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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월부 카페 회원에서 전문가칼럼 크리에이터까지 생사를 넘어 8년이 걸렸습니다.

25.09.08

월부 카페 회원에서 전문가칼럼 크리에이터까지 생사를 넘어 8년이 걸렸습니다.

 

안녕하세요

 

네이버 카페 회원 8년만에 전문가 칼럼에 글을 쓰게된 타임셀러입니다.

 

 

2017년 네이버 월부 카페에 가입

 

 

등업신청합니다, 임장다녀왔습니다 등 글을 작성했고, 8.2대책을 얼마 앞두고 내집마련을 했다는 후기를 올렸습니다.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신축, 역세권, 서울.. 그런 아파트 아닙니다.

 

 

 

그저 나중에 결혼하면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집 근처의 3억대 아파트를 골랐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부동산 투자를 10여회정도 경험하였습니다.

 

 

 

25살, 25톤 화물차 운전기사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던 저는 어느 한 지방의 대학교에 간신히 붙어서 기숙사 생활을 하였습니다. 

 

대학교를 다니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였습니다. 안그랬으면 아버지께 맞아 죽었을겁니다. 

 

 

그래도 대학교가 사람 만들어주는지 영어도 배워보고 전공이라는 것도 배우며 나름 열심히 학과 생활을 했습니다.

 

 소문에 토익 700점이여야 졸업할 수 있다길래 이때 영어를 시작하게됩니다. 결국 4학년 때 간신히 점수를 맞췄고, 이제 이력서를 쓰려던 찰나에 정신차려보니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700점은 사라져버리고 제 20대의 ½은 운전대 앞에서 보내게 됩니다.

 

 

읍내의 한 건물주


 

소개 받은 공장이 충북 음성에 있다보니 또 다시 숙소를 구해서 타지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화물차 운전도 처음인데다 타지에서 생활하니 정말 마음도 몸도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하루 15시간이 넘는 운전과 텃세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것이였습니다.

 

 

 

“ 도대체 이렇게 큰 차는 어디서 고치지? ”

 

 

 

 

아는 사람없이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하니 괜찮은 정비소가 어딨는지조차 모르고 맨날 눈탱이만 맞고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가 살고 있는 건물을 보니 다른 방에 불들이 켜져있었습니다. 문득 방이 몇개인지 궁금했습니다. 

 

 

 

세어보니 13개더군요.

 

 

 

월세를 40만원 내고 살고 있었으니 건물주는 520만원을 매달 벌고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건 어디서 어떻게 사는걸까..

 

이 궁금증 한줄이 지금까지의 부동산 투자를 있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8년이 흐르고..


 

8년간 전국을 떠돌며 운전을 했더니 어느덧 100만 KM를 넘겼습니다. 

 

 

때로는 4주택자인 순간도 있었고, 역전세를 내어주기위해 식구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던 순간들도 있었지만 결국엔 분양권 하나를 지켜내어 현재 세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아내가 생기고, 아이가 생기니 가족들과의 시간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 때 제 삶을 송두리 째 바꿔버린 궁금증이 생깁니다.

 

 

시간이 많아지려면 어떻게 해야되는걸까?

 

아직까지도 운전을 하고 있었기에 같이 일했던 100여명의 기사님들을 돌아보게됩니다.

그분들의 삶은 곧 제 미래였습니다. 화물 운송을 테슬라가 해주지 않는다면 정해진 미래였죠

 

 

 

결론은 운전을 그만해야한다는 사실이였습니다. 그것은 수입이 0원이 된다는 뜻과도 마찬가지죠.

 

 

 

외벌이인 저희집 구조상 제가 벌지 않으면 단 1원도 집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럼 운전을 평생 그만둘 수 없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죽음이 눈앞에 찾아온 사고가 한번 발생합니다.

 

 

 

멈출 수 없는 속도

수십톤의 화물

 

 

 

그 화물이 저를 덮치기전 남은 거리는 약 30cm, 겨우 브레이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덜덜 떨리는 다리로 집에 돌아와 신생아인 딸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 내가 사고로 없다면 아내와 딸은 어떡하지? ”

 

 

 

사실 직업을 바꾸기위해 시도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2019년 블로그를 시작한것도 누가 이걸로 돈을 벌 수 있다길래 시작하였고, 해외구매대행을 프로그램으로 등록하면 한달에 천만원씩 번다길래 따라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기에 무엇인가 다른 방식을 택해야했습니다. 

생계를 책임지면서 사이드잡을 키워갈 수 있는 방식, 그게 쇼핑몰이였습니다.

 

 

 

한 블로그의 글이 삶을 바꾸다


 

 

 

컴퓨터를 옮길 때마다 삭제되지 않게 가장 중요하게 보관하며, 클라우드에도 백업을 해놓은 한 블로그의 글입니다. 저는 1번 선택지의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그것의 2배의 근무시간을 8년째 해오고 있었죠.

 

 

 

그런데 이 글에서는 2번 선택지를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럼 생계는 누가 책임져야하나? 매달 생활비는 들어가는데..

자연스럽게 이 고민이 따라옵니다

 

 

 

 

이 고민은 글의 끝단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1번과 2번을 동시에 한다. 

 

 

 

몸이 갈려나간다는 표현이 정확하리만큼 제 몸은 갈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충청권으로 화물을 운송하고,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와 주차를 한 뒤 집에가서 택배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화물차를 가지고 저녁까지 운송을 마쳤습니다.

 

 

 

 

 

이것을 쇼핑몰 매출이 천만원이 넘을 때까지 반복하다가 결국 23년 8월 제 삶의 일부였던 화물차를 처분하게 됩니다.

 

 

담담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갔습니다.

 

 

 

그전에는 언제든 쇼핑몰이 망하면 화물차로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언제든 차만 가지고 나가면 돈을 벌 수 있고 조금 남들보다 힘들게 살면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으니 그만하면 됐다라는 생각이 있었던거죠.

 

 

 

그런데 동아줄같았던 화물차를 팔아버려서 더 이상 기댈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쇼핑몰 성공 vs 단순 노동자로 돌아가기

 

 

제 사업의 성과는 둘 중 하나로 정해졌습니다. 단순 노동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걸로 먹고 살아야하는 상황에 처하니 하루하루가 피가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습니다. 생계비는 이자와 같아서 잠을 자지 않고, 24시간 청구됩니다. 난 라면을 사먹어도 생계비는 하루에 10만원씩 쌓여갑니다. 

 

 

 

그런 불안감을 원동력 삼아서 끝없는 시도끝에 현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업에 대한 불안감은 현재도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노베이스이던 그 시절보다는 거래처들도 생기고, 자리잡은 아이템들도 생기면서 저축도 하고, 재테크도 다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상 25살 화물운전기사 였던 제 삶의 10년에 대해 소개해보았습니다.

 

 

 

 

다음글에서는 

말년휴가 나와서 웨이터로 3년동안 저축하며 배운점에 대해 적어보겠습니다. 

 


댓글


주아팬더
25. 09. 09. 09:35

그동안 걸어오셨던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글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글이 기대됩니다!

루센트
25. 09. 09. 09:50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올려주신 블로그의 글이.. 저도 마음에 와닿아서 저장해두었다가 자주 봐야겠습니다!!!^^

원씽포커싱
25. 09. 09. 19:01

우연히 본 글인데 자극이 뿜뿜 되네요.. 그간 정말 열심히 살아오신 것 같아요. 타임셀러님이 저장한 글 처럼 저도 이 글 저장해두고 두고두고 보겠습니다!! 다음글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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