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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그 공간을 비워두세요.

26.09.18 (수정됨)

 

 

저는 ‘미니멀리스트’ 입니다

 

무언가를 사 모으는 취미도 없고, 물욕이나 식탐도 적은 편입니다. 

다행히 남편도 비슷한 성격이라 언젠가 대화하며

“우린 10,000원 있으면 10,000원짜리 먹으며 행복하고, 

1,000원 있으면 1,000원짜리 먹으며 행복할 수 있겠다. 다행이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방도 하나, 신발도 하나, 모자도 하나, 패딩도 하나.

패딩은 너무 눈에 띄는 색이라 매년 겨울마다 동료들이 부산에서도 보이겠다고 웃었는데

이제 드디어(?) 지난 겨울 찢어져 새로 사야 하네요. ㅎㅎ

 

미니멀리스트가 된 이유는 비교적 분명합니다.

 

물건이 차지하는 비율을 줄여 ‘여유로워진 공간과 시간’을 좋아하고

무엇보다 ‘돈을 쓰지 않음으로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의 아이러니한 점이 좋았습니다. 

 

 

 


비움으로 여유로워진 공간과 시간


 

물건을 사지 않아 공간이 여유로워지는 건 이해가는데

어째서 시간도 여유로워질까요? 

 

단 하나의 물건을 가져본 적 있으신가요.

딱히 비싸고 소중해서가 아니라 정말 필요한데 딱 하나만 갖고 있는 것입니다.

 

 

긴 여행을 떠난 적 있습니다.

짐을 줄여야 하는 여행 가방이니 볼펜도 하나만 챙기는 게 당연하지요.

 

볼펜을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그렇게 소중할 수 없습니다.

 

외국에서 새로 사귄 친구에게 이메일 주소를 적어줄 때도

숙소에 짐을 맡기며 삐뚤빼뚤 이름을 쓸 때도

이국적인 풍경을 글과 그림으로 스케치할 때도

단 하나의 모나미 볼펜을 비장의 무기처럼 꺼내듭니다.

 

하나가 차지하는 비율은 적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남은 공간으로 ‘또다른 중요한 하나들’을 더 챙길 수 있습니다.

 

 

아이와 놀 때도 짐이 적은 우리 집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별다른 장난감이 필요없었던 이유는

빈 공간에서 뭐든 하나를 다양하게 바꿔가며 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밀가루 속에 숨은 콩을 찾아내며 놀다가

그게 좀 지루해지면 체로 콩을 걸러보기도 하고

그것도 좀 지루해지면 밀가루를 흩뿌리며 발도장도 찍어봤습니다.

 

아이도 즐거웠겠지만,

저또한 사진 속 시간과 공간이 참 소중하게 기억나네요.

 

 

 


‘돈을 쓰지 않음으로 얻어지는 행복’


 

더욱 미니멀리스트에 몰입하는 게 재미있어서

하루에 10개의 물건 버리기를 한 달 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주머니 속 영수증,

지하철을 나오다가 손에 쥐어진 광고 팸플릿,

낮에 알맹이만 빼먹고 남겨진 과자 껍질까지 

그날의 버릴 물건 10개에 포함시킵니다.

 

어, 그러다 매일 쓰레기만 10개씩 버리는 거 아닌가 싶으시겠지만,

매일 10개씩 버리기로 마음먹은 이상

집 안에서 쓰임을 잃고 그대로 잊혀진 물건들도 어느 순간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언젠가는 다시 쓰일 거라고 장담했던 마사지 기계,

다림질도 안 하는데 3개나 있던 다리미,

몇 번 신고 아까워서 못 버리던 반짝 구두,

그저 예뻐서 샀던 알록달록 식기들.

 

이렇게 비워내다보면 

기어이 공간을 차지하도록 남기는 것들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가장 나다운 물건들이 남습니다.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색깔과 촉감의 옷을 좋아하는지

어떤 순간을 사랑하는지 물건을 버리며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내가 커피마시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아서 머신을 샀는데, 

카페에서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자체를 좋아하는 거였구나.”

 

"여행을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낯선 환경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거였구나."

 

유행따라 쫒아가던 시선을 멈추면

온전한 나의 행복 버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을 쓰지 않아야 나만의 행복을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비’에 감춰진 것들이 참 많습니다.

 

광고는

이걸 사지 않으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질 거라고 말하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니 당신도 좋아할 게 분명하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의 취향과 행복이 있을리가 없지요.

 

눈 딱 감고

오늘부터 덜 소비해보세요.

 

의미를 잃은 채 공간만 차지하는 물건들을 덜어내고

당분간은 그 공간이 비어있게 두세요.

언제가 정말 좋아하는, 볼 때마다 마음에 쏙 드는 물건을 발견하게 될 거에요.

 

그렇게 나 스스로에 대한 신뢰감으로 나만의 행복을 찾아보시길 응원합니다.

 

 

 

 

댓글 9

황금순리
26.09.18 09:12

너무 좋은글이예요! 혹시 일기조장님도 미니멀카페회원?? ㅋㅋㅋ 저는 미니멀이 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소비에 감춰진 것들이 많다는 말이 너무 와닿네요. 애기들 어릴때 살던 동네에선 애기엄마들이 우리집에 놀러오면 애기 없는 집이냐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전쟁통도 이런 전쟁통이 없습니다. 이 글을 보니 다시 열의가 불타오르네요. 이번 명절 연휴에는 각잡고 아이들과 의미있는 물건남기기를 해봐야겠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풍족한도도네
26.09.18 06:59

소비를 관찰하면 확실히 자기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되는 것 같아요 ㅎㅎ 잘 읽었습니다! 🙏

김인턴creator badge
26.09.18 10:06

소비라는 것에 둘러쌓여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순간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글이네요 :) 일기님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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