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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리학 카페 [스카이브로]

26.02.16

 

책 제목(책 제목 + 저자) : 파리의 심리학 카페

저자 및 출판사 : 모드 르안, 클랩 북스

읽은 날짜 : 2월

도서를 읽고 내 점수는 (10점 만점에 ~ 몇 점?) : 10점

 

1. 저자 및 도서 소개

:

모드 르안
심리치료사/카운슬러
‘파리 사람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 하는 심리학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린 시절을 지나 스물세 살에 첫 아이를 낳자마자 남편과 사별하고 깊은 우울증을 겪었다. 엉망이 된 삶 속에서 문득 과거의 아픔 때문에 자신의 현재를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10년간 정신 분석 치료를 받으며 마음을 회복해 갔다. 과거의 자신처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사람들, 자신의 상처를 모른 체하며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들을 두고 볼 수 없어 1977년, 마흔이 넘은 나이에 대학에 입학해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후 에콜 파리지엔 드 게슈탈트(ecole parisienne de Gestalt)에서 게슈탈트 심리 치료를 공부하며 심리 치료사의 길을 걸었다.
프랑스에서 철학적인 담론을 나누는 ‘철학 카페’가 유행하는 데 반해 내면의 이야기를 나눌 곳은 많지 않다는 걸 깨달은 르안은 한잔하러 가듯 편안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공간인 ‘심리학 카페(Café-Psy)’를 만들었다. 매주 목요일 7시가 되면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바스티유의 한 지하 카페에 모여 일, 사랑, 인간관계에 관한 온갖 고민을 주고받았고 18년간 총 916번에 걸쳐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다녀간 특별한 치유 공간으로 기록되었으며, 이곳에서 나눈 이야기 중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것을 충분히 각색하여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파리의 심리학 카페》다.

 

《파리의 심리학 카페》가 한국 출간 11주년을 맞이하여 새로운 표지로 돌아왔다. 《파리의 심리학 카페》는 실제로 마치 도심의 한 카페에 앉아 심리학자와 수다를 떠는 것 같은 편안한 문체와 따뜻한 위로의 글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11년간 수많은 한국 독자의 ‘인생 책’이 되었다.
심리학 카페(Cafe-Psy)는 1997년, 파리의 한 지하 카페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열린 캐주얼한 심리 상담 모임이다. 심리학자 모드 르안이 ‘차 한잔 마시며 편안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장소’를 만들고자 이 장소를 기획했고, 첫 모임 4명을 시작으로 18년간 총 5만 명의 사람이 다녀갔으며 영국 〈인디펜던트〉, 프랑스 〈리베라시옹〉 등 세계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이 책은 그곳에서 나눈 이야기 중 많은 사람이 공감할 만한 것을 충분히 각색하여 엮은 최초의 책이다.
《파리의 심리학 카페》는 출간 이후 꾸준히 ‘어려운 전문 용어 없이도 심리학적 통찰을 건네고 나도 몰랐던 내면의 아픔을 해소하게 해 주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은 이 책은 사람들이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내면의 불안과 우울, 상실의 아픔, 가까운 이에게 받은 상처, 번아웃에 관한 숨은 이야기를 발견하게 해 준다. 이러한 성찰은 갈수록 위로가 각박해진 현대 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기 돌봄’의 시작점이 되어 줄 것이다.

 

2. 내용 및 줄거리

: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이든, 어떤 일이 눈앞에 놓여 있든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인생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영역이 아니에요.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을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일들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삶은 원래 불공평합니다.

 

인생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속상해하지 마세요.

 

우리가 고통 속에 있다고 해서 인생이 잘못 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진정한 불행은 불행한 사건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안 좋은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불운한 일을 마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불행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의 선택일 뿐이니까요.

 

이를 이해한다면 여러 역경에 대항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들여 움직일 수 있을 거에요.

 

불행의 원인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일종의 과대망상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고, 심지어 자신을 통제하는 일조차도 종종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관련된 사람들과 책임을 나누려는 노력이라도 해 보자고요. 세상도, 가족도, 회사도, 친구도 나 없이 잘 돌아갑니다.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분노의 불길은 상대뿐만 아니라 자신까지도 태워 버립니다. 또 아무리 잘못의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더라도 화를 내는 방식에 관해서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화가 났을 때 그 감정을 무작정 타인을 향해 쏟아 내기 전에 내 안에서 건강하게 분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한참을 적고 나면 터질 것만 같던 화도 조금씩 누구러지고, 억압되어 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그 감정을 천천히 느껴 보세요. 이때 고통스러운 느낌을 믿을 만한 타인과 공유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자신이 적은 감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다 보면 화가 나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상대에게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표현하세요. 나를 화나게 한 말이나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부당한 일을 항의하고, 과도한 요구를 받았다면 당당히 거절하는 겁니다.

 

어른도 마음 놓고 울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노와 슬픔 같은 감정은 억누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을수록 오히려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알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물론 즐겁지 않은 일이지만요. 내 안의 비겁함, 이기심, 폭력성, 가학성, 우울감……. 이 모든 것을 받아 들여 보세요. 내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걸로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느 일은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쇠가 아닙니다. 내 마음에도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유일한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런 나조차 내 감정을 무시하고 돌보지 않는다면 내가 너무 외롭지 않을까요?

 

감정은 좋고 나쁜 것이 아닌, 끊임없이 움직이는 에너지일 뿐입니다.

 

이제부터라도 내 감정을 온전히 느껴 보세요.

 

‘완벽'에 대한 기준은 다분히 주관적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추구하는 ‘완벽’이 지나치지는 않은지 언제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지요.

 

부담스러운 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기에, 완벽주의자들은 과제가 주어지면 딴짓을 하거나 꾸물거리는 경향을 보입니다.

완벽주의자들에게는 무엇보다 결과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들은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만을 추구하지요. 그러다 보니 과정을 즐거움은 모두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을 음미하는 여유 따위는 없어진지 오래입니다.

 

완벽주의자들은 이미 달성한 성공에는 별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더 큰 성공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경주마와 같은 존재이지요.

 

결과적으로 그들은 거의 실현이 불가능한 기준에 비추어 자신을 평가하게 되고, 어떤 성공을 이뤄도 만족하는 법이 없이 계속해서 자신을 쪼아 댑니다.

 

실패하는 일이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평소에 자잘한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쉽게 부서지지 않습니다. 실패는 인생의 굳은살과 같아서, 굳은살이 많을수록 세상의 풍파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실패는 자긍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을 회피한다면 그 일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이 되고 자연히 자긍심이 추락하게 됩니다. 하지만 도전을 하면 실패를 극복할 자신이 있다는 메시지를 내면화하게 됩니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뭐든 해 봅시다. 인생이 더욱 재밌어질 거에요. 완벽해지려는 욕심도 부리지 마세요.

 

이무것도 안하면 실패는 없겠지만 단조로운 일상이 되어 버릴 게 분명하니까요.

 

“공감이란 상대의 창으로 바라보는 것”

 

동정이 상대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라면, 공감은 상대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한 후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와 내가 도움을 줄 방법이 없는지 함께 고민하는 것입니다.

 

힘들어하는 상대를 위로하고 싶다고 해서 꼭 그의 입장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두 가지를 기억하세요. 고유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울타리와 힘들 대 기대어 쉴 수 있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요.

 

결코 당신 자신을 홀로 내버려두지 마세요.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길 주저하지 마세요.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어떤 순간이 오든 당신의 손을 잡고 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고 치유하지 않으면 과거의 상처는 끊임없이 되살아나 현재의 나를 괴롭힙니다.

 

과거의 상처란 동굴 안의 쥐와 같습니다. 어릴 적에는 무서워서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지만 성인이 된 지금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다만 괴물이라고 생각해 두려움에 떨며 감히 동굴 안을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을 뿐이지요. 동굴에 들어가 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안에 있는 샘물도 발견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억눌려 있던 정신적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없는 것이지요.

 

상처를 치유하려면 우선 상처로부터 비롯된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 모든 일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게 아닙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아픈 기억을 떠나보내는 것이지요.

 

당신이 부족하거나 못나서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억울해하지도 말고 아쉬워하지도 마세요. 잃어버린 것을 충분히 슬퍼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상처는 더 이상 당신을 아프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고, 하물며 용서하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도 있다

 

한쪽에게만 많은 것을 요구한다면 관계는 더 이상 건강하게 유지될 수 없습니다.

 

한계 설정이란 자신이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 그 선을 정하고 상대에게 나의 경계를 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책임질 수 없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손을 놓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추측하는 일은 개인적인 경험에 빗대어 상대방의 마음을 어림짐작하는 것뿐입니다.

 

내 마음을 투사하지 않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 봅시다. 비록 ‘있는 그대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울지라도 끊임없이 연습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자신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도 겸손도 미덕도 아닙니다. 쓸데없이 미안해하는 것도 결국 나를 아끼지 않은 내탓일 뿐입니다. 나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받기 충분한 존재이며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음을 매 순간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다니엘 브랜든은 “자존감은 천부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습득하고 터득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존감을 높이는 여섯 가지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1.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인식하며 산다.
  2.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3. 자신의 선태고가 행동에 책임을 진다.
  4.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드러낸다.
  5. 인생의 목적과 목표를 세운다.
  6. 정직하게 산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뭔가를 잘했기 때문에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실패도 하고 실수도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자기 자신이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자신의 긍정적인 면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면까지 인정하고 안아 주며, 세상이 부당한 의생을 강요할 때 떳떳하게 맞서는 용기입니다.

 

오래도록 친구를 곁에 두는 비결은 세월에 따라 변하는 우정의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시절처럼 모든 것을 함께하려고 한다면 자꾸만 변해 가는 상대의 행동에 상처받기 쉽거든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앞으로는 비난을 받든, 칭찬을 듣든,

누가 뭐라 말하건 말건 나는 내 생각에 따르겠다.

  • 라 퐁텐, <우화>

 

남을 위해 어떤 일을 했을 때는 누구나 그에 상응하는 칭찬을 듣고 싶어합니다.

 

인정 욕망이야말로 인간이 갖는 욕망의 본질이라고 설명합니다.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칭찬은 상대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 주기도 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이게 그렇게 중요한걸까?’

살다가 이런 질문이 떠오를 때면 이를 그냥 넘기지 말고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진자 내가 원하는 삶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지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삶을 너무 많이 희생해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거에요.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고 내 인생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뭘까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안타깝게도 그 대답이 쉽게 얻어지진 않을 거에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일에는 훈련이 필요하거든요. 특정 순간에 느껴지는 솔직한 감정을 들여다보고, 내향성과 외향성 같은 성향에 대해서도 알아봐야 합니다. 이런 훈련이 쌓이면 자기 성격의 장단점을 이해하게 되고, 나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더 나아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기만의 신념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알면 알수록 우리는 타협할 수 없는 삶의 기본 원칙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원칙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쉽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당신이 진짜 원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사람들은 당신을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또 인정과 칭찬을 잃는 일이 마치 내 존재 가치를 잃는 것처럼 큰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기억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원하는 일을 했을 때만 주어지는 칭찬은 진정한 칭찬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앞서 말했듯 그건 통제 수단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칭찬은 당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 주고, 더욱 눈부신 앞을 향해 나아가게끔 북돋아 주는 응원입니다.

 

흔들리겠지만 그럴 땐 내가 나를 칭찬해 주면 됩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기쁨이니까요.

 

거절은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거절은 내 의사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런데 매번 제대로 거절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당신의 진심을 눈치챌 수도 없고, 당신을 줏대없는 사람으로 볼 겁니다. 그리고 바로 자기 관점에서 생각해 버리겠지요.

 

그 결과 사람들은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점점 더 많은 걸 요구하고 이를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착하다고 칭찬하면서 은근히 그의 뜻을 무시하고 계속 자기 의도대로 행동하게 하며, 점점 그것을 고마워하지 않게 되고 나중에는 당연히 자신을 따라야 한다고 여깁니다. 또한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 없고 원하는 바를 포기하곤 하기에 점점 자신감을 잃고 심한 경우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거절하지 않는다고 그 사람의 인간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타인과 진정한 접촉을 원한다면 물렁물렁한 반죽 덩어리가 아닌 확실하고 단단하 자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그 어떤 부탁도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스스로 자기 존재를 지워 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그런 상태로 어떻게 타인과 진정한 교류를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거절의 말을 듣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유쾌한 일은 아닐 겁니다. 때론 거절당했다는 아픔 때문에 상대방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거절은 구체적인 제안이나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그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겁니다.

 

거절의 의미를 확대 해석하지 않도록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거절하는 사람은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턱대고 아무 이유 없이 “싫어요.”라고 잘라 말한다면 상대가 자신의 존재를 거부당했다고 생각하고 상처 입거나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요.

 

분별 있게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자신의 경계와 한계를 분명히 하고 이를 존중해 달라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마세요. 장담하건대, 당신이 거절한다고 해서 상대가 당신을 싫어하는 일은 없을 거에요. 억지로 하는 일을 줄이고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으면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웃으며 부탁을 들어주는 것. 그처럼 진심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서로를 고마워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인간관계가 아닐까요?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소통하는 노력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지 마세요. 그런 위험한 기대는 나와 타인을 모두 힘들게 할 뿐입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내 감정과 원하는 바를 분명하게 전하고, 또 상대의 이야기에는 귀 기울여 봅시다. 상대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그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동기는 그 동기가 어디서 비롯되느냐에 따라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적 동기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흥미, 호기심, 도전 의식, 자기 만족감 등에서 비롯되는데, 쉽게 말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들이 내적 동기에 의한 활동입니다. 내적 동기로 시작한 활동은 결과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즐거움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오래갈 가능성이 크고, 수행자가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에 어려운 과제도 두려움 없이 도전합니다.

반면 외적 동기는 주어진 문제를 제대로 수행했을 때에 따른 보상이나 처벌에서 비롯되는데, 이를테면 성과금을 받기 위해 일을 열심히 하거나 학사 경고를 면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식이지요. 외적 동기에 의한 활동은 보상이나 처벌이 사라지면 그 행동의 동기 또한 없어지므로 지속력이 약하고,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수행자가 비교적 소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냉정히 말해서 우리는 결코 타인을 바꿀 수 없습니다. 어르고 달래거나 협박을 통해 잠깐은 변화시킬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상대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의 나쁜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그 자신뿐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바뀌어야 한다고 마음먹어야만 변화가 가능한 것이지요. 우리는 그저 상대가 나쁜 습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자극을 줄 뿐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 순간 상대를 판단하고 비난합니다.

 

이런 판단 이면에는 상대방이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자율성과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있는 한 우리는 결코 그의 내적 동기를 끌어낼 수 없습니다.

상대의 나쁜 버릇을 고치고 싶다면 우선 당신이 상대를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상대가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열정과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주세요.

 

먼저 개인의 욕구를 존중하면서 스스로 선택할 기회와 주도성을 행사하도록 도와줍시다. 그리고 목표를 성취하지 못해도 조금이라도 발전했다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칭찬해 주세요. 만약 스스로 세운 계획을 실천하지 못하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당사자가 찾도록 기다려 주면 됩니다.

이렇게 상대방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 상대 역시 내 말에 귀를 기울입니다.

 

우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습관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건 더 이상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이 점을 분명히 이해하면 오히려 쉽게 바뀌지 않는 상대를 보며 크게 마음 쓰지 않고, 언젠가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상대를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타인에게 보낼 수 있는 강력한 지지입니다.

 

우리가 선물을 주거나 더 나아가 선행을 베풀 때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반드시 선물을 받은 당사자가 돌려줄 필요는 없으며, 돌려주는 선물도 받은 물건에 해당하는 값어치여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선물을 주는 행위, 좋은 일을 하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이자 기쁨이고, 이것이 선물에 대한 충분한 대가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누구나 주는 만큼 받지 못해 억울함을 느낀 적이 있을겁니다. 그런데 ‘주는 만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 ‘준다’는 행위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 빼앗기는 것, 희생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사회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자기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살아 있고 자신이 충만하여서 상대에게 나의 능력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베푸는 행위는 나 자신에게 나를 과시할 수 있고, 그러면서 내가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확인시켜 주는 기쁨입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베풂은 돈이 있든 없든, 능력이 뛰어나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누릴 수 있는 사치이자 행복입니다. 그러니 ‘왜 나는 맨날 주기만 하는 걸까’, ‘왜 저 사람은 나에게 베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할 때는 숨을 한번 훅 내쉬고, 나는 베풂의 기쁨을 누렸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왕 주는 것, 기꺼운 마음으로 내어 주자고요. 진정으로 줄 수 있다면 우리는 그보다 훨씬 값비싼 선물을 받게 되니 억울할 게 전혀 없습니다. 바로 살아 있음의 충만감과 성장의 행복입니다.

 

우리는 자주 자신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나쁘다거나 틀렸다고 비난합니다.

 

이제 그만 옳고 그름의 잣대를 내려놓고 서로의 욕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세요. 감정싸움으로 모든 에너지를 써 버리기 전에 문제를 더 빨리 해결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겁니다. 내가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당신이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 그래서 서로 배려하고 더 행복해지려고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화의 진정한 동기입니다. 이런 대화법을 나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고 하여 ‘I-message'라고 합니다.

 

아무리 온순한 성격의 사람이라도, ‘너, 너, 너’를 연발하는 비난의 말을 듣게 되면 방어 본능이 가동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나는……’으로 시작되는 말에는 조금 더 귀를 기울여 문제 상황을 파악한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대화도 습관입니다. 자꾸만 상처를 주는 말을 반복하다 보면 그런 대화법이 패턴으로 굳어집니다. 그래서 사소한 자극에도 발끈하여 또다시 화를 내고 말지요. 우리는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줄 때, 또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할 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충만함을 느낍니다.

 

그러니 더 이상 말로 상처주지 마세요.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상대방에게 단신의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세요. 그것이야말로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전략입니다.

 

저는 누구나 살면서 할 번쯤은 무언가에 푹 빠져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 하나에만 몰두한 채, 그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인생에는 부모와 형제, 배우자, 자녀, 친구, 직업, 여가, 종교 등 우리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다양한 투자처가 많습니다. 그리고 생애 주기에 따라 가장 관심을 쏟아야 하는 투자처도 달라집니다.

 

만약 한 가지 일에만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 인생의 다른 요소에 구멍이 생길 위험이 크고, 그 한 가지를 잃게 됐을 때는 상상하기 힘든 만큼의 타격을 입게 될 것입니다.

 

이상적인 것은 모든 영역이 균형을 맞추며 살아가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러기가 힘들거든요. 대신, 영역들의 비중이 끊임없이 움직이되, 고정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영역이 과도하게 크고, 어떤 영역이 지나치게 미미한지 살펴보세요. 그러고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해나가도록 합시다. 인생에는 언제든지 폭풍우가 내릴 수 있고 이에 맞서기 위해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면 예기치 못한 일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손을 놓아 버리는 일은 막을 수 있습니다.

 

오로지 일에만 몰두할 때는 몇 가지 문제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첫째,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면 금세 방전되어 버립니다.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한 끝에 결국 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해도 인생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일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합니다.

 

쉴 때 쉬지 못하면 언젠가 방전되어 버립니다. 소크라테스는 “한가로운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고 말했고, 칸트는 “노동 뒤의 휴식이야말로 가장 편안하고 순수한 기쁨”이라며 휴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지요. 이처럼 휴식은 빈둥거리는 게으름이 아니라 창의력을 높이고 인생을 충만하게 만드는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편히 쉬는 일은 결코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독일의 어느 정신과 의사는 “하던 일을 멈추거나 미룰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건강하게 일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하나의 마라톤입니다. 폭발적인 힘을 내는 것도 좋지만 그러다가 지쳐 버리면 안 되는 거지요. 재미있게 달리기를 즐기고, 꾸준하게 노력하고, 여러 가지 균형을 이루며 달린다면 장거리 달리기도 어떻게든 걸어갈 수 있습니다.

 

특정 모델을 만들어 그에 따라 자기 인생을 필사적으로 맞춰 가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기 딱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회가 정한 성공에 맞춰 내 인생을 밀어 넣는 일은 멈춰야 합니다. 자기만의 기준을 세워 꿈을 꾼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네요.

 

어떤 순간에는 불운을 겪기도 하고, 피하고 싶은 현실을 마주하기도 하겠지요. 인생에 정해진 길은 없으니 ‘완벽한 삶’이라는 덫에 걸려 좌절하지 말고 여러분도 자신만의 꿈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매일 바쁘게 사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무기력한 상태에 놓인 경우가 많습니다.

 

무기력에 빠지면 괜히 피곤하고 만사가 귀찮아집니다. 그러나 뭐든 잘해야 한다는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가만히 있으면 왠지 불안해지는 탓에 손에 잡히는 대로 이것저것 해야만 하지요.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일에는 집중하지 못합니다. 무의식 속에는 ‘어차피 해도 안될 테니,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는 사실에 만족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합니다.

 

무기력은 너무도 달콤하지요. 포기해 버리면 좌절을 겪을 일도 없으니까요. 그러나 세상살이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까지 내 인생을 내버려 두어선 안 됩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 인생의 만족도는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기력은 쉽게 말해 ‘하고 싶어도 에너지가 바닥이 나 아무것도 못 하는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무기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수적인 일에 에너지를 탕진하고 나면 결국 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버립니다. 차라리 이 무기력이 오래 지속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에게 시간을 주세요. 무작정 바쁘게 살지 말고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조급함은 금물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인내이니까요.

 

사실 지금 당신의 현실은 모두 당신이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자꾸만 선택을 미루면 우리는 결국 아무것도 이룰 수도, 느낄 수도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성장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 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결정하는 일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선택하고 실패하면서 조금씩 자신에 대해 더 많이 알아 갑니다. 그러니 선택의 결과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답을 찾아 보세요. 그 누구도 나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정을 내려 주지 못합니다.

 

후회 없는 완벽한 선택을 하겠다는 욕심은 버리도록 합시다.

 

좋은 선택이란 완벽한 선택이 아닌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내리는 결정입니다. 선택에는 늘 목적이 있습니다.

 

무결점의 선택을 하겠다고 나서면, 선택 자체에 매몰되어 목적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따라서 선택 자체에 매몰되지 않도록 적정선의 기준을 가지고 고민을 멈춰야 합니다. 그다음 그 결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노력하면 됩니다. 선택은 선택의 순간뿐 아니라 선택 후의 과정에 따라 그 만족도가 달라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그때마다 ‘다른 것을 선택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에 휩싸이실 건가요? 그것만큼 에너지를 낭비하는 일도 없을 겁니다. 그러니 결정하고 난 다음에는 뒤돌아보지 마세요. 어차피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렇게 내 선택을 긍정적으로 수용할 때에만 우리는 결정에 대한 장점을 훨씬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조금도 쉬지 않고 너무 많은 약속을 잡거나 할 일들을 이어가다 보면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진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히 따질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바쁘게 살면 살수록 마음이 더 공허해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편 인생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앞서 말한 외로움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런 불안감이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조차 피해를 주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인생에는 적절한 쉼표가 필요한 법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을 멈추게 하고 굳어져 버린 생각의 족쇄에서 우리를 풀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이용해 평소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 시도해 보지 못한 것을 떠올리는 창조적인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니 결국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즐기고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이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 더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진짜 내 것을 얻기 위해서는 엑셀러레이터에서 발을 떼어 속도를 늦추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질문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지워 버려야 할 권태와 불안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를 찬찬히 돌아보고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기쁨과 축복의 시간입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만끽해 보세요.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시간을 긍정적으로 활용해 봅시다. 결국 당신은 깨닫게 될 거에요.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진정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을요.

 

지금 이 순간, 숨 가쁘게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면 잠시 멈추어서서 자문해 보라. 나는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내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 안젤름 그륀, <하루를 살아도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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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정서인
26.02.16 23:42

연휴에 독서라뇨!! 멋지십니다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짱이사랑맘
26.02.17 21:07

책이 상당히 괜찮아보이네요~ 남은 연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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