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제보다는 조금씩 똑똑해지려고 매일 노력을 시도하긴 하는 현자입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방학이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얼추 10년 가까이 방학을 ‘고생한 나를 위한 휴식’이라 생각하며
게임과 영화와 드라마와 여행 등으로 부질 없이 날리며 살아왔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웃깁니다. 퇴근도 꽤나 빠르면서 뭔 휴식을 한두어달 씩이나 하겠다는 거였는지ㅎㅎ…)
그러다 작년 가을 월부를 알게 되어 공부를 시작했고, 이번 겨울방학은 월부인이 되고 난 뒤 처음으로 맞는 방학입니다.
당연히 방학동안 공부를 더욱 깊고 긴 시간동안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렜지만,
때마침 시작한 실준반 재수강에서 권유디님이 ‘출근 시간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해보라’는 내용이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그래서 방학 아니면 아예 해볼 방도가 거의 없는(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도 아니다보니)
평일 오전 출근 체험을 해 보기로 했습니다.
보통 강남 직장인들은 언제까지 출근하는지를 놀이터에 여쭤보았고, 많은 분들께서 답변해주신 덕분에 8시 30분을 기준으로 잡고, 그 시간에 최대한 맞춰 가보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번 달 실준반 재수강에서 조원들과 함께 뽀개기로 한 지역은 서대문구입니다.
그리고 지난달 서투기 강의에서, 다른 비슷한 급지 지역들과는 달리 특이하게도 ‘3호선’이 강남 접근성이 제일 좋다는 내용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홍제역으로 간 뒤, 강남역으로 가보는 것은 어떨까?' 라고 생각했고, 실행으로 옮겼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간단히 누룽지를 물에 끓여 미음처럼 먹은 뒤
추위를 뚫고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서 여섯시 반 지하철을 탔습니다.
(이것도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괜히 밍기적대다가 오늘로 미뤘으면 영하15도의 대 한파를 맞았을텐데,
미루지 않고 바로 실행한 덕분에 덜 추운 날 다녀왔네요)
새벽부터 지하철에서 쇼츠 삼매경이셨던 두 분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은 뒤
서투기 강의에서 자모님이 꼭 읽어보라고 하셨던 <몰입> 책을 멋있게 따악 꺼내들고 훗…….
10쪽을 채 읽지 못하고 기절했습니다. 너무 피곤했나봐요ㅋㅋㅋㅋㅋ
그리고 종로3가에서 지하철이 딱 멈춰서 문이 열리는 순간 눈이 번쩍 뜨여서 후다닥 하차했습니다.
의외로 3호선 탑승을 위해 하차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저와 달리 하행선을 타러 가시더라구요.
일찌감치 강남 업무지구 쪽으로 출근하는 분들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무튼 상행선은 굉장히 편안했습니다. 앉아서 갔어요.
드디어 홍제역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지하철 타려고 줄 서있는 인원이 출입문별로 7~8명으로 두 줄이 서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더라구요.
그 때 갑자기 과연 이 열차를 보내고도,
그 다음 열차에도 이만큼 사람들이 타러 와서 출근 인원이 쌓일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곧 들어오는 열차는 일부러 보내기로 했습니다. 남들은 출근하느라 바쁠 때 혼자 승강장 의자에 앉아 책을 들고 있으니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보내기로 한 하행선 열차가 홍제역에 도착했습니다.
이미 홍제역 들어오기 전부터 사람을 그득그득 싣고 왔더라구요.
고양시와 은평구에서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직장인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습니다.
다음 열차는 열차를 보내고 2~3분 뒤에 왔는데, 그 사이에도 사람들이 3~4명 정도 줄을 섰습니다.
아무리 인구 감소네 뭐네, 홍제동에 노인 인구 비율이 높네 뭐네 해도 역시 서울에서 출근하는 사람은 참 많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열차가 도착했는데, 이미 탑승한 승객이 꽤 많아서 조심스레 출입문 끝으로 밀고 들어가서 섰습니다. 그 순간 어르신 한 분께서 저를 포함한 사람들을 몸빵으로 밀어내며 넉넉한 공간을 만드시며 탑승하셨습니다. 덕분에 조금 저에게도 공간이 생겼습니다만, 팔을 거의 상체에 붙인 채, 책이 거의 턱에 닿을 정도가 되어 글자가 거의 읽히지 않을 수준으로 사람들 사이에 짜부러진 채 이동했습니다. 그래도 책을 아예 못 읽을 정도로 밀집도가 심하게 높지는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이런 콩나물 시루에 탑승해서 감회가 새로왔습니다.
(비교평가…라고 하니 웃긴데, 예전에 구로역에서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가는 길에 탑승했던 생 지옥 1호선만큼의 밀집도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매일 통근하시는 분들은 힘드시겠지만, 저는 ‘이 정도면 쾌적한디?'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무악재역과 독립문역, 경복궁역에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탑승하지 않았습니다.
안국역에서 살짝 빠졌지만 여전히 콩나물 시루 모드였습니다.
드디어 종로3가역으로 돌아왔는데, 의외로 사람들이 그렇게 빠져나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다음인 을지로3가역에서 콩나물 시루 모드가 해제되었습니다. ‘중심업무지구의 주요 직장들이 을지로3가 쪽에 더 가까이 있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을지로3가역을 지나면서 혼잡도가 뚝 떨어지고, 이제는 편안하게 팔을 뻗어 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주르륵 하행선을 따라 흘러내려가다가 드디어 신분당선의 시작점인 신사역으로 왔습니다. 여기서 남은 콩나물도 쭉쭉 빠지길래 저도 한 번 같이 내려봤습니다. 교대까지 내려가서 강남역으로 갈아타는 사람들은 많이 없나 봐요.
(아마 2호선으로 강남에 출근하는 건 더 지옥이었겠죠?) 생각보다 신사역에서 탔던 신분당선에도 사람들이 막 엄청 부대껴서 난리가 날 수준까진 아니었습니다. 손잡이 잡고 탈 공간은 있었어요.
드디어 강남역에 도착하고 많은 사람들이 뱅뱅사거리쪽 4번출구로 나가길래 저도 마냥 따라 걸어봤는데, 중간에 현대 신사옥의 에스컬레이터로 많이들 올라가더라구요. 와 멋있던데요. 저는 진짜 뱅뱅사거리가 등장하는 데까지 이렇게나 오래 걸리는 줄 처음 알았습니다. 아직도 강남은 저에게 미지의 영역이네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강남역으로 돌아왔는데, 여전히 신분당선 출구에서 쏟아져 올라오는 사람은 많았습니다.
그리고 4번출구 앞에 있는 붕어빵 가게에 ‘붕어빵 3개 3천원’인 것을 보고 다시금 강남 물가를 체감했습니다.
음…정말 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름대로 결론을 정리하자면,
붕어빵 개비싸네 진짜ㅡㅡ…
2월에도 시간이 가능하면, 그 앞마당에서 강남으로 출근 체험을 한 번 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다만 체험이 끝나고 돌아오니 오전이 뚝딱 사라진 것은 함정^^….독서를 꼭 해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것 같습니다)
오늘도 다들 후회없는 하루 보내기 위해 화이팅합시다.
감사합니다.
댓글
붕어빵 많이 비싸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좋은 경험하시고 가셨네요 현자님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 멋지십니다👍
현자님 넘 귀여우세요 강남 출근 체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바삐 출근하느라 다른 건물을 못 봤는데 현대 신사옥 잘 봐볼게용 ㅎㅎ)
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생동감 있는 지하철 출근 체험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