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겨울이었다.
강원도 어느 펜션에서 밤새 눈이 내렸다.
새벽에 전기가 나갔고, 보일러가 멈췄다. 방은 순식간에 얼음장이 됐다.
어린 두 아이의 손이 차가웠다. 나는 급한 대로 작은 화로에 불을 피웠다.
주황빛 불씨가 살아나자 아이는 손을 쬐며 까르르 웃었다.
그 작은 불 하나가 그날 밤 우리 가족을 데웠다.
그리고 지난봄.
뉴스에서 본 산불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같은 불이 마을 하나를 통째로 삼켰다.
평생 모은 집이, 사진이, 살림살이가 하룻밤 사이 재가 됐다.
화면 속 한 어르신이 검게 그을린 문기둥을 붙잡고 한참을 서 계셨다.
나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누군가를 데운 불이, 누군가에겐 전부를 앗아간다.
같은 불인데.
가만 보면 세상엔 한쪽 얼굴만 가진 게 별로 없더라.
요즘 부동산도 그렇다.
같은 시장, 같은 뉴스를 보는데 누군가는 "아직 기회"라고 읽고 누군가는 "이미 늦었다"고 읽는다.
집값이 오르면 "그때 살 걸…" 하며 속을 끓이는 사람이 있고 "안 사길 잘했다"며 안도하는 사람이 있다.
같은 그래프, 같은 숫자를 보면서 한쪽은 불안해하고 한쪽은 확신을 키운다.
빚은 더 그렇다.
10년 전, 나는 빚이 무서웠다.
아내가 휴직하며 외벌이가 된 그해, 대출 서류에 도장을 찍는 손이 떨렸다.
누군가에게 빚은 집을 통째로 태우는 불이었고, 누군가에게 빚은 가족을 데우는 불이었다.
나는 그 불을 무서워하되, 끄지는 않기로 했다.
태우지 않게, 딱 우리가 감당할 만큼만 지폈다.
불을 없애는 게 답이 아니라 어디에 얼마만큼 놓을지 아는 게 그 겨울 내가 배운 전부였다.
말도 그렇더라.
좋은 마음으로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따뜻한 불이 되고 누군가에겐 데인 자국이 된다.
아내에게 건넨 "괜찮아, 잘하고 있어"가 어떤 날은 위로였고,
어떤 날은 "그래서 넌 편하지" 같은 말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 건넨 "조금만 더 해보자"가 응원이었는지 부담이었는지 지금도 가끔 헷갈린다.
나 역시 누군가에겐 따뜻한 사람이었겠지만,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데이게 한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무엇이든 한 면만 보고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오르는 시장도, 빠지는 시장도, 좋아 보이는 선택도, 미련해 보이는 선택도.
불은 따뜻하지만 태우고, 태우지만 따뜻하다.
중요한 건 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어디에, 얼마만큼 지필지 아는 일이더라.
혹시 지금, 어떤 불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면. 그 불을 꺼야 할지 말지, 너무 서둘러 정하지 않았으면 한다.
무서운 게 당연하다. 나도 그랬으니까.
다만 무서워서 도망치는 것과, 무서워하면서도 딱 감당할 만큼 지피는 것은 다르다.
돈도, 관계도, 인생도 생각보다 훨씬 조심스러운 것들이니까.
오늘도 나는 한 사람을, 한 번의 선택을 조금 더 천천히 들여다보기로 한다.
쉽게 미워하지 않도록. 쉽게 확신하지 않도록.
나 역시, 누군가에겐 양면이었을 테니까.
그러니 당신도, 당신의 선택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 당신이 무서워하는 그 불도, 어쩌면 가족을 데우는 불일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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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 좋은 마음으로 건넨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따뜻한 불이되고 누군가에겐 데인 자국이 될수있고 중요한건 불을 없애는게 아니라 어디에, 얼마만큼 지필지 아는 것이다. 돈도, 관계도, 인생도 생각보다 훨씬 조심스럽다는 말이 참 와닿습니다. 최근 생각이 정말정말 많았는데 무엇이든 한 면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면도 바라보면서 치우친 시각과 생각을 갖지않도록 넓혀보도록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