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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후기
STEP1. 책의 개요
1. 책 제목: 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
2. 저자 및 출판사: 홍춘욱 / 상상스퀘어
3. 읽은 날짜: 7/10 ~
4. 총점 (10점 만점): 9점 / 10점
STEP2. 책에서 본 것
○1부
[1장. 한양 10리 밖을 벗어나지 말라]
※요약
조선 후기, 경제와 사회 전반에 대단히 큰 변화가 출현했다. 모내기가 시작되면서 토지 생산성이 향상된 데다, 정부가 개간과 개척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토지 소유권이 상당 부분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 17세기 말부터 조선 사회는 강력한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소빙하기 충격이 마무리된 후 인구가 늘어나고, 상품 시장이 성장하며, 화폐 경제가 활성화된 것이 이를 입증한다.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 덕분에 한양의 집값은 18세기부터 19세기 내내 상승했지만, 토지 가격은 18세기부터 개항기까지 지속적인 하락을 경험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서울을 선호하는 현상은 매우 오랜 기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2장. 나라님이 당백전 찍어낼 때, 내 재산을 지킬 방법은?]
※요약
식민지 시대 우리 경제는 큰 변화를 맞이했다. 일제와 일본인에 의한 경제 침탈과 지주 계층의 소득이 쌀 수출 덕분에 크게 증가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불평등이 심해진 것이다. 특히 농업 생산성의 향상으로 토지에 기반을 둔 부자들이 형성되고, 이들은 서울의 부동산 매수에 열을 올렸다. 물론 서울 주택의 상당 부분을 일본인이 소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부유층의 요구에 맞춘 문화주택 등이 공급되면서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집값은 폭등했고, 일제는 행정 구역 확대와 신규 택지 개발에 나섬으로써 서울을 둘러싼 "끝없는 신도시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3장. 장남만 상속받으라는 법 있나요?]
※요약
농지 개혁 이후 소가족 위주의 사회로 변신하며 한국 경제는 강력한 성장 모멘텀을 형성할 수 있었다. 가족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 재산권을 행사하며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교육 수준의 향상과 민주적인 사회로의 출발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일플레 영향으로 실질적인 토지 가격은 오르지 못했지만, 전쟁의 상처가 치유되고 포용적 성장이 시작되는 순간, 강력한 가격 상승이 시작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4장. 폭격을 맞아도 도시가 좋아!]
(62p) 전쟁의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음에도 서울 인구가 늘어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의문을 푸는 데 경제학자들은 클러스터라는 용어를 도입한다. 클러스터란 교육과 기업 그리고 인재들이 모여 혁신을 창출하는 곳을 뜻한다.
가장 대표적인 클러스터로 미국 실리콘 밸리와 할리우드를 들 수 있다. 집 값이 아무리 비싸도 정보 통신 산업 전문가와 영화 산업 종사자는 이곳으로 끊임없이 몰려든다. 클러스터에 일자리와 정보 그리고 인재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76p) 1967년에 일어난 두 가지 사건이 영등포 - 인천이 아닌 강남으로 개발의 방향을 바꾸게 된다.
첫 번째 전환점은 한남대교(제3한강교) 착공이었다. 1967년 박정희 후보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공약으로 제시함으로써 '인천 - 부평 - 영등포' 개발 계획의 동력이 사라졌다. 한남대교가 경부고속도로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 결정적이었다.
두 번째 전환점은 소양강 댐 건설이었다. 박정희 정부의 3대 국책 사업 중 하나로 나머지 둘은 경부고속도로와 서울 지하철이었다. 1973년 소양감 댐 완공 이후 한강 유역은 1925년 같은 대홍수 피해를 보지 않게 되었다.
(78p) 강남 지역의 주택 가격이 폭등한 것과 대규모 신도시 건설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른바 '공유 수면' 매립 덕분이었다. 지금 올림픽 종합 경기장이 있는 잠실이 1960년대에는 섬이었다. 여름에는 홍수가 발생하면서 한강의 여러 모래섬이 물에 잠기고, 또 둑이 없는 곳으로 범람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건기에는 홍수 때 떠내려온 모래와 자갈이 새로운 섬을 끝없이 만들어 내곤 했다. 장마 때 물에 잠겼다 가뭄에 뭍이 되는 주인 없는 땅이 공유 수면인데, 여기에 둑을 쌓다 땅을 말리면 훌륭한 택지가 될 수 있다. 서울 강남의 대표적 부촌인 압구정과 반포 그리고 잠실이 바로 공유 수면 매립으로 만들어졌다. 공유 수면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함으로써 건설사는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정부는 사회 간접 자본 프로젝트의 비용을 조달하며, 정치인과 공무원들은 두둑한 정치 자금을 챙길 수 있었다.
※요약
1960년대 발생한 강력한 부동산 가격 상승 현상은 두 가지 요인이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대도시로 인구 이동이 집중된 것이고, 두 번째는 베트남 파병과 한일 국교 정상화에 따른 대규모 외국 자본의 유입이다. 1967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기 전부터 서울 주변부를 중심으로 강력한 가격 상승이 출현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따라서 강남 개발은 전국적인 주택 가격의 상승 탄력을 강화한 계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남의 의미는 계기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새로운 도시의 건설로 강남의 지위는 흔들리지 않는 기반 위에 올라서게 된다. 앞으로 전개될 다양한 형태의 주택 시장 사이클의 마지막이 항상 '강남의 승리'로 끝나게 될 발판이 만들어졌다는 면에서, 1960년대 주택 붐은 되새겨 볼 가치가 충분하다.
[5장. 정부를 믿을 수 없을 때, 어떤 자산이 유망한가?]
(97p) 1967년과 1978년, 두 차례의 부동산 시장 정점을 보면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 째, 주택 가격 상승의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 성장률 변화라는 점이다. 1968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경기의 둔화, 그리고 1979년 이란 혁명 등으로 촉발된 불황은 가계의 미래 소득 전망을 어둡게 했다. 소득 전망이 악화될 때는 높은 PIR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둘 째, 강력한 주택 시장 안정 대책은 성장률 둔화의 충격을 키운다는 점이다. 대대적인 양도세 부과가 이뤄진 가운데 경기가 나빠지니, 재력가들도 적극적인 주택 매수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주택 시장 사이클은 한국이 닫힌 세계가 아닌, 세계 경제의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새겨주는 것 같다.
※요약
1960년대 말부터 시작해 1979년에 끝난 두 번째 주택 사이클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한국 부동산 시장의 사이클을 결정짓는 것이 수출 경기라는 점이다. 정부가 아무리 다양한 정책을 펼치더라도, 글로벌 경기 여건이 좋고 국민 소득이 늘어날 때는 주택 가격을 잡을 수 없었다. 두번째로 중요한 포인트는 '부동산 불패 신화'의 형성이다. 1972년 '8.3 조치'를 계기로 정부의 사유 재산 보호가 불투명하다는 점을 인식한 재력가들은 틈이 날 때마다 부동산을 매수했다. 정부가 경제 성장을 명분으로 사채를 동결하는 마당에 부동산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인식은 1989년 말 세번째 주택 시작 정점 까지도 부동산 시장에서 압도적인 힘을 발휘했다.
[6장. 공급 앞에 장사 없다!]
※요약
1978년부터 시작된 약세장은 주택 공급 부족 및 3저 호황을 계기로 끝나고 새로운 강세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주택 공급과 부동산 규제 조치 영향으로 상승세가 꺾였다. 특히 일본은 물론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와 함께 불황이 시작되었다는 면에서, 한국 부동산 시장이 글로벌 사이클에 편입된 첫 번째 국면이었다고 볼 수 있다.
[7장. 일본형 장기 불황을 겪지 않는 이유는?]
(117p) 한국 주택 시장의 흐름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경기와 주택 공급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소득 전망이 악화되고, PIR이 높아지니, 주택 수요가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119p) 1990년대 주택 가격 폭락 사태는 1997년 외환 위기라는 외부 충격 외에도 경제 성장 둔화, 도시화 흐름 중단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124p) 1999년 이전까지 한국 주택 시장은 성장률과 주택 공급만 보면 되었지만, 이때부터는 금리와 대출 조건도 투자 의사 결정의 중요 부분으로 부각되었다.
※요약
1990년대 한국 부동산 시장은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했다. 외환 위기와 공급 과잉의 파도 속에 주택 가격이 떨어지고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과 달리 명목 가격의 하락이 크지 않았고, 주택 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디플레 스파이럴로 이어지지 않았다. 더 나아가 1999년 부터 주택 담보 대출이 활성화되고, 수출이 살아나자, 주택 시장은 강력한 상승세를 맛보았다.
[8장. 수도권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면, 인구를 지방으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133p)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단일한 요인 하나로 전체 부동산 시장을 설명하려 들면 위험하다. 1970~1980년대에는 수출과 주택 공급이 가장 중요한 변수였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지역별 인구 이동, 금리 변화, 품목별 수출 동향 등이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만 보면 부동산 시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하는 이들은 전문가가 아니거나 불순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요약
2000년대 초반 수도권 아파트의 강력한 가격 상승에 대응해, 노무현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 카드로 대응했다. 즉,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방으로 내려보냄으로써 수요 기반을 없애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정책은 2010년 중반까지 큰 효과를 보았다. 수도권 인구 비중이 줄어드는 동안 서울 부동산 시장이 '하우스 푸어' 사태를 겪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 흐름은 2014년을 고비로 꺾이고 말았다. 시진핑 정부가 그림자 금융을 규제하면서 조선, 화학, 철강 등 동남 벨트 제조업 경기가 악화된 데다, 혁신, 행복 도시로의 이주가 일단락되면서 수도권 인구 감소 현상이 멈추었기 때문이다. 특히 2016년부터 시작된 반도체 호황으로 수도권에 본거지를 둔 기업들의 실적이 개선되고 돈이 풀리면서 주택 시장은 미분양이나 금리 변화와 같은 한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성을 띠고 있다. 부디 한두 가지 요인으로 시장을 설명하려는 선무당에게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9장. 분양가 상한제와 임대차 3법의 불행한 만남]
(137p) 서울 아파트 공급이 지속적으로 감소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용적률 규제 때문이다. 2000년에는 250%로 조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적률이 낮아지면, 동일한 땅에 공급되는 주택의 숫자가 줄어든다.
(138p) 당국은 "분양가 상승이 기존 주택 가격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라는 결론을 내리고 분양가 상한제를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경제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몇 가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분양가가 억제되면 재건축, 재개발의 동력이 약화된다는 점이다. 안 그래도 용적률 규제가 매우 빡빡한데, 분양가를 억제하면, 재건축, 재개발의 채산성이 악화된다.
(144p) 금리 하락은 주택 시장에 세 가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첫째, 금리가 내려가면 가계의 저축 욕구가 낮아지는 가운데, 경제 전반에 유동성이 크게 늘어난다. 가계가 낮은 금리에 실망해 소비를 늘리면,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고, 기업은 대출을 받아 신규 채용을 늘리거나 투자를 기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다시 은행의 예금과 대출이 늘어나며, 경제 전반에 선순환을 일으키는 것이다.
둘째, 금리 하락으로 주택 구입의 기회비용이 낮아진다. 금리가 인하되면 이전에 주택을 보유하지 않던 이들도 "집 한 채 사두는 게 났겠다."라며 매수 대열에 참여하게 된다.
셋째, 금리 인하의 마지막 효과는 차입 비용의 감소다. 2020년 서울 아파트의 LTV는 40%에도 미치지 못했고, 광역시도 50% 초반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출이 적더라도 이자율이 낮아지는 순간, 차입 비용의 감소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요약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한국 부동산 시장은 강력한 가격 상승을 경험했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저금리와 공급 부족 그리고 임대차 3법의 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 결과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주요 도시 주택 가격은 소득이나 이자율에 비해 심각한 버블 수준에 도달하게 되었다. 물론 버블이 형성된다고 해서 곧바로 붕괴되는 것은 아니지만, 부실한 기초 례력은 외부 충격에 쉽게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2022년에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는 시장 금리의 급등을 유발하는 한편, 정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측면에서 부동산 시장의 폭락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2부
[10장. 왜 2022년 말에 서울 아파트를 샀나?]
(156p) 금리는 주택 시장의 경기 사이클을 좌우한다. 정부의 정책 금리가 인상되면 예금 금리가 오르고, 이는 다시 대출 금리 인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반대로 2020년처럼 금리가 인하되면 시중 유동성이 늘어나는 가운데 대출 금리도 내려간다.
(158p) <그림10-3>은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과 서울 아파트 실거래 가격의 관계를 보여 주는데, 2008년이나 2022년 처럼 환율이 바닥에서 400~500원 이상 상승한 시기에 주택 가격이 급락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환율의 급등세가 진정되면서 안정을 찾을 때, 주택 시장도 회복되는 게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환율이 '경제의 신호등'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환율의 상승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촉발된다. 하나는 글로벌 외환 시장의 동향이다. 미국 달러 가치가 상승할 때, 변방의 지역 통화인 원화 가치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환율에 영향을 미치는 두번째 요인은 국내 외국인 투자자들의 동향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이나 채권의 미래를 비관하면서 매도하면, 외환 시장에서 '달러 매수'로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약
2022년 봄부터 시작된 서울 등 핵심 지역 주택 가격의 하락은 절호의 매수 기회를 제공했다. 금리가 급등했다가 크게 떨어진데다, 레고랜드 사태 때 1400원까지 상승했던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이 연말에는 1300원을 밑돌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양도세를 일시 완화하는 등 적극적인 부양에 나선 것도 주택 가격의 상승을 유발했다. 마지막으로 단 7개월만에 서울 아파트 실거래 가격이 20% 이상 하락하는 등 '저평가 매력'이 부각된 것도 주택 시장의 반등을 유발한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주택 시장의 단기적인 흐름을 읽고자 하는 사람은 환율과 금리 그리고 정부 정책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1장. 중국 부동산 시장은 왜 회복되지 못했나?]
※요약
2022년 봄부터 시작된 중국 주택 가격의 하락세가 만 3년을 넘기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일본처럼 PIR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고,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훌쩍 넘긴 상황에서 발생한 주택 가격 폭락 사태는 경제애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건설, 부동산 부문에 종사하던 근로자들의 대량 실업 사태와 수요 위축으로 인한 디플레 위험뿐만 아니라 통화 정책 당국이 신속한 대처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본형 장기 부황의 위험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2022년 한국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12장. 정부 정책만 보면 부동산 바닥을 잡을 수 있다]
※요약
주택담보 대출이 부동산 시장에 자리를 잡은 1990년대 말 이후, 가장 중요한 지표는 금리가 되었다. 그런데 금리 못지않게 중요한 부동산 순환 지표가 바로 정부의 주택 시장 부양 대책이다. 다주택자들의 적극적인 시장 참여를 독려하는 신호, 예를 들어 양도세 완화, 분양권 전매 제한 해제,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는 비관론을 내려놓고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STEP3. 책에서 깨달은 것
STEP4. 책에서 적용할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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