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닥치고한다
행동하는 투자자 "오닥"입니다!!
2021년의 저는 "우리는 집도 못 사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워" 이 한 문장으로 아이를 포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지금, 제 품에는 아이가 안겨 있고 순자산은 10억을 넘어섰습니다.
이 글은 자랑이 아닙니다. 그때의 저처럼 두려움 앞에 멈춰 서 계신 분께
"나도 할 수 있겠다"는 불씨 하나를 건네고 싶어 씁니다.
저는 억대 성과급을 받는 대기업 직원도 아니고 지방에서 자란 평범한 사람입니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을 잡고 꾸준히 하면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2021 | 가장 비쌀 때, 가장 모르는 채로 샀습니다
#벼락거지 #패닉바잉 #딩크선언
5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2021년 한국에 들어온 저는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 환장한 사람'이었습니다.
해외 오지 근무 덕에 주거·통신·이동 비용을 회사가 지원해줘 또래보다 많이 저축할 수 있었고,
그래서 제가 능력 있는 사람이라 착각했습니다. 주 3회 골프, 명품시계와 지갑, 비싼 외식.
껍데기를 치장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그렇게 돌아왔는데 하필 전국 대세 상승장의 막바지였습니다.
집을 샀던 가족과 지인들은 제 돈의 3배에서 10배 이상 수익이 나 있었고,
더 충격적인 건 그 종잣돈으로는 제가 살던 지방에서조차 살고 싶은 곳에 집을 살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순간에 벼락거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지금이라도 사지 않으면 평생 내 집 없이 살겠구나."
그 두려움 속에서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집도 못 사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겠어… 아이 없이 우리끼리 즐겁게 살자."
저희는 아이를 '원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원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때마침 지인분들이 좋은 마음으로 투자처를 추천해주셨고,
아무것도 모르던 저희는 '지인 추천이면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내는 수도권 다가구주택을, 저는 지방 소도시 신축 분양권을 높은 프리미엄에 매수했습니다.
그때 느낀 감정은 기쁨도 확신도 아닌 '안도감'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이 첫 매수로 부동산에 처음 '관심'이 생겼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던 어느 날, 친누나에게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를 받았습니다.
책대로 자산을 만들어간다면 원할 수 없다고 믿었던 '아이와 함께하는 가정'을 꾸릴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습니다.
그날부터 매일 퇴근길에 도서관에 들러 추천도서 30권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 2022 | 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습니다
#독서30권 #열반스쿨기초반 #저환수원리
30권을 다 읽고 나니 어느덧 2022년이었습니다.
첫 정규강의로 내집마련 기초반 21기를 들었고,
경제적 자유로 가는 길이 필요했기에 이어서 열반스쿨 기초반 48기를 수강했습니다.
너바나님 강의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평범하게 살던 사람도 노후에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그 영상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투자가 왜 '필수'인지 각인됐고, 열기를 들으신 분이라면 문신처럼 기억하실
'저환수원리'와 'L.E.D'도 그때 배웠습니다.
다만 조부모님 장례, 부모님 심장 수술, 결혼이 이어지며
실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지 못한 해이기도 했습니다.
아쉬움이 남지만, 이때 한 결심이 지난 5년을 버티게 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맞든 틀리든 3년만 정답이라 생각하고 배운 대로 해보자."
📌 2023 | 가장 쌌던 해에, 저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역전세공포 #놓쳐버린바닥 #1억싼전세
제 명의로 '투기'했던 지방 분양권의 입주 시기가 왔습니다.
불장에 프리미엄까지 얹어 산 자산이었는데 하필 역사적인 금리 인상과 전국적 하락장을 맞았고,
예상했던 전세가의 '절반'에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해외에서 버티며 모은 종잣돈으로도 지킬 수 없을 만큼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가 벌어졌습니다.
주담대를 일으켜 월세를 맞추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들어오는 월세보다 나가는 이자가 더 큰 집, 보유하는 내내 매달 마이너스가 쌓이는 자산.
제 첫 부동산은 그렇게 '짐'이 되었습니다.
저는 매주 주말마다 지방으로 내려가 부동산 사장님들을 일일이 뵙고,
월세를 맞추기 위해 홀대를 받으면서도 홍삼사탕과 명함을 돌렸습니다.
그 경험은 공포와 트라우마로 깊게 각인됐고, 이 자산은 2026년 10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반등 없이 하락세입니다.
2023년의 저는 앞마당을 늘리면서도 투자에 막연한 공포를 안고 있었습니다.
지금 보면 전국 많은 지역이 '바닥'이던 해였습니다.
준비된 누군가에겐 인생의 기회였지만, 공부를 하고 있었음에도 저는 끝내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를 바꾼 건 신혼집이었습니다. 배운 대로 주말마다 집을 보며 후보를 좁히던 어느 날,
시세보다 1억 원 저렴한 전세 매물 알림이 떴습니다.
현장을 가보니 보증금 증액 한도가 있는 개인임대사업자 매물이었습니다.
운이 좋았지만, 제가 무지했다면 "왜 이렇게 싸지?" 하고 계약하지 못했을 겁니다.
애초에 알림 설정도 하지 않았을 테고요.
"자산이 충분한 부자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이 오히려 부동산을 더 잘 알아야 하는구나."
📌 2024.09 | 2년 5개월 만의 첫 투자
#첫투자 #2년5개월 #자본소득
'24.09 당시 6.4 / 4.4 / 2.0 ('26.10 전세 재계약 완료)
'26.10 현재 9.2 / 6.2 / 3.0 (시세차익 +2.8억, 전세 상승분 +0.22억)
어느새 주말마다 임장 나가는 게 당연한 사람이 되었고,
정규강의를 꾸준히 들으며 환경에 머무르다 보니 실전반 기회도 왔습니다. 첫 실전반은 충격이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앞마당을 만들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틀렸다면 어디가 틀린 거지'를 알기 어려웠고,
'이런 것까지 물어도 되나' 싶어 속 시원히 묻지도 못했습니다.
실전반은 환경이 달랐습니다. 한 달 동안 튜터님과 지역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둬야 하는지 맞춰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동료를 처음 만났습니다.
막바지에 투자 물건을 설명드리는 시간, 튜터님의 한마디를 아직 기억합니다.
"이제 더 좋은 물건이 있는지 털어보세요."
공포가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후 같은 급지의 앞마당을 더 만들고 비교평가로 물건을 추려,
2024년 9월 많은 동료분들의 응원 속에 첫 투자를 했습니다.
월부에 들어와 첫 투자까지 2년 5개월이 걸렸습니다.
1호기 투자 경험담 부동산 하락론자가 패닉바잉 3년 뒤 서울/수도권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
💡 아쉬웠던 점 ①
리스크를 과대평가해 매매가에 '상한선'을 그었습니다.
연초 아내의 퇴사로 저는 스스로 매매가 상한선을 그었습니다.
지금 보면 선호도가 충분한 지역(현재는 규제지역)이었는데도
'전세를 못 맞추면 어쩌지'라는 리스크를 필요 이상으로 크게 봤고,
그 두려움이 가격의 뚜껑이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같은 지역, 같은 투자금으로 살 수 있었던 단지와 2억 원 이상 수익 차이가 납니다.
투자금이 같아도 '내가 감당할 수 있다고 믿는 크기'가 결과를 가릅니다.
👉 그럼에도 이 물건으로 시작하지 않았다면 저는 여전히 공포에 갇힌 채
'자본소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을 겁니다.
2년 5개월이 걸린 무거운 첫걸음이었지만, 그 처음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습니다.
💡 아쉬웠던 점 ②
투자금을 다 쓰지 못하고 쪼갰습니다
중심지에 더 가까운 곳으로 가는 대신 투자금을 쪼개 채수를 나눴습니다.
그때 모두 사용했다면 서울 상급지 단지에 투자할 수 있었고 지금 수익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 하지만 당시 저에겐 실패 경험밖에 없었습니다.
큰돈을 한 번에 넣는다는 것 자체가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였습니다.
투자금을 나눠 부담을 낮춘 덕분에 '생각'이 '행동'까지 이어졌고,
한 차례 더 투자하며 실력이 늘고 스스로를 '투자자'로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한 한 번보다 불완전한 두 번이 저를 투자자로 만들었습니다.
📌 2025.08 | 규제 한가운데서 해낸 두 번째 투자
#두번째투자 #1등물건 #올수리
'25.08 당시 5.1 / 3.9 / 1.2
'26.10 현재 6.7 / 4.5 / 2.2 (시세차익 +1.6억)
첫 투자 이후 동료들에게 "많이 성장하신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저는 더 깊이 몰입했고, 월급쟁이로 살면서 한 달 투자 시간을 300시간으로 유지했습니다.
덕분에 그토록 원하던 월부학교와 독서TF까지 하며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매달 1~2개씩 앞마당을 만들며 다음 물건을 찾았습니다.
서울·수도권에 들어갈 수는 있지만 선호도가 높지 않은 지역과 단지에 가능한 규모였기에 저도 똑같이 고민했습니다. "지방이냐, 수도권이냐." 저는 제 성향을 기준으로 정했습니다.
수익이 조금 늦고 적더라도 전세 수요가 탄탄해 안정적으로 보유할 수 있는 곳. 그래서 수도권이었습니다.
이후 서울 외곽과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를 비교평가했습니다.
후보 단지의 '모든 매물'을 보고 비교한 결과,
제 투자금으로 갈 수 있는 중심부 인근 단지들은
나홀로 단지에 역과도 멀어 교통·거주환경에서 외곽을 압도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주요 업무지구 접근이 좋은 노선을 쓸 수 있고,
택지로 형성돼 가장 선호도 높은 생활권을 선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월부학교 튜터님께서 평소와 다르게 한 달에 앞마당 2개를 만들도록 등을 밀어주셨습니다.
그 격려가 아니었다면 저는 또 '다음에'라고 미뤘을지 모릅니다.
6.27 규제 한 가운데 수도권 투자할 수 있었던 이유
💡 배운 점 ①
투자에는 언제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깁니다
계약 후 6·27 대책이 발표되며 조건부 전세대출이 사실상 막혔고,
제 조건에 맞춰줄 세입자를 찾기는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머리가 하얘졌지만 포기하지 않고 투자지역 인근 은행 지점을 발품 팔며
대출 가능 여부를 하나하나 확인해 대응책을 마련했고, 다행히 현금 세입자를 맞춰 마무리했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투자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생겼을 때 움직이느냐'였습니다.
💡 배운 점 ②
좋은 '관계'가 2등 물건을 1등 물건으로 만듭니다
제 물건과 계약한 임차인은 결혼을 앞둔 20대 신혼부부였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같은 단지에서 제 물건보다 자재 스펙이 훨씬 뛰어난(대신 비싼) 전세를 선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두 물건 모두 단독 물건이었는데, 매수 때부터 좋은 관계를 맺어오신 사장님께서
제 물건을 강력히 추천해주셔서 계약이 성사됐습니다.
가격과 집 상태로 1등 물건을 만드는 게 기본이라면, 마지막 1%를 채우는 건 결국 '사람'이었습니다.
💡 배운 점 ③
내 투자 성향을 아는 것도 실력입니다
0호기에서 역전세로 흔들려봤기에 저는 '수익률'이 아니라
'내가 끝까지 들고 갈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남의 정답이 아닌 제 성향에 맞는 선택이었기에, 이 자산은 단 한 번도 저를 밤잠 설치게 하지 않았습니다.
📌 2025 겨울 | 8천만원의 손실, 그리고 가장 값진 선물
#0호기매도 #손실확정 #아이
[지방 0호기] 4.5 / 2.9(주담대) / 1.6 → 3.8 매도
[수도권 0호기] 1.8 / 1.1 / 0.7 매수 → 3.3 매도
두 번째 투자를 마무리하고 3개월 뒤,
월부에 오기 전 아무것도 모르고 매수했던 0호기들을 매도가 됩니다.
지방 0호기는 결국 8천만원의 손실을 확정해야 했습니다.
제 투자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이 투자를 '제 인생 최고의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산이 없었다면 공부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수도권 자산 3채도 없었을 테니까요.
미웠던 0호기는 결국 저를 투자자로 만들어준 고마운 자산이었습니다.
[오닥] 8천만원 손실이었지만, 제 인생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오닥] 안 팔린다던 다가구, 구조를 바꾸니 팔렸습니다
그리고 2025년 말, “우리는 집도 못 사는데 어떻게 아이를 키우겠어”
그렇게 딩크족을 선언하고 다녔던 저희 부부에게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값진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
4년 전 두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그 꿈을, 투자가 다시 제 손에 돌려주었습니다.
📌 2026.02 | 투자금이 생기고 단 한 달, 세 번째 투자
#세번째투자 #자산재배치 #앞마당의힘
'26.02 당시 9.49 / 6.0 / 3.49
'26.10 현재 11.5 / 7.0 / 4.5 (시세차익 +2.01억)
아이가 태어나던 날, 저는 매도 가계약금을 받았습니다.
한 손에는 아이를, 다른 한 손에는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투자금이 없었기에 '잔금이 들어와야 움직이지' 생각하며 출산휴가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 버는 독서모임에서 '중도금'의 효력을 알게 된 후 마음이 완전히 바뀝니다.
계약금만 받은 상태라면 한쪽이 위약금을 물고 파기할 수 있지만,
중도금이 입금된 뒤에는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습니다.
즉 중도금이 들어온 순간부터 마음먹고 다음 투자를 준비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만큼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매도 시기 자체는 아쉬웠습니다.
10·15 규제로 서울 25개 구와 경기도 12개 지역이 전세를 맞춰 매수하는 투자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손에 쥐는 돈이면 충분히 서울 3~4급지가 가능한 상황이었기에 "하필 지금…" 싶었습니다.
그럼에도 앞선 투자에서 배운 것이 있었습니다.
규제로 막혔다고 포기하는 사람보다, 눈을 한 단계 낮춰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결국 돈을 번다는 사실을요. 멈춘 사람과 눈을 낮춘 사람의 1년 뒤는 완전히 다릅니다.
중도금 입금을 확인한 뒤 저는 공격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비규제 지역 중 서울에 가장 인접한 지역(구리시, 안양시 만안구, 군포시, 부천시, 남양주시 등)이
이미 모두 앞마당이었기에 빠르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규제 지역 안에서 더 좋은 투자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큰 가치 차이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배운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한다."
당시 시장은 매물을 보려고 예약하면 다음 날 "어제 밤에 계약됐어…"라는 전화를 받을 만큼 불이 붙고 있었습니다.
저는 후보 단지의 모든 매물을 확인했고, 투자금을 조금 벗어나더라도
제 기준에 맞춰보려 사장님들과 머리를 맞댔습니다. 그러자 좋은 매물이 찾아왔습니다.
저보다 먼저 연락한 매수자가 있었음에도, 사장님들께서 저를 '진짜 투자할 사람'이라 여겨주셔서
제가 먼저 보고 결정할 수 있게 일정을 짜주신 겁니다.
1호기는 2년 5개월, 2호기는 9개월, 3호기는 단 1개월.
그 차이를 만든 것은 투자 실력이 아니라 '앞마당'이었습니다.
💡 배운 점 ①
'환금성'은 숫자에 적히지 않는 리스크였습니다
0호기 2채는 부동산에 내놓은 지 6개월이 넘도록
집을 보러 오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만큼 환금성이 낮았습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자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이 기회인 줄 '알면서도' 잡지 못할 수 있다는 것.
팔리지 않는 자산은 자산이 아니라 족쇄였습니다.
그래서 이제 저는 매수 전에 반드시 묻습니다.
“이 집, 내가 팔고 싶을 때 팔 수 있을까?”
💡 배운 점 ②
앞마당은 '지금' 투자하려고 만드는 게 아닙니다
한 달 만에 3호기를 매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비규제 지역 대부분이 이미 제 앞마당이었기 때문입니다.
앞마당은 당장 투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매달 하나씩 쌓았던 느린 축적이 정작 필요한 순간 선택지로 돌아왔습니다.
📌 지금, 그리고 앞으로
#선택의자유 #근로소득과자본소득 #진짜행복
경제적인 이유 하나로 딩크족을 선언했던 부부가 제대로 된 투자를 알게 되었고,
자산을 쌓아가며 그토록 원하던 아이도 품에 안았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했다는 이야기도, 자산이 모든 걸 해결해줬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이를 얻는 과정에서 자연임신, 인공수정, 시험관 시술을 거치며
'내 욕심과 수면 부족 때문에 아이가 어려운 건 아닐까' 제 탓을 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투자에 몰입하다 보니 가족과 보낼 시간이 줄어 갈등도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이 길의 끝에 빛이 있을지 허상일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묵묵히 할 일을 해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특히 첫 투자까지 동료들보다 오래 걸렸기에,
아무 성과 없이 시간만 허비하는 것 같던 그 시기는 정말 암울했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 방법 말고는 다른 길을 몰랐으니까요.
최근 이 목표 달성이 어떤 '선택의 자유'를 주는지 뼈저리게 느낀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회사에서 첫 사회생활부터 25년을 근무하신 팀장님께서,
회사가 가는 방향과 팀의 입지가 반비례하게 되면서
한순간에 원치 않는 인사발령을 통보받으셨습니다.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 초반, 인사팀을 피해 다니던 회사 선배님 이야기 그대로였습니다.
'회사가 내 노후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를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눈앞에서 본 장면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직 최종 목표까지는 멀지만, 저에게는 근로소득과 함께 자본소득이 있기에
적어도 '선택의 자유'는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무작정 파이어족을 꿈꾸기보다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려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부동산 투자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월부에서 배운 대로 해나가다 보면 시간은 제 편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평범한 분들께서도 작은 희망의 불씨 하나를 보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 감사의 마음을 담아
월부라는 환경을 만들어 올바른 투자관을 세워주신 너바나님
책으로 알게 되어 늘 좋은 자극을 주시는 제 인생 첫 멘토 너나위님
세 번의 투자코칭으로 방향을 잡아주신 마스터멘토님
독서TF 인연으로 성장을 도와주신 빈쓰튜터님, 잔쟈니튜터님
재테크입문반으로 제대로 된 자산 구축을 도와주신 한가해보이멘토님
매물코칭으로 확신을 더해주신 라즈베리튜터님, 권유디튜터님, 자향멘토님
슬럼프 시기를 함께한 진심을담아서튜터님, 진댐이들
기버가 무엇인지 알려준 몽부내튜터님, 부내즈들
어떻게든 MVP 만들어 학교 보내주겠다며 도와주신 따봉즈들
과밀학급으로 만나 2년 넘게 함께해주고 계신 메장이들
첫 조장임에도 우수조가 되게 해준 '100억 부자되조' 조원분들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들께서 제 주변을 밝혀주셨고,
저와 인연이 닿았던 모든 분이 행운이었습니다.
받은 도움을 더 많은 분께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그리고 가장 불확실했던 시간을 묵묵히 함께 견뎌준 아내와,
저에게 '왜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 우리 아이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주변 동료들보다 모든 것이 느려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었던 문장으로 글을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행동하는 투자자 오닥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