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1호기 후기에 어떤 이야기를 넣을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나의 사적인 이야기까지 하는것이
이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과연 도움이 될지…
특별한 실력도 없이 어찌어찌 1호기는 했지만
1호기에 대한 많은 복기보다는 오히려
월부에서의 시간들을 돌아보며
월부에 들어오기전 나보다
한뼘은 성장한 나 자신을 위한 글을
써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 나처럼 마음이 아팠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
제 글을 통해
조금이라도 희망을 가지고
월부에서 성장을 경험하고
결국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시길 바라며
긴글을 시작해 봅니다.
청약당첨 그리고 공황장애
2020년도 11월 이였습니다.
아이도 없고 신혼부부 특공기간도 끝난 저희에게
청약 당첨이라는 엄청난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뛸듯이 기뻤습니다.
300:1 의 경쟁에 로또라고 불렸던 청약은
저에게 지금까지 만져본적이 없던
큰돈을 벌어다 주었습니다.
이제 돈을 많이 벌었으니 행복해 질줄 알았습니다.
(과거의 저는 로또 맞으면 바로 행복해 지는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확히 6개월 뒤 저에게는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회사를 가는 것도 사람을 만나는것도
밥을 먹는것도 두려웠습니다.
문득 어떤날은 이렇게 살면 뭐하나
싶은 생각을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신을 나무랬습니다.
아버지도 한없이 원망했습니다.
모든 원인은 어릴적 나의 환경탓이라 생각했습니다.
끝없이 부정적인 이야기와 걱정만 하고 사는
아빠 때문에 나도 이런 병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어릴적부터 긴시간 공황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사실 핑계를 대고 싶었나 봅니다.
공황장애를 겪는 환자들은
자신의 삶을 공황장애가 오기전과 후로 나눈다고 합니다.
저는 그렇게 저의 인생은 끝났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너무 이해 할수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저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 왜 하필 지금이야? 큰돈을 벌었는데 ...
왜 지금 이렇게 나는 불행해 진거야?"
그때는 알지 못했던 그 대답을 저는 지금 저 스스로에게 해줍니다.
' 그때의 너는 그 돈을 담을 그릇이 아니였기에 큰 불행이 찾아왔던 거야 '
사람은 자신의 돈 그릇 만큼만 돈을 담을수 있다고 합니다.
운으로 들어온 돈은 자신의 그릇 만큼만 담겨지고
나머지 돈은 모두 빠져나간다고 하죠
그리고 그 사람의 그릇보다 큰돈은 불행을 가져 올수도 있다는걸 배웠습니다.
그 행운의 돈은 저의 종지만큼 작던 돈 그릇을 와장창 깨트려 버렸습니다.
월부에서의 성장
월부를 알게된건 힘들었던
시간들을 이겨내고 나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병원치료를 하던중이었습니다.
신사임당 채널에 나온 너나위님을 보고
참 선한 마음을 가진 분이구나 싶어
월부카페에 가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월부강의도 듣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제파악이 안된 저는
강의료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임장을 다닐꺼라 생각하며
호기롭게 강의를 듣지 않았는데...
역시 어느새 과거로 돌아가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월부의 첫번째 조장님이었던
유르님은 저의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았습니다.
굉장히 많은 독서를 하시고 매일 아침 목실감을 쓰시던
그리고 임장과 임보까지도.
저에겐 너무나 완벽했던 그녀의(그녀라고 불러도 되낭? ㅋㅋ) 월부 인증 알림
그 꾸준한 알림을 보며
나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되었습니다.
다행히 월부의 가르침중 유일하게 놓지 않았던
독서에서 월부의 정신을 다시한번 느끼며
그곳에서 어쩜 나도 성장이라는게 어떤건지 느낄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월부생활은
저에게 도전 그 자체였습니다.
ppt는 대학생때 잠깐 써본게 다였고 ,
엑셀은 덧셈 , 뺄셈만 겨우 입력하는 수준...
잘 걷는건 자부했지만 어느새 허리 무리가 왔고
임장시 가끔씩 찾아오는 공항증세와 싸워야 했으며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였기에
혼자서 길을 찾아 다니는건 무모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눈썰미라곤 눈꼽만치도 없어서
상가에 뭐가 있는지 보는것도 힘들고,
상가만 집중해서 보다가
어떤 사람들이 길에 있었는지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저는
온라인 모임이라는 낯선 환경이 무서웠습니다.
카메라를 보고 모르는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을 소개하고
내 생각을 말한다는건 저에게 큰 모험이었습니다. (무대공포증 ㅜㅡ)
심장이 쿵쾅거려서 숨이 막힐것 같고
목소리가 너무 떨려 어디라도 숨고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조모임 끝나면 이불킥 여러번 했죠 ㅋㅋ
조원으로도 힘든데 큰 용기를 내서 조장을 지원했던건
아마도 이런 저를 이겨보고 싶었던것 같습니다.
첫번째 조장의 그 어설픔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리고 두번째 조장 , 세번째 조장...
힘들었지만 그렇게 조금씩 두려움을
이겨내는 저를 발견해 갔습니다.
어느새 익숙해진 임장과 임보...
심각하다 못해 골때리는 길치임에도
gpx의 힘의 빌려 길을 잃지 않고 다시 돌아나와
제대로 길을 찾을수 있는 정도는 되어갑니다.
이렇게 저는 조금씩 성장해 나갔습니다.
https://cafe.naver.com/wecando7/10157930
( 벽을 넘고 싶어 도전했던 조장을 하고 나서 얻게된것 )
명상과 감사일기 독서가 나에게 미친영향
병원 진료를 받을 당시 선생님이 저에게 명상앱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런걸로 내가 변할수 있을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거의 끝나갈 무렵 한번더 해보라 권하시기에
마지못해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명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뒤 월부에서 명상과 감사일기가 투자에 도움이 된다는것을
알았기에 감사일기를 함께 써보기로 합니다.
(그동안 썼던 일기는 온통 나의 부정적이고
괴로움만이 가득해서 쓰는동안 너무 괴롭기만 했습니다.)
감사일기를 시작한 저는 새삼 적을 글이 하나도 없음에
내가 세상을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았는지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작은것에 감사하고 가지지 않는것에 대한 갈망이 아닌
이미 가지고 있는것의 소중함을 적는 동료들...
저도 그렇게 그들의 감사일기를 보며
조금씩 나의 생각들을 바꿔 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아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프다고 전화하고 걱정만 늘어놓는 아빠를 피했습니다.
감사일기에 부모님이 살아계심에 감사하다 적으면서도
그 말이 진짜인지 저를 의심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글들이 생각났습니다.
말이 아닌 행동이 생각을 변화시킬수도 있다는 문구였습니다.
24년 1월 1 가까운 친구 아버님의 부고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순간 핸드폰을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아빠에게 사랑한다 말씀드렸습니다.
아빠도 나도 너무 어색한 그 몇초의 시간뒤 어색해해 하며
" 나도 사랑한다"는 아빠의 그 목소리를 잊을수 없습니다.
제가 감사일기에 그날을 기록해 두었기에 가지고 와보았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제가 바꿀수 있는건 제 자신의 태도
밖에 없음을 알게되었습니다.
그 통화뒤 평생 불면증에 시달렸던 아빠는
신기하게도 잠을 잘 주무신다고 합니다.
아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전화했다도 하면
고맙다고 얘기하십니다.
예전보다 훨씬 밝아진 아빠의 목소리에
저도 덩달아 행복해 집니다.
나의 공황장애가 아빠 탓이라 생각하며
원망하고 원망했던 과거의 제가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제 감사일기에 부모님에 대한 진짜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미워한다는 죄책감에서 저는 구원받았습니다.
이제서야 저는 진짜.... 저를....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서, 명상을 하고 감사일기를 쓰는것과
돈이 무슨 상관관계인지 이해할수 없었지만
저는 그 진짜 의미를 이제는 알것 같습니다.
투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계속해 나갈수 없다는걸...
과거에 제가 많은 것들을
시도하고 빠르게 관두는걸 반복했던건
아마도 그러한 이유였던것 같습니다.
1년만에 찾아온 슬럼프 그리고 투자코칭
월부활동을 하며 들었던 많은 말씀들 중 1년 안에 한채를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월부활동중 청약 받은 0호기 등기를 쳤고,
비과세를 받기위해 1년뒤 월부 1호기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1년동안 서울, 수도권들을 돌며 임장을 하고 임보를 썼지만
저평가 되어있다는 아파트에 대한 확신도
투자금에 맞는 단지를 찾는것도 어렵기만 했습니다.
단지임장을 반복해도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단지들과
앞서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스스로 작아져만 갔습니다.
( 덤으로 남편이 갑자기 베트남으로 발령났다는
소식이 더 저를 힘들게 했던것 같습니다.)
포기할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남편도 없고 , 나혼자 한국에 남아서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가 할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저를 괴롭게 했습니다.
마지막 이라는 맘으로 독서를 하는 열중반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투자코칭도 받게 되었습니다.
부자대디님이 말씀해 주신말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이 있습니다.
" 토끼처럼 뛰어났던 동료들은 온데간데 없고
거북이 처럼 느리던 자신만이 월부에 남아있습니다.
빠르고 영리한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하는게 더 중요하죠 "
그렇게 저는 독서와 코칭을 통해 한발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떠나기전 함께한 임장지에서 찾은 1호기
남편이 베트남을 가기전 마지막으로 함께 임장을 다녔습니다.
지역 조사를 하고 임장을 나갔는데....
임장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싸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 이정도 라면 충분히 투자할수 있을것 같은데? '
이런 느낌을 받는 임장지는 처음이었기에 엄청난 몰입도에
임장을 다닙니다.
단지임장을 마치고 매물임장도 해봅니다.
물론 그때 당시에는 전세금을 깔고 있었기에
당장 투자를 진행할수는 없었습니다.
그 뒤로 강의를 계속 들으면서 앞마당을 더 만들어 갔고
시세트레킹을 이어 갔습니다.
그렇게 또 몇달이 흘렀습니다.
강의에서 자모님의 외침이 이어졌습니다.
" 이렇게 투자하기 좋은 때에 왜 자꾸 망설이세요 ~
최악은 투자하지 않는거예요!! "
그 강렬한 메세지에 아!! 지금이구나
지금이 바로 행동할때 이구나 싶었습니다.
그 다음날 전세만기가 한참이 남았음에도
저는 집주인분께 상황을 얘기하고 전세를 빼달라고 했습니다.
혼자서 이사준비와 투자활동을 병행해야 했지만
잘 할수 있을것이라 스스로를 믿었습니다.
계속 앞마당을 만들면서 트레킹을 진행했지만
남편과 다녀왔던 임장지 단지들이 여전히 저평가 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중 더이상 빠질수 없을 정도로 싼 단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선호 생활권은 아니였지만 충분히 가치가 있고
20평대는 가격 반등을 했지만
30평대가 여전히 25% 이상 하락한 단지였습니다.
매물털기를 시작했습니다.
매물코칭 그리고 날아간 매물
매물털기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월부에 매물코칭이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어차피 이제 결정을 내려야 했기에 나의 확신만으로만
(때마침 베트남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 매물을 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료들이 전해준 매물 코칭이 다시 부활했다는 소식!!
매일 매일 매코 광클을 시도했고 일주일만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전세가 높게 맞춰져 있는 수리된 매물을 보고 매코를 통과했습니다.
야호~~ 이제 가격만 살짝 네고해서 사면 된다 생각했는데...
갑자기 물건을 거둬들인 매도인 ㅜㅡ
매코때 라즈베리 튜터님이 매물이 들어갈수도
있다는 말씀이 정확히 맞아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코칭을 통해서 이미 단지에 대한 저평가는 확신으로 굳어졌고
포기하지 않고 나오는 매물들을 모두 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뒤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으로 어수선한 정세가 이어졌습니다.
'위기가 기회다'는 문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코칭때 컨펌 받고 사려고 했던 단지와 가격은 동일하지만
전세가 너무 낮게 맞춰져 있어 투자금이 많이 드는 단지를 보게됩니다.
매물을 보자마자 남편과 저는 동시에 이거다 라는 확신을 하게 됩니다.
우선 구축단지라 수리여부가 중요한데 샷시까지 올수리된 상태에
선호동(남향)에 선호층 그리고 등기시기와 갱신시기가 일치해서
전세금을 2000만원 올려 받을수 있어
생각보다는 투자금이 적게 들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투자금에
남편과 저는 2000만원을 네고해 준다면 바로 계약금을 쏘겠다고 합니다.
(제가 소심하게 1500만원을 내려달라고 했는데...
남편이 딱 잘라서 2000만원 네고를 요청합니다.)
ㅎㅎ 남편과 함께해서 다행^^
집으로 돌아오는 길... 불발된 계약들에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기에
마음을 졸이며 시계만 쳐다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울린 전화....
10년이상 매도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부동산 직원이 거의 사정하면서 깍았다며
2000만원 네고해 준다고 바로 계좌번호를 보내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매도인이 처음에 희망한 가격에서 6000만원이나
내린 가격으로 매도하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구요....
1호기 투자 그 이후
1월에 계약을 하고 4월에 마무리하면서 전세금을 올려받고
등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세가가 너무 낮았기에 약간의 빚을 냈지만
0호기 매도 혹은 전세갱신 5% 를 내년에 올려받을 예정이고
전세입자 개인사정으로 1년 6개월뒤로 전세만기 기간을 줄였기에
충분히 싸게 샀음에 무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뒤 강사와의 만남으로 주우이님을 만나 1호기 투자에 대해서
다시 한번 더 확인을 받고나서는 스스로 1호기에 대해 복기해 보게 됩니다.
2호기를 할때는 단지 하나가 아니라 투자후보 단지들을 모두 리스트업해서
매물털이를 동시에 진행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갈아타기는 0호기를 파는 동시에 2호기를 바로 가계약 할수 있을정도로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산 아파트 가격을 계속 들여다 보지 마라....
하지만 ... 이게 잘 안된다는 ㅋㅋㅋ
1월에 계약하고 4월에 등기완료한 1호기는 현재 5000만원이 이미 올랐네요.
더 이상 쌀수는 없다고 확신했지만 그에 대한 답을 확인하고 나니
이제 다음을 향해서 또 달려갈 에너지를 얻은것 같습니다.
월부안에 있는다는 것의 의미
2년여의 시간동안 함께해준 수많은 동료들이 생각나는 요즘입니다.
함께 시작했지만 지금은 월부를 떠난 많은 분들도 계시고
여전히 월부안에서 활동하고 목표를 이루어어 가는 동료들,
앞으로 만나게 될 미래의 동료들이 월부라는 곳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는 돈을 벌기위해서 월부에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저는 돈만큼 중요한 다른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 돈보다 중요하다고 적지 않을께요 ㅎㅎ)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함께 축하해 줄수 있는 사람은
결국 본인이 행복해야함을 ...
그리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또한 타인에게
행복을 주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월부안에는 많은 기버들이 있습니다.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눕니다.
나눔글도 잘 쓰지않고 조장도 매번 하지는 않지만
저는 월부에 와서야 나눔의 행동들이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글에서 적었듯 모든걸 남탓, 부모탓하며 세상을 살았고
제 자신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으며
배움도 느리고 , 기억력도 없습니다.
이런 제가 월부에 와서 나의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갈수 있었던건
이런 나라도 조원이든 조장이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수 있고
또 기꺼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도 된다는걸
월부에서 알게해 주었습니다.
월부에 와서 돈 공부보다 더 많이한 건
나 자신에 대한 공부라는걸
강사님들이 말씀해 주시는데
그 말에 공감합니다.
저는 제 스스로 약속한것이 있습니다.
월부에서 쓰는 10억 달성기는 꼭
월부에서 배운 투자를 통해 벌은 10억을 달성후
후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운이 아닌 제 실력으로 , 그 만큼의 그릇으로
10억을 달성한후 후기를 올리는 그날까지
저는 월부안에서 여러분과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습니다.
여러분의 N 호기를 응원합니다 ^^
댓글
BEST | 찡이맘님 1호기 축하드립니다. 다른 분들이 1호기 해나가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실거라 생각해요. 건강 관리 잘 하시고 10억 달성까지 응원합니다 :)
맘님의 그동안의 마음과 투자 복기까지 더해져서 마음이 먹먹해지면서도, 남편분과 함께 이뤄내신 1호기의 통쾌함으로 끝나는 흡입력 강력한 나눔글 너무 감사드려요❤️ 2호기를 향하여 같이 달려가시죠:)
찡이맘님^^ 감동적인 1호기 투자글 너무 감사 드립니다! 10억 달성도 무난히 하실 거라 믿고 있습니다^^ 저도 1호기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행복하게 그리고 느리지만 꾸준히 투자생활로 성공 하실 찡이맘님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