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6년 3월, 열반기초반으로 첫 월부 입성한 리쉬꼬숑 입니다.
처음에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부동산 공부 한번 해볼까?'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거 생각보다 긴 레이스인데...?'
'과연 내가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40대입니다.
한 번도 제 이름으로 부동산 계약을 해본 적이 없고,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혼자 들어가 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저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아주 평범한 워킹맘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이름도 낯설었던 수도권으로 첫 임장을 떠났고, 놀랍게도 첫 수도권 임장을 간 그 지역에서 1호기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것이 훨씬 많고, 여전히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해낼 수 있었다면,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분명 해내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마음 하나로 부족하지만 제 첫 투자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합니다.
투자 공부를 시작한 계기
제 이야기는 조금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저는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워킹맘이자 싱글맘입니다.
만약 제 인생에 '이혼'이라는 큰 사건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도 예전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결혼 후 남편이 미리 예정해 두었던 신혼집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생애 처음으로 큰 대출을 받았습니다.
물론 모든 계약과 대출은 당시 남편 명의로 진행됐기 때문에 저는 그 과정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매달 갚아야 하는 대출금만 바라보며 두려워했습니다.
밤잠이 오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대출은 '레버리지'가 아니라 그저 무서운 '빚'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직 아끼고 또 아끼며 대출을 갚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혼을 겪게 되었고,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어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늘 걱정만 끼치는 딸이 아니라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많이 몸부림쳤습니다.
자영업에도 도전해 보고, 부수입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강의도 들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든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매일 누구보다 바쁘게 살았지만, 제자리에서 쳇바퀴만 도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목표는 점점 선명해졌습니다.
'나는 반드시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엄마가 되겠다.'
'내 노후는 내가 책임지는 사람이 되겠다.'
'부모님께 걱정이 아닌 자랑이 되는 딸이 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매일 되뇌었습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나는 꼭 부자가 될 것이다.'
그 다짐이 결국 저를 월부까지 이끌었습니다.
투자과정
늘 '시간이 생기면 재테크 공부를 해야지.'라고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늘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그러다 자영업을 정리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생활이 조금씩 안정되자 이번만큼은 미루지 말자는 마음으로 2026년 3월, 열반기초반을 신청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강의 몇 개 들으면 되겠지.'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곧이어 수강한 실전준비반에서는 매주 주말 아이를 맡기고 임장을 다녀야 했고, 컴퓨터와는 거리가 멀었던 저는 임장보고서를 쓰느라 매번 진땀을 흘렸습니다.
솔직히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이 설렜고, 같은 목표를 가진 동료들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기다려졌습니다.
실전준비반 첫 앞마당은 대구 수성구였습니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동안 제가 알던 수성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직접 두 발로 걸으며 아파트를 하나씩 비교하고, 가격을 확인하고, 입지를 살펴보는 모든 과정이 신기했습니다.
비록 첫 임장보고서는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지만, 첫 전임의 두려움과 첫 매임의 설렘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때 스스로와 약속했습니다.
'나는 무조건 3개월 안에 1호기를 하고 만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민 끝에 서울투자기초반까지 신청했습니다.
사실 가장 큰 고민은 아이였습니다.
주말마다 아이를 맡기고 수도권까지 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 아빠와 부모님께 매번 죄송한 마음으로 부탁드리며, 그렇게 저는 매주 KTX와 SRT를 타고 구리와 다산으로 향했습니다.
첫 수도권 임장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조원분들은 입지를 분석하고, 적정 가격을 이야기하고, 왜 그런 가격이 형성되는지 토론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도에서 아파트 위치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단지 이름도 낯설었고, 대화에 한마디도 끼지 못했습니다.
임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
창밖을 바라보다 문득 아이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괜히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날 저는 기차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 조장님이 조용히 해주셨던 말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꼬숑님이 그만큼 더 성장하고 싶어서 그런 마음이 드는 거예요.
처음인데도 정말 잘하고 계세요."
그 한마디가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다음 날부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분임과 단임을 반복하면서 수성구와는 전혀 다른 수도권 시장을 직접 느꼈고, 점점 확신이 생겼습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3주 차부터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아침부터 전임에 매달렸습니다.
강의에서 계속 들었던 한 문장만 붙잡았습니다.
'내 투자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똘똘한 한 채.'
앞마당은 수성구 하나뿐이라 지역 비교는 부족했지만, 서울과 가장 가까운 비규제지역, 그리고 8호선이라는 입지에 집중했습니다.
8호선 역세권 아파트를 하나하나 비교하며 전임을 했고,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면 곧바로 구리로 달려갔습니다.
오후 4시에 도착해서도 30분 간격으로 매임을 10개 가까이 잡았던 날도 있었습니다.
조원분이 자신의 차로 다음 단지까지 태워다 주시고, 부사님도 다음 매물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덕분에 계획했던 매임을 모두 마칠 수 있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삼각김밥 하나를 먹으며 '오늘도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습니다.
그래서 구리와 다산은 저에게 단순한 투자 지역이 아닙니다.
첫 수도권 임장.
나홀로 첫 분임과 단임.
고군분투 첫 매임.
그리고 첫 1호기 계약까지.
평생 잊지 못할 지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들게 두 개의 후보 매물까지 추렸지만, 주변에서는 계속 말렸습니다.
"왜 굳이 수도권이야?"
"차라리 수성구가 낫지 않아?"
저는 인정합니다.
정말 팔랑귀입니다.
결국 흔들렸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1순위 매물은 다른 사람에게 계약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많이 후회했습니다.
그러던 중 6월 5일, 기다리던 투자코칭을 받았습니다.
김인턴님께서 제 이야기를 들으시더니 딱 한마디를 하셨습니다.
"원래 생각하셨던 방향이 맞습니다."
그 한마디가 다시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김인턴님 늦었지만 감사인사 전합니다.)
곧바로 다시 구리·다산으로 올라가 새로운 부사님을 만나 새로운 매물을 찾았습니다.
사실 매물코칭까지 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또다시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그리고 2026년 6월 7일.
월부를 시작한 지 딱 3개월 만에 제 이름으로 생애 첫 부동산 계약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계약을 하는 과정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투자금이었습니다.
부족한 자금은 부모님께 빌리기로 했는데, 자칫하면 증여로 판단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여러 세무사님께 상담을 받고, 자금조달계획서도 하나하나 공부하며 준비했습니다.
계약 역시 모든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생소한 용어들, 특약 하나하나, 계약서에는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때마다 조원분들께 질문하며 하나씩 배워 나갔고, 그렇게 좌충우돌 끝에 생애 첫 계약서를 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저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조모임 방에서는 아직도 '질문봇'이고, 실전반은 여전히 두렵습니다.
가끔은 기초반에만 영원히 머물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더 큰 목표도 생겼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서울로 갈아타기.
그리고 순자산 10억 달성.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저는 앞으로도 꾸준히 배우고 행동하려고 합니다.
고마운 사람들
무엇보다 월부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끝까지 함께 가고 싶습니다.
혼자였다면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임장보고서를 쓰다 막혀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마다 친절하게 알려주시고,
좋은 자료를 아낌없이 공유해 주시고,
힘들 때마다 "잘하고 있다"고 응원해 주시고,
늦은 밤 개인 톡에도 자기 일처럼 함께 고민해 주시고,
전임도 함께해 주시고,
매임 시간에 늦지 말라며 차로 태워다주시고,
지금도 안부를 물어봐 주시는 조원분들.
그리고 서로의 루틴을 응원하고, 함께 책을 읽으며 성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모든 동료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럭키쿼카님, 장사하는단대기님, 큰빛님, 꿈꾸는부린이90님, 돈은나를원한다님, 우물우물님, 연1님, 정록12님, 존경받는별1님, 구찌누나님, 포다님, 초초긍정님…이전 열기반 조원님들까지 모두 감사합니다!!)
정말 한 분 한 분께 식사를 대접해 드리고 싶을 만큼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뭔가를 시작하기에 이미 늦은것 같은 40대입니다.
7살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워킹맘이자 싱글맘입니다.
부동산 계약은커녕, 혼자 부동산 중개사무소에 들어가 본 적도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월부를 시작한 지 딱 3개월 만에 제 이름으로 첫 계약서를 썼습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충분히 해낼 수 있습니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되더라도 괜찮습니다.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져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해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했기 때문에 조금씩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투자 공부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인생에서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고 마음속에 담아둔 일이 있다면, 저는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이 가장 빠른 때입니다.
저 역시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2호기, 3호기, 그리고 서울 갈아타기까지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언젠가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의 투자 후기도 꼭 읽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투자 복기
✔ 잘한 점
- 무식하리만큼 용기를 내어 두려움보다 행동을 선택한 것.
- '언젠가 해야지'가 아니라 더 이상 미루지 않고 투자 공부를 시작한 것.
- 아이를 맡기고 매주 수도권 임장을 다니며 끝까지 행동한 것.
- 완벽한 확신을 기다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내린 것.
✔ 아쉬운 점
- 중간에 주변의 이야기에 흔들리며 방향성을 잃고 고민했던 점.
- 매물코칭을 받지 않고 조급한 마음에 계약을 진행한 점.
- 한 단지에만 확신이 생겨 다른 대안 단지들을 충분히 비교하지 못한 점.
- 단지 내 모든 부동산에 전임하지 못해 시장의 온도를 충분히 확인하지 못한 점.
- '매물을 놓칠까' 하는 조바심 때문에 더 다양한 매물을 비교하지 못한 점.
✔ 다음 투자에서 개선할 점
- 앞마당을 꾸준히 넓혀 지역 간 비교할 수 있는 인사이트를 키우기.
- 전세가 낀 투자 매물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매물을 보며 경험을 쌓기.
- 한 단지에 집착하기보다 여러 대안을 비교하며 투자 판단력을 높이기.
- 모든 부동산에 전임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 더 많은 정보를 확보하기.
조급함보다 원칙을 우선하며, 저환수원리 기준으로 끝까지 비교·검토하기.
이번 1호기 투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했던 점은 다음 투자의 실력이 되고, 잘했던 점은 계속 반복하며 2호기, 3호기까지 이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