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동산의 역사 독서후기 [반나이]

26.07.08

 

본문

 

1부. 

 

정약용은 왜 한양에 살라고 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에 토지 소유권이 형성된 후 지속적인 가격 상승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 전기까지의 벼농사는 많은 노동력을 요구했다. 15세기 전반 세종대왕 때 편찬된 《농사직설農事直說》에는 수경법과 건경법 그리고 묘종법 등 세 가지 벼농사 기법이 소개되어 있는데,7 앞의 두 농법은 직파법으로 밭농사처럼 논에 볍씨를 뿌리는 방식의 농법을 말한다. 

 

경제 성장과 인구 증가 덕분에 한양의 집값은 18세기부터 19세기 내내 상승했지만, 토지 가격은 18세기부터 개항기까지 지속적인 하락을 경험했다. 한국 사람들이 이토록 ‘서울’을 선호하는 현상은 매우 오랜 기원을 두고 있는 셈이다.

 

서울 주택의 상당 부분을 일본인이 소유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지만, 부유층의 요구에 맞춘 문화주택 등이 공급되면서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의 집값은 폭등했고, 일제는 행정 구역 확대와 신규 택지 개발에 나섬으로써 서울을 둘러싼 “끝없는 신도시 개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농지 개혁 이후 소가족 위주의 사회로 변신하며 한국 경제는 강력한 성장 모멘텀을 형성할 수 있었다. 가족주의의 지배에서 벗어나 재산권을 행사하며 독립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교육 수준의 향상과 민주적인 사회로의 출발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강력한 인플레 영향으로 실질적인 토지 가격은 오르지 못했지만, 전쟁의 상처가 치유되고 포용적 성장이 시작되는 순간, 강력한 가격 상승이 시작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서울시에 근무하던 윤 과장은 “높은 곳에서 나온 자금으로 땅을 사 모으고, 땅값이 어느 정도 상승하면 되팔아서 갖다 바친다. 이 사실은 청와대에서 근무하는 매우 높은 분 한둘과 서울시장 그리고 자기만 알고 있는 비밀 사항이다.”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크게 흥분했다.

 

끝없이 상승하던 주택 시장도 경기 흐름을 이길 수는 없었다. 1978년 8월 8일 박정희 정부가 ‘부동산 투기 억제 및 지가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1979년 이란 혁명 발생으로 경제 성장이 꺾였다.22 이른바 ‘8.8 대책’의 기본 내용은 1967년 11월 29일 시행된 ‘부동산 투기 억제 특별 조치법’과 비슷했다.

 

첫째, 주택 가격 상승의 결정적인 요인은 경제 성장률 변화라는 점이다. 1968년부터 시작된 베트남 경기의 둔화, 그리고 1979년 이란 혁명 등으로 촉발된 불황은 가계의 미래 소득 전망을 어둡게 했다. 소득 전망이 악화될 때는 높은 PIR이 부담될 수밖에 없다. 둘째, 강력한 주택 시장 안정 대책은 성장률 둔화의 충격을 키운다는 점이다.

 

주택 공급이 부족한 가운데, 1985년부터 경기가 좋아지니 주택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전세 가격의 상승이었다. 1986~1990년까지 전국 주택 매매 가격은 47.3% 상승한 반면, 전세 가격은 82.2%나 상승한 것이다.전세 가격의 급등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1980년대 중반까지의 주택 공급 부족이었다. 입주할 집이 없기에 전세나 월세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번째는 정부가 1989년 전세 임대차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한 데 있었다.

 

왜 이토록 강력한 주택 가격 하락이 나타났을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1990년 한국 주택 가격이 소득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데 있다. 〈그림 7-1〉은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에서 연도별 PIR 변화 추이를 작성한 것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인 하락 흐름을 관찰할 수 있다.

 

1999년부터 은행 대출이 회복되기 시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다른 선진국처럼 정부의 금리 인하를 계기로 주택 수요가 증가하며, 이게 다시 대출 증가로 이어지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1999년 이전까지 한국의 주택 시장은 성장률과 주택 공급만 보면 되었지만, 이때부터는 금리와 대출 조건도 투자 의사 결정의 중요 부분으로 부각되었다.

 

지역 균형 발전 정책이 경제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수도권 주택 가격 안정이라는 목적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7 혁신 도시와 세종시로의 이전이 시작되며 수도권 인구 비중이 2012년 49.6%를 정점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지방 광역시 주택 가격은 꾸준한 상승세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31일부터 시행된 ‘임대차 3법’도 주택 시장의 수급 균형을 무너뜨렸다.10 임대차 3법은 임대료 인상률을 직전 계약의 5%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 상한제’, 집을 빌린 사람이 계약 갱신을 1회 요구할 수 있는 ‘계약 갱신 청구권’, 그리고 임대차 계약 체결 후 30일 이내에 계약 내용을 신고하도록 의무화한 ‘전월세 신고제’를 통칭하는 말이다. 1989년 전세 계약 기간이 2년으로 연장되며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던 것처럼, 임대차 3법의 출현은 전세 가격의 급등을 유발했다.

 

 

2부. 

 

2022년 9월 발생한 레고랜드 사태가 주택 시장에 그토록 큰 충격을 준 이유는 대도시 아파트가 일종의 금융 자산이기 때문이다.

 

카드 사태를 계기로 시중 은행의 경영진은 주택 담보 대출에 집중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특히 노무현 정부가 강력한 대출 통제 정책을 펼치며 LTV를 매우 낮은 수준으로 유지했기에, 손실을 볼 가능성도 낮았다.

 

일단 환율이 상승하면 부동산 시장은 두 가지 충격을 받는다. 무엇보다 환율이 급등할 때, 투자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다. 1997년 외환 위기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에서 환율이 급등하면 “나라에 무슨 일이 생긴 것 아닌가?”라는 공포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두 번째 악영향은 환율 상승이 불러오는 인플레 위협이다.

 

금융 기관 대출의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토지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정책 당국으로서는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마냥 방치할 수 없고, 더 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

 

주택 시장이 아직 회복되지 못했음에도 대규모 분양이 시행된 이유는 건설 업체의 경영난 때문이었다. 2000년대에 사들였던 공공 택지에 집을 짓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건설 업체는 심각한 자금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면적으로 이뤄지기 전이었음에도 지하 주차장을 건설한 것이다. 이때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지어진 아파트를 흔히 ‘2세대’로 지칭하는데, 시범아파트 때 도입된 중앙난방과 엘리베이터는 물론,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고 지하 주차장을 대규모로 건설한 것이 특징이다.

 

오프라인 강의에서 “제2의 강남은 어디일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2의 강남은 없다’고 생각한다.

 

임대차 3법이 통과되며 전세와 월세 가격이 폭발적으로 상승하자, 정부가 세입자의 어려움을 덜어 줄 목적으로 전세 자금 대출을 대거 늘린 것이 큰 문제를 일으켰다.

 

“갭이 작다.”라며 주택을 매수하는 사람이 늘고 상승 폭이 커질 때는, 시장이 투기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택의 가치(사용 가치+성장 잠재력)를 잘 따져 투자하는 사람이 소수가 된 것이니, 시장이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도달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정리하자면 ① 갭 투자 장세가 펼쳐지면서 비인기 지역마저 집값이 급등하는 등 과열 징후가 뚜렷한 데다, ② 시장 금리가 상승하기 시작하고, ③ 정부가 문제의 근원을 파악해 유동성을 조이기 시작할 때는, 매도 관점에서 주택 시장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깨달은점과 적용할 점

 

#한양의 선호는 예로부터 일관되었다.

조선시대부터 한양의 선호는 대단했다. 토지가가 내려가더라도 한양의 집값은 경제에 따라 오르기도 하였고, 모든 사람들이 한양 가까이 거주해야 해택을 본다고 믿은만큼 지금의 서울 선호는 오늘일이 아닌 것이다. 

즉, 서울 아파트의 가치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소유권을 인정받고나서 서울의 가격은 더 상승하였다고 한다. 즉 모든 사람에게 서울의 아파트, 거주지 라는 것은 모두가 가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누구나 가지고 싶어하는 자산을 가지고 지키는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 꾸준한 수요를 가지는 자산을 어떻게 가지고 지켜나갈지를 지속해서 고민해야한다.

 

#유동성이 곧 집값이다.

홍선대원군 시절 돈을 많이 풀때 인플레이션과 함께 집값이 고공행진을 하였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경제 상황이 좋을수록 집값이 오르내림이 과거에서부터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였다. 또한, 모든 집값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 특히 서울이 특히 많이 올랐고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지역은 좋은 경제 상황임에도 많이 오르지 못하였다. 

→ 면밀하게 가치를 파악하고, 가치를 1순위로 판단하고 결정해야한다. 

 

#소득은 집값과 비래한다. 

회사에서 돈을 풀어봤자 얼마나 오르겠어, 반도체 성과금 해택이 얼마나 되겠어 했지만 소득이 집값을 올리는데 핵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이제 1억이상의 고연봉자들이 10%가 넘는 사회가 된 만큼 유동성과 소비력이 올라갔고, 따라서 소득또한 같이 집값에 판단 기준으로 가져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현재 오르는 소득을 기준으로 + 공급을 기준으로 단순히 가격이 오르는 것이 “살 수 없을만큼 비싸다” 라고 판단을 내릴 수 없다. 

→ 비싸다의 개념을 가격만 봐서는 안된다. 시장상황 소득 경제상황 공급 모든것을 감안해야한다. 

 

이야기 나누고 싶은 점

 

발제문: 금융 기관 대출의 대부분이 부동산이나 토지와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정책 당국으로서는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마냥 방치할 수 없고, 더 큰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개입에 나설 수밖에 없다.

 

Q. 현재 정부에서는 지속적인 규제와 개입을 통해서 현 부동산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개입했을때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고민해보고, 앞으로 우리 투자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이야기 해봅시다. 

 

 

 

 

 

 

 

 

 

 

 

 

 

 

 

 


댓글

아이닌
26.07.09 21:47

최태성급 역사 이야기 풀어주신 게 급 생각나내유🤣

가애나애
26.07.10 16:30

6.5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