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내식당 식판 위에서 태어난 이야기입니다.

8:50 출근길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실장님이 들어오셨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실장님은
내 쪽을 한 번도 보지 않고
정면만 바라본 채 조용히 버튼만 눌렀다
인사도 곁눈질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안 공기가 살짝 뻣뻣해졌다
나는 얼어붙은 채로 실장님의 뒷통수를 바라봤다
그 짧은 10초가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왜 인사를 안 받아주시지?
내가 뭘 실수했나?
부동산 공부하는거.. 아셨나…?
회의 때 말한 게 거슬렸나…?
의심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라났다.
승강기 문이 열리기도 전에
내 하루 기분이 이미 정해져버린 느낌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오며 괜히 말수가 줄었다
실장님과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눈을 피했고
실장님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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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 점심시간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앉았을 때
실장님은 조용히 국을 두어 번 떠먹더니
무심하게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최근에 내 생일이었잖아”
…설마 선물?
나는 젓가락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실장님은 여전히 국물을 뜨며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으셨다
“딸내미가 무선 이어폰을 하나 사줬거든
그게 노이즈캔슬링도 되고 말이야
아침마다 음악 들으면서 오니까 정신이 맑아지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뭔가 머리를 툭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이어폰… 노이즈캔슬링…
그러니까, 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 인사를 못 들은 이유가 그거였구나!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아.. 따님분 마음이 정말 따뜻하시네요"
안도와 민망함
아쉬움과 머쓱함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왔다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허전했다
그 짧은 오해 하나가
내 하루 전체를 뒤흔들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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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나에겐 늘 이런 습관이 있었다
누군가 인사를 안 받아주면
“내가 싫은가?”
회의 때 무표정으로 듣고 있으면
“내 말이 틀렸나 보다”
답장이 없으면
“나한테 관심 없구나”
사건보다 해석이 먼저였고
감정보다 상상이 빨랐다
나는 밥숟가락으로
포슬한 계란말이를 올려 한 입 떴다
이제는 안다
실장님은 내게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오히려 딸 자랑을 하며
이어폰 이야기를 웃으며 꺼낸 사람이었다
🥄
내가 느낀 불행은 그 일이
실제로 나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내 해석 때문이었다

(최근 읽고 있는 책)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에 대한 사람의 판단이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당신의 머리를 바꿔라"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기 위한 첫 단계는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과 그에 대한 반응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저 바깥 세계와 내 마음속 세계는 전혀 다른 두 왕국이다
그러니 타인은 내 감정에 어떤 책임도 없다
그 누구도 나의 통제력이나 존엄성을 건드릴 권한 같은 건 없다"
사람은 이처럼 사소한 일에도
때로는 아주 큰일 앞에서도
늘 해석을 하며 살아간다고 한다
하나 깨달은 건
완전히 해석을 멈출 순 없지만
그 해석의 방향은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어떤 일이든
“오히려 좋아”
“그럴 수 있지”
이렇게 해석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사는 편이 조금 더
조금 더 잘 사는 방법 같았다
밥말생 2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