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위해 거절합니다>
사회가 풍족해지고 생명의 위험이 없는 상황이 당연해지면 ‘살아가는 것’
그 자체의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 집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신의 이야기화’이다.
자신의 이야기화란,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오래도록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만의 해석을 붙여가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이야기에 납득하는 것은 자기를 긍정하는 것과 거의 같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인생을 ‘이걸로 충분해’라고 긍정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가치관과 규칙을 중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가치관과 규칙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그저 당연한 하나 뿐인 선택지로 생각하고 살아온 기간이
상당히 긴 것 같습니다.
나의 행복이 나의 성취와 인생의 의미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기억하고
꼭 나의 과거와 현재 생각, 미래 계획을 생각해보고 긍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경쟁적인 가치관으로부터 적당히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관을 반드시 충족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다면,
적어도 불행한 인생은 아닐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할리스 프랭크는
소득이나 사회적 지위, 집과 차
등 타인과의 비교우위에 의해 성립되는 가치에 따라 얻어지는 행복감의 지속시간은
매우 짧다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 행복을 위해 하는 일도 그것이 단지 물질적 풍요, 명예, 사회적 성공 같은 것만 가져다준다면
잘 해낸다 해도 행복을 지속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 내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얻어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내 삶의 과정을 투자해야 하겠습니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공평하고, 평온하다.
가치관과 사고 방식을 일방적으로 강요 당하지 않고,
실수나 결점을 과도하게 비난 받지도 않는다.
한쪽만이 손해를 보는 불공평한 거래를 요구 당하지도 않는다.
반대로 바람직하지 않는 인간관계는 타인의 규칙으로 당신을 옭아매어
당신의 가치를 마음대로 판단하며 당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그저 빼앗기만 할 뿐이다.
상대방의 성격은 바꾸지 못하더라도 자신과 연관된 인간관계의 비율은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상대로부터 거리를 두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상대를 보다 귀하게 대함으로써
자기자신은 더욱 고귀해진다.
>> 나 자신이 변하는 것조차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게 어렵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지 않습니다.
내 주변을 나를 갉아먹지 않는 인간관계로 채우는 것이
나 스스로를 더욱 잘 돌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원으로서의 기량과 가치, 평가가 아무리 높아도
정년 퇴직과 동시에 그것들은 사라진다.
예) 취미다운 취미를 가진 적도 없는 채로 60대가 되어 정년을 맞이한 일에서 분리되었을 때
나에게는 일 외에 하고 싶은 것, 기쁨이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고 깨닫는 사람이 많다.
>> 더 이상 남들에게 평가받고 그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가져오기 위한 것에만 몰입해선 안됩니다.
필요한 재정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역량과 함께 내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 주는
나에게 적용되는 행복 버튼과, 함께할 가족과 동료들이 내 행복을 지켜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려: 남에게 미움 받지 않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방어수단
타인에게 미움 받거나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적인) 배려
나보다는 순전히 상대방의 이점만 생각한 배려
>> 어릴 때에 정말로 딱 이런 관점으로 본능적으로 ‘방어수단으로서의 배려’를
몸에 익히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얻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에서 사랑 이해 배려하고, 그 사람을 존경 및 존중합니다.
내가 주고싶은 것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는 방식이기도 하고
더 주체적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