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0.84%, 무너진 건 종목이 아니라 분별력

26.07.29 (수정됨)

어제 오전 10시 13분, 코스피에 서킷브레이커가 걸렸습니다. 

서킷브레이커는 올해 여덟 번째였고, 이달에만 세 번째였습니다.

장은 6,400.27로 시작했습니다. 이미 전날보다 5.26% 낮은 출발이었습니다. 

9시 6분에 매도 사이드카가 울리고, 한 시간쯤 뒤에 거래 자체가 멈췄습니다. 

장중 5,992.91까지 밀려 6,000선이 깨졌고 종가는 6,023.66. 

하루에 732.09포인트, 10.84%가 빠졌습니다. 

코스닥도 7.72% 내리며 1년 3개월 만에 700선을 내줬습니다.

하락 폭으로는 역대 2위, 하락률로는 역대 4위입니다.

 

삼성전자 한 종목이 13.39% 내렸습니다. 

7월 한 달로 넓혀 보면 코스피는 28% 가까이 내려앉았습니다.

 

원인은 하루 만에 정리됐습니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가 상하이 과창판에 상장했고, 첫날 공모가 대비 465.82% 올랐습니다.

시가총액 3조 2,800억 위안. 여기에 중국이 DUV 장비를 자체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이 얹혔습니다. 

지금 월 24만 장 수준으로 추정되는 CXMT의 D램 생산 능력이 60만 장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계산이 돌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켜온 과점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공포가 시장 전체를 덮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오전, 두 시간 만에 시장이 두 번 뒤집혔습니다

 

오늘 장 시작 전에 SK하이닉스가 2분기 실적을 냈습니다. 

매출 79조 3,187억 원, 영업이익 60조 5,426억 원. 

전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 256.8%, 영업이익 557.2% 늘어난 분기 사상 최대 실적입니다.

 

시장은 반겼습니다. 

9시 10분 코스피는 2.66% 오른 6,183.83이었고 장중 6,195.00까지 올랐습니다. 

어제의 공포가 과했다는 이야기가 곧바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10시 15분에 하락으로 돌아섰습니다. 10시 50분부터 낙폭이 커졌습니다. 

오전 11시 5분 기준 코스피는 전날보다 327.06포인트, 5.43% 내린 5,696.60입니다. 

5,700선 아래입니다. 이틀 연속으로 매도 사이드카가 걸렸습니다. 

SK하이닉스는 장중 140만 원이 깨졌습니다.

두 시간 사이에 지수가 8% 가까이 움직였습니다. 위로 갔다가 아래로 갔습니다.

 

그 두 시간 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중국의 증설 계획은 아침과 지금이 같습니다. 

SK하이닉스가 방금 발표한 실적도 아침과 지금이 같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만드는 물건도, 그 물건을 사가는 고객도 같습니다.

 

달라진 것은 그 실적을 읽는 사람들의 기분입니다. 

사상 최대라는 숫자를 아침에는 '반등의 근거'로 읽었고, 두 시간 뒤에는 '전망치를 밑돌았다'로 읽었습니다. 같은 공시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오전 10시 24분 기준으로 개인은 1조 5,778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같은 시간 기관은 1조 4,586억 원, 외국인은 817억 원을 순매수했습니다.

떨어지는 구간에서 개인이 팔고, 기관과 외국인이 받았습니다.

 

이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기관이 옳고 개인이 틀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 오후에 더 떨어지면 파신 분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보는 차이는 방향이 아닙니다. 

기관은 팔거나 사는 이유를 문서로 갖고 있고, 그 이유가 틀렸는지 나중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1조 5,778억 원 중 상당 부분은 그 확인이 불가능한 매도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오전 매도 버튼을 누르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시험을 당한 건 종목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오늘 제가 정말 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어제 하루 시장이 시험한 것은 반도체 업황이 아닙니다. 

반도체 업황은 하루에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어제 시험당한 것은 각자가 그 자산을 살 때 거쳤던 과정입니다.

 

결과는 이미 나왔습니다. 계좌에 숫자로 찍혔습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언제 회복될까'가 아니라 '나는 이걸 어떻게 결정했었나'입니다.

 

세 가지만 스스로 물어보시면 됩니다.

 

첫째, 이 자산이 무엇으로 돈을 버는지 제 입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D램이 왜 지금 가격을 받고 있는지, 그 가격을 지탱하는 수요가 어디서 나오는지, 그게 무너지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여기에 답할 수 있는 사람에게 어제의 소식은 '확인해야 할 변수'였습니다.

 답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알 수 없는 재앙'이었습니다. 

같은 뉴스인데 한쪽은 검토하고 한쪽은 도망쳤습니다.

 

둘째, 살 때의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적어둔 적이 있습니까.

적어두지 않은 이유는 팔 때 기준이 되지 못합니다. 

매수 근거가 없으면 매도 기준도 없습니다. 기준이 없는 사람에게 남는 판단 재료는 그날의 가격 하나뿐입니다. 

가격이 판단의 유일한 근거가 되는 순간, 떨어지면 팔고 오르면 사는 구조에 들어갑니다. 

그게 어제 오전 10시에 일어난 일입니다.

 

셋째, 그 판단은 어디서 왔습니까.

제 계산이었습니까, 기사였습니까, 영상이었습니까, 아니면 확신에 차 있던 누군가의 목소리였습니까.

이 세 번째가 가장 아픕니다. 

그리고 지금 가장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대체로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남의 판단으로 산 자산은, 남의 기분에 따라 흔들립니다

 

판단을 밖에서 빌려오면 편합니다.

 공부할 시간이 줄고, 결정이 빨라지고, 무엇보다 틀렸을 때 원망할 대상이 생깁니다.

 

대가는 나중에 청구됩니다.

빌려온 판단에는 사후 관리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같은 날, 내 손에 있는 건 자산이 아니라 '누군가 좋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 누군가는 어제 저에게 전화해주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바뀌었을 때 그 근거가 여전히 유효한지 판단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대응이 하나로 좁아집니다. 견디거나, 던지거나.

이게 제가 생각하는 어려움의 정체입니다. 

손실 금액이 문제가 아닙니다. 10.84%는 회복될 수도 있고 더 갈 수도 있습니다. 

진짜 문제는 그 상황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주식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동산에서도 똑같이 봅니다.

규제 발표 하나에 급하게 계약서를 쓰고, 다음 발표에 급하게 후회하시는 분들을 매년 봅니다. 

그분들이 산 것은 아파트가 아니라 그날의 분위기입니다. 

 

반대로 그 단지의 입지와 수요, 대체 가능한 물건, 자기 현금흐름의 한계를 미리 계산해둔 분은 발표 다음 날에도 하실 일이 명확합니다. 

계산에 영향이 있는지 확인하고, 없으면 그냥 지나갑니다.

 

부동산, 주식, 코인, 금, 달러, 채권. 이건 자산의 이름이 아니라 도구의 이름입니다.

어느 도구를 쥐었는지가 결과를 만드는 게 아닙니다. 

그 도구를 이해했는지, 방법을 배웠는지, 그래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지가 결과를 만듭니다.

 

저는 10년째 투자하면서 종목이나 단지 이름을 바꿔가며 배운 게 아닙니다. 

가치가 있는지, 저평가되어 있는지, 필요할 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지, 수익이 나는 구조인지, 최악의 경우에도 원금이 남는지, 리스크는 없는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지. 

 

이  여섯가지를 스스로 따져보는 습관 하나를 붙잡고 왔습니다. 

이 습관이 있으면 대상이 아파트든 ETF든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분별력은 결국 선택권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자산을 다루는 환경은 개인이 정할 수 있는 영역이 계속 줄어드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대출을 어디까지 받을지 개인이 정하지 못합니다. 

어떤 집을 사고팔지도 규제가 먼저 걸러냅니다. 

자산을 굴리는 통로마다 문턱이 세워지고, 그 문턱은 해마다 촘촘해집니다. 

 

이번 주부터 시행된 삼성전자·SK하이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규제도 같은 흐름 위에 있습니다.

하나하나는 실수요자 보호나 투기 억제라는 명분을 달고 나옵니다. 

그 명분의 옳고 그름을 여기서 다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쌓인 결과는 분명합니다. 개인이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칸이 한 칸씩 줄어듭니다.

 

이런 환경에서 남은 선택권을 지키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남이 정해줄 수 없는 영역을 키우는 것입니다.

제도는 제가 바꿀 수 없습니다. 시장의 하루 등락도 제가 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지는 제가 정합니다. 

그게 분별력입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선택권은 상황에 위탁됩니다. 

시장이 좋으면 벌고 나쁘면 잃는, 내 의사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구조가 됩니다. 

분별력이 생기면 같은 상황에서도 고를 것이 생깁니다. 

지금 사는 것, 기다리는 것, 비중을 줄이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 중에서 이유를 들어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투자에서 가장 값나가는 자산은 부동산도 주식도 아닙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 능력이 만들어주는 선택권입니다.

 

 

어제 그리고 지금 이순간도 힘드신 분들께

 

혹시 어제 계좌를 열어보고 잠을 설치셨다면, 오늘 하실 일은 종목 전망을 검색하는 게 아닙니다.

노트를 펴고 지금 보유하고 있는 것들을 적어보십시오. 

그 옆에 산 이유를 한 문장씩 적어보십시오.

 

이유가 적히지 않는 항목이 나올 겁니다. 그게 공부해야 할 목록입니다. 

지금 당장 팔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 항목에 대해 내가 아무 판단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이유가 적히는 항목도 있을 겁니다. 

그 이유가 어제의 소식으로 무효가 됐는지 확인해보십시오. 대부분은 무효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어제의 하락은 그저 하락입니다.

 

10.84%는 시장이 하루에 만든 숫자입니다. 

다시 시장이 가져갈 수도 있고, 더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판단의 과정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는 하루가 걸리지 않습니다. 몇 달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것은 시장이 하루에 가져가지 못합니다.

 

오늘 오전에 시장은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오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떨어진 이유도 설명할 수 없다면 어제와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같은 자리에 다시 서지 않는 쪽을 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원더
26.07.29 12:15

매수, 매도 이유를 알아야 하고, 모르겠다면 공부를 해서 자신만의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저도 반성할 부분이 있고, 감정이 힘든 것도 사실이나 이 과정을 통해 단단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라 (감정적으로 크게는 아니지만 ㅠ)이 또한 감사함을 가집니다. 좋은 칼럼 감사합니다.🙏🫶

프로그래스
26.07.29 12:17

월부에 와서 본인 기준과 판단으로 투자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러버블리v
26.07.29 12:58

분위기나, 기분, 상황에 따라 투자 여부 결정을 하는것이 아니라 남이 정해줄수없는 나의 실력, 옳고 그름, 투자 대상에 대한 것과 영향을 줄수있는 것과 아닌것을 분별해내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장이나 주변의 소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판단기준과 원칙을 지키는 투자자가 되도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