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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독서후기

  • 25.07.25

원메세지: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사람들은 상당 부분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좋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이런 것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그러나 여기서 기대만큼의 행복 결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수십 년 연구의 결론

 

원액션: 가장 빈곤한 인생은 곁에 사람이 없는 인생이다. 그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베인 상처도 잘 아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든,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라는 뜻이리라. 

      -나는 내향형 인간이지만 어색함, 불편함, 스트레스, 두려움을 가득담은 가방을 매고서라도 사람들이 가득모인 산정상을 향해 걸어가야 행복해질 수 있다. 

STEP 1. 책의 개요

 

저자 및 출판사:

 

읽은 날짜: 2025.07.15 ~ 07.24

 

총점: 10/10점

STEP 2. 책에서 적용할 점 STEP 3. 책 속 기억하고 싶은 문구

 

-첫째, 여타 많은 책의 주된 관심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가’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how’를 묻고 있다. 반면 이 책의 핵심 질문은 ‘why’다. 왜 인간은 행복이라는 경험을 할까? 또, 이 경험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이 중요한 행복의 속성을 이해하기 전에 행복의 비결이나 기술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관 또한 다분히 목적론적이다. 그에게 삶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뭔가를 추구하며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때 그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궁극적인 목표를 행복이라고 보았다. 아침 식사는 출근하기 위해, 출근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다. 인간 행위의 종착지는 결국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과학책 버전’의 행복을 찾아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에 새로운 옷을 입혀 봐야 할 것이다. 수천 년간 걸쳐 왔던 철학의 옷을 벗겨 내고, 좀 더 진화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행복에 대해 생각해 보자.

 

-50세가 되던 해, 다윈은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출판해 수많은 종(species)의 생명체들이 어떻게 지구에 출현하게 됐으며, 어떤 과정을 통해 이들의 생존과 소멸이 갈리는지를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종의 각 개체는 유전적변이 등에 의해 조금씩 다른 모양과 특징을 가지고 태어난다. 60억 인구의 생김새와 성격이 서로 다르듯. 이런 특성 중 어떤 것은 특정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 더 적합하고, 어떤 것은 불리하다. 후세에 대물림(유전)되는 개인 간의 ‘매우 사소한 모든 형태의 차이(however slightly in any manner)’가 결국 진화의 긴 과정에서 증폭되어 생존 여부를 가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작새 꼬리가 이 책의 관심사는 아니다. 하지만 공작새 꼬리는 진화론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생명체가 가진 모든 생김새와 습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는 점이다. 너무 중요해서 다시 한번 쓴다.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특히 ‘모든’이란 단어에 주목하자.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카고대학의 카시오포(Cacioppo) 교수 팀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현대인의 가장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다(Ca

 

-최근 그는 자신의 책에서 큰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인간의 뇌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 설계되었을까? 일평생의 연구를 토대로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관계를 잘하기 위해서’다(Gazzaniga, 2008). 그는 인간이 ‘뼛속까지 사회적이다(social to the core)’라는 표현을 썼다. 남을 설득하고, 속이고, 속마음을 이해하고……. 뇌의 최우선적 과제는 사람 간의 이런 복잡 미묘한 일들을 해결하는 것이다.

 

-인생의 여러 조건들, 이를테면 돈, 건강, 종교,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을 다 고려해도 행복의 개인차 중 약 10~15퍼센트 정도밖에 예측하지 못한다(Diener, Suh, Lucas,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의 10퍼센트와 관련된 이 조건들을 얻기 위해 인생 90퍼센트의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돈을 벌기 위해. 톨스토이는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산다’고 했지만 나는 빵도 먹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수도승처럼 살자는 제안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외적 조건에 과도한 기대와 투자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돈은 비타민과 비슷한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비타민 결핍은 몸에 여러 문제를 만들지만, 적정량 이상의 섭취는 더 이상의 유익이 없다.

 

-하지만 초콜릿을 우습게 생각하는 이들이 꼭 알아야 될 사실이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 자료들을 보면 행복한 사람들은 이런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Diener, Sandvik, & Pavot, 1991).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유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하지만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나타났다.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도(주관적 미모)는 행복과 관련이 있었다. 외모뿐 아니라 다른 삶의 조건(건강, 돈 등)과 행복의 관계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나타난다.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 이미 가진 것을 얼마나 좋아하느냐가 행복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Diener, Lucas, Oishi, & Suh, 2002).

 

-이렇게 미래를 과도하게 염려하고 또 기대하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즐기지 못하고 산다. 대다수 한국인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다. 고등학생은 오직 대학을 가기 위해, 대학생은 직장을 얻기 위해, 중년은 노후 준비와 자식의 성공을 위해 산다. 많은 사람이 미래에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이렇게 ‘becoming’에 눈을 두고 살지만, 정작 행복이 담겨 있는 곳은 ‘being’이다. 인생은 유한하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사람들은 상당 부분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좋은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이런 것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그러나 여기서 기대만큼의 행복 결실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수십 년 연구의 결론이고, 이 현상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적응’이라는 녀석이 지목되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다. 적응이라는 범인은 잡았는데, 그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유학 시절, 지도교수가 쓴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Happiness is the frequency, not the intensity, of positive affect)’. 나는 이것이 행복의 가장 중요한 진리를 담은 문장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결국 행복은 아이스크림과 비슷하다는 과학적 결론이 나온다. 아이스크림은 입을 잠시 즐겁게 하지만 반드시 녹는다. 내 손 안의 아이스크림만큼은 녹지 않을 것이라는 환상,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의 거창한 것들을 좇는 이유다. 하지만 행복 공화국에는 냉장고라는 것이 없다. 남는 옵션은 하나다. 모든 것은 녹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주 여러 번 아이스크림을 맛보는 것이다.

 

-오랫동안 행복을 연구한 석학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그 질문을 한다면 대답은 거의 비슷할 것이다. “유전.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 사실 이 대답은 행복 연구에 대해 전문성을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진단이다. 쌍둥이 연구를 통해 유전과 정서의 관계를 오랫동안 분석한 미네소타대학의 데이비드 리켄(David Lykken)과 오크 텔리건(Auke Tellegen) 교수는 심지어 이런 문장을 썼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은 키가 커지려는 노력만큼 덧없다(Lykken & Tellegen, 1996).

 

-기질이라는 원석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구체적인 모양을 잡아 가는데, 이것이 성격 특질이다. 가장 중요한 성격 특질 5가지(외향성, 신경증, 성실성, 개방성, 원만성) 중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외향성이다. 외향성이 행복 연구에서 그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한마디로 행복과 가장 손을 꼭 쥐고 있는 짝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연구된 그 어떤 다른 특성도 외향성만큼 행복과 관련 깊은 것이 없다.

 

-외향성이 높은 사람의 특성은 무엇일까? 대표적으로는 사람을 찾고, 그들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외향성이 높을수록 자극을 추구하고, 자기 확신이 높고,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는 보상이나 즐거움을 늘리는 데 초점을 둔다. 최근 연구들에 의하면, 외향적인 사람들이 타인을 찾는 본질적 이유가 자극 추구라는 흥미로운 설명도 있다(Smillie, Cooper, Wilt, & Revelle, 2012). 사실 사람만큼 ‘자극적인 자극’도 없다. 구체적인 이유야 무엇이든 외향성은 한마디로 ‘사람쟁이’ 성격이다. 외향성이 높을수록 타인과 같이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또 그들(특히 이성)이 자기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데 타고난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첫 경험 시기도 빠르고, 경험 상대도 많다(Nettle, 2006). 사람쟁이 성격과 행복의 고리는 매우 단단하다. 외향적일수록 행복하다는 결론은 심지어 동물(오랑우탄) 연구에서도 나타난다(Weiss, King, & Perkins, 2006). 인간의 경우, 더 선명한 결과들이 나온다. 한 연구에서는 행복하기 위해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조건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극단적인 두 그룹, 즉 행복값이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과 하위 1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을 비교해 보았다(Diener & Seligman, 2002). 연구자들이 수많은 변인을 측정했지만 그룹 간 차이는 없었다. 가령 얼마나 돈이 많다고 생각하는지, 외모와 학점이 어떤지, 심지어 얼마나 많은 긍정적·부정적 사건들을 경험했는지. 두 그룹 간의 차이는 오직 두 가지 영역에서만 나타났다. 첫째, 성격. 행복한 사람들은 월등히 더 외향적이고 정서적 안정성이 높았다. 둘째, 대인관계. 행복 지수 상위 그룹의 사회적 관계의 빈도와 만족감이 월등히 높았다. 사실 두 가지 특징의 공통분모는 ‘사회성’이다. 그래서 이 논문의 저자들은 행복을 보장하는 충분조건은 없지만, 없어서는 안 될 필요조건이 사회적 관계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외향성이라는 것은 심리학자들이 연구 목적으로 개개인에게 붙여 놓은 일종의 명찰일 뿐, 그 때문에 행복한 것은 아니다. 행복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 명찰이 붙은 사람들이 가진 독보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사회성이다. 외향성을 과일에 비유한다면, 이 과일은 사회성이라는 즙을 듬뿍 머금고 있다. 외향성과 행복이 깊이 연관된 이유는 사회성이라는 즙 때문이다. 지금부터 과일의 껍질은 버리고, 이 즙에 대해 조금 더 상세히 살펴보자. 사회적 경험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식물에게 광합성만큼 중요하다. 우선 행복한 사람들은 타인과 같이 보내는 사회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의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떤 사회에서 살고 있든, 일관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현재 우리 연구실에서 사회과학 연구재단의 지원금으로 진행하는 국제 행복 연구 프로젝트가 있다(서은국, 오이시, 2011). 행복의 장기적 결과를 다각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과 버지니아대학 연구진들과 함께 행복과 생활 습성은 물론, 유전자분석을 위한 자료까지 모으고 있는 중이다. 많은 질문 중 이런 문항이 있다. “하루 중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대략 몇 퍼센트이고, 혼자 보내는 시간은 몇 퍼센트입니까?” 다음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행복한 사람들(행복 평균 상위 10퍼센트)과 불행한 사람들(하위 10퍼센트)의 차이는 확연하다. 한국의 경우, 행복한 사람들은 하루의 약 72퍼센트의 시간을 다른 사람과 함께 보내지만, 불행한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48퍼센트)보다 혼자 있는 시간(52퍼센트)이 조금 더 많다.

 

-연구 결과는 우리의 예상과 달랐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혼자일 때보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더 높은 행복감을 느꼈다(Diener & Biswas-Diener, 2008). 그래서 내가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회식 2차를 갈 때,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평소 조용한 팀원을 먼저 보내지 말라고. 떠들썩한 회식 장소에서 그 팀원은 속으로 웃으며 좋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내향적인 사람들은 왜 외향적인 사람들만큼 타인과 어울리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싫어서가 아니라 불편해서다. 사람이라는 자극은 양날의 검과 같다. 사람은 즐거움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때론 가장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계속 직장 상사만 보다 보면 휴가 생각이 간절히 나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이런 사회적 스트레스를 더 예민하게, 더 많은 사람으로부터 경험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서 한발 뒷걸음질 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사람이 싫은 것과는 다른 얘기다. 이런 비유가 어떨지.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오르고 싶어 하는 산은 똑같다. 사람들이 즐겁게 모여 있는 정상. 이 둘의 차이는 얼마나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오르느냐다. 외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가볍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가방은 어색함,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무겁다. 그래서 중턱쯤에서 되돌아가는 경우도 많다. 결국 산 정상에는 외향적인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산보다 바다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햇빛이 모든 도시의 기온을 높이듯, 사회적 경험은 개인이 가진 선천적 기질과 무관하게 행복과 관련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것이 지금까지 행복 연구의 큰 결론이다. 하지만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마무리는 아직까지도 다소 부족하다. 사회적 경험은 왜 이토록 중요한 행복의 조건일까?

 

-왜 사람이 행복에 그토록 중요할까? 뇌의 행복 전구가 켜지는 것은 개가 서핑을 하도록 만드는 새우깡과 비슷하다. 뇌는 우리의 행복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찾도록 하기 위해 뇌는 설계되었다. 그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사람’이다. 그래서 뇌는 사람이라는 생존 필수품과 대화하고 손잡고 사랑할 때 쾌감이라는 전구를 켜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행복은 타인과 교류할 때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일종의 ‘부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그건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다. 역으로, 의무감이나 수단으로써 사람을 만나는 것은 가장 피곤한 일이 될 수 있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행복하지 못하다고 고백하는 이유도 역시 사람 때문이다. 가장 빈곤한 인생은 곁에 사람이 없는 인생이다. 그의 겨울은 유난히 춥고, 베인 상처도 잘 아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행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레바논에 이런 속담이 있다. “사람이 없다면 천국조차 갈 곳이 못 된다.” 이 말을 거꾸로 생각해 보자. 무엇을 하며 어떤 모양의 인생을 살든, 사람으로 가득한 인생은 이미 반쯤 천국이라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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