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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리지 않던 0호기, 포기하지 않은 2년 3개월 - 다산 아파트 투자 성공기

26.08.31 (수정됨)

아픈 몸을 이끌고 만난 책 한 권

 

23년 상반기, 건강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받으며 하던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된 후, 우연히 만난 책들 중 하나가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였습니다. 이 책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경제와 부동산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그제야 깨달은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한 달에 4권 이상 경제와 부동산 관련 책을 읽어나갔고, 그러다 24년 3월 열반스쿨 기초반을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열기에서 내 노후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현실을 직시하고 나니,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바로 다음 달 실준반을 등록했고, 임장지는 제가 사는 지역으로 정했습니다. 조원들 중 유일한 지역 주민이었던 저는 매니저님의 설득으로 조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조장이라는 이름의 시작, 그리고 좌절

 

임보는 어떻게 써야 할지, 임장 루트는 어떻게 그려야 할지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조원들이 이야기하는 트렐로, 램블러, GPX는 더더욱 낯설었습니다. 조장으로서 조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거의 하루 종일, 밤늦게까지 끙끙거렸던 것 같습니다. 어렵지 않아 보이는 일에도 헤매는 제 모습이 답답해 눈물을 흘린 적도 있고, 임장을 다녀와 1만 보 조금 넘게 걸었을 뿐인데 몸이 아파 사흘을 꼬박 누워만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과연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동료들의 응원과 격려 덕분에 실준반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체력이 안 되면 짧게라도 더 자주 가면 된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임장을 더 가고 싶었지만 아직 부린이라 월부 커리큘럼대로 다음 강의였던 열중반을 신청했고, 대학생 때 이후로 오랜만에 여러 사람과 깊이 있게 책을 읽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 시기를 통해 부동산 투자에는 기술적인 지식만큼이나 멘탈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하철도 못 타던 길치, 서울을 공부하다

 

다음 달에는 서투기를 신청했습니다. 처음엔 강의가 어렵게만 느껴졌지만, 부동산 배경지식이 워낙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강의를 세 번씩 듣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은 동료들에게 묻기를 반복했습니다. 서투기 조장님이었던 룰루오렌지님이 하신 "지하철도 선호도가 있다, 타보면 사람들 분위기도 다르다"는 말은 그때는 솔직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워낙 길치였던 저는 지하철을 타러 가는 것부터 긴장이 됐고, 환승은 더더욱 힘들었습니다. 평소 자차로만 이동하다 보니 버스를 안 탄 지 20년이 넘어서, 버스는 어떻게 타는지 버스비는 어떻게 계산하는지조차 물어봐야 했습니다. 서투기 조원분이 핸드폰에 교통카드를 깔아주셨을 때, 핸드폰만 대면 결제가 되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던 기억도 있습니다.

 

서투기를 하며 임장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옆에 있는 동료들 덕분에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성장하는 스스로를 보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강의를 들을수록 서울 투자를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져갔고, 서울을 더 집중적으로 보고 싶어 제주바다님의 동대문구 특강, 양파링님의 동작구 특강을 들으며 서투기 동료들과 계속 소통했습니다.

 

 

팔리지 않는 집, 멀어지는 서울

 

그 무렵 앞마당이 4개 정도로 늘었고, 남편과 상의해 자산 재배치를 결정하고 0호기 매도를 위해 집을 내놓았습니다. 살기 좋은 곳이었고 주변에 초중고는 물론 지역에서 제일 큰 학원가까지 코앞이라, 매도는 아주 쉬울 거라 철석같이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가끔 집을 보고 간 손님은 다른 단지를 계약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사장님들은 곧 팔릴 거라고 하셨고, 저는 그 말을 믿으며 계속 앞마당을 넓혀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서울은 계속 상승했고,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지역은 서울 3급지에서 서울 5급지, 경기 4급지로 점점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임장을 이어가고 틈나는 대로 집 정리도 했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은 여전히 적었고 보기만 할 뿐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는, 제가 사는 지역에 거의 8년 동안 평균 수요 대비 2배 이상의 공급이 있었고 28년까지 2~3배의 추가 공급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갈피를 못 잡고, 0호기 매도가 안되면 지방투자라도 해야 되나 싶어서 지방 임장까지 다녀왔습니다.

 

돌이켜보면, 서울 투자를 결정하고 앞마당이 4~5개였던 그 시점에 투자 코칭을 먼저 받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 시장에는 가격을 내려서라도 입주해야 하는, 저보다 더 급한 매도자들의 급매가 계속 쏟아졌고, 그 물량에 밀려 제 물건은 좀처럼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25년 10월,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이 토허제로 묶였습니다.

 

 

무력감을 딛고, 구리로

 

목적을 잃은 듯한 기분에 2~3일을 무력하게 보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바로 구리를 조사하고 임장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서투기에서 구리 강의를 들으며 내가 지역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 후 매물을 보러 다녔지만, 이번에도 제 집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사장님들은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다, 12월쯤 사람들 돌 때 한번 팔아보자"고 하셨고, 그렇게 구리는 제 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26년 1월 초, 투자 코칭을 신청했습니다. 마스터님의 뼈 때리는 조언을 들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저에게 그런 귀한 조언을 해줄까 싶은 마음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바로 부동산에 가서 가격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사장님은 가격만 자꾸 내리는 게 좋은 선택은 아니라며 살 사람이 나타났을 때 네고를 해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을 따라 기다렸고, 그 무렵 매수 의사를 보인 두 분이 있었지만 대출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아 무산됐습니다. 그렇게 저의 투자는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했습니다.

 

 

다시 열기, 그리고 눈물의 거북이빵

 

26년 3월, 열기를 다시 들었습니다. '지금 열기를 들을 때인가, 매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 시장을 바라보는 너바나님의 인사이트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며 문득 '2년 전 처음 강의를 들었을 때와 지금 달라진 게 뭐지?'라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0호기 매도도, 투자도 해내지 못한 채였고, 어떤 결과도 만들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커져갔습니다. 투자를 정말 하고 싶은데 이대로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함께 커졌습니다. 동시에 '더 늦으면 안 된다, 이번엔 반드시 해낸다'는 오기도 생겼습니다.

 

열기 조장님이었던 하쿠제니님은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셨고, 조원들도 많은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미니 임장을 하려고 만난 조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조장님이 사주신 거북이빵은 '눈물의 거북이빵'이 됐고 저는 조원들에게서 정말 많은 용기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습니다. 단지 내 선호 타입에 로얄동 로얄층이었지만, 선호도가 낮은 타입의 저층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매도가를 정하고, 사장님들께는 광고 없이 손님만 찾아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가격 자체가 부동산 사장님들도 직접 사고 싶다고 하실 만큼 경쟁력이 있었고, 그 덕분에 사장님들이 다른 부동산에까지 전화를 돌려 손님을 데려와 주셨습니다. 그렇게 3일 만에 집이 팔렸습니다. 드디어 매도가 성사된 것입니다.

 

 

부천, 산본, 구리, 남양주 - 그리고 1호기

 

 

저는 부천, 산본, 구리, 남양주 네 지역에서 매물을 찾고, 더 좋은 매물을 찾기 위해 워크인을 반복했습니다. 지역과 매물이 점점 좁혀졌지만, 매도를 진행하는 사이 구리는 이미 제 투자 범위를 벗어나 있었고 남양주에서는 선호도가 밀리는 단지의 저층 매물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다시 힘이 빠지려던 순간,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마음으로 구리 갈매 생활권으로 향했습니다.

 

다녀온 뒤 갈매까지 밀려나는 건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다산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던 부사님께 전화를 드려 제 투자금을 정확히 말씀드리고 물건을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매물을 보러 가며 떨리는 마음으로 매물 코칭을 신청했고, 다행히 성공했습니다. 사장님은 조건을 만들어볼 수 있는 물건 세 개를 보여주셨고, 저는 그중 하나를 우선순위로 정했습니다.

 

사장님께는 투자여부를 저녁에 말씀드리겠다고 하고, 집에 가자마자 이전에 봐뒀던 다른 지역 1등 물건과 이 물건 두 가지를 놓고 질문지를 작성해 저녁 8시에 매물 코칭을 받았습니다. 적적한 투자님께서 진심을 다해 코칭해주셨고, "공급이 그렇게 많은 상황에서 매도를 해낸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는 말씀에 울컥했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놓친 부분은 없는지, 더 좋은 물건은 없는지 고민하는 저에게 최고의 조언을 해주셨고, 제 선택에 확신을 주셨습니다.

 

코칭이 끝나자마자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월부에서 공부를 시작한 지 2년 3개월 만에, 저는 드디어 1호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혼자 공부했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지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열기부터 실준반, 열중반, 서투기, 지역분석강의까지 강의를 하나씩 거치면서 그 지역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선호하는지를 보는 눈이 생겼고, 입지뿐 아니라 임장하는 방법, 전세를 빼는 방법까지 투자에 필요한 A부터 Z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복기하며

 

아쉬운 점 - 투자 코칭을 너무 늦게 신청해서 서울 투자 타이밍을 놓친 것이 가장 아쉽습니다. 그리고 강의에서 늘 강조하던 공급 확인을 정작 제가 매도해야 할 지역에는 제대로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투자하려는 지역의 공급은 꼼꼼히 살폈으면서, 제 물건을 팔아야 하는 지역의 공급은 확인하지 않았고, 제 물건의 가치를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도 뼈아픈 지점이었습니다.

 

잘한 점 - 그럼에도 "나는 될 때까지 할 것이므로 반드시 된다"는 자모님의 말씀을 붙잡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것, 그 한 가지만큼은 스스로에게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감사한 분들

 

1호기라는 퍼즐을 완성하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좋은 책으로 제 머리를 깨워주신 너바나님, 강의를 들을 때마다 저를 울리는 너나위님, 투자를 위해 진짜 필요한 이야기를 명확하게 전달해주시는 자모님, 강의를 들을수록 더 좋은 강의를 위해 애쓰시는 게 느껴지는 권유디님, 그리고 진심을 다해 수강생들의 투자를 위해 강의해주시는 주우이님, 양파링님, 진담님을 비롯한 많은 튜터님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저와 같은 조였던 많은 동료들, 그들의 이야기가 저에게는 좋은 자극이었고 덕분에 힘든 과정을 끝까지 해낼 수 있었습니다. 0호기 매도와 1호기 매수라는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해준 열기 90기 47조 하쿠제니 조장님, 꾸기님, 채봉님, 우리님, 애진님, 규님, 응원해주시고 용기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계약 당시 특약 문제로 고민하던 저에게 의견을 나눠주신 많은 월부 동료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돈독모에서 만난 지니플래닛님, 덕분에 나눈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된 것 같습니다.

 

부동산 강의를 듣고 저질체력으로 임장을 다니느라 소홀했던 집안일을 대신 해준 남편, 엄마가 하는 임장이 도대체 뭔지 궁금해하며 가끔 저를 따라나서 준 세 아들도 이 퍼즐의 한 조각이었습니다.

 

월부를 만나고, 계속 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난 것이 무엇보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경제적 자유를 이룰 때까지 환경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해나가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2

내꺼장만
26.09.01 21:57

정말 수고 많으셨네요! 동시에 목표를 꾸준히 상기하고 실행하신점!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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