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날들 이였다.
나는 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았으며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행동’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강요'한 적 없었고
그렇다 한들 나는 타인의 의사대로 움직이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조원 들에게 과정을 적어서 올린다 약속한 바 부족한 실력이지만 지난 날을 회상하며 적어본다.
40대 평범한 자영업자, 주7일, 주100시간 이상 근무.
주말? 병가? 개인시간?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단어였다.
“부동산 투자란 리스크가 크고 감당 가능한 자본가들의 영역이다” 이것이 나의 생각 이였다.
인플레이션을 부정하며(솔직히 두려움에 피한 것일 수 있다)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 외치며 오로지 일만
했다. 나도 느끼고 있었다.
분명 자영업으로 적지 않은 소득이 발생하고 있으나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에 부딪 치고 오래 할 수
없다는 것을…
여러 상황 속에 결국 열반 스쿨 기초반(24.9), 실전 준비반(24.10)을 수강하며 내 안에서 뜨거운 갈망이
느껴졌다.
가슴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감정이었다.
'나는 매우 목 말랐으며 몹시 배고팠고 강력히 원하고 있었다’
그 당시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당연히 방법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월부에서 시키는데로 했다.
자영업자라 주말도 없었기에 내게 허용 된 시간은 퇴근후 밤 12시부터 아침 6시 40분.
나는 그 중 3시간을 할애하여 퇴근후 매일 저녁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공부했다. 수면시간은 3시간
40분으로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자차로 임장을 다녔는데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수입차중 ‘랜사’SUV와 ‘B사’
승용차로 임장 다니고 있었는데 인생을 바꾸고자 공부하는 겸손한 학생의 자세로서 옳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바로 폐차 직전의 기아 카렌스를 사서 임장을 다녔다. (가족과 이동시는 안전상 기존
내차로 이동한다.)
이 차값의 1000배를 벌때까지 차를 바꾸지 않겠다는 마음 가짐으로 ‘임천배씨’(나와 같은 성)라고
이름을 지어줬다.(영어 이름은 카보르기니다. 카렌스+람보르기니) 둘째는 임천배씨를 보고 똥차라고
안좋아 했지만(학교 갈때 카보르기니 태워 준다니 자긴 걸어갈 거라며 절대 안탄다.)
내 간절함을 위해 임장 갈때 무조건 임천배씨와 함께하고 있으며 (4개월동안 1만km 살짝 넘게 다녔다)
이동시 항상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를 목이 찢어져라 외치며 이동한다.
마법처럼 뭔지 몰라도 자신감이 생기는 단어다.
지방투자 기초반(24.11)수강 때는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된 시간'이었다.
평소 수면 시간은 3시간 40 분이었고 조원들과 임장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1~2시간 수면 후
임천배씨와 왕복 7시간 30분씩(졸음쉼터는 무조건 쉬었다) 이동했으며 일어나는 게 쉽지 않아
못 일어날까봐 나중에는 아예 잠을 자지 않고 바로 임장지로 출발 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나를 포기하거나 지치게 만든게 아니라 ‘성장' 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 순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에 육체적으로 힘들 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항상 똑같았다. “그냥 해!!” 단 세글자 였다.
나는 내 자신에게 ”그놈의 생각 좀 그만하고 그냥 해”라고 반복 했다.
하다 보면 ‘습관'이 될 것이고 또 하다보면 내 ‘실력'이 될 것이며 내 실력이 반복 되면 내 ‘인생이 바뀔거라는
것'을 나는 ‘정확히’ 아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때 나는 생각 자체를 바꿨다.
"나는 투자 하는 자영업자가 아니라 자영업을 하고 있는 투자자라고”
지칠때는 항상 내 좌우명과 같은 견월망지(달을 보기 위해서는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손가락
끝이 가르키는 달을 보라)를 수 없이 되 세기며 마음을 잡았다.
그렇게 폭풍같았던 지투기 강의가 끝나고 다른 동료와 다른 임장을 같이 했다. 똑같은
패턴으로 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한계가 다가오고 있었다.
12월 마지막째 주 매임까지 겨우 마무리한 후 물 이외에는 모든 음식물을 다 토했으며 온몸이 아팠다.
31일부터 1월 4일까지 물 이외 음식은 전혀 먹을 수 없었으나 자영업이다 보니 매장서 일하고 병원가고
밤에는 잤다. 잔게 아니고 낮에는 버티고 밤에는 그냥 쓰러져 기절 하다 시피 잤다는게 맞다.
내 목실감 매일개인 루틴 중 수면 4시간 채우기를 매번 못 지켰었는데 이 때 지켰내~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안한다.
현실은 못 바꾸니 생각이라도 바꿔야 했지만 속으로는 체력 관리를 못해 패턴을 깨버린 이 상황을
개탄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연말 연시고 새해고 내겐 중요하지 않았다.
말로는 괜찮다 기왕 아픈김에 몇일 푹쉬자 했지만 4일내내 나는 꿈속에도 임장 다니는 꿈을 꿨다.
정말 4일내내 임장 다니는 꿈만 꿨다. 정말 얼마나 징그럽게 꿈속에서 임장을 다녔던지
일어나면서 웃으면서 일어 났다. 임장 못갈거 아니까 꿈에서 간거다. 속으로는 지금 내가 단단히
미쳐있구나 생각했다. 허나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 미치지 않고서야 되겠는가 미친김에 더 미쳐버려야
겠다고 혼잣말을 해본다.
바로 다음주 부터 혼자 임장 할때는 아주그냥 즐겨버렸다.
1월초 차디찬 바닷 바람을 맞으며 정말 열심히 다녔다.
새벽 4시반에 출발해서 해 떠있을때 보려고 밥도 안먹고 저녁에 다 끝내고 먹고 내려갔다.
그 순간도 잠시뿐..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아내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 이였다.
큰 병원가서 검사하고 다시 전문 병원가서 검사하고 급히 수술 날을 잡았다.
나는 울고 싶었었다 허나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울면 아내가 슬퍼할 것이고, 아이들도 놀랠 것 이기에
가슴으로 울었다.
정말 가슴부분 그 깊은 부분 자체가 아팠는데 너무 참았더니 숨이 잘 안쉬어졌다.
그리고는 월부 공부를 단 하나도 하지 않았다. 가정에 소홀했던 내 자신이 너무 싫었으며 큰 죄책감에
힘들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수술날까지 아내 컨디션 조절 하는 것 밖에...
죄책감에 내가 평소와 좀 달라졌던 것 같다.
얼마뒤 아내가 “공부 계속 했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공부할때 임장 갔다 올때 사람
눈빛이 달라 졌었는데.. 다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고민 후 아내에게 약속한다.
“여보! 내가 아직 부동산 이론은 잘 모르지만 보여줄께!
나 열심히 노력하는거 보여줄테니까 꼭 당신도 기운내고 잘 이겨내자 우리!!"
그 순간. 그때부터 부터 나는 완전 ‘미친놈’이 되었다
내 자신을 컨트롤 했던 나의 혼잣말을 하루에 수십번 반복하며 집중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견월망지”
“불가능한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것을 행동해야한다”
“실패는 있어도 포기는 없다! 포기 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
“나는 성공이 습관인 사람이다!!”
“해보자!하자!한다!했다!!”
“이까짓꺼 나는 절대 무조건 한다! 결과로서 내 과정을 입증하겠다!!!”
“그놈의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는 변명좀 제발 그만하고 이순간 내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생각하자!!!”
정말 미친듯 수없이 반복 했다.
나는 바로 열반스쿨 중급반 강의를 신청했고 첫 온라인 조모임에서 50일 안에 1호기를 하겠다고 공언했다.
실전준비반 단체방, 지방투자기초반 단체방에도 조원들께 양해를 구하고 매일 아침 디데이를 시작했다.
나는 배수의 진을 친 상태 였고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상황을 아는 조원 분들도 있으 셨지만 그냥 꼭하고 싶어서 디데이 하시나 보다 라고 생각 하신 조원들도
있으실텐데 늦었지만 이 글로 내가 왜 디데이를 했는지 밝힌다.
너무 간절했다. 꼭 해내고 싶었고. 꼭 해내야만 했다.
자영업이라 시간이 많지 않아, 이 수면 패턴에서 잠을 더 줄일수는 없었고,열중 강의는 들을 수 조차 없었다.
가용 가능한 모든 시간은 전임,매임으로 집중 하였고 그중에 열중 독서모임을 위해 매주 책은 3번씩
읽고 후기도 작성했다. 그때 책을 안읽고 매물만 보고 있었으면 아마 머리가 터졌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지금 생각해보니 이 당시 나는 원씽, 몰입, 그릿을 행하고 있었던거다.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그렇게 2월 21일 금요일. 아내의 수술날. 입원실과 수술 대기실에서도 나는 3주차 과제인 ‘몰입’을 읽고
있었다. 수술날 책보고 있는사람이 제 정신이냐고? 미친거 아니냐고? 분명 위에서 나는 미친놈이 되었다
말 했다.
정확이 말하자면 꼭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버틸 수 있었고 나는 할수있는게 없었다.
그당시 책 내용은 기억도 안난다 그냥 엄청 빠른 속도로 글자 형태만 보일정도로 빠르게 2번 본거라
내용도 기억 안나서 나중에 다시읽고 독서후기를 썼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하였고 수술 결과도 좋게 나와서 앞으로 계속 검사받으며 관리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잘 퇴원했다.
퇴원 후 다시 시작.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을 믿고 있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만 하지 않았다.
분명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을 뿐이였다.
그동안 나는 뜨거운 가슴과 차갑고 냉정한 머리로 정말 미친듯이 전임,매임, 협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직 이론적으로는 많이 부족 했지만 나는 '모든것이 준비된 완벽한 때란 존재 하지 않는다. 설령 그 때는
오더라도 이미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넘어 갔다’ 라고 생각 했기 때문에 현장으로 달려 갔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 하면 되는거고 해결하면서 배우는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부사님들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았었다. 꼭 해야했으니까…
왕복 7시간이 넘는 거리를 쉽게 다닐수 없었기에 매임 할때 마다 부사님들께 멀리서 혼자 운전하고
오는거니까 꼭 찾아 달라고 제 번호 꼭 저장 해주시라고 부탁하며 나를 어필했었다.
그렇게 매임 하던 중….
사장님과 계속 연락 중이였던(당일 물건이 없어서 사장님과는 매임을 잡지 않은 상태였다 )
부동산 횡단 보도를 지나가다가 다음 매임까지 20분이 남아서 뒤돌아 ##부동산에 들어 갔다.
사장님께서 "먼데서 말도 없이 어찌왔노~"하시며 반기신다. (부사님은 나이가 있으셨고 이미 나는
저번 방문때 아들.며느리가 나와 동갑이고 며느리가 경기도에서 의사라는 자랑과 손녀 태권도 하는
동영상, 사진을 20분이나 봤으며 나도 호응 하기 위해 내 아이들 사진 보여주며 이미 친해진
상태였었다.ㅎ ㅎ)
나는 "사장님이 물건 안보여 주시니까 다른 물건 보러가는 중에 20분 남아서 우리 사장님
얼굴 뵈러 왔지요~~” 하면서 너스레를 떨어본다
커피한잔 주신다기에 시간이 없어서 안된다고 정중히 말씀드리고 웃으며 " 물건이 없으면 만들어
주셔야죠~~ 나올때 까지 언제 기다려요~ 저 오늘도 새벽에 5시에 출발해서 지금 돌아니고 있어요~~
오늘 못찾으면 저 다음주에 또와야되요~~” 했더니 바로 옆에 있던 내가 뽑았던 1등 아파트. 투자금 기준이
맞지 않아 언감생신 처다볼수 밖에 없던 아파트를 말씀하시며
“니 투자금 쪼매 더쓸수 있나?”하신다.
이미 그 단지 투자금을 알기에 나는 “안돼요~ 저 투자금 아시 잖아요. 천만원까지는 어찌
해봐도 금액이 안맞아요” 했더니 부사님께서 친한 언니?가 올해 12월에 이사 간다고 9월달에 집
내논 다하는데 그때 까지 기다릴수 있나? 하셔서 저 지금 바로 들어 갈거라서 그때까지 못 기다린다
답하니 바로 전화 하셔서 지금 매도하고 몇달 전세로 살다가 나가라고 두분이서 통화하신다.
순간 ’어??? 이게 뭐지?? 살고있는 사람을 굳이 전세로? 설마 되나? 나같으면 안하겠는데? ‘
그런데 뭔가 진행 되나 싶더니 되고 있다.
진짜 이게 이렇게 된다고????
뭔가 너무 빨리 되서 이거 몰래 카메라인가??ㅎㅎ
중요한것은 매매금액.
시간이 흐른다.
흐름상 주도권은 내게로 점차 스며들고 있음이 느껴진다..
바로 전화로 협상 들어간다.
나는 내 조건을 제시 했고 이제 내 손을 떠났기에 매도인의 선택이 남아 있을뿐..
부사님께서는 친한언니(매도인)에게 우리 아들이랑 며느리랑 동갑이라며, 부사님 손녀랑 여기 손님
둘째랑 동갑이라고 전라도에서 7시간 운전하고 왔다 갔다 고생 한다며 계속 가격 협상해 주신다.
어떻게든 엮어서? 해주시려는게 너무 감사했다.
이 모든게 다음 매임을 위해 횡단보도 건너다가 다시 돌아가서 부사님께 인사드리고 앉아서 애기하다
만들어졌다.
단 20분 이였다!
이 찬란한 20분의 시간을 위해 나는 매일 새벽 부터 1만km를 임장 왔던 것이다!
이순간을 기억 하라.. 그리고 지금 부터 만들어 내라.
그렇게 매도인의 결정을 남겨둔체 나는 기존 약속 되있던 다른 부동산 매임을 갔다 왔고 부사님께 일단
집 상태 먼저 보고 다시 말하자 했다.
입주한지 3년 3개월 밖에 안됐기에 역시 좋았지만 날카로운 눈으로 정말 꼼꼼히 봤다.
어르신들이 사신 집이라 정말 특이점 하나 없이 그냥 신축 그대로 였다.
딱히 협상할 사항이 없어서 부사님께 돈이 ‘너무 많이’ 모자라니 조금 ‘많이 양보해주시면’ 어떻겠냐 젊은
사람이 돈이 어딧겠냐 진짜 넓은 마음으로 양보좀 해주시라고 했다.
다시 한번 너스레를 떨어본다.
어차피 그분들께 나는 그냥 시골에서온 젊은 시골 사람 이였을 테니까.
계좌번호 주시면 지금 바로 가계약금 일천만원 입금한다고 사정사정하니 “그렇게 하자” 회신이 왔다.
“우리에겐 항상 기회가 온다 하지만 대다수는 기회가 왔음에도 인지 하지 못하고 훗날 후회를 한다.”
나는 나에게 기회가 왔음을 직시하고 행동 하였다.
시간이 많지 않다.
이순간을 위해 그동안 이미지 트레이딩을 하지 않았던가..
먼저 등기부등본에 본인 확인,
근저당내용 확인하니 대출하나 없이 깨끗한 물건이기에
마음 바뀌실까봐 가계약금 먼저 입금.
문자로 계약 내용 작성 하는중 바로 들어가는 투자금을 줄이기 위해 전세금 500만원 증액도 협상.
그 짧은 찰나에 전세금 까지 올려서 초기비용 500을 줄였다.
그렇게 나는 부동산을 나오고 당연히 그날 일정에 있던 모든 매임을 다하고 내려왔다.
주인전세라 세입자를 맞출 필요가 없었고 잔금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 하지도 않았다.
그뒤 계약서쓰고 잔금 치르는날에도 나는 그 지역 매임을 하고 내려왔다.
물건을 억지로 만들어 주신 부동산 사장님과 감사하게도 아직 매도 안해도 되는 집을 매도 후 전세로
해주신 매도인겸 현 임차인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장모님께서 직점 담가주신 전라도 고흥 유자차
2통과 광양 매실 액기스 2통을 (각3kg ) 드렸더니 나를 정말로 시골 농사꾼으로 아신다^^
젊은 사람이 농사를 크게 지어서 돈을 많이 벌었나봐~~ 그러신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강의에서 강사님께서 계약한날은 자신을 위해 치맥을 하라 하셨기에 치맥으로 마무리.
끝이 아닌 시작임을 알기에 지금 돈독모를 시작 하였고(4월 돈독모. 세이노의 가르침. 내평생 이렇게
두꺼운 책은 처음 봤다.이건 벽돌 그자체다.) 멈추지 않고 4월부터 새 임장지에서 나의 작은 발자취가
추후 위대한 발걸음이 될 수 있도록 내 파트너 임천배씨(카보르기니)와 정진 할 것 이다.
투자하는 자영업자에서 자영업하는 다주택 투자자로서 첫발을 내딛게 해준 월부와 단톡방에 -50일부터
응원해주신 조장님과 조원분들 -26째 되던날 계약서 인증샷으로 감사함을 답하고 무엇보다 큰 수술 잘
이겨내고 다시 공부 할수 있게 해준 나의 아내와 두 아들에게 감사함을 표한다.
실력은 부족 했지만 최선을 다하는 성공이 습관인 사람
벨라 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에피소드)
잔금 치르기 전 부동산에서 소개 시켜준 법무사 견적을 받았는데 필수금액인 인지대, 증지대, 채권처분액,
이거 말고 수수료를 다합치니까 680,000원.
부사님께 다른 법무사 견적 받아도 50만원대 나와서 비싸다니까 부사님이 법무비는 솔직히 진짜로
모른다고 다른데 알아보라 하시길래(업무가 다르므로 일부러는 아닌것 같았다.)
실준반 조장님이 거래 하셨던 법무사에 견적 중 주소 넣다가 그쪽에서 주소보더니 아까 견적 받지 않았냐
하시길래(부동산에서 연결해준 나를 눈탱이 보려던 법무사= 조장님이 소개 시켜준 반값에 해주기로한
법무사) 같은 곳.
순간 성질 나서 법무사 2팀을 더 섭외해서 경매?를 시작.
각각 금액 받아서 이금액 나왔는데 아래로 해줄거냐 여기 얼마.여기얼마. 배틀을 시킴.
그래서 결국 낙찰 받은게 처음에 그 법무사였다.(더 괴씸)
이 동네 시세라는 게 있다 진짜 싸게 해주는거다 이러길래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하고선
부사님께 거기 법무사에 5만원 더 안깍으면 안한다고 하기 싫음 말하라 했더니 5만원 더 깍아서 했다.
내가 누구던가 잔금날 노트북 들고 가서 채권처분액 먼저 계산해서 오늘 날짜 기준 이금액으로 다시
작성 하세요 했더니 마지막 기회를 날린지라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방심은 금물이다-
<24.10 실준반때한 약속.지켰다.>
<하루14시간 근무하며 수없이 다짐한 글귀 >
<단체방에 적은 디데이>
댓글
가족 돌보시면서 1호기 투자까지!! 벨라님 고생많으셨습니다 축하드려요 🎉
도레미님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해 주셔서 덕분에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벨라님 1호기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끝까지 절대 포기 않으신 벨라님 너무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앞으로 또 해내는 투자자로 성장해보겠습니다~ 앞으로도 퐈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