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렇게 한권을 읽고 서평을 남겨 본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을 쓴 사람의 생각과 주장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서평은 온전히 내 세상이 된다. 적고 있노라면, 1초에도 수만가지 생각이 지나가는 한 가운데 타자를 치면서 관잘차로서 이 세상에 무엇인가를 남기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내 인생에 어떤 점을 남길 수 있을까?
돈은 내가 100%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아직 매도하지 못한 자산에 대해서 아쉬운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내 자산이라는 스토리의 일부다. 내가 처한 상황이며,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부분이다. 너무 모든 것을 다 내가 책임 질려고 하지 말자, 오딧세이에서도 신이 말해주지 않던가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다. 아니 그게 완벽한 것도 아니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되 운명론자 늪에 빠지지는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자.
→ 조급함을 낮추고 완벽할 수 있다는 환상을 낮추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되 현재에 만족하지는 말자.
(주요 서평 내용)
돈의 심리학은 나쁘게 얘기하면 뻔한 얘기를 늘어놓은 느낌이 없잖아 있고, 좋게 얘기하면 정말 중요한 얘기들을 많이 적어놨다는 것이다. 오늘은 그 중 내 눈에 많이 밟히는 아이들 위주로 생각을 적어보고자 한다.
(생각의 생각)
결국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비단 돈에만 해당되는 일도 아니지 싶다. 생각보다 운이라는 것이 너무 크게 작용하여, 이 작은 움직임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을 정도. 하지만 결국 그 환경을 뛰어 넘어 보고자, 그 안에서 뭐라도 해보고 싶다보니, 이렇게 서평도 적고 책도 읽는 것 아닐까? 우연히 발견한 다이어리를 통해 이렇게 책을 읽게 되는 환경 조차도 나에게는 어쩌면 운일 수도 있다.
자칫 운명론자로 빠질 수도 있지만, 세상 일이 모두 원하는 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 내가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서두였다.
비가 안 올 수도 있고, 덜 올 수도 있고, 많이 올 수도 있다. 내 돈그릇을 넓히는 것 외 뭘 더 할 수 있을까 싶다, 결국은 말이다. 운명이 정한대로 살겠다는 것, 그것만큼 인생에 비겁한 것이 있을까
(생각)
이 부분을 읽고 과거 내 경험을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신혼 때 샀던 첫째, 첫째를 팔고 산 둘째, 그 와중에 또 산 셋째, 그리고 둘째를 보내주고 데려온 넷째. 총 4번의 매수, 2번의 매도가 있었다. 이게 다 우연이었을까? 만약 내가 그때 결혼하지 않았다면 첫째를 사지 못했을 테고, 그 이후 스토리는 완전히 바뀌었을까?
아무튼 잘 모르는 일반인이라면 인생 대 이벤트와 함께 매수가 일어나거나 조금 돈을 모아 매수가 일어날 확률이 높긴 높을 듯 하다. 물론 무주택으로 갈 수도 있었을 테고.
나는 왜 굳이 그 이쁜 첫째를 팔고 둘째를 샀더랬을까? 어차피 부동산으로 돈벌기 힘들고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그 이쁜 첫째를 헐값에 팔았음에도 굳이 왜 못난이 둘째를 샀을까? 물론 그땐 첫째가 이쁜지 둘째가 못났는지는 구분을 못했더랬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사람은 결국 환경에 따라 행동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환경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개인의 능력 및 레벨업으로 이 운명같은 환경을 뛰어넘으려면 결국 그만큼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댓가를 치르더라도 잘된다는 보장이 없기에 결국 대부분 사람들은 원래 삶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난, 과연 여기서 내 환경을 운명을 바꾸고 있는 것일까?
일반인은 어디까지 실력이고 어디까지 운이었는지 구분이 불가능하기에, 결국 이런 환경 속에서 딥 다이빙을 하고 있노라면, 부족한 내 운 또는 타이밍 맞지 않게 오는 운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늘린다 생각이 든다. 돈그릇을 키워 하늘에서 내려오는 운을 최대한 잡아 보는 개념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여전히 월부 환경에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공간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어떻게든 기존 운명/환경을 극복하여 뭔가를 이루려고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기에 분명 직간접적으로 좋은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고, 혹여나 내가 기존 운명/환경으로 돌아가려는 본성을 막기에 여기만한 곳이 없다.
(발췌)
나는 볼테르의 다음 말을 좋아한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반복하는 것이다.” 이는 돈에 대한 우리의 행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당신은 투자에 있어 안전지향적인가, 위험선호형인가? 사람에 따라 왜 이런 차이가 있는가? 두 경제학자가 발견한 사실에 따르면 사람들의 투자 결정은 본인 세대의 경험, 특히 성인기 초기의 경험에 크게 좌우된다고 한다. “투자자 각자의 위험 선호도는 개인의 경험에 좌우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능도, 교육도 아니었다. 순전히 언제, 어디서 태어났느냐 하는 우연에 좌우될 뿐이다.
행운과 리스크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는 모든 결과가 단순히 개인의 노력 말고도 여러 가지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두 가지는 워낙에 비슷하기 때문에 한 가지를 믿으려면 다른 한 가지도 같은 정도로 존중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00퍼센트 우리의 행동이 100퍼센트 우리의 결과를 좌우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레이엄은 가이코로 대박을 낸 것에 관해 이렇게 썼다. “어쩌다 한번 운이 좋았을까, 아니면 대단히 기민한 의사결정이었을까? 우리가 과연 두 가지를 구분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성공이나 실패의 큰 패턴을 찾다 보면 실천 가능한 교훈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패턴이 흔할수록 내 삶에 적용하기 더 쉬울지도 모른다. 워런 버핏의 성공 투자를 흉내 내기 어려운 이유는, 결과가 그토록 극단적이면 그의 한평생 성과에 행운이 크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또한 행운이란 우리가 안정적으로 흉내 낼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시간을 잘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경향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리고 그처럼 폭넓고 흔한 관찰 결과를 바탕으로 삼는다면, 우리도 뭔가 해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젠가 빌 게이츠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형편없는 스승이다. 똑똑한 사람들을 꾀어내어 자신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든다.”
상황이 극히 잘 돌아가고 있다면 다음의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어쩌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상황은 좋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무적이 아니다. 행운이 당신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사실을 인정한다면, 행운의 사촌격인 리스크의 존재 역시 믿어야 한다. 리스크는 당신의 스토리를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실패는 형편없는 스승이다. 똑똑한 사람들을 꾀어내어 자신이 끔찍한 의사결정을 내린 탓이라고 믿게 만든다. 때로 그저 리스크의 가차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것뿐인데 말이다. 실패를 대할 때 중요한 것이 있다. 이때는 투자를 잘못했고 저때는 목표 달성을 못 했다는 식으로 자신의 금전 인생을 정리하려 들지 마라. 그렇게 정리한다고 해서 기록이 모두 없어지는 게 아니다. 또한 확률이 나에게 유리해질 때까지 계속 게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성공에서 행운이 차지하는 역할을 인정한다면, 리스크의 존재는 우리가 실패를 판단할 때 나 자신을 용서하고 이해의 여지를 남겨야 한다는 뜻임을 아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좋은 경우도, 나쁜 경우도 없다.
성공한 사람이 있고, 실패한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의 투자 결과는 달랐고, 사람들은 이렇게 평했다.
멋있게 대담했다. vs. 바보같이 무모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디까지가 행운이고, 어디까지가 노력과 재주이며,
어디부터가 리스크일까?
누구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어떤 결과가 100퍼센트
노력이나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
어느 순간 당신 앞에 행운의 지렛대가 움직일지
리스크의 지렛대가 움직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생각의 생각)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상대와 대화를 많이 해보세요 등 마치 나는 했는데 너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조언 가득한 책들을 싫어 했었다. 최근 몇년 싫어하던 조언 책들을 꽤나 읽었고, 돈의 심리학도 사실 엄밀히 말하면 조언 가득한 책이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등등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쓸 수 밖에 없겠다 싶다. 모든 케이스, 상황을 다 알 수는 없고, 지향점 및 목표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적을 수 있을 뿐 각자의 삶에 적용하는 방법은 결국 각자가 찾아야 하는 것이니깐 말이다. 그래서 이런 조언 책들이 마치 노래 경연대회처럼 맛갈나는 것도 있다. 엄청난 비밀이, 해내기만 하면 대박인 꿀팁들로 가득차 있으니 말이다. 근데, 행동하지 못하면 사실 그냥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사람의 소감일 뿐이다.
골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을 물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 순간 모를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알든 모르든 골대를 세우기 어려운 이유가 분명 있다. 그런 의미에서 끊임없이 읽고 쓰고 생각해보고, 누군가로부터 피드백을 받아보고 복기를 반복하면서 간접적인 경험치를 높이는 것만이 어쩌면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것 같다. 아무리 알아도 상황이 되지 못하면, 또는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면 결국 똑같은 상황에서 같은 결정을 반복할 뿐일 것이다. 골대를 세우지 못하겠으면, 골대를 세워야 하는 상황을 생각해보고 실험해보는 것, 그것에 대한 앞서간 자들로부터 피드백을 들어보는 것, 이것들이 운명을 피해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제어할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이지 싶다.
(생각)
골대를 세워야 한다는 말은 유독 이해가 된다. 시장은 명분이 필요하다고 했었나, 신도시 발표 이후 둘째 가격은 급등을 하기 시작했더랬다. 첫째를 보내고 데려온 둘째였는데 첫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둘째는 진짜 빌빌대고 있었다. 근데 정말 마법처럼 다른 세상이 되었고 둘째의 몸값은 정말 매일 오르다시피 했었다.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난 조금 더 좋은 선택과 결과를 가지고 있었을까? 결국 22년 추석 이후 차갑게 식어버렸고, 아무도 찾지 않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걸 결국 정말 해메다가 정말 운 좋게 너나위님 코칭을 8/9월 받고 23년 말에 팔게 되는데, 진짜 고생을 많이 했더랬다. 결국 모든 자산에 투자할 때 골대를 정확히 정해야지 싶다.
그렇다면 지금 들고 있는 셋째와 최근 데리고 온 넷째의 골대는 무엇일까? 나의 최종 골대는 무엇일까? 셋째는 팔리기만 하면 팔아야 하니 골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넷째는 꼭 팔아야 하나 생각도 든다. 이제 이쁘게 단장해서 일하게 만들 예정인데, 오래 가져가고 싶은 마음도 사실이다. 물론 다섯째부터 찾는게 우선이기도 하다.
골대.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내가 겪기엔 그랬다. 2~3일에 천만원씩 오르니, 사실 싫음 말고! 라는 심리가 굉장히 강하게 들어왔었다. 그게 영원할거 같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담합한 것처럼 추석 이후 모든 것이 뭠췄더랬다.
골대를 세우라는 말, 남일이 아니다.
(발췌)
가장 어려운 것은 멈출 수 있는 골대를 세우는 일이다.
스스로를 멈추게 하는 골대, 즉 목표를 세우는 것, 이는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결과와 함께 기대치가 상승한다면 아무 논리도 없이 더 많은 것을 얻으려 분투하게 되기 때문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도 느낌은 같을 것이다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면서 동시에 비관적이어야 한다.
낙관 없이 투자를 할 순 없다. 그러나 동시에 무엇이 그 미래를 방해할 것인가 끊임없이 걱정하는 양면적 성격이 필요하다. 낙천주의는 흔히 ‘일이 잘될 거라는 믿음’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이는 불완전한 정의이다. 현명한 낙천주의는 확률이 나에게 유리하며, 중간에 많은 고난이 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균형이 맞춰져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믿음이다. 사실 중간에 분명히 고난이 있으리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 있다’. 장기적인 성장 궤도는 올바른 쪽으로, 위를 향하고 있다고 낙관할 수 있지만, 거기까지 가는 도중에 때때로 지뢰밭이 있다는 것 역시 똑같이 확신할 수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
무언가가 단기적으로는 요지부동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그다지 직관적으로 확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일들이 이런 원리를 따른다.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스무 살이 되면 두 살 때 갖고 있던 신경세포 시냅스 연결의 절반을 상실한다. 신경 연결통로에서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스무 살의 청년은 두 살짜리 아기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진보를 위해 파괴가 일어날 수 있으며, 파괴는 과도함을 제거하는 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현재’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만약 평생을 투자한다면, 당신이 오늘 또는 내일 또는 다음 주에 내리는 의사결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남들이 모두 미쳐가는 몇 안 되는(아마도 1퍼센트도 안 되는) 날에 당신이 어떤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하는 점이다.
좀 더 최근 사례를 들어보자. 투자자로서 당신이 2008년 말과 2009년 초의 몇 달 동안 어떻게 행동했느냐는,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했던 모든 일보다 당신의 평생 수익률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파일럿들이 오래전부터 농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지루한 시간이 끝도 없이 계속되다가 간간이 끼어드는 공포의 순간”이 바로 자신들의 직업이라는 얘기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자로서 당신이 성공할 수 있느냐를 가름하는 것은 자동주행 모드로 유유히 달리던 수많은 세월이 아니라, 간간이 끼어드는 공포의 순간에 당신이 보이는 반응이 될 것이다.
우리가 투자의 천재를 훌륭하게 정의해본다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미쳐갈 때 평범한 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꼬리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맞는가, 틀린가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옳았을 때 얼마를 벌었고, 틀렸을 때 얼마를 잃었는가이다.”
절반을 틀려도 여전히 큰돈을 벌 수 있다.
부란 벌어들인 것을 쓰고 난 후 남은 것이 축적된 것에 불과하다. 소득이 높지 않아도 부를 쌓을 수 있지만, 저축률이 높지 않고서는 부를 쌓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 사실을 고려하면 소득과 저축률,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명확하다.
(생각의 생각)
저자는 일관되게 사람은 이성적일 수 만은 없다는 것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도 마찬가지다. 아니, 책의 제목도 돈의 심리학이 아니던가, 여기까지 와보니 결국 저자는 굉장히 이성적으로만 판단해야할 것 같겠지만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적당히 사람답게 판단하고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생각)
난 유독 이 부분이 약해서 오히려 이성적으로 판단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더랬다. 그래서 오히려 이렇게 나오니 너무 방가웠다 해야할까, 내가 유독 적당히 합리적인 판단러라 그랬다. 근데 오히려 그게 낫다 하시니 완전 좋다 ㅎㅎ
넷째를 살 때 더더욱 그랬던거 같다. 아니 넷째가 겁나 싼건 알겠는데, 다른 단지 매물을 깎아 보지 않았으니 , 동일 단지 내 또는 유사 생활권에서는 딱 확신이 드는데 앞마당 전체에서는 100%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드는 생각은 그게 동시 다발적으로 다 확인이 될 수가 없다 싶다. 특히 깎아서 사는 작금의 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결국 네이버 호가 그리고 전화임장으로 물건을 추릴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고, 친한 부사님 계시면 전화로 네고를 해보는 수밖에 없다 싶다. 그리고 그렇게 팍 깎였을 때, 그냥 그걸 두고 나가면 결국 다른 사람에게 팔릴텐데라는 걱정도 들었다. 조급해하지 말라 그랬지만 그런 가격이라 생각이 되었다, 당시에는. 적당히 합리적으로 보자면 그 아이는 정말 쌌다, 내가 혹할 정도로.
돌이켜보면 나의 의사결정 과정이 사뭇 정석과는 다를 순 있더라도 충분히 적당히 합리적이면서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되며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잘샀다 징기야. 책에서도 적당히 합리적으로 하라고 하니 조금은 조심하되 너무 네 색깔을 죽이진 말자.
(발췌)
우리는 스프레드시트가 아니다. 우리는 사람이다. 엉망진창으로 사는, 감정적인 사람이다 이 사실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하지만 이 생각이 번뜩 드는 순간, 나는 이게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관련해서 종종 간과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금융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는 냉철하게 이성적이 되려고 하지 마라. 그냥 ‘꽤 적당히 합리적인’ 것을 목표로 삼아라. 이게 더 현실적이며 장기적으로 고수할 확률도 크다. 돈 관리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돈과 투자에 대해 생각할 때 지난 역사를 무시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대신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 있다. 일반적인 것, 즉 사람들이 탐욕이나 공포와 맺고 있는 관계, 스트레스를 받을 때 행동하는 방식,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모습 같은 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인 경향이 있다. 돈의 역사를 탐구할 때는 바로 이런 것들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손실을 본 이후 지쳐서 그만둔 투자자들을 여럿 알고 있다. 그들은 육체적으로 지쳤다. 이 숫자들이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알려주는 것은 스프레드시트가 잘한다. 그러나 밤에 아이들을 재우면서 ‘만약 이 투자 결정이 잘못됐다면 아이들의 미래가 망가지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당신의 마음이 어떨지 알려주지는 못한다. 실수의 여지를 생각할 때 엄밀한 의미에서 ‘견딜 수 있는 것’과 ‘정서적으로 가능한 것’ 사이의 차이를 간과하기 쉽다
(생각의 생각)
이제와서 돌이켜 보면 분명 얻는 것이 있었지만 잃은 것도 있다고 확신한다. 인생은 공평하고, 지나침이 있으면 반드시 부족한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다. 손은 2개이고, 양손에 들고 있고 싶으면 더 바라지 말아야 했다. 언젠가는 그 댓가를 치루기 마련이었다. 어쩌면 이미 그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좋게 보면 어떤 결정을 해도 댓가는 따라오기 마련이겠다도 싶다. 그러니 순간순간 최선의 결정을 하고 행동했다면 후회해봤자 의미가 없다. 그 아이가 알려주지 않았던가,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면 된다고 말이다. 이 서평을 적고 있는 나는 여한이 없을까? 이 시간에 다른 것을 해야 여한이 없을까? 매트릭스에서 니오와 트리니티, 하다 못해 동궁이라는 드라마에 나오는 구천과 생강을 비롯하여 정말 모든 내용이 결국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 연결되는 관계라는 내용으로 귀결된다. 글을 적다보니 결국 폭주를 하는 것 같긴 한데,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에 오히려 솔직하게 더 적을 수 있겠다 싶다. 난 도데체 뭘 얻고 뭘 잃었던 것일까? 과연 나는 제대로 알고 있기는 한 것일까?
(생각)
이 부분이 나에게는 무엇이었을까?
저 비용을 내지 못해 보내버린 첫째
저 비용을 지불하였기에 수익이 있었던 둘째
셋째 넷째는 아직 잘 모르겠고 말이다. 근데 돈을 벌려면, 반드시 분명 힘든 구간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돈이 저절로 들어올리가 없다, 모든 것은 결국 제로섬 게임이다. 열역학 법칙에도 나오지 않던가(대박 기억하다니 내가) 힘들었으니 돈이 벌리는 것이다. 물론 사서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고생하지 않은 성공 스토리는 단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고, 세상 일이 항상 그랬다. 그래서 난, 뭔가 너무 쉽게 가면 불안하기도 했다.
넷째도 언제든 꼭 비용을 내고 싶다
(발췌)
성공적인 투자에는 대가가 따라붙는다.
그 비용은 달러나 센트가 아니다.
변동성, 공포, 의심, 불확실성, 후회의 형태로 지불해야 한다.
(생각의 생각)
그러고 2년이 지났다. 마치, 역학적으로 갈 수 없는 순간으로 시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말이다. 과연 그 결정은, 옳았을까? 아니, 옳고 그름이 있을 수 있나? 과연 그 결정은 극심한 쳇바퀴에서 나와 내 마음의 평화를 찾았던 것일까? 이 질문만 보면 나는 당시 그랬다고 자신한다. 그 순간에 긍정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면, 그 뒤는 뻔하디 뻔했다. 뭔가 홀린 것 처럼 그 순간에 반응하고 결정하고 행동했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얻지 않았던가
그러면 됐다. 충분하다.
(생각)
와 이건 이번 책 읽으면서 가장 와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