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_now] 미국에서 가장 비싼 것은?

미국에서 가장 비싼 것은?

 

미국에서 거주한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여기는 우버이츠Uber Eats에서 김밥, 떡볶이, 순대를 시켰더니 100달러(한화 14만 원)가 나오는 곳이다. 김떡순은 종로3가에서 3,000원이 국룰이 아니던가? (나이 사십 먹은 아저씨의 옛날 기억이니 양해 바란다.) 1BD 1BTH(1 Bedroom, 1 Bathroom의 줄임말. 침실 하나 거실 하나가 있는 집을 뜻한다.) 월세가 4,000달러(한화 560만 원)다. 미국행을 결정하면서 서울 서초구에 비워 둔 아파트와 비슷한 수준이다. 월세라도 받을 걸 그랬나? 평생 이 물가에 적응하고 살아가야 한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겠지만, 기왕 한 번 사는 것 돈을 써서라도 경험을 늘리는 편이 남는 것이라는 생각에 하고 싶은 것은 마음껏 해 보는 중이다. 기업이 분기 마다 발표하는 실적도 일회성 비용은 따로 떼서 보지 않던가. 여기서 일회성 비용이란 기업이 실제로 지출한 비용이기는 하나, 통상적이지 않다고 판단하여 앞으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을 말한다. 정리 해고를 하면서 위로금을 지급했거나, 세무 조사에 따라 추징금을 부과 받았다는 등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여기서 가장 싼 것은 골프와 국내선 항공권이다. 사치재에 속하는 우리 나라와는 달리 골프는 어른이들의 소소한 레저로, 국내선 항공권은 대중 교통으로서 기능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서비스 공급자끼리 치열하게 경쟁을 하다 보니 가격이 낮다. 식자재와 공산품도 가격이 낮은 편이다. 우리 나라 정부가 농촌의 일자리를 위해 필사적으로 관세 장벽을 높이는 것은 근원적인 경쟁력이 낮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자가용을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끝도 없이 뻗은 도로 양 옆으로 광활한 농지들을 볼 수 있다. 아마 그곳을 경작하는 데는 대형 농기계가 필수적일 것이다. 어쩌면 비행기로 씨를 뿌리거나 농약을 칠 수도 있다. 이런 대농大農은 생산성이 높아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팔 수 있다. 공산품은 세계 어디서 생산하든 원가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생산지가 어디이건 간에 좋은 농수산물은 노량진 수산 시장이나 송파 가락 시장에 먼저 왔다가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는 말처럼 전세계를 무대로 하는 제조업체들은 미국에 유통하기를 꿈꾼다.

 

그럼 미국에서 생활할 때 가장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일까? 미국에 갓 이주한 한국인들과 얘기를 나누면 십중팔구 보험료를 들 것이다. 그 중에서도 필수재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보험과 건강 보험이 우리를 ‘뜨악’하게 만든다. 자동차를 구매하자 마자 가입한 자동차 보험료는 6개월에 2,200달러였다. 보통 1년 단위로 자동차 보험을 계약하는 우리 나라 식으로 얘기하자면 600만 원이 넘는 돈이다. 이것도 중개인을 통해 할인 받은 금액이다. 한국에서는 100만 원 정도 내는 것에 비하면 말도 안 되게 비싸다. 내가 미국에서 비싼 차를 타는 것도 아니다. 참고로 나는 미국에서 테슬라를 타고 있고, 한국에서는 스포츠카로 유명한 독일 P사의 자동차를 탄다. 건강 보험은 한 술 더 뜬다. 한 달에 800달러씩 내고 있다. 누가 한 달에 보험료로 100만 원을 지출하는가? 상속 목적의 초거액 자산가나 TV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비정한 살인마가 아니라면 말이다. 참고로 생명 보험은 상속인, 즉 자녀 등이 보험료를 납부했을 경우 보험금에 세금이 붙지 않기 때문에 초거액 자산가가 절세 목적으로 왕왕 사용하는 금융 상품이다.

 

도시 면적이 크고 대중 교통 사정이 열악한 캘리포니아에서 자가용은 필수재다. 자동차 보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에게 꼭 필요한 자동차 보험료가 서민의 생계를 어렵게 할 만큼 치솟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코로나19 때문이다. 케케묵은 단어라고 생각하는가? 그만큼 코로나19는 우리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때 가족끼리 자동차 여행 많이 갔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공공 장소보다는 믿을 만한 소수의 인원끼리만 모여 여가를 즐긴 것이다. 한때 모두의 인스타그램 피드가 골프장 잔디의 초록색으로 물들었던 것도 같은 연유다. 주식이나 코인 가격이 올라 자가용을 새로 구매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자동차 사용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자동차 사고도 늘어난다. 문제는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물류가 마비되고 인건비가 치솟았다는 것이다. 정비사 아저씨도 일 좀 덜하고 자동차 여행 가고 싶었을 것 아닌가? 자동차 수리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오른 것이다.

 

보험사는 사전에 돈을 받고(보험료) 나중에 피보험자에게 문제가 생기면 돈을 지급한다. (보험금)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고 사고 한 번 안 나고, 긴급 출동 한 번 안 부르면 보험사에게 돈을 갖다 바친 꼴이 되고 반대로 사고가 많이 나면 보험사가 적자를 보는 구조다. 그래서 코로나19 기간 동안 보험사들이 큰 손실을 본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보험은 국가를 막론하고 운전자에게 필수적이다. 회사들 간에 서비스의 차별점이 두드러지지 않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정부의 강력한 규제를 받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은 장점이다. 고객의 돈을 미리 받아 관리해야 하므로 속임수를 쓰거나 도산하기라도 하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1년에 한 번씩 보험사를 갈아 탈 수 있다 해서 그들을 얕보면 큰 코 다친다. 몇 안 되는 과점 기업들끼리 마음 먹고 뭉치면 소비자들이 매우 불편해진다. 현재 미국의 자동차 보험이 꼭 그런 꼴이다. 큰 적자를 본 이후 “보험료를 올려 주지 않는 주state에서는 아예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배짱을 부린 탓에 자동차 보험료가 천정부지로 뛴 것이다. 이것이 미국 자동차 보험이 비싼 이유이자 다운타운downtown에 가면 범퍼가 떨어지거나 문이 찌그러진 채 운행하는 자동차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주식 시장은 장기적으로는 체중계처럼 정확히 작동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인기 투표처럼 시장 참여자의 심리에 휘둘릴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보통의 시장 참여자는 6개월 미만의 시간 지평으로 돈을 굴리기 때문에 그들보다 조금만 더 길게 보면 투자 성공의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미국의 자동차 보험사들이 크게 적자를 볼 때 초보 투자자들은 ‘큰일이다. 수익성이 너무 나빠. 이렇게 가다가는 망할 수도 있겠어.’라고 생각해 주식을 매도하겠지만, 시간 지평을 길게 보고 평균 회귀를 믿는 가치투자자들은 ‘자동차 보험은 필수재이고 과점 산업이니까 분명히 보험료를 올릴 거야. 그러면 수익성도 정상화되겠지.’라면서 주식을 사들일 것이다. 좀 더 현명한 투자자들은 저평가 주식이 적정 가치에 다다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최근의 가파른 수익성 개선세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착각하고 환호하는 거래자들traders에게 훨씬 비싼 가격으로 팔아 치울 것이다. 다시 말해 거래자들은 보험사들의 수익성이 안 좋을 때는 비관적으로, 수익성이 좋을 때는 낙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주식을 쌀 때 팔고 비쌀 때 사게 된다. 투자자들investors과 정반대다. 이것이 수 년 사이 미국의 자동차 보험 기업들의 주가가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 역사적 신고가를 기록하는 이유다.

 

아쉽게도 내가 미국으로 건너온 것은 이런 일들이 모두 발생한 이후다. 이사한 후 자동차가 필요해 구입하고, 자동차 보험을 가입하려는데 보험료가 너무 비싸 놀랐다. 즉시 자동차 보험사 주가를 확인했는데 이미 모두 오른 뒤라 땅을 치고 아쉬워했다. 그러나 상장 주식 투자의 매력이 무엇인가? 전세계에 투자할 종목이 수만 가지가 넘는다. 훌륭한 기업 여러 개를 꾸러미로 가지고 있다가 주가가 저평가 된 것만 골라 투자할 수 있다. 더퍼블릭자산운용은 자동차 보험사가 아닌 다른 보험업에 투자를 해 두 배가 넘는 큰 수익을 올렸다. 다행히 해당 보험업은 자동차 보험에 비하면 틈새 시장에 불과해 똑같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보험료를 인상하는 과정을 겪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식 시장에서 소외돼 있었던 덕분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정해진 미래’ ‘타임머신형 투자’라고 부른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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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시user-level-chip
24. 11. 25. 05:07

BEST | 부동산 투자와도 참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듭네요. 가치는 변함이 없는데, 사람들이 불안해 하고 관심을 돌릴 때 투자하고 기다리면, 정해진 미래가 적당한 때 찾아오는! 코로나 이슈를 함께 겪었지만, 보험사에 이런 일들이 생겼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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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부Editoruser-level-chip
24. 11. 25. 08:14

김떡순이 14만원 첫줄부터 에디터 뒷목잡고 읽었습니다,, 와... 미국 정말 별세계네요!! 골프가 싸다는 것도 의외고 ㅎㅎ (자동차 보험까지 영향이 갈 줄은...) 김현준 대표님, 소식 전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덧붙여 트럼프 당선 이후에 분위기도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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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부Editoruser-level-chip
24. 11. 25. 08:22

안녕하세요. 더퍼블릭자산 김현준님! 좋은 글을 작성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더퍼블릭자산 김현준님의 글을 인기글로 지정하였습니다. -월부 커뮤니티 운영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