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한 숫자로 대한민국 부동산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보고 싶어서 글을 써봅니다. 국가데이터처의 통계포털에 나와있는 숫자를 토대로 축약하여 설명해보겠습니다.
대한민국 마을은 89채의 집에 100가구가 살고 있어요. (전국 주택수 1,987만여채, 전국 가구수 2,229만여가구)
이 중에 유주택 가구는 57가구이고 무주택 가구는 43가구에요. 실제 시장은 조금 더 복잡하지만, 간단한 설명을 위해 유주택 가구인 57가구가 89채를 갖고 있고, 무주택 가구 43가구는 세입자라고 해봅니다. 유주택 가구 57가구 중 1주택 가구는 42가구이고 2주택 이상 가구는 15가구에요.
대한민국 마을의 촌장은 이러한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2주택 이상 가구 15가구가 갖고 있는 47채 중 본인들이 실거주하는 집을 제외하고 32채를 무주택 가구 43가구에 매도할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다주택 가구가 10채를 무주택 가구에 파는 데 성공한다고 가정하죠. 그러면 이제 유주택 가구는 57가구에서 67가구로 늘어나고 무주택 가구는 43가구에서 33가구로 줄어들어요. 유주택 가구 중에서 1주택 가구는 52~62가구 사이가 될테고(무주택자 → 1주택자로 10가구, 2주택 이상 → 1주택자로 0~10가구), 2주택 이상 가구는 5~15가구 사이가 되겠죠. 간단하게 중간 정도로 해서 1주택 가구는 57가구, 2주택 이상 가구는 10가구가 된다고 가정해보죠.
촌장이 다주택자 가구에 주택 매도를 권고하기 전 상황을 뒤돌아볼게요.
2주택 이상 주택 가구가 들고 있던 47채 중 본인들이 실거주하는 집을 제외한 32채에 무주택 가구 43가구가 살고 있죠. 임대 매물 경쟁률은 1.34대1이네요. (43대32)
촌장이 다주택자 가구에 주택 매도를 권고하고 나서 상황은 어떻게 되었나요.
2주택 이상 주택 가구가 들고 있는 32채 중 본인들이 실거주하는 집을 제외한 22채에 무주택 가구 33가구가 살게 되네요. 경쟁률은 1.5대1이 되죠. (33대22)
다주택자가 무주택자에게 보유 주택을 매도할 경우 매매가는 낮아질 수 있으나 전월세가는 잔여 임대 매물 감소로 인해 상승이 불가피할 겁니다. 무주택자로 남겨진 33가구가 22채를 놓고 경쟁하게 됨으로써 경쟁률은 더욱 올라가고 전월세가도 자연스레 더 오를 수밖에 없게 되는 셈이죠.
결국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강화로 다주택자가 감소를 거듭할 경우, 여력이 있는 세입자는 다주택자의 급매 매물을 취득하여 이득을 볼 수 있는 반면, 여력이 없는 세입자는 임대 매물 감소로 더욱 어려운 형편에 놓인다는 게 위 예시에서 보여드리고자 했던 내용입니다.
이럴 때 촌장이 나서서 어려운 형편에 있는 33가구에게 공공임대 주택으로 주거지를 마련해주면 좋겠으나 대한민국 마을의 주택 중에서 공공 비중은 14% 수준에 불과합니다. (비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89채 중 12채에 해당되겠네요.)
이재명 대통령이 싱가포르 방문 시 싱가포르의 부동산 운영 상황에 찬사를 표하면서 이를 벤치마킹하겠다고 했으나, 공공 비중이 80%에 달하는 싱가포르와 14%에 불과한 대한민국은 그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점에서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생각입니다.
공공주택 비중을 대폭 늘릴 수 있다면 다주택자의 필요성도 대폭 줄어듭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일정 수준의 다주택자는 필요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다주택자가 집값 상승뿐 아니라 전월세 부족의 주요 원인이라고 언급한 대통령의 인식은 잘못 되었습니다. 대통령의 다주택자 매도 주장에 노모의 거처를 흑백 사진으로 게재하여 감성적 호소에 나선 야당 대표의 대처도 잘못 되었습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강력한 매도 권고로 매물이 늘어나고 있고 부동산 매매가가 하향 안정화의 길로 가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는 전국 모든 지역의 전세수급지수가 전세대란 수준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다주택자의 수를 줄여서 임대 유통 매물을 더욱 줄인다는 것은 향후 전세대란의 폭을 더욱 키울 가능성을 높이고 주택을 매수하지 못한 세입자들에게도 큰 타격을 준다는 점을 정부 당국이 인식해야 합니다. 야당도 시장 메커니즘에 대해 국민들에게 소상히 설명하는 방식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시장과 정책, 규제와 부작용에 대해 정부와 야당이 합리적이고 의미있는 논의를 했으면 합니다. 의식주 중 하나인 주(住)에 해당되는, 국민들의 삶에 직결되는 이슈를 일방통행식으로 결정하고 추진했을 때 수많은 부작용들이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P.S) 서울만 따지면 어떻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어서 별도로 환산해봤습니다.
서울은 14채의 집에 19가구가 살고 있어요. (서울 주택수 317만여채, 서울 가구수 416만여가구)
19가구 중에 유주택 가구는 9가구이고 무주택 가구는 10가구에요. 즉, 유주택 가구인 9가구가 14채를 갖고 있고, 무주택 가구 10가구는 세입자라고 해봅니다. 유주택 가구 9가구 중 1주택 가구는 7가구이고 2주택 이상 가구는 2가구에요. 1주택 7가구가 7채를 보유하고 있고, 2주택 2가구가 7채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네요.
2주택 2가구가 실거주하는 집을 빼면 7채 중 5채를 세를 놓고 있다고 볼 수 있고, 세입자는 10가구이기 때문에 임대 매물 경쟁률은 2대1입니다.
2주택 2가구가 7채를 가지고 있으니 각각 4채, 3채를 들고 있다고 치고, 그 중 한 가구가 실거주 주택을 제외하고 나머지 3채를 전부 세입자에게 매도하면 남은 임대 매물은 2채, 남은 세입자는 7가구가 되어서 임대 매물 경쟁률은 3.5대1이 됩니다.
다주택자의 보유 주택을 세입자에게 매각할 경우 전국 단위보다 서울의 임대 매물 경쟁률이 더욱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매물의 뎁스(Depth)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서울이 상대적으로 임대 매물의 모수가 적기 때문에 작은 수급 불균형 차이에도 변동성이 더욱 커질 여지가 생겨나는 것이죠.
가령 임대 매물 경쟁률이 같은 2대1이어도, ① 임대 매물이 5채에 임대 수요가 10가구인 경우와 ② 임대 매물이 1채에 임대 수요가 2가구인 경우 역시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①번의 경우 임대 수요 10가구는 A라는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B라는 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②번의 경우 이 집을 놓치면 갈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2대1 경쟁률이어도 "절박함"에서 큰 차이가 있기에 전월세가는 후자가 더욱 치솟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주택자를 갈수록 줄여가는 정책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일으킬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p.s) 새 정부 출범 이후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통해 연일 부동산 관련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습니다. 이에 향후 정부의 정책은 어디로 흐를 것이고 시장은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내용을 정리하여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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