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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1. 책의 개요
STEP2. 책에서 본 것
[1부. 걱정에 대해 알아야 할 기본 지식]
p 41. 심리적으로 볼 때 최악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에너지가 솟구친다. 최악을 받아들이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러면 얻을 수 있는 것만 남는다. "최악의 상황을 직면하니 당장 마음이 편해지고, 며칠 동안 느끼지 못했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걱정과 불안은 받아들이지 못할수록 더욱 증폭된다는 것을 알게 해준 문구였다. 메타인지가 중요하다는 말처럼,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두려워서 회피하게 되는데, 이걸 직면하지 않으면 결국 그 상황을 해결해 나가기 어렵다. 자기관리론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문구이자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적용할 방법.
(1. 최악의 상황이 무엇인지 자문 → 2.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일 준비 → 3. 최악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
[2부. 걱정을 분석하는 기본 기술]
p.63 세상 걱정의 절반은 결정을 내리는 데 기초가 될 만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결정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예를 들어, 다음 주 화요일 3시에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으면 저는 그때까지 어떤 결정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문제와 관련된 사실을 파악하는 데만 집중합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을뿐더러 안달복달하지도 않습니다. 잠도 잘 잡니다. 이렇듯 화요일이 다가올 무렵까지 모든 사실을 파악하면 보통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있습니다.
→ 습관적으로 ‘아… ~~해야 되는데. 이거 어떻게 하지?’ 라는 말을 수없이 해왔다. 시작도 하기 전에 하소연처럼 내뱉은 말이었는데, 책을 읽어보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좋은 출발은 아니었다. 결정을 내린다고 하면 큰 결단이 필요하고 중대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서 실행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관련된 사실을 파악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한다는 방식이 부담 없이 행동할 수 있어서 앞으로 적용해보려 한다.
[3부. 걱정이 나를 망치기 전에 걱정하는 습관을 없애는 법]
p.109 당신이나 나나 몇십 년을 사는 동안 ‘이미 그런’ 불쾌한 상황을 수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상황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기고 받아들여 적용하느냐, 아니면 반발하면서 인생을 망치고 결국 신경쇠약에 걸리느냐는 우리의 선택에 달렸다.
p. 111 주어진 환경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들 수는 없다. 우리의 감정은 환경에 반응하는 방식, 즉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렷다. 예수는 천국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옥도 마찬가지다.
→ 너나위의 나긋나긋 초반 영상에 나왔던 말씀이 떠올랐다. 살아가면서 나를 초라하게 만드는 상황은 수 없이 많이 찾아오는데 거기서 한탄만 하느냐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것을 찾느냐는 결국 내 마인드에 달려있다는 말이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막상 그런 상황에 놓이면 얻을 수 있는 걸 찾기보다 그 순간의 감정과 기분에 휩쓸릴 때가 더 많다. 다시 한 번 마음 속에 새겨 놓고 적용해보자.
[4부. 평화와 행복을 부르는 7가지 자세]
p.231 사람들이 과학과 종교의 갈등에 대해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현대적인 학문인 심리학에서도 예수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다. 기도와 강한 종교적 신앙이 질병의 반 이상을 일으키는 걱정, 불안, 긴장과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사실을 심리학자들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심리학계의 권위자 브릴 박사는 “독실한 종교인은 신경질환에 걸리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 마지막 멘트를 읽고 생각해보니 독실한 종교인은 예수나 부처님이 행하신 뜻이라 믿고 크게 불평하거나 불만을 갖지 않는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가족은 무교지만, 어릴 때 어머니께서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종교를 찾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적 있다. 아마도 마음을 다잡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결국 행동은 내가 해야 한다. 다만 이미 던져진 주사위처럼 결과를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믿음을 통해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태어나서 처음으로 절에 가볼까 고민했던 것도 결국 종교가 주는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다.
[7부. 피로와 걱정을 예방하고 활력과 의욕을 높이는 6가지 법칙]
p. 280 “사람들은 대체로 열심히 노력한다는 기분이 들어야 고된 노동을 했다고 생각하며, 그렇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게 가장 큰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집중할 때 인상을 쓰고, 어깨를 웅크린다. 자신의 근육에게 ‘노력’하는 자세를 보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래 봐야 뇌가 움직이는 데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도 말이다.
→ 회사에 CCTV를 달아놨나? 이 문구 읽고 엄청 찔렸다... 항상 집중할 때 자세가 모니터 몸이 앞으로 다가가며, 다리도 꼬고 집중 모드로 들어간다는 자세를 나도 모르게 했었다. 제 3자가 봤을 때는 그냥 자세가 불편한 사람이다. ㅋㅋ
앞으로 몇 십년은 의자에 앉아있을텐데 건강을 위해서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겠다.