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마리오소다입니다.
혹시 무악재라고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서대문구와 종로구 사이에 위치한 고개입니다.
뭔가 유명하고 많이 들어본 지명이긴 한데, 왠지 저는 이름에서 오는 무서운 느낌이 있었어요.
(전혀 다른 뜻이지만 무서운 '악재' 같은 단어들이 연상되다 보니 ㅋㅋㅋㅋ 멋대로 무섭다고 생각했던 곳... )
과연 정말 그럴까요?
무악재는 예로부터 서울의 서쪽 경계였으며, 무악재 고개를 넘어 들어서야 진정한 서울이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관서 지방과 멀리 중국으로 통하는 유일한 관문이었던 무악재는, 인왕산과 안산에 예로부터 호랑이들이 살아서 무악재를 넘어갈 때면 호랑이의 습격을 많이 받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행인이 10명은 모여야 넘어가기도 했고, 사신들이 무사히 고개를 넘게 해달라고 치성을 드리던 사신당도 있었다고 합니다.

1960년대의 무악재는 지금보다 훨씬 악명 높은 곳이었습니다.
서울의 대표적인 ‘교통지옥’ 중 하나였다고 하는데요.
출근시간이면 차량이 몰리고, 버스에는 승객이 넘쳐났다고 합니다.

지금은 왕복 6차선의 아스팔트 도로가 깔렸지만,
여전히 많은 교통량이 오고가는 곳입니다.

이 무악재를 가운데 두고 무악청구와 무악현대 두 형제가 살고 있습니다.
이름은 비슷하고 위치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두 형제의 가격 차이는 같은 평형 기준으로 4억이 넘어갑니다.
6살이 어린 동생 현대를 둔 형, 무악청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제가 임장하며 느낀 점들을 재밌게 풀어보고자 합니다.
무악청구 이야기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볼까요? ㅎ
(항마력 준비해주세요)

<사이버 세계 인싸, 무악청구 이야기>

포털 지도 앱 지붕 위에서 렌즈를 뱅글뱅글 돌리며 세상을 찍고 여행 중이라는
‘로드뷰 카메라’(이하 줄여서 ‘로카’)는 호갱모모에서 우연히 팔로우를 하다가 만난
나의 오랜 사이버 세상 단짝이다.
호갱모모 앱 화면 속 나는 늘 어깨에 힘을 주고 살았다.
“그거 알아? 내 동생이 그 유명한 무악재 대로변의 ‘현대’잖아.
지금은 어린 친구들이 많이 들어와서 인기가 덜해졌지만,
한때 정말 잘나가던 그 현대가 내 동생이야.
왕년에는 내가 더 잘나갔는데 요즘 세상은 동생을 더 알아주긴해.”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들은 나를 모두 부러워했고,
화면 속 픽셀로 구성된 평평한 2D 지도 위에서 나와 현대는 무악재 최고의 콤비처럼 보였을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콤플렉스가 있다.
독립문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동생네와는 달리,
나에게 오려면 무악재라는
아찔한 경사와 출퇴근길 골목에 병목처럼 걸리는
‘교통정체’라는 현실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세상에서는 어찌어찌 잘 숨기고 살 수 있었고,
이 세상에서 나는 누구보다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인싸였다.
근데 저 호기심 많은 ‘로카’ 녀석이 자꾸만 날 실제로 만나고 싶어 했다.
“청구야, 너는 진짜 모습도 지도처럼 멋지지?
내가 가서 널 멋지게 찍어줄게.
그리고 SNS에도 사진 올리자. 주말에 놀러 갈게!!”
‘말이 참 잘 통하는 친구이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긴 했지만, 내 모습을 들키기는 싫은데...
나한테 실망하고 말 거야...’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매주 미뤄왔다.
비가 와서,
바빠서,
컨디션이 안 좋아서...
하지만 핑계를 대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고,
‘로카’ 녀석이 옆에 신축 친구 사진 찍으러 가는 길에 잠깐 들렀다며
무악재역 3번 출구에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헐... 더 이상 숨을 곳은 없었다.
숨을 곳이 없었지만 숨을 곳을 찾아야 한다!! 인왕산 현대 쟤 뒤에 숨을까? 망했다.
저기 로카가 올라오는 게 보인다.
너무 보고 싶은 친구이긴한데…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로카의 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이제 다 끝났어.
저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오면서 혀를 차겠지.
주차장 같은 교통체증을 보며 실망해서 비웃으며 돌아서겠지.’
마침내 단지 정문에 도착한 ‘로카’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자수하듯 슬그머니 친구 앞에 나섰다.
“미안해, 지도로 볼 때랑 다르지?
언덕도 높고, 들어오는 길도 좀 그렇고... 난 사실 내 동생 현대 같지 않아.
잘나가지도 않고, 셀럽 지망생도 아니야...”
“무슨 소리야? 네 동생도 언덕이던데? 몰랐어? 아,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로카’는 나를 바라보다가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 지금 지하철 승강장에서 내려서 딱 3분 만에 여기까지 걸어왔는걸?
내 광각 렌즈로 보니까 지하철역 출구랑 네 정문이랑 한 프레임에 동시에 잡히는 완벽한 초역세권인데?
게다가 이 모퉁이 찍자마자 도로 소음 데시벨 수치가 싹 떨어지는 거 안 보여?”
‘로카’는 단지 위로 쏟아지는 인왕산 바람을 렌즈에 담으며 말을 이어갔다.
“왜 너의 콤플렉스에 갇혀서 이 압도적인 광화문 접근성이란 화각을 못 보는 거야?
넌 앵글을 아주 근사하게 받는 아파트야.
늘 만나고 싶었어.
실제로도 넌 멋진 친구구나. 자신감을 가져!”
빛을 받으며 렌즈에 반사된 인왕산의 푸른 잎사귀들이 반짝였다.
약점에만 매몰되어 잊고 있었던 나의 진짜 앵글.
2D 세상의 가면을 벗어던진 나는,
이제는 사이버 친구가 아닌 진짜 친구의 렌즈를 향해 가장 당당하고 아늑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경계가 단절감을 강화시키고, 가격을 벌려 놓습니다.>
무악현대와 무악청구를 보고 재미있었던 것은
위의 이야기 맥락에서 보셨겠지만,
2D 지도상으로 봤을 때 물리적인 거리 자체는 크게 멀지 않고
지하철역 또한 한 정거장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하철 노선도 똑같이 3호선이죠.
얼핏 보면 위치와 입지가 비슷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둘의 가격 차이,
호가라곤 해도
4억은 좀 심한 거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6년의 연식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어차피 같이 구축으로 함께 가고 있는 마당에)
심지어 선호도와 가치를 평가할 때 무악청구 84m²보다는 무악청구 59m²를 갖고 싶다는 의견이 들리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무엇이 이 둘의 차이를 가져오는 걸까요?
서대문구와 종로구의 위상 차이를 비롯해서,
지도에서 보여지는 물리적 거리보다 사람들 마음속에 쳐 놓은
심리적인 경계가 더 강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독립문역에서 무악재역은 그냥 한 정거장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무악재를 넘어가고, 넘어가지 않고”의 뉘앙스, 이미지, 인식 등등이 모인
그 심리적인 경계는 한 정거장보다 훨씬 더 먼 마음의 거리를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심리적 경계가 오늘날의 가격 차이를 만든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은 호랑이가 나오는 시절도 아니고,
교통체증은 있지만 6차선 도로가 뚫리기 전처럼 교통지옥도 아닙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DNA처럼 켜켜이 쌓인 그 지역에 대한 인식은 쉽게 변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럼 구축에 무악재를 넘어가는 운명으로 태어난 청구는 영 안 되는 건가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것,
눈치채셨죠?
네, 맞습니다.
위치적으로 두꺼운 심리적 경계 너머의 생활권에 있는 단지인 무악청구는
'3호선 3분 컷'이라는 뚜렷한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광화문까지 독립문 생활권에 비해 접근성이 떨어질 뿐,
압도적인 접근성을 가지고 있는 단지입니다.
독립문 생활권에 비해 이 정도로 밀리는 건 억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독립문 프리미엄을 모두 지불하기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그 심리적 경계선은 오히려 알짜 기회의 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도 속 10cm의 차이가 현장에서는 몇 cm의 차이일까>
지도 속 10cm의 차이가 현장에서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진짜 그 정도 차이인 지역도 있을 것이고,
바로 옆 동네인데 행정구역이 달라져서,
혹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물리적 거리보다 더 많은 차이를 보이는 지역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주말, 손가락으로 지도 앱만 들여다보지 마시고
직접 운동화 끈을 묶고,
지도에는 없는 몇 cm의 차이를 찾아내 보는 재미있는 경험을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며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진짜 아파트의 숨결과 가치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상, 단지 탐구생활 4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지 탐구생활 #1 창원 성산구 롯데맨션, 이빨 빠진 호랑이도 호랑이다 [마리오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