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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10년 만에 두 배가 됐는데, 제 통장은 왜 그대로 0원이었을까요

3시간 전

저는 요즘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15년 전 입사했을 때 제 첫 월급은 230만 원 남짓이었습니다. 

10년이 지났을 때, 저는 그 두 배에 가까운 월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매달 25일이 지나면 통장은 똑같이 비어 있었습니다.

 

15년 전에도 0원, 10년이 지나도 0원. 

월급이 두 배가 됐는데 잔고는 어떻게 똑같이 0원일 수 있을까.

그 답을 찾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늘은 그 답을 나눠보려 합니다.

 

 

평범하게 사는 비용이 폭등한 시대

 

먼저 숫자 몇 개만 봐주세요.

 

한국인 1인당 명품 소비액. 약 40만 원 (세계 1위, 몇 해 전 모건스탠리 분석)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월평균. 60만 4천 원 (2025년 통계청 조사, 사상 첫 60만 원 돌파)

서울 사교육 참여 학생 1인당. 80만 3천 원

가구당 평균 부채. 9,534만 원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

 

이 숫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10년 전 제가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 외제차는 회사에서 임원급이나 타는 차였습니다. 

지금 회사 주차장을 둘러보세요. 

대리, 과장 자리에 BMW와 테슬라가 나란히 서 있습니다.

 

10년 전 '오마카세'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친구 생일에 1인당 15만 원짜리 식당 예약이 평범한 인사가 됐습니다.

 

10년 전 영어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는 "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지금은 월 200만 원짜리 영유에 못 보내는 부모가 "유난스럽지 못해 미안하다"고 합니다.

 

평범의 기준이 올라갔습니다. 그것도 아주 가파르게.

 

 

'평범 유지비'를 계산해 봤습니다

 

저는 어느 날 직접 적어봤습니다. 

30대 직장인이 그저 "남들만큼만 살기 위해" 한 달에 얼마를 쓰는지.

항목월 평균
자녀 1명 사교육비 (서울 평균)80만 원
외식·배달 (주 2회)30만 원
카페·구독 서비스15만 원
의류·뷰티 (계절 평균)10만 원
가족 행사·경조사10만 원
합계145만 원

자녀가 둘이면 여기에 80만 원이 더 붙습니다. 

명품, 여행, 차량 할부까지 더하면 200만 원은 우습게 넘어갑니다.

월급 500만 원 직장인이 세금과 4대 보험을 떼고 손에 쥐는 돈은 약 410만 원. 

 

이 중 145만 원이 '평범 유지비'로 빠져나갑니다.

우리는 특별한 소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남들만큼만 살았을 뿐인데, 매달 145만 원이 사라집니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 붉은 여왕 이야기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붉은 여왕이 앨리스에게 말합니다. 

"여기서는 같은 자리에 머물기만 해도, 죽을힘을 다해 달려야 한단다."

 

생물학자들은 이것을 '붉은 여왕 가설'이라 부릅니다. 

포식자와 먹잇감이 함께 진화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잡아먹힌다는 이론입니다.

 

저는 이 이론이 오늘날 30대 직장인의 통장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봅니다.

내 월급이 오른다 → 동료도 오른다 → 평균이 오른다 → 평범의 기준이 오른다 → 내 지출이 따라 오른다 → 결국 통장 잔고는 그대로다.

 

우리는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뜀박질은 우리를 제자리에 두기 위한 뜀박질이었을 뿐입니다.

 

 

정말 무서운 통계는 이겁니다

 

저는 지난해 말 나온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를 보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전체 가구의 평균 자산은 1년 새 4.9% 늘었습니다. 

순자산도 5% 늘었습니다. 

부동산값이 오른 영향으로, 나라 전체로 보면 자산은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딱 한 세대만 거꾸로 갔습니다.

39세 이하 가구. 전 연령대 중 유일하게 자산도, 순자산도 줄어든 세대였습니다. 

40대와 50대의 자산이 각각 7.7%씩 불어나는 동안, 30대 이하의 자산은 뒷걸음질 쳤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월급이 오른 만큼, 아니 그보다 빠른 속도로 평범의 비용이 올랐고, 그 차액을 메우려 빚을 끌어다 썼기 때문입니다.

 

같은 조사에서 39세 이하 가구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처음으로 30%를 넘었습니다. 

저축을 모두 깨도 금융부채를 다 갚지 못하는 수준이, 전 연령대 중 가장 심각합니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빚지고, 자산은 오히려 줄어든 세대. 

지금의 30대는 자산 사다리의 첫 칸에서 미끄러지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가 우리 나이였을 때보다, 평범하게 살면서 자산을 쌓기가 훨씬 어려워진 세대입니다.

 

 

이 굴레를 끊는 단 하나의 방법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이런 생각이 드실 겁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건데? 친구들 다 가는 식당을 나만 안 가? 애만 학원 안 보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필요한 건 "평범하지 않을 용기"가 아닙니다. 

"평범의 정의를 내가 다시 쓸 용기"입니다.

 

남들의 평범은 소비입니다. 저의 평범은 자산입니다.

남들이 한 달 145만 원을 평범 유지비로 쓸 때, 저는 그 돈 중 80만 원을 떼어 매달 자산으로 옮겼습니다.

 

10년이 지났습니다.

남들은 여전히 매달 145만 원을 쓰며 통장이 0원이고, 

저는 그 80만 원이 만든 자산이 매달 월급의 절반에 가까운 돈을 가져다줍니다.

 

이게 제가 '한가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일을 안 해서가 아닙니다. 

제 자산이 저 대신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장 시작할 수 있는 3가지

 

거창한 결심은 필요 없습니다. 저는 늘 작은 시작을 권합니다.

 

1. '평범 유지비' 가계부를 한 달만 써보기 

배달, 카페, OTT, 무심코 산 옷과 신발. 

한 달만 적어보면 "이게 정말 내 욕망이었나?"라는 질문이 저절로 따라옵니다.

 

2. SNS 팔로우 정리하기 

호캉스, 오마카세, 명품 언박싱 영상을 매일 보면서 소비가 줄어든 사람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3. 자동이체 자산 계좌 한 개 만들기 

금액은 상관없습니다. 30만 원도 좋고, 10만 원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평범 유지비보다 자산을 먼저 떼는 순서입니다.

 

저는 가끔 아이가 잠든 모습을 한참 바라봅니다.

이 아이가 30대가 됐을 때, 지금의 저처럼 "월급은 두 배 올랐는데 통장은 0원"인 채로 살기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죄가 아닙니다. 

다만 한국에서 평범의 가격표가 너무 비싸졌다는 게 문제일 뿐입니다.

평범의 정의를 남에게 맡기는 순간, 통장은 평생 0원입니다. 

평범의 정의를 내가 다시 쓰는 순간, 인생이 한가해집니다.

 

오늘 저녁, 가계부 한 줄만 적어보세요. 

그게 30대를 끝내기 전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결정입니다.

 


댓글

원더
1시간 전N

용기가 필요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성인 자녀가 재테크 공부해야 하는 이유네요. 감사합니다.

빌리89
3시간 전N

39세 이하 가구의 부채비율..!! 항상 소비와 지출를 점검하고, 자산이 일 할 수 있도록 행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루리3
2시간 전N

명쾌하게! 잘 정리해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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