서 어떻게 하면 브랜드를 견고히하면서 수익으로 연결시켜 옛 명성을 되찾을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어요! 생각해볼꺼리 많은 후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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