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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살 수 있었는데"... 국민 84%가 느끼는 이 감정의 원인

18시간 전

2023년, 직장인 A가 서울에 아파트를 샀습니다.

 

그때 직장인 B도 비슷한 자금이 있었습니다. 

같은 지역을 같이 봤고, 같이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인 B는 "조금 더 지켜보자"고 했고, 

직장인 A는 샀습니다.


3년이 지났습니다. 

그 집은 2억이 올랐습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기 불편한 이유가 있습니다. 

 

"나도 살 수 있었는데"라는 말이 붙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 사람이 부자가 됐다면 그냥 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나도 선택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면, 

그 박탈감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이 감정, 나만 느끼는 게 아닙니다

 

한국리서치가 올해 3월 전국 성인 1,000명을 조사했습니다.

결과가 놀라웠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박탈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68%였습니다. 

4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55%였습니다. 

 

더 충격적인 숫자가 있습니다. 순자산이 늘어난 사람들 중에서도 69%가 불안하다고 답했습니다. 

 

"열심히 해도 삶을 개선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응답은 84%였습니다.

(출처: 한국리서치)

출처:마그니픽

 

숫자가 말해주는 게 하나 있습니다. 

 

자산이 있어도 불안하고, 없어도 불안한 겁니다. 

자산이 오를수록 박탈감도 같이 올랐습니다.

 

이 감정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이 공유하는 구조적인 감정입니다.


왜 "그때 살 수 있었는데"가 이렇게 오래 남을까요

박탈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처음부터 닿을 수 없었던 것에서 오는 박탈감입니다. 재벌가의 삶, 타고난 환경의 차이. 이건 아프긴 해도 오래 남지 않습니다. 내 세계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에서 오는 박탈감입니다. 같은 월급, 같은 자금, 같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 다른 결과를 얻었을 때. 이 감정은 오래갑니다. "나도 할 수 있었는데"가 붙기 때문입니다.

 

지금 많은 분들이 느끼는 게 바로 두 번째 박탈감입니다. 

 

코스피가 6,600을 넘어섰는데 내 계좌는 그대로고, 

옆 동료는 몇 년 전에 산 집이 2억 올랐습니다. 

완전히 다른 세계 사람이 아닙니다. 

 

나와 비슷한 출발선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더 아픕니다.

출처: 손흥민 선수 SNS

 

손흥민 선수보다 축구를 못한다고,

김연경 선수보다 배구를 못한다고,

페키어 선수보다 게임을 못한다고

박탈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박탈감은 내가 닿을 수 없다고 느낄 때가 아니라, 

닿을 수 있을 것 같을 때 옵니다. 

 

그 감정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그 안에 "나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살 수 있었는데"라는 말이 오래 남는 이유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걸 어딘가에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을 어떻게 쓸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박탈감에는 두 가지 출구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감정을 남과 비교하는 데 쓰는 겁니다. 

 

"그때 왜 안 샀지", "왜 나만 이럴까"를 반복합니다. 

이 방향은 끝이 없습니다. 

 

남의 밭에 열린 열매를 바라보느라 내 밭에 자라나는 싹을 놓치는 겁니다.

헤밍웨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은 아니다. 

 

참된 고귀함은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해지는 데 있다."

 

나와 출발선이 비슷했던 사람의 성과가 눈부실수록, 그 빛이 마치 내 삶이 오답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저 그들의 토양에서 땀 흘려 그들만의 계절을 맞이한 겁니다. 

 

내 봄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일 뿐, 

영원히 겨울인 것은 아닙니다.

출처:마그니픽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오고 꽃이 피는 것처럼,

상승 뒤에는 하락이 오고, 다시 상승이 오는 것처럼

각자의 계절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때 살 수 있었는데"라는 말이 오래 남는 건, 

지금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는 데 그 에너지를 쓰기엔, 

우리의 삶이라는 무대가 너무 귀합니다.

 

어제의 나보다 한 뼘 더 성장한 오늘의 내가 있다면, 

내 토양에서도 반드시 나만의 열매가 맺어질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해볼 수 있는 것들

 

첫째, 비교 대상을 과거의 나 혹은 과거의 누군가로 바꾸세요. 1년 전 나보다 지금 내가 얼마나 더 알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면, 비교는 소진이 아니라 성장이 됩니다. 혹은 성과를 낸 사람의 현재를 비교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쓴 과거의 흔적을 쫓아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둘째, 그 박탈감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 보세요. "그때 저 집을 샀어야 했는데"라는 감정이 든다면, 지금이라도 그 지역을 공부해보세요. 감정이 가리키는 곳에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셋째,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지 마세요. 2023년이 좋은 타이밍이었던 건 지나고 나서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몇 년 뒤에는 누군가의 "그때 시작했어야 했는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살 수 있었는데"라는 말이 오래 남는 건, 

지금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감정을 소진하지 마세요. 시작의 연료로 쓰시기 바랍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


댓글

버즈으
18시간 전

아쉬움의 감정을 소진이 아닌 연료로!! 어제보다 한뼘만 더 나아지겠습니다:)

탑슈크란
17시간 전

후회할 시간에 공부하고 행동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룰루랄라7
16시간 전

감정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의 원료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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